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글로벌 파워피플 [47] - 장루이민 중국 하이얼그룹 회장

글로벌 파워피플 [47] - 장루이민 중국 하이얼그룹 회장

빚 투성이 시영 냉장고 공장을 세계1위 백색가전 업체로 아이디어+추진력+리더십 고루 겸비
‘가전 황제’를 꿈꾸는 장루이민 하이얼그룹 회장.



중국에는 ‘어약용문(漁躍龍門)’이라는 말이 있다. 황허(黃河)의 잉어가 룽먼(龍門)의 폭포를 뛰어넘으면 용이 된다는 말이다. 어떤 고비를 잘 넘겨 도약하면 비약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비유다. 최근 욱일승천 하는 중국의 산업기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싼 임금을 이용해 낮은 기술에 품질도 뛰어나지 않은 제품을 값싸게 외국에 내다팔던 중국 제품이 이제 어약용문의 단계에 와있다. 그 대상은 한국과 일본이다.

일부 품목에선 중국은 이미 한국을 추월해 용의 자리에 등극하고 있다. 일부 기업도 그렇다. 그 중심에 있는 기업이 하이얼(海爾)이다. 백색가전 중심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저가·저급품의 대명사에서 이젠 저가·고급화 전략의 선봉장으로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냉장고 판매량 5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한 무서운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8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295억 달러에 이른다.

장루이민(張瑞敏·65) 하이얼그룹 회장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떠오르는 중국 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이 회사를 도약시킨 주인공이다. 하이얼의 역사는 그의 비즈니스 이력이나 다름없다. 하이얼의 발전은 그의 경영철학과 전략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중국이 건설된 1949년 1월5일 산둥성 옌타이의 라이저우시의 블루컬러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이 지역 의류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학창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었으며 그 세대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홍위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은 오로지 문혁에만 열중하던 그 시기에 그는 후난성의 마오쩌둥 생가를 방문했으며 베이징까지 가는 행진에 참가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하방을 피했으나 대학은 갈 수가 없었다.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968년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국영 건설업체에서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출신 성분이나 교육 정도와는 무관하게 그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며 독서광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부기 등 상업과 공장 운영을 가르치는 강좌에 참가했다. 12년 동안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조장·주임 등으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1980년 자신이 일하던 의류업체의 부공장장으로 승진했으며 곧이어 칭다오 시정부의 가사도구 담당 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34세이던 1984년 당시 운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던 칭다오 냉장고 제조창의 총공장장으로 발령 받았다. 전임자가 자리를 떠나면서 급히 그가 투입된 것이다. 그는 이 공장이 빚더미에 앉으면서 그 자리에 발령 난 넷째 인물이었다. 전임자 누구도 위기에서 이 업체를 구하지 못했다.

1979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하면서 당시 중국에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개념 아래 경제개혁의 행군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경제 효율이 뭔지, 경쟁력이 뭔지, 혁신이 뭔지 미처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총공장장 자리는 그때까지 쌓아뒀던 것까지 까먹을 수 있는 위험한 자리일 수 있었다.



어약용문(漁躍龍門)의 대명사그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는 회사를 재창업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독일로 출장을 떠나 생산설비 관련 파트너를 만난 그는 기술 노하우 전수를 타진했다. 이를 위해 독일과 스위스의 공장을 둘러보던 그는 자기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명도와 품질이었다. 이 회사는 물론 중국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부분이기도 했다. 귀국한 그는 자사 제품의 실상을 직원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품질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소비자가 냉장고에 하자가 있다며 물건을 반품했다. 공장 창고를 돌며 400대의 제품을 일일이 살폈다. 그 결과 제품의 20%에 가까운 76대가 불량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장 복도에 76대의 불량품을 전시했다. 그런 다음 직원들에게 대형 망치를 나눠주고 이를 부수게 했다. 당시 냉장고 한 대의 가격이 2년 치 임금에 가까웠기 때문에 직원들은 주저했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렸다.

