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 아낌없이 주는 나무
SUSTAINABILITY | 아낌없이 주는 나무
7월의 새크라멘토는 지구상에서 가장 화창한 곳으로 손꼽힌다. 태양 직사광선이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내리쬔다. 포도나무가 말라 비틀어지고, 층층나무가 늘어지는 푹푹 찌는 오후에는 온도가 45℃까지 치솟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에어컨을 켠다. 전력회사들이 두려워하는 순간이다.
갑작스런 수요증가로 생산용량의 한계에 육박한다. 그러나 샌크라멘토의 지역 전력업체는 몇 년 전 해법을 찾았다. 에너지 스타(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자제품 인증 프로그램) 전자제품들이 개발되고 온도계를 원격 모니터하기 전의 일이다. 그들은 나무를 무상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늘진 건물들은 여름철 25~40% 전력을 적게 사용해 전력 과부하를 피한다. 새크라멘토 전력공사가 지난 20년 동안 50만 그루 이상의 식목 사업에 보조금을 지원한 까닭이다. 양버즘나무·보리수나무·단풍나무·참나무 그밖에 20여개 품종의 나무를 심도록 했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녹음이 우거진 도시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새크라멘토는 시대를 크게 앞서갔다. 미국의 대다수 다른 도시에선 나무가 한편으론 사치품, 또 한 편으로는 부채로 간주됐다. 전선의 연결을 방해하고 낙엽이 배수로 뚜껑을 막히게 한다. 관리에 비용이 많이 드는 자산이다. 예산삭감이 필요할 때면 식목 프로그램이 우선적으로 감축됐다.
식목 운동가들은 직감적으로 나무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 삼림국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도구와 사회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이제 변화가 일고 있다. 도시 녹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를 읊조릴 필요가 더는 없다. 나무가 사회의 인프라임을 데이터가 다 말해주기 때문이다. 기온을 낮추고, 기후변화 유발 가스를 흡수하고, 홍수를 막아주고,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주고, 부동산 가치를 높여준다. 나무가 늘어선 가로의 점포들에서 쇼핑객들이 더 많은 지출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교·경찰서·소방서 등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인프라에는 직접적인 가치가 있다.” 미국 삼림국의 나무 추적 소프트웨어 아이트리(i-Tree)개발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노왁이 말했다. “따라서 경제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 나무에 동등한 잣대를 적용하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뉴욕시의 가로수 한 그루는 여러 가지 경제적 가치를 제공한다. 연간 대기오염 감축으로 9.02달러, 탄소격리로 1.29달러, 빗물 처리로 61달러 등 전체적으로 2억2000만 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2007년 그 소프트웨어의 초기 버전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뉴욕주 시라큐스는 건강 및 관련 비용으로 연간 110만 달러를 절약한다. 매연이 주민들의 폐에 흡수되지 않도록 나무가 필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또 필라델피아에선 공지를 시민농원으로 전환하면서 인근 집값이 평균 3만5000달러 상승했다고 추산됐다.
그런 데이터는 로스앤젤레스, 애틀란타, 오리건주 포틀랜드 등지의 도시 당국자들이 도시 식림을 강화하는 근거가 됐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시 모두 100만 그루의 나무를 더 심겠다는 목표다. 그뿐 아니라 인도를 파헤쳐 타르 위에 흙을 깔고 있다. 레인가든(빗물을 땅 속으로 흡수하는 정원)과 에코 지붕이라는 구역을 만들어 빗물을 흡수하려는 목적이다. 시애틀의 도시 한복판의 2만8300여㎡ 부지를 ‘도시 과수원(urban food forest)’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사과·자두·배·견과류 나무를 심어 시민들이 따먹게 한다.
나무의 가치를 계수화한다지난 7월 어느 화창한 아침, 릭 핼럿이 뉴욕시 메디슨 대로 한복판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미국 삼림국의 연구 생태학자인 그는 검정 작업바지와 오렌지색 형광 조끼 차림이었다. 빨간 불에 멈춰선 택시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출발선에 선 경주마들처럼 그를 향해 뛰쳐나올 기세였다.
핼럿은 택시들뿐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청색 미니드레스 차림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줄자를 이용해 자신이 찾던 GPS 좌표가 바로 대로 한복판임을 신속한 동작으로 확인했다. 이어 차들이 달려 나오는 순간 안전하게 인도로 되돌아갔다. 그는 450달러짜리 핸드백을 판매하는 꽁뜨와 데 꼬또니에라는 부티크 앞에 서서 클립보드에 메모를 했다. ‘이 조사 지역 내에는 한 그루의 나무도 없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 멧종다리가 지저귀는 숲지대 속으로 핼럿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브롱크스의 허드슨강을 따라 늘어선 철길과 접한 곳이다. 여기서는 정확히 같은 면적의 부지에서 33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아이스크림 포장재들과 찢어진 박스형 팬티 한 벌도 같은 자리에 나뒹굴고 있었다. 가죽나무 다수, 그리고 검정 체리, 느릅나무 묘목, 어린 참나무 한 그루씩이었다.
핼럿의 조사팀은 아주 새롭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뉴욕시의 나무 현황을 파악하는 중이다. 여기서 수집한 데이터를 아이트리 소프트웨어가 분석하게 된다. 도시의 나무 520만 그루를 일일이 조사하려면 보통 번거로운 작업이 아니다. 핼럿의 팀은 대신 지도작성 툴을 이용해 도시 경계 안에서 405㎡ 부지 300개를 무작위로 선정했다. 각 부지를 방문해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또는 자라지 않는) 모든 나무의 크기·품종·그늘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뉴욕시 전체 도시 삼림의 특성을 규정짓게 된다.
