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OME INEQUALITY - ‘소득 불평등’은 너무 따분한 주제인데…
- INCOME INEQUALITY - ‘소득 불평등’은 너무 따분한 주제인데…

하버드대 총장, 국가 경제위원회 의장, 재무장관, 오바마 대통령의 수석 경제보좌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빈곤층의 곤경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비난을 한두 번 산 게 아니다. 지난 4월 서머스는 그런 비난에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보였다. 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에 관한 강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런 주제가 그를 말 그대로 잠들게 한다는 증거를 제공한 셈이다.
서머스는 4월 18일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의 세미나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를 소개했다. 소득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에 관한 폭넓은 논의를 촉발시킨 책 ‘21세기의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학자다.
그 세미나에 참석한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지(진보 성향의 시사 잡지)의 로버트 커트너 편집장에 따르면 서머스는 피케티를 ‘스파게티’와 운이 맞게 ‘피게티’로 잘못 발음하면서 청중에게 2014.5.19소개했다. 그런 다음 서머스는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커트너와 다른 참석자들이 말했다. 그 사진이 널리 유포됐다.
한 사진은 트위터에 올랐고 다른 사진은 뉴스위크의 온라인 자매매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에 전달됐다. 트위터에 오른 사진의 설명은 이렇다. “Larry Summers, at Harvard today, following attentively Thomas Piketty’s talk(래리 서머스가 오늘 하버드에서 토마 피케티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다).”
서머스는 논평을 거부했지만 대변인을 통해 인증샷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피케티가 강의하는 동안 깨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켈리 프렌들리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래리는 피케티를 소개한 뒤 아주 전문적인 질문 두 가지를 했다(Larry introduced Piketty and asked two very technical questions). 래리는 강의에 몰입했으며 토의에 적극 참여했다(He was very engaged, and a part of the discussion). … 강의 내내 졸았다는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I don’t think it would be accurate if you said he was sleeping through the presentation).”
공정하게 말하자면 누구라도 그 강의를 들으면 졸음이 오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피케티의 저서는 해당 분야에 중요한 기여로 평가됐지만 결국 경제이론서다.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전문용어가 가득하다. 하지만 피케티의 이론은 서머스가 형편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옹호한다. 서머스로선 불행한 일이다.
본질적으로 피케티는 “자본 이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능가하면 상속한 재산은 불어나지만 돈을 새롭게 벌 기회는 줄어든다(when the rate of return on capital exceeds the pace of economic growth, inherited wealth swells while opportunities to earn money diminish)”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재산이 감소하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피케티는 “불평등 격차가 벌어지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 훼손된다(widening levels of inequality undermine the very spirit of democracy)”고 지적했다.
서머스가 그런 주장 앞에서 말 그대로 눈을 감았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빈곤의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굳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커트너는 그 세미나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피케티와 서머스의 각 세운 논쟁이라고 말했다. 커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서머스는 작금의 불평등 대부분은 실력주의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가 거부가 된 것은 그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Summers made the case that a lot of the inequality today is, as they say, meritocratic - that Bill Gates earned his gazillions because he’s added all this value). 그러자 피케티가 반박했다.”
피케티의 주장은 이랬다. “게이츠가 한 일이라고는 공로를 인정 받지 못한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만든 운영체제를 독점하는 데 성공한 것뿐이며 독점을 금지해야 하는 당국이 오히려 그를 도와줬다(what Gates really did was succeed in establishing a monopoly of operating systems built by thousands of uncredited engineers, and aided by antitrust authorities who allowed this monopoly to thrive).”
커트너는 이렇게 평했다. “물론 피케티가 그 논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졌던 건 나도 인정하지만 실제로 그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Granted, I am predisposed to think that Piketty would win the exchange, but I think he did).”
1990년대 초 서머스는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분석가였다. 그는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의 오염된 쓰레기를 매립하는 저장소로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문에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악명을 떨쳤다. “독성 쓰레기를 저임금 국가에 매립하는 것의 경제적 논리는 결함이 없으며 우리는 그런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The economic logic behind dumping a load of toxic waste in the lowest wage country is impeccable and we should face up to that)”고 서머스는 주장했다. 서머스는 나중에 그 언급이 냉소적인 항변이었다고 해명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서머스는 재무부 부장관을 맡았다. 그동안 그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BR) 의장과 함께 파생상품으로 알려진 금융상품 거래에서 과잉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제안된 규제안을 폐기시켰다. 2008년 결국 사달이 났다. 규제 받지 않은 파생상품으로 증폭된 금융위기가 터졌다. 서머스, 루빈, 그린스펀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재난을 촉발시켰다는 비난을 샀다.
서머스는 미국 남북전쟁 이래 하버드대의 최단명 총장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1862년 하버드대 총장 재직 중 사망한 코넬리우스 펠튼 총장의 임기가 가장 짧았다). 2001년 총장에 취임한 서머스는 5년 뒤 한 경제학회에서 과학·공학 분야에 여성 전문가가 적은 것은 남성과 여성의 원초적인 ‘적성(aptitude)’ 차이 때문이라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일부 교수진의 불신임 투표에 직면해 어쩔 수 없이 사퇴했다. 서머스는 하버드대 흑인학 과장 코넬 웨스트 교수와도 불화를 빚었다. 서머스가 웨스트의 실적을 거듭 비난하자 웨스트는 프린스턴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머스는 오바마의 백악관에 들어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맡으면서 경기 대침체에 직면해 일부 동료들이 주장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고집하면서 진보파의 공격을 받았다.
그런 전력을 감안하면 트위터에서 서머스가 꾸벅꾸벅 조는 사진을 보며 재미있어 한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갈 듯하다. 작가인 젭 런드는 “서머스는 어떤 교훈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He wasn’t going to learn anything anyway)”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서머스가 공개석상에서 조는 모습을 들킨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9년 2월 재정책임 정상회의에서, 그리고 그해 4월 백악관에서 신용카드 업계 간부들과의 회의에서도 서머스는 낮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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