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PIRACY THEORIES - 우리 모두가 음모론을 믿는다
CONSPIRACY THEORIES - 우리 모두가 음모론을 믿는다
미국 앨라배마주 볼드윈 카운티에서 민간부문 개발업체들에게 지침을 제시하려던 모범 개발계획이 무효화됐다. 주민들이 유엔의 음모라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산권을 빼앗고, 공산주의를 실시하고, 현지 주민들을 기차에 태워 비밀 캠프로 보내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청사진이 부결되자 주민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미국 찬가 ‘God Bless America’를 불렀다. 도시계획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났다.
의사들이 인생 말년을 맞은 고령 환자들의 건강의료 및 개인적 우선과제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고 그 시간만큼 보수를 지급하려는 연방 건의안이 보류됐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비롯한 일부 보수파들이 그 아이디어를 비판했다. 관료들의 ‘사망심사 위원회(death panels, 종말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연명조치 중단을 판단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도록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건의안은 노인병 전문의, 종양학자, 고령자 권익옹호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던 구상이었다. 그 구상이 폐기됨에 따라 이제 미국의 고령자들은 의사들이 무료 상담을 해줄 경우에만 소생치료, 통증관리, 종교적 지원에 대한 선택 방안을 듣게 된다.
2008년엔 미국에 홍역 환자가 없었다. 백일해에 걸린 사람은 49명에 불과했다. 두 가지 질병 모두 대부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었다. 2013년에는 미국에서 최소 276명이 홍역에 감염됐다. 한편 백일해 환자는 2만2616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을 받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서 그런 추세의 원인을 찾았다. 상당 부분 의사와 제약회사들이 이익 감소를 우려해 예방접종의 위험성을 은폐하려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런 예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조지 W 부시가 9·11 테러를 획책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버락 오바마는 케냐 국적자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직 수행이 불법이다, 주지사들이 개발한 교육 표준은 어린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드는 반기독교적인 공산주의 음모의 일환이다, 실업률과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가입자 통계는 백악관이 꾸며낸 거짓말이다,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해도 어린이들의 충치를 막지 못하며 거기에는 갖가지 악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등등...
미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미국 사회의 씨줄과 날줄 속에 음모론이 섞여 들었다. 과거에는 그런 음모론이 피해망상증 환자들의 정신 나간 소리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근년 들어선 도를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즘엔 망상과 허구의 이야기, 광기가 정부 정책의 숨통을 조이고 전국적인 건강 위험을 야기한다.
“미국 내에서 이성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정상이지만 이런 음모론은 이성적인 토론을 모두 완전히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남부빈민구제법센터의 선임 연구원 마크 포톡이 말했다. 그는 최근 이른바 ‘의제 21(Agenda 21)’ 음모론의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 음모론이 요즘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모론의 숫자와 비중이 근래 들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정 부분 인터넷 채팅방, 트위터, 그리고 기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빠르게 널리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공론의 장에서 음모론이 예전보다 보편화됐다.” 그 현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시카고대 정치학과 에릭 올리버 교수가 말했다.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
‘의제 21’에 대한 우려가 대표적인 예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세계 177개국 정상이 서명한 구속력 없는 의향서다. 취지는 간단했다. 유엔의 후원 아래 도시개발과 토지활용 정책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관리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 당시 주류 보수파와 진보파 정치인들은 대수롭지 않은 개념이라고 간주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극단주의 단체들이 ‘의제 21’을 물고 늘어졌다. 유엔과 ‘새로운 세계질서’가 사유재산을 몰수해 공산주의를 확대하고 반대파를 모두 탄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어느 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허용할지 결정하는 생사지도도 만들어진다고 일부 음모론은 주장한다. 나무에게 인간들과 똑같은 권리가 주어진다느니 전력회사들이 고객들을 사찰한다느니...