그는 망설이는 직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불량품을 박살내지 않으면 내일 시장에서 산산이 깨질 것은 바로 우리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자 직원들은 일제히 불량품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당시 사용된 망치 중 하나는 지금도 본사에 전시돼 교훈을 주고 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직원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를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했다.

이런 충격 요법은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직원들에게 ‘품질제일’의 인식을 인상 깊게 심어준 것은 물론 이 사실이 소문이 나고 미디어에 보도되면서 회사의 지명도도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이듬해부터 판매가 급속히 늘었다. 특히 베이징이나 텐진 같은 수도권에서 인기를 모았다. 당시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를 운영하던 중국에서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개혁 정책을 숱하게 펼쳤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급여를 생산량에 따라 연계하면서 차별화한 것이었다. 직원이 업무상 실수를 했을 경우 직원들 곁에 서서 자신이 어떤 실수를 왜 하게 됐는지를 설명하게 했다. 본인은 물론 동료들도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생산현장의 혁신뿐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소비자 피드백을 강화한 것이다. 재미난 사례가 쓰촨성에서 나왔다. 그 지역 판매가 줄어 원인을 조사했더니 지역 농민들이 세탁기에 고구마를 넣고 세척을 하는 바람에 찌꺼기가 배수구를 막아 고장이 잦았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그는 제품 특성에 맞춰 지역 농민을 교육하는 대신 디자인을 지역 농민에 맞췄다. 세탁기에서 세탁물 말고도 다른 것도 세척할 수 있게 하면서 웬만해선 배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특별 설계를 했다.

이런 혁신의 결과 이 회사는 1986년 흑자로 돌아섰으며 그 해 매출 성장률은 83%에 이르렀다. 칭다오 시정부는 그에게 시영 기업 중 다른 것도 함께 맡아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전자레인지를 만들던 칭다오 전자를 1988년에, 칭다오 에어컨공장과 칭다오 냉동고 공장을 1991년에 각각 인수했다.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의 하이얼 부스. 





망치로 불량품 박살내 품질제일주의 강조그는 중국에선 드물게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1992년 회사 이름을 하이얼로 바꾸고 이를 브랜드화했다. 스위스의 생산장비업체로 칭다오 냉장고의 파트너였던 리브헤어를 중국인들이 발음하는 리브하이얼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엔 칭다오 하이얼그룹으로 이름을 바꿔다가 이듬해 하이얼그룹으로 간략하게 줄였다.

그 후로도 인수합병을 계속해 1995년엔 칭다오의 홍성전자를, 1997년에는 텔레비전 제조업체인 웅샨전자를 인수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 가전제품의 세계 시장 수출의 문을 연 것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하이얼이라는 중국 브랜드로 전 세계 시장을 열었으며 이 브랜드를 해외에 각인시켰다. 그가 공장을 맡은 1984년 350만 위안에 불과했던 매출이 2000년에는 405억 위안에 이르렀다.

이 회사를 맡은 뒤 2000년까지 17년 동안 연 평균 78%라는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처음 맡았을 때 147만 위안(약 17만7000달러)의 빚에 허덕이는 소규모 시영공장이었던 것이 지금은 72억5000만 달러를 수출하는 세계적인 가전업체로 성장했다. 현재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백색가전은 물론 텔레비전·에어컨·컴퓨터 등 다양한 전자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16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백색가전만 따지면 세계 1위 업체이며 전 세계 시장의 7.8%를 차지한다. 그는 다 쓰러져가던 무명의 냉장고 제조업체를 세계3위의 가전업체로 성장시킨 중국의 경영 영웅이 됐다.

