Management | 조두섭의 일본 기업 재발견 - 도요타 경쟁력의 원천 ‘우리는 남이다’
Management | 조두섭의 일본 기업 재발견 - 도요타 경쟁력의 원천 ‘우리는 남이다’
도요타의 올해 세계 판매 실적이 10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그룹 산하 경자동차의 다이하츠와 트럭의 히노자동차 실적을 더한 수치이지만 세계 자동차 역사상 처음이다. 소니가 몰락한 일본에서는 도요타가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불린다. 아베 총리가 모든 걸 희생하면서도 환율을 낮추어 자동차산업, 특히 도요타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상징성 때문이라고도 보인다. 여기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아키오 사장은 일본 국내 생산 300만대는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만으론 일본 기업 설명 부족해필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동경대학 박사 과정에 있을 때 기업 내의 기술 이전을 학위논문의 테마로 정했다. 사례는 일본 기업의 일본 본사와 해외 자회사 간의 기술 이전을 조사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과 대만에 동시에 진출한 일본의 자동차 부품기업과 전자 부품기업 12사를 선택해 현지조사를 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이다. 삼성도 현대자동차도 에이서(Acer)도 폭스콘(Foxconn)도 국제적인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때 다. 당시 많은 일본인이 현장의 살아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제공해 좋은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과 대만의 장래에 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가 많았다. 전자부품 기업을 대표하는 T사의 한국 자회사 일본인 사장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완성품 기업의 횡포가 이렇게 심해서는 부품업체가 절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일본은 제값을 쳐주면서 기술 지도도 아끼지 않았기에 서로가 세계 일등이 됐다. 한국은 기업 간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 기업 대 개인 차원에서도 신뢰가 없기에 하이테크 산업을 키우지 못한다.”
발언 수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일본인은 한국의 문제로 신뢰의 부족을 들었다. 1980년대 이후 일본기업(조립산업)의 성공비결에 관한 논문의 태반은 일본적 하청계열시스템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의 하청시스템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소수의 부품기업을 대상으로 계열·장기 거래가 특징이다. 이들을 묶는 정신적인 끈이 다름아닌 신뢰다. 완성차 기업과 부품기업이 서로가 믿고 협력하기에 거래의 안정성이 확보되고 비용 절감과 기술 혁신이 용이하다.
대충 이런 설명이 주류인데 사실 일본의 산업조직은 다른 나라와는 현저히 다른 특징이 있다. 거래의 종류를 조직(사업부 간의 거래 정도로 생각하자)과 시장(그때 그때 카탈로그를 보고하는 구입하는 정도로 보자)으로 구분할 때, 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중간단계의 거래형태다. 즉, 하청이나 계열이 무척 발달해 있다. 학문적으로는 ‘중간 조직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산업이 다단계 거래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는 전체 거래의 85%가 계열기업으로부터의 아웃 소싱이라고 한다. 계열도 심한 경우 7차에 걸친 중층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요타가 담당하는 15%는 전체 기획·통합업무이고 개별 기술은 계열 부품업체가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하청·분업관리 시스템이 세계 최강인 기업이 바로 도요타다. 오래 동안 경제학의 이론가들은 쉽게 납득 못했던 현상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코즈·윌리암슨의 거래비용 가설에 따르면 일본식의 계열이나 하청을 통한 장기적 거래가 반드시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다.
시장거래나 조직거래에는 발생하지 않는 장기 거래에 따른 고유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정의 상대와 장기간 거래하는데 따른 위험, 예를 들면 담합비용이나 긴장감 상실에 따른 무기력 비용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고유비용을 억제하고 장기적으로 거래효율을 일본 기업이 달성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특수한 요인이나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윌리암슨은 추측했다.
이 특수 요인으로 많은 연구자가 주목한 것이 신뢰이다. 일본인은 공동체의식이 강하고 상호 신뢰하기에 특정의 상대와 장기간 거래를 하더라도 담합하지도 않을뿐더러 긴장감도 잃지 않는다. 일종의 일본 문화 또는 국민성으로 경제 효율을 설명하고자 하는 논리다.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본 우월주의와 맞물리면서 일세를 풍미했다.
전체 거래의 85% 계열기업 아웃소싱이런 우월감에 기름을 부은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저술한 『신뢰(TRUST』(1995년)가 아닌가 싶다. 그는 국가나 사회에 따라서 타인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뢰를 ‘자발적 사교성’으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는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는 우정을 중요한 특징으로 들었다.
신뢰는 중요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하나로 각 사회의 종교·역사·문화의 산물이기에 축적된 양은 다르다. 단시간에는 바뀌지 않으나 방치하면 약체화되는 것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물론 보수유지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면 양이 늘어날 수도 있다.
사회자본이 풍부한 사회를 고신뢰 사회, 낮은 사회를 저신뢰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미국·일본·독일이 전자에 속하고 프랑스·이탈리아의 라틴계, 대만·홍콩 등의 중국계, 범중국계의 한국은 후자에 속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본은 신뢰라는 사회자본이 충만한 사회이기에 계열·하청거래에 따르는 고유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그 결과 높은 경제효율을 달성하고 있다.
저신뢰 사회에서는 대기업은 비효율적이고 중견기업은 존재가 미미하며 가족기업만 발달한다. 일본은 효율적인 대기업, 세계적인 중견기업, 가족기업의 글로벌화가 동시에 진행됐으니 고신뢰 사회의 특징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 신뢰의 만세삼창이 나온 배경이다.