2012년에는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의제 21’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강요하려는 교활한 술책”이라는 내용이었다. 공화당 대통령이 ‘의제 21’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행동이었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릴 즈음엔 어조가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여전했다. 자금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고 강제력 없는 선언인데도 “교활하며 미국 주권을 좀먹어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의제 21’ 음모론이 미국 각지에서 고개를 든다. 도시계획 위원회가 환경영향을 고려하는 한편 난개발을 통제하는 개발계획을 채택하려는 시점이다(도시계획 위원 다수는 그 유엔 성명을 들어본 적도 없다). 볼드윈 카운티 건의안도 ‘의제 21’ 우려로 폐기됐다. 메인주의 교통정체 완화 목적으로 구상된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 프로젝트도 취소됐다. 버지니아주 굴 양식장 복원 구상도, 플로리다주의 고속철도 신설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 도로 건설 공사조차 사악한 국제적 음모라며 시위를 벌이는 현지 주민들의 공격을 받았다.
클라이븐 번디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연방 국유지에 소를 방목할 때는 법에 따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네바다주 목축업자인 그는 돈을 못 내겠다며 버틴다. 이 논란도 유엔과 관계가 있다. “유엔 ‘의제 21’을 조사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가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용도구역 변경을 통해 주민의 땅과 권리를 빼앗으려는 목적이다.” 아이다호주의 한 주민이 번디 건에 관해 지역 신문 쾨르달렌 프레스에 편지를 썼다. “유엔은 개인 재산권을 모두 박탈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 편지는 매일 언론 매체에 쏟아지는 다른 해괴한 음모투성이 문서들과 함께 휴지통에 던져지지 않았다. 대신 ‘번디 사건, 모두 유엔 의제 21의 일환’이라는 제목 아래 활자화됐다. 공유지 방목 수수료가 ‘의제 21’이 채택되기 약 60년 전인 1934년에 도입됐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다른 목축업자들이 아무런 세계적인 음모 없이 1만8000건의 방목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도 외면 당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무서운 확신이 정치논쟁의 한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 이런 것들을 믿는가? 모두가 믿는다.” 시카고대의 올리버가 말했다. “음모론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뛰어넘는다.”
조지 W 부시 정부에 관한 음모론의 예를 들어보자. 부시가 9·11 테러를 핑계 삼아(또는 심지어 그것을 획책해) 전쟁을 벌이고 국가의 보안 기반시설을 확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기획해 수백만 달러의 재건 계약을 그의 전 직장 핼리버튼에 안겨줬다느니, 정부가 오하이오주에서 부정행위로 2004년 대선을 조작했다느니 등등...
이같은 주장은 다수의 일반 시민이 제기했다. 하지만 전국 무대의 정치인들도 한몫 거들었다. 각각 키스 엘리슨 민주당 하원의원, 공화당의 자유주의 일파와 관련된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로 현재 진보파 라디오 대담프로 진행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이다.
실제로 부시 정부를 공격하는 일부 음모론자들의 높은 지명도는 더 심각한 추세를 보여준다. 전국 무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말의 근거도 없이 비밀 책략과 배반설을 설파한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출생증명을 숨기고 있다는 주장에 많은 정치인이 힘을 실어줬다. 그가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의 밑바탕을 이루는 가설이다.
뉴스 보도에 그런 취지의 발언이 인용된 인사로는 리처드 셸비 상원의원, 로이 블런트 당시 하원의원, 네이선 딜 당시 하원의원 등이 있다. 신시아 맥킨니 전 하원의원은 9·11 음모론의 지지자였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의제 21’에 골프장과 포장도로를 없애려는 시도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저명한 기업인과 지식인들도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 전 회장 겸 CEO도 그 중 하나였다. 2012년 대선 전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 감소 통계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언했다. 딕 모리스를 비롯한 정치 평론가들도 비슷한 경우다. 그들은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점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들끼리 공모한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폭스 뉴스의 인터뷰 전문 기자이자 프로듀서인 제시 와터스는 오바마케어를 두고 그런 주장을 했다. 백악관이 발표하는 통계에서 오바마케어 아래의 건강보험 가입률이 높게 나타날 때는 정부가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요즘 왜 그렇게 많은 국가적 유명인사들이 사악한 음모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걸까? 음모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딱 부러진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분명 자신이 솔직히 믿는 수준보다 몇 걸음 더 나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 윈체스터대에서 음모론의 심리학을 가르치는 강사인 마이클 우드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음모론 관련 아이디어들이 정치 고위층에 뿌리내렸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전혀 끌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저명인사들은 정적들이 부정행위를 한다고 암시하기도 한다. 그럴 때 종종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문제를 제기할 뿐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 음모론을 띄우는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는 공식적인 설명에 관해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영국 ‘사회심리학 저널’의 공동편집자이자 켄트대에서 음모론을 연구한 중진 학자인 캐런 더글라스가 말했다. “논리학적으로 상당히 강력한 방식이다. 어떤 알맹이도 필요 없이 공식적인 이야기에 의혹만 제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낭설에 근거해 심각한 비리를 저질렀다고 정적을 비난할 때는 사회 담론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터무니없는 소문을 토대로 서로 상대방을 테러리스트, 반미주의자, 살인자, 인종차별주의자 등이라며 공격하는 식이다. 그럴 때는 사회 분열로 인해 기본적인 통치체제가 마비된다.