무작위 표본 추출이 이 조사를 과학적으로 만드는 열쇠였다. 그에 따라 핼럿의 팀은 몇몇 예상 밖의 엉뚱한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한 부지는 프리덤 타워 건설현장 내에 있었다. 또 한 곳은 JFK 공항의 활주로 위였다. 일부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뉴욕 주민의 사유지 경계 내에 있었다(“여기에 없는 나무를 측정하라고 당신을 여기로 보냈단 말이오?” 퀸즈에 있는 로커웨이스의 한 집주인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암, 그렇겠지. 정부다운 짓이야.”)
아이트리 등장 이전에는 한 도시의 숲을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을 하나의 개체로 간주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무가 공유지뿐 아니라 사유지에서도 자라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도시 수목관리자의 일이 “판매대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식품점을 관리하려 애쓰는 격”이 됐다고 노왁이 말했다. 그 앱의 기능은 나무 숫자를 세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무가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계산한다. 이산화탄소 흡수기능 같은 혜택이다. 요즘 같은 기후변화 시대에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가는 역할이다.
너무 따진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아이트리가 가시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2007년 미시건주 그랜드 래피즈 당국자들은 도시의 물푸레 나무 7000그루를 베어내기로 결정했다. 호리비단벌레라는 해충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멀쩡한 나무까지 모두 베어내기로 했다.
한 지역 단체가 식목 현황 조사와 아이트리 분석을 실시한 참이었다. 성체 물푸레 나무 한 그루에 1000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연간 100~200달러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새 정보에 근거해 시 당국은 가장 위험성이 큰 나무들에 살충제를 뿌리는 전략을 택했다. 더 많은 예산이 드는 방안이었지만 더는 낭비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랜드 래피즈 주민 캐롤 무어와 도티 클룬에게는 보람을 얻는 순간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지역사회 운동가인 두 사람이 조사를 의뢰했었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히 물푸레 나무를 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무의 역할을 인식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나무의 가치를 의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무어가 말했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광합성에 관해 배운 뒤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이 같은 새로운 인식을 밑바탕으로 그랜드 래피즈는 2012년 ‘올해의 나무’ 상을 창설했다. 첫 수상작은 직경이 120㎝에 육박하는 수령 100년의 물푸레 나무다. 수천~수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혼잡한 상가 거리의 넓은 지역에 그늘을 드리우며 연간 2만6500ℓ에 가까운 여분의 빗물을 흡수한다.
잎사귀 요법도시의 나무들은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번성한다. 공간적 제약, 부실한 토양, 부식성을 가진 염분과 화학물질에도 견뎌낸다. 환경에 혜택을 줄 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건강에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단순히 도시 미관뿐 아니라 국민건강 의제로서 나무·공원·정원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워싱턴대 환경 및 삼림학 대학원의 사회학자 캐슬린 울프가 말했다.
시카고·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도시에서 천식과 심장병 사망자 수가 줄었다. 미세먼지로 알려진 작은 매연 입자를 흡수하는 나무의 능력 덕분이다. 노왁이 이끄는 연구팀의 2013년 보고서 내용이다. 연구팀은 현재 피부암을 유발하는 자외선을 나무가 차단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는지 조사하는 중이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각 나무의 가치가 훨씬 커진다. 마로니에 또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인근 주민 수천 명이 호흡하는 공기를 정화하고 그들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자연을 잠시만 접해도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건강 악화를 유발하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완화된다. 노소를 막론하고(주의력 결핍장애 아동을 포함) 정신력이 필요한 과업에 집중력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여러 조사에서 확인된 결과다. 예컨대 창문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은 진통제를 적게 사용했다.
야생지대까지는 필요 없다. 도시의 작은 녹지 공간(매립지 공간이나 동네 정원)이라도 상당한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원예 협회는 필라델피아 도심의 쓰레기가 나뒹구는 공지들을 청소해왔다. 그 공간에 친근감 주는 나무 담장을 둘러 마음 편한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들 지역에선 반달리즘(공공기물 훼손)과 총기사건이 줄면서 주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함께 낮아졌다. 미국 유행병학 저널에 실린 2011년 조사 결과다.
지역사회에 뿌리내린다2012년 10월 슈퍼 폭풍우 샌디가 미국 동부 해안을 강타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그 뒤 미국 삼림국 뉴욕시 도시 현장사무소의 에리카 스벤슨과 질리언 베인이 조사에 착수했다. 뉴욕 주민들이 공지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사람들이 공원뿐 아니라 나무에 뜨거운 애착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스벤슨이 말했다. “가로수 또는 공원의 작은 숲일 수도 있다. 심지어 ‘이건 내 나무, 내가 돌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유지의 나무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용효과를 따지는 도시계획자들의 실용적인 계산법은 유용하기는 하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변함 없이 믿음직하게 버티는 나무의 가치를 모두 완전히 아우르지는 못 한다. 사람들의 삶에서 불변의 상수, 인간 역사의 일부가 된다. 샌디 재앙 이후 어느 가을날 베인은 퀸즈의 하워드 비치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물가의 한 버드나무 주위에 모여 있었다. 노인들은 나무를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정성스럽게 모래주머니를 쌓았다. 마치 집의 지하실에 물이 들어차지 않도록 방벽을 쌓는 듯했다. 동네의 피해상황을 우려하듯 나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한 그루의 나무가 목적인가,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친목을 다지려는 목적인가?” 스벤슨은 생각에 잠겼다. “나무는 시간과 장소를 상징하는 이 같은 지표가 된다. 따라서 대단히 중요하며 구제할 만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그 노인들의 노력 덕분에 나무는 살아 남았다. 아직도 건재하며 운이 따라준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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