참고로 한국에 대해서는 저신뢰 사회이기에 대기업의 효율 유지가 어려운 사회이기는 하지만 재벌기업이 성공한 건 한국 사회가 문화의 변용에 성공한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저신뢰 사회에서 고신뢰 사회로의 전환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신뢰를 키워드로 경제효율을 설명할 때 도요타는 들어맞지만 일본 기업이면서 별로 효율적이지 못한 곳은 설명이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에 들어 경영 부실에 빠진 전자계 조립기업이 많다. 부진의 이유로 계열·하청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거래비용이 엄청 커져서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똑같은 일본인인데 도요타는 신뢰가 높고 닛산은 신뢰가 낮다면 더 이상 학문적인 용어가 되기 어렵다. 문화론이나 정신론 나아가서는 일반론의 한계다. 계열·하청을 아직도 고집하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도요타만의 고유 요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언급한 대로 도요타는 아직도 자국 생산 300만대를 고집하고 있다.
일부 공장은 분산돼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치현 내의 두 시간 거리에 4000개 정도의 하청·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높은 인건비·전기세·법인세에 이어 계열·하청 거래비용도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 일등을 사수하는 도요타에는 윌리암슨 말대로 특수한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
필자는 나고야대학에서 10년 반을 근무하면서 도요타 관련 기업을 많이 취재·연구했다. 그때의 소감으로 도요타의 경쟁력을 두 개의 키워드로 정리하면 계열·하청기업 간의 경쟁구조와 정보 수집-문제 해결 지원이 될 것 같다. 첫 번째의 계열·하청기업 간의 경쟁구조를 보자.
도요타의 특수 메커니즘에 관해서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납득한 뛰어난 연구가 있다. 교토대학 경제학부 교수였던 고(故) 아사누마 반리의 연구다. 그의 연구에 는 ‘신뢰’의 ‘신’자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문화론을 일체 배제한 경제논리를 완성시켰다. 일본적 경영론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평가된다.
공동운명체지만 공장도 보여주지 않아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동차산업을 생각하면 무수히 많은 부품기업이 부품을 공급하는 분업구조로 돼 있다. 이들 부품들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자동차가 완성된다. 이때 모든 부품기업의 바람은 안정된 조업도와 높은 단가의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납품하는 차종과 부품의 종류를 늘려야 하고 단순한 제조 대행 기업에서 개발능력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아사누마씨는 그 단계를 부품의 난이도에 따라서 제조대행단계(상중하), 개발능력 단계(상중하)로 나누어서 부품기업의 성장목표를 선명하게 개념화했다.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보다 고도의 능력을 갖추게 되며 기업은 성장하게 된다. 사실 모두 도요타와 한 배를 탄 공동체라고 말을 하지만 부품업체 간에는 엄청난 경쟁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협풍회니 자주연구회니하는 친목단체나 연구회는 많지만 웃는 얼굴 뒤에는 치열한 경쟁의식이 숨어있는 것이다.
JK라는 이니셜로 자주연구회가 유럽에서도 인기인데 의미 있는 실적을 올리려면 구성멤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절대로 기술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을 함께 넣으면 안 된다. 서로 간에 절대로 공장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무척 신경 쓰는 부분이다. 계열·하청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압력이 작용하고 이것이 원가 절감과 기술혁신을 이뤄내는 원천이라는 아사누마의 논리에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찬사를 보냈다.
특수한 메커니즘이지만 시장거래나 조직거래보다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제3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를 긴장감이 유지되게 조절하는 도요타의 능력을 주목하게 됐다. 일본의 성공을 신뢰나 단순한 문화론적 설명에 그쳤다면 일본 특수론 나아가서는 일본때리기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이론화에 성공하면서 일본적 경영의 글로벌화 이해에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유행한 ‘린 프로덕션’ 논의는 아사누마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두 번째의 정보 수집-문제 해결 지원. 경쟁 압력은 이 정보수집-문제 해결 지원이 없으면 글로벌 경쟁력으로는 연결되기 어렵다. 도요타는 지구상에 펼쳐놓은 안테나를 이용해 전 세계의 정보·지식을 수집해 부품업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의 신차를 분해하해서 새로운 기술·재료를 찾는 노력은 모든 자동차 기업이 하고 있다. 그러나 도요타만큼 철저하고 부품업체를 자극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기업은 없다.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원가 절감이나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거래는 없다고 보는 게 좋다고 한다.
도요타의 정보 제공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부품업체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멕시코·중국 등 정보 출처는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고 내용은 대단히 구체적이라고 했다. 단, 도요타는 냉정한 기업만은 아닌 모양이다. 과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는 엔지니어의 지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고 한다.
이런 글로벌 정보 수집과 문제 해결 지원이 있기에 부품기업 간의 경쟁은 일본 국내에서 글로벌로 업그레이드 된다. 모든 도요타 자동차에는 ‘덴소 인사이드’라는 로고를 붙여야 한다고 할 정도로 덴소의 존재감이 절대적인데도 부품 수주 경쟁에서 계열 내부나 외국 기업에게 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덴소도 날린다’는 메시지는 과연 태풍급일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부품기업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계열을 넘어선 거래가 크게 늘지는 않겠지만 내부 경쟁을 좀 더 강화하기 위한 외부자 이용 사례는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남이다’라는 도요타의 미학이 유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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