“음모론과 그릇된 정보에 관해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토론 자체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음모론에 관한 리서치를 실시한 다트머스대 행정학과의 브렌던 나이한 조교수가 말했다. “공인들이 논의해야 하는 진짜 이슈와 관심사로부터 엉뚱한 곳으로 관심을 이전시킨다.”
공교육의 ‘공통학력표준(Common Core, 미국 연방정부의 학력표준 향상책의 일환)’으로 알려진 문제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전국 주지사 협회가 주 교육감 단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교육의 표준을 수립하고 각 학년의 모든 학생이 갖춰야 하는 수학 및 독해 능력을 설정하려는 취지였다. 그 표준은 현재 44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공통학력표준을 찬성 또는 반대할 만한 뚜렷한 이유들이 있다. 그것이 미국의 학교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올바른 길인지는 선의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표준이 적절한 검증을 거쳤느냐 또는 학생들의 공통학력표준 시험 성적을 토대로 교사들을 평가해야 하느냐에 관해서도 당연한 의문이 존재한다. 불행히도 그런 논의는 그 표준에 관한 음모론으로 탈선하고 말았다. 거짓, 오해, 그리고 해괴하고 은밀한 음모에 대한 믿음이 그 토대를 이룬다.
저명한 보수파 논객 글렌 벡은 2013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공통학력표준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건공산주의다. 우리는 악을 상대하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할 때가 온다. 그것은 악이다.” 이번에도 그런 식의 비난이 정치적 절차에 끼어들었다.
오마바 정부가 그 표준을 짜맞췄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휘말려 반대파들이 그것을 ‘오바마코어(Obamacore, 오바마와 Common Core 를 합성한 조어)’로 간주하게 됐다. 남부빈곤구제법센 터가 최근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음모론은 지난 4월 앨라배마주 상원 교육위원회의 한 공청회에서 흘러나왔다. 지역 교육청들이 공통학력표준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관한 공청회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반기독교, 반가톨릭, 반미주의로 교육 받기를 원치 않는다.” 티파티(Tea Party, 보수파 시민운동) 운동가인 테리브래튼의 말이 보고서에 그대로 인용됐다. “우리 아이들이 순결함을 잃게 만들고 싶지 않다. 취학 전 또는 유치원 때부터 동성애가 좋은 것이며, 일찍부터 경험을 가져야 하고, 동성 결혼도 아무 문제 없다고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
공통학력표준에선 그런 것들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실상 거의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과정이 없고, 요구하는 학습방법이 없으며, 공부해야 할 책도 없다. 공통학력표준에서 모든 학생에게 읽도록 권장하는 교재는 미국 헌법 전문, 권리장전, 독립선언문, 에이브러햄 링컨의 2기 대통령 취임연설이 전부다.
공통학력표준은 과목이 아니라 학업능력을 의미한다. 예컨대 초등 4학년생 독해 표준의 경우는 이렇다. “본문의 주제를 파악하고 주요 세부 정보들이 그것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학생들이 읽을 만한 추천 도서 목록이 포함되기는 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필독서는 아니다. 교사나 지역 교육청이 이들 추천 도서 모두나 일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전혀 선택하지 않아도 여전히 공통학력표준 과정에 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통학력표준은 가치 있는 국가적인 과업인가? 그 답은 영영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국주의원협의회에 따르면 미국 각지의 의원들이 공통학력표준과 관련해 200건 이상의 법안을 제출했다. 그중 절반 가량이 그 표준의 도입을 지연 또는 중단시키려는 목적이다.