그는 일찌감치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 나섰다. 중국 기업으로선 유례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일찍부터 현지 생산과 글로벌화에 눈을 뜬 것이다. 지금은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본사와 공장 외에 미국과 파키스탄에 대규모 해외 생산기지를 둔 것을 비롯해 13군데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1996년 인도네시아 공장을 시작으로 이듬해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에 현지 공장의 문을 열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는 소형 냉장고와 와인셀러를 중심으로 한 가전 틈새시장을 노리면서 진출을 시작했다. 2000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캠든에 생산기지의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미국 공략에 들어갔다. 현재 70억 달러의 해외 판매 중 2억 달러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중국 기업 최초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 대상2002년 파키스탄 공장 문을 열었으며 2003년에는 요르단으로도 진출했다. 아프리카 진출도 활발해 튀니지·이집트·알제리·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현지 공장을 매입해 하이얼 브랜드와 함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제품도 생산해 현지 유통망에 공급하고 있다.

2004년엔 인도에 진출해 믿을 만한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남미 베네수엘라까지 진출했으며 2012년엔 뉴질랜드 가전업체인 피셔&페이켈을 인수해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생산 기지를 운영하게 됐다. 2008년 이후 냉장고 부문에서 최대 라이벌이었던 월풀보다 더 많은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그는 중국에서 경영의 귀재로 불리게 됐다. 그는 중국 CCTV가 매년 선정하는 ‘감동 중국인물’의 수위를 오랫동안 차지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경영을 체계화했다. 경영 현장의 혁신을 이론화해서 전파하는 능력 때문에 그는 ‘학자 기업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결과 그가 창안한 다양한 경영 원칙은 중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교과서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다양한 경영 학파의 주장을 고루 흡수해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전략을 내놨다. 전통적인 중국 문화에 발달한 서양 경영기업을 결합한 형태였다. 초기에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문제 해결이 매일매일의 개선을 이끈다’ ‘항상 신중하라,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라’ 등등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현장에서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영이론을 줄이어 내놓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1998년 3월25일 하버드대의 요청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연을 했다. 중국 기업인 중 처음으로 하버드대에서 강의했다. 그가 이끄는 하이얼그룹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경영학 사례연구 대상으로 선정됐다. 1999년 12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 세계에서 올해의 가장 신망 있는 기업인 30’를 발표하면서 그를 26위에 올려놓았다.

현대 중국의 경영인이 국제사회에서 얻은 최고의 영예다. 2001년 2월 미국 가전 잡지가 뽑은 ‘톱 글로벌 가전업체(물량 기준)’에서 9위에 올랐다. 중국의 하이얼이 전통적으로 가전에 강한 미국 월풀, GE, 프랑스 엘렉트롤룩스, 독일 지멘스, 일본의 샤프·도시바·히타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중국 기업에서 만든 물건은 싸구려이고 조잡하다는 인식을 바꿔놓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국제 상품도 얼마든지 높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2001년 하이얼은 미국에서 중국 기업 최초의 신화를 또 다시 썼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캠든에 초대형 산업단지를 확보해 제조기지를 건설하면서 이곳에 ‘하이얼 불러 바드’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그의 목표는 하이얼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도쿄서 韓·日 고위경제협의회...“협력 모멘텀 유지”

2래빗아이, 켁스트씨앤씨서울과 ‘전략적 파트너십’ 맞손

3정부, 내년도 ‘비전문 외국인력’ 20만7000명 도입

4얼어붙은 ‘서민 경기’, 역대 최다 ‘카드론 잔액’

5“성탄절, 오전 10시”...공조본, 尹 대통령 2차 소환 통보

6트럼프 “EU, 美 석유·가스 구매 불응 시 관세 인상”

7지난달 대설에 피해액만 4509억원...복구비 1484억원 확정

8‘고단한 출·퇴근’...직장인 평균 통근시간 ‘1시간 14분’

9전세 사기 공포에…‘월세 시대’ 도래하나

실시간 뉴스

1도쿄서 韓·日 고위경제협의회...“협력 모멘텀 유지”

2래빗아이, 켁스트씨앤씨서울과 ‘전략적 파트너십’ 맞손

3정부, 내년도 ‘비전문 외국인력’ 20만7000명 도입

4얼어붙은 ‘서민 경기’, 역대 최다 ‘카드론 잔액’

5“성탄절, 오전 10시”...공조본, 尹 대통령 2차 소환 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