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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 파죽지세의 미셸 위 - ‘1000만 달러 소녀’ 진가 발휘하다

Golf | 파죽지세의 미셸 위 - ‘1000만 달러 소녀’ 진가 발휘하다

6월 23일 끝난 69회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룬 미셸 위.



미셸 위는 사기꾼인가? 2006년 9월 미국의 공영방송인 NBC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런 제목으로 토론방을 개설했다. 당시 그 토론방의 메인 페이지에는 ‘오메가 유러피언 마스터스에서 10번째 남자 프로골프대회 도전-최악의 순위’라는 기사를 함께 게재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1000만 달러의 소녀’ 미셸 위(25·나이키골프)를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거듭된 컷 탈락의 성(性)대결(남자 프로골프무대 도전)을 문제삼았다. 미국의 스포츠전문 채널인 ESPN도 같은 시기에 “언제까지 남자대회 스폰서 초청으로 출전할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사실 미셸 위는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정규 멤버로 직장(?)을 구하지 전까지는 초청 선수로 이곳 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나 특히 성대결의 결과는 참담했다. 2003년 8월 캐나디언 투어인 베이밀스 오픈을 시작으로 2007년 1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까지 모두 13차례나 성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2006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딱 한 차례 컷을 통과한 것으로 제외하면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 때문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미셸 위에게는 ‘사기꾼’ 외에도 ‘미운 오리새끼’ ‘먹튀’ ‘가짜 천재’ ‘LPGA 미래에서 미래가 없는 소녀’ 등 별별 혹평이 잇따랐다.

그랬던 미셸 위가 6월 23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의 파인허스트 골프장 2번 코스(파70)에서 끝난 제69회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5년 프로 데뷔 이래 9년 만에 처음으로 품에 안은 ‘메이저 타이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는 정확히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에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이루어졌다(Oh my God, I can’t even think straight).”



사기꾼, 미운 오리새끼, 가짜 천재…지난 몇 년간 ‘존재감이 없는 선수’란 혹평으로 들끓었던 냄비는 금세 찬사로 넘쳐나고 있다. AP통신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번 우승으로 큰 걱정거리를 덜게 됐다”며 “여자 골프계 최고의 스타인 미셸 위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가장 큰 우승 트로피를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ESPN은 미셸 위가 우승 트로피를 조수석에 놓고 안전벨트를 채운 사진을 게재했다.

그랬다. 미셸 위는 정말 이 우승 트로피가 필요했다. 올 4월 고향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LPGA 챔피언십에서 3년 8개월 만에 LPGA 투어 통산 3승을 기록했지만 자신의 진가를 완벽하게 입증하지는 못했다. 2005년 프로 전향 이후 이후 지난 9년을 돌이켜보면 ‘천재 골프 소녀’는 정말 숱한 좌절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미셸 위는 300야드의 초특급 장타를 내뿜어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열 살이던 2000년에 당시 역대 최연소로 US 아마추어 퍼블릭 링크스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2002년에는 역시 최연소로 LPGA 투어 대회에 출전했다. 2003년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미셸 위는 최종 라운드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인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챔피언 조에서 겨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세계의 모든 언론은 ‘여자 타이거 우즈’가 등장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워 ‘언제든 우승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셸 위는 2005년 10월 만 15세의 나이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나이키와 소니 등이 앞다퉈 거액의 후원 계약을 해 ‘1000만 달러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1m83㎝의 장신에 어릴 때부터 호쾌한 장타를 날려 금세 ‘골프 여제’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세계 여자프로 무대의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2006년 첫 메이저 3개 대회에서 공동 3위-공동 5위-공동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그 해 7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에 올랐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셸 위는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LPGA 투어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규 멤버는 아니었다. ‘18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LPGA 투어의 나이 제한 규정에 묶여 남자 투어를 기웃거렸다. 바로 성대결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감당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다. 첫 무대로 택한 곳은 세계 남자골프 투어 중 3~4급 수준인 캐나디언 투어(베이밀스오픈)였다. 그 결과는 2라운드 합계 9오버파였고, 두 번째 무대였던 PGA 2부 투어 보이시오픈에서는 12오버파를 기록했다. 물론 가능성도 보였다.

세 번째 도전이었던 PGA 투어 2004 소니오픈에서는 이븐파를 쳐 컷 통과에 단 1타가 모자랐다. 솔직히 이때까지가 딱 좋았다. 성대결은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소니오픈의 기대감은 더 큰 도전과 희망을 불러왔지만 그 이후 여론은 역풍으로 돌아왔다.



LPGA 투어 호령할 다크호스화려했던 ‘1000만 달러 소녀’는 결국 ‘미운 오리새끼’로 둔갑했다. 2007년에 LPGA 투어 대회에 8차례 출전했지만 기권 2회, 컷 탈락 3회 등 ‘차라리 대회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동정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세간의 평가는 정말 냉혹했다. ‘프로에 와서 보여준 것이 없다’거나 ‘PGA 투어 등 이벤트 대회에 전념하며 돈만 챙긴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2008년에도 7월 스테이트팜 클래식에서 스코어카드 사인 규정을 어겨 실격됐다. ‘비 멤버 신분으로 우승해 LPGA 투어 출전권(대기 1순위: 4대 메이저 대회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시드)을 따내겠다’는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2009년 퀄리파잉스쿨(이하 Q 스쿨)에 도전했다.

미셸 위가 Q스쿨을 통과하자,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방탕아의 귀환’이라는 외신 반응이 나왔다. 이제 “미셸 위보다 더 좋은 흥행카드는 없다”는 게 LPGA 투어 사무국의 평가였다. 그리고는 2009년 11월 멕시코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우아한 백조’로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그 뒤 2010년 CN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1승을 추가했지만 이후 참가한 79개 대회, 3년 8개월(롯데 LPGA 챔피언십 전까지)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긴 슬럼프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미셸 위가 그렇게 긴 수렁 끝에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우스꽝스러운 ‘ㄱ자’ 퍼팅 자세였다. 항상 퍼팅 때문에 발목이 잡혔던 그는 2012년 말부터 바꾼 ‘ㄱ자’ 퍼팅으로 이제 LPGA 투어의 새로운 잔 다르크가 됐다. 미셸 위는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17번 홀에서의 7.6m 내리막 버디 퍼트는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퍼트 중 하나일 것이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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