전염성 강한 음모론음모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비주류파들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더 신뢰성 높은 정보공급원들이 그것을 채택한 뒤 궁극적으로 대중매체에까지 이르게 된다. 남부빈곤구제법센터의 포톡은 이른바 ‘아즈틀란 음모(Aztlan Conspiracy)’를 예로 든다. 멕시코가 미국을 침공해 남서부의 7개 주를 되찾으려 은밀히 계획 중이라는 설이다. 대여섯 명의 미국인들로 이뤄진 급진 반이민주의 단체가 그 음모론의 출처임을 남부빈곤구제법센터가 밝혀냈다. 갈수록 더 규모가 큰 단체들로 퍼져 나가다가 마침내 당시 CNN 소속이던 저명 방송인 루돕스가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식으로 음모론이 퍼져나간다”고 포톡이 말했다. “비주류 단체에서 출발해 어느새 전국 TV에서 방송된다. 이는 이민에 관한 진지한 론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뉴스 매체의 증가가 분명 음모론의 확산에 기여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의 영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같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폐쇄적인 아리를 형성할 수 있다.
상반된 정보에는 귀를 닫고 음모론만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한다. “서로 대화가 되는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를 갖고 있을 경우 음모론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 ‘음모론과 기타 위험한 발상들(Conspiracy Theories and Other Dangerous Ideas)’을 저술한 하버드대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말했다. “말그대로 전염병 같다.”
일각에선 음모론자들을 무지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라고 일축할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멍청한 사람만 이런 음모론을 믿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다트머스대의 나이한이 말했다. “실상은 더 알 만한 사람들도 이 같은 주장에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이 기왕에 믿고 싶어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방편이 되는 경우다.”
과학자들의 의견도 같다.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이 삶의 혼돈을 수습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음모론을 지지한다. 때로는 그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음모론을 퍼뜨린다. “우리 주변 세상은 갖가지 이유로 더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나이한이 설명했다. “음모론은 통제와 질서가 회복된 느낌을 얻는 한 방편이 된다.”
음모론에 빠져드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 결과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예컨대 한 연구에선 1997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살해당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컸다. 2011년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를 급습하기 전에 그가 이미 숨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피신했다고 믿을 가능성 또한 크다.
두 가지 상반된 사고를 동시에 품는 이 같은 성향이 음모론과 그 추종자들의 특성을 이룬다. 심리학 연구에선 어떤 사람이 음모론을 믿을 확률을 일관되게 나타내는 속성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 사람이 다른 음모론들도 믿는 경우다.
이들 종종 대단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믿는 사람 숫자가 대단히 많다. 2013년 여론조사 업체 ‘퍼블릭 폴리시 폴링’이 전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비밀 지배계급이 권위주의적인 글로벌 행정체제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음모를 꾸민다고 믿는 미국인이 28%, 정부가 TV 방송에 ‘마인드 컨트롤’ 기술을 추가한다고 믿는 비율이 15%, 1980년대 미국의 도심 빈민가에 코카인 마약을 퍼뜨리는 데 중앙정보국(CIA)이 일익을 담당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14%였다.
의료 음모론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그리고 때로는 더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지난 3월 미국의학협회저널은 올리버와 우드 교수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의학 음모론을 믿는 응답자 비율이 49%, 3가지 이상을 믿는 비율은 18%에 달했다. 응답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음모론은 암 치료, 백신, 휴대전화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빠져드는 주제들이기도 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제약회사들과 공모해 암의 자연치료를 저지하려 한다고 믿는 비율이 37%였다. 한편 20%는 휴대전화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정부가 발표하지 못하도록 기업들이 방해한다거나, 의사들이 내심 백신이 위험하다고 믿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사용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왜 부정하는가?”정치적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의학적 음모에 관한 우려도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음모론을 더 강하게 믿던 사람들은 자외선 차단제나 건강검진을 받는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조사팀이 응답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피해망상, 일반적인 사회적 따돌림을 감안해 조정했을 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캐런 더글러스와 켄트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인 대니얼 졸리가 비슷한 연구를 실시했다. 예방접종에 관한 음모론에 노출된 사람들은 대조군보다 “예방접종을 더 기피했다.”
