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바뀐 토지 투자 - 놀리는 땅 캠핑장으로 빌려줘 월세 받아
패러다임 바뀐 토지 투자 - 놀리는 땅 캠핑장으로 빌려줘 월세 받아
토지시장에 ‘부재 지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에 투자용으로 땅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민을 가리킨다. 정부는 이들 부재 지주를 잠재적 투기수요로 간주해 해마다 실태조사를 통해 적발해내고 있다. 적발된 부재 지주들에게는 농지처분 이행 강제금(공시지가의 20%)을 물린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행 강제금 부과 대상자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1년 2100명에 달했던 이행 강제금 부과 대상자는 2011년 721명으로 줄었다. 이와 달리 2001년 1만209ha였던 농지전용 면적은 지난해 1만2677ha로 늘었다. 농지전용은 실수요자가 전원주택 등을 짓기 위해 농지를 대지 등으로 용도 변경하는 행위를 말한다. OK시골 김경래 사장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투자 목적으로 땅을 사는 사람이 많았으나 요즘엔 실제 사용할 목적이 아니면 땅을 잘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땅 사고 팔아 ‘일확천금’은 옛말토지시장이 ‘투자수요’ 중심에서 ‘실수요’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토지시장 안정화로 땅을 사고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기 어려워지자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경제구조 변화, 도시화율 둔화, 정보통신기술(ICT) 발달 등이 토지시장 재편을 부른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무조건 유망 지역에 땅을 사놓고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묻어두기’식 투자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토지임대로 눈을 돌리는 땅주인도 늘고 있다.
고성장 기조에서 저성장 기조로 바뀐 경제 구조가 토지시장 재편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 고성장을 구가하던 산업화 시기에는 땅값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고도성장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토지시장으로 흘러 들면서 땅값 폭등을 불러오곤 했기 때문이다.
실제 경제성장률 10%대를 기록했던 1970년대 후반 전국 땅값 상승률은 연 평균 30%대에 달했다. 1980년대에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리는 저달러·저유가·저금리 등의 ‘3저 호황’으로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땅값이 폭등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면서 토지 수요 감소로 땅값이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1971∼90년 연 평균 9.2%를 기록했던 국내 경제 성장률은 2008∼2013년 2.9%로 꺾였다.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땅값도 안정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땅값은 본격적인 저성장 기조가 시작된 2008부터 2012년까지 연 평균 0.77%의 상승률을 기록해 4년째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이전 4년(2003∼2007년) 동안 연 평균 상승률(4.35%)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대정하우징 박철민 사장은 “경제성장률 둔화로 토지 수요가 급격히 줄고 땅값이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토지시장에서 가수요가 급격히 이탈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도시화율 둔화도 투자수요 위주에서 실수요 중심으로의 토지시장 재편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도시화율은 전체 인구에서 도시지역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도시화율이 높으면 도시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도시용지 수요가 급증해 땅값 상승을 불러온다.
이와 달리 도시화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도시용지 수요가 줄어들면서 땅값도 안정세를 보인다. 1960년 39.2%에서 2000년 88.35%로 급증했던 도시화율은 2005년(90.1%) 이후 7년간 1%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2012년에는 도시화율이 91.04%로 전년(91.12%) 대비 0.08% 포인트 감소했다. 도시화율이 감소한 것은 1960년 조사 이후 처음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도 토지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현재 한국토지정보시스템(KLIS)과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이라는 부동산 시장 감시 프로그램을 상시 가동하고 있다. 토지 매도자·매수자나 중개인이 지자체에 땅 거래를 신고하면 자동으로 거래가격 등이 RTMS에 입력된다. 그러면 RTMS는 이 가격을 감정원 등 산정한 땅값인 기준가격과 비교한다. 비교 결과 거래 신고 가격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해당 지자체에 이 사실이 통보된다.
그러면 해당 지자체는 거래가격이 실거래 가격인지 다운된 가격인지 여부를 검증하게 한 뒤 허위 신고로 드러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국세청에 통보하게 된다. 국세청은 다시 한 번 조사한 후 벌금 부과 등의 조치를 내린다. 구글 등의 지도 검색 시스템도 토지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다.
일부 시·군에선 현재 구글 등의 지도검색 시스템과 토지정보통합도를 함께 연동시켜 만든 지적편의시스템을 활용해 각종 인·허가에 따른 경미한 지형 변화까지 알아낸다. 일부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이 시스템을 통해 농지나 임야의 불법 전용 사례를 적발하기도 한다.
토지시장 안정화로 땅을 사고 팔아 이익을 챙기는 시세차익형 투자가 어려워지자 임대수익을 챙기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땅 주인이 늘고 있다. 토지 임대 사업은 시장 침체로 팔리지 않는 땅을 놀리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를 놓아 매달 고정적인 수입을 챙기는 것이다. 땅 소유권은 땅 주인이 갖는 대신 임차인은 땅에 대한 사용권만을 갖는다. 이때 임대료는 땅 위치나 지목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1년에 대략 3305㎡(1000평)당 100만∼200만원 선이다.
3300㎡당 1년 임대료 100만~200만원토지 임대 용도는 카라반 캠핑장, 컨테이너 창고, 주말농장 등으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카라반 캠핑장 용도의 경우 입지가 좋을 경우 3305㎡당 연간 200만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땅주인이 토목공사비와 운영관리를 맡고 매출의 40%를 배분 받는 카라반 캠핑장도 등장했다.
땅 주인은 땅과 토목공사와 운영관리를 담당하고 카라반 캠핑카 회사가 캠핑장 개발, 캠핑카 조달과 예약관리 등을 맡는 구조다. 캠핑장 개발·운영업체인 하이원카라반 김희창 대표는 “땅이 팔리지 않아 꼬박꼬박 세금만 물던 땅주인들에게 토지 임대업이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도시 주변의 놀리는 땅을 컨테이너 창고(셀프 스토리지·임시물품 보관창고) 용지로 임대해 짭짤한 임대수익을 챙기는 땅 주인도 늘고 있다. 컨테이너 창고는 해외 이민이나 이혼, 폐업 등으로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물품을 보관해주는 임시 보관 창고다. 대개 서울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 등에 30∼50개의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 도로변 A급지의 경우 컨테이너 창고 용도로 창고업자에게 땅을 빌려주고 3305㎡당 연간 200만∼400만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의 땅을 창고 업체에 임대 준 박광현(64·가명) 씨는 “1년 단위로 토지 임대 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매매보다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전형적인 임대수익형 토지 상품인 주말농장의 인기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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