이처럼 정책·정치·국민건강에 관한 음모론은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같은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하나의 큰 어려움에 부닥친다. 음모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사실을 제시한다 해도 음모론자들이 옳다는 확신만 더 굳혀줄 뿐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올바른 데이터와 정보를 제시해도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설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으려 해도 그 믿음을 더 굳혀주기만 할 수 있다”고 하버드대의 선스타인이 말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왜 굳이 부정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부정은 음모론이 사실이라는 증거라고 여기는 셈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이한 등이 실시한 연구에선 ‘사망 심사 위원회’에 관한 세라 페일린의 주장에 피험자들을 노출시켰다. 그뒤 그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정보를 제시했다. 페일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정치적 지식이 없던 사람들은 기꺼이 그 정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피험자들에게 사실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역효과를 초래한 대상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정치에 밝은 페일린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정정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사망심사 위원회’를 믿으며 개혁을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일부 음모론의 경우 어떤 명백한 사실로도 시정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음모론을 반박하려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시도조차 또 다른 음모론을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선스타인은 2008년 음모론과 정부, 그리고 온라인에서 진정한 추종자들과 만 대화하려는 음모론자들의 문제에 관한 글을 썼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령 일단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기타 극단주의자들이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경우는 어떨까?
그런 경우에는 “극단주의 단체들에 대한 인지적 침투(cognitive infiltration)”가 한 가지 가능한 전술이라고 선스타인은 말한다. 정부 요원들이 채팅방에 들어가서 이런 위험한 음모론이 확산되는 소셜 네트워크에 가담해 그에 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의 정보를 퍼뜨린다는 의미다. 요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각 옵션에는 다른 위험과 보상이 따른다고 선스타인은 말했다.
그러자 음모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다. 선스타인이 반대 의견을 탄압하려 시도한다고 그들은 공언했다. 어쩌면 그가 온라인에서 정부 비판자들의 추적을 도울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같은 음모를 새로 제기하는 음모론자들은 선스타인이 분명 일종의 정부 끄나풀이라고 말했다. 그가 백악관 정보·규제문제국 행정관 출신이라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백악관에서 나오는 정보의 배포자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온라인 검색을 하거나 아마존닷컴에서 선스타인의 저서에 대한 독자 서평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선스타인은 정부 요원” 음모론이 도처에 깔려 있다.)
진실이 뭐냐고? 선스타인의 일은 스파이 활극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정부의 서류작업을 줄이고 규제가 법과 일치하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제임스 본드보다는 고급 본드 용지에 더 가까운 일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내가 어떤 정치적 선전활동에 참여했으며 그것이 내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서류업무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일이 전부였다.”
선스타인만 그런 공격을 받은 건 아니었다. 남부빈민제법센터가 ‘의제 21’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하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배계급의 음모에 속아넘어간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지 좋은 의도로 훈계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포톡이 말했다. 따라서 그런 일은 한없이 돌고 도는 음모론과 함께 계속 된다.
바로잡을 수도, 뿌리뽑을 수도 없다. 어떤 광적인 사고를 반박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음모에 연루되게 된다. 실제로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전문가 대다수는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 일단 기사가 나가면 뉴스위크가 음모에 가담했다고 비난 받으리라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2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3“‘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
4'40세' 솔비, 결정사서 들은 말 충격 "2세 생각은…"
5"나 말고 딴 남자를"…前 여친 갈비뼈 부러뜨려
6다채로운 신작 출시로 반등 노리는 카카오게임즈
7"강제로 입맞춤" 신인 걸그룹 멤버에 대표가 성추행
8‘찬 바람 불면 배당주’라던데…배당수익률 가장 높을 기업은
9수험생도 학부모도 고생한 수능…마음 트고 다독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