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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ING - 크레디 스위스 은행의 불편한 진실

BANKING - 크레디 스위스 은행의 불편한 진실

미국인 고객들의 해외 탈세 조장한 죄를 인정하고 사상 최고액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지만 정작 고객 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넘어가
크레디 스위스는 탈세고객 명단 공개를 피했을 뿐 아니라 어떤 임원도 기소 당하지 않았다. 취리히의 크레디 스위스 은행 건물 입구.



지난 가을 미국 법무부 2인자 제임스 콜이 흥미로운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크레디 스위스 은행이 부유한 미국인 고객들의 해외 탈세를 도운 수법과 관련된 범죄수사 상황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스위스 2위 은행에 대한 지지부진한 수사를 지휘하는 법무부 책임자 캐시 케닐리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현황을 보고해 주겠소?”

그 9월 4일자 이메일 내용을 뉴스위크가 입수했다. 메일에서 콜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덧붙였다. “브로데릭 존슨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CEO가 이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고 하오.”

브로데릭 존슨이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가까운 변호사이자 전 로비스트를 일컫는 듯하다. 지난 1월 오바마는 그를 대통령 보좌관 겸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했다. 법무부를 포함해 여러 정부 기관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다. 콜의 이메일이 흥미를 끄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존슨이 몸담았던 K 스트리트(워싱턴 DC의 로비스트 거리) 로비 업체 콜린스 존슨 그룹이 크레디 스위스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밍 또한 눈길을 끌 만했다. 300여개 스위스 은행들에게 벌금을 물도록 하는 협상을 법무부가 마무리한 참이었다. 미국인 고객들의 탈세를 가능케 한 데 대한 징계였다. 그 협상은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private banks, 부유층 고객 대상의 금융 자문과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들을 통한 해외탈세를 단속하기 위해 법무부가 7년에 걸쳐 전개한 수사의 절정을 이뤘다. 범죄수사를 받고 있던 10여개 스위스 은행들은 이 협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중 크레디 스위스가 대표적이었다.

존슨의 개입이 주효한 듯하다. 약 18개월의 교착상태 끝에 은행은 법무부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 5월 19일 크레디 스위스는 2009년까지 수십 년 동안 탈세 지원을 공모한 한 건의 혐의에 유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고액의 벌금 26억 달러를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법무부, 국세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속인 죄과였다.

미국 법무부의 개가라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크레디 스위스로부터 기록적인 벌금을 받아냈지만 그것도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 은행을 통해 최대 120억 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탈세 미국인 2만2000명(상원 소위원회의 집계)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전·현직 법무부 당국자들을 포함한 비판자들은 그 이메일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상적인 채널이 아니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한 고위 관계자가 말했다. 미국 대통령 그리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력 은행 CEO와 직통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개입을 일컫는 말이다. (존슨은 “제한적인 자격으로 법무부와 접촉해 대화를 독려했으며 합의를 위한 협상이나 로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다. 크레디 스위스 대변인은 논평을 거부했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는 2009년 크레디 스위스의 유죄인정보다 가벼운 기소유예에 합의하고 7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그리고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탈세를 도왔던 고객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놀랍게도 스위스 은행 비밀보호법을 위반하며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스위스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발동해 UBS가 약 4450명의 미국인 고객 명단을 미국 국세청과 법무부 검사들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뒤에야 가능했다(스위스에서 탈세는 범죄가 아니다).

UBS의 명단공개 이후 외국 프라이빗 은행과 그 미국인 고객들의 실명 공개가 해외 탈세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공개 전쟁에서 상징적인 전리품이 됐다. 스위스에 대형 전초기지를 설치한 HSBC 같은 외국 은행과 스위스 국내 은행 10여개가 범죄 수사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크레디 스위스에 대한 수사가 일순위였다.

검사들은 2012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 은행 베겔린을 기소했다. 이 조치로 스위스의 아이콘이었던 그 은행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40명에 가까운 외국 프라이빗 은행가, 변호사, 컨설턴트뿐 아니라 70여명의 부유한 미국인 고객을 기소했다. 2009년 이후 해외 비밀계좌를 가진 미국인 4만3000여 명이 제 발로 미 국세청을 찾아가 자진 신고했다.

장기간 지속된 크레디 스위스 조사는 UBS 수사 그리고 그 4450명의 명단에서 가지를 뻗어나갔다. 원래는 검사들이 기획한 대형 공개망신 시리즈 2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막은 끝내 오르지 않았다. UBS의 경우는 “벌금 이상으로 명단 문제가 중요했다. (법무부가) 총력을 기울여 협상했다”고 법무부의 어느 전 관계자가 말했다. “그것이 은행업의 진로를 바꿔 놓았다. 크레디 스위스의 경우엔 그런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크레디 스위스가 법무부에 제출한 명단은 238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다지 가치 있는 정보도 아니었다. “솔직히 그들이 공개한 고객 대다수가 사망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번 일에 정통한 소식통이 뉴스위크에 말했다.

(왼쪽부터) 존 코스키넨 국세청장, 제임스 콜 법무차관,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크레디 스위스 수사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즈의 세무 변호사 에드워드 로빈스는 2004년까지 법무부의 캘리포니아 중부 지방 검찰청 세무과장을 지냈다. 크레디 스위스의 미국인 CEO 브래디 두건이 “고객들의 이름을 보호한 공로로 필시 취리히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퇴양난의 딜레마뉴스위크는 그 문제에 정통한 두 소식통을 통해 아이러니컬한 반전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1년여 전 크레디 스위스는 7500명 안팎의 미국인 고객 명단을 제출할 준비가 돼 있었다. 바로 그 때 스위스 정부가 개입했다. 그 이름들을 공개할 경우 은행 고위 관계자 일부가 스위스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객의 비밀을 보호하는 스위스 법의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고객 비밀보호는 스위스가 세계 최고의 해외 조세피난처로서 명성을 유지하는 열쇠다. 스위스가 관리하는 자산은 어림잡아 2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크레디 스위스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그것이 부분적으로 미국 법무부 측과 협상의 교착상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뒤 미국 법무부와 뜻밖의 합의는 비판자들을 더욱더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크레디 스위스는 고객명단 공개를 피했을 뿐 아니라 어떤 임원도 기소 당하지 않았다.

은행 측이 조사를 방해하기 위한 비밀공작을 벌였다고 시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계정 기록을 파기하고, 탈세 고객들에게 해외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고객들을 위해 미국으로 자금을 밀반입하기까지 했다. 은행업 및 투자자문 업무에 대한 미국 사업허가가 취소되지도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은행이 망할 수도 있었다.

대신 그 세계 28위 규모 은행은 수표를 끊는 것으로 아무 탈 없이 고비를 넘겼다. 26억 달러의 벌금은 은행에 실질적으로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두건이 투자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크레디 스위스가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 듯하다.” 법무부의 전 고위 당국자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 은행은 어떻게 철퇴를 피했을까? 미 법무부는 강력한 망치를 갖고 있었다. 2011년 검사들은 크레디 스위스에 거래기록, 미국인 고객 명단, 그들의 계좌 내역을 제출하도록 강제할 영장을 확보했다. FRB 뉴욕 지부는 영장을 집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법무부에 말했다. 그 문제의 자초지종을 아는 두 사람의 증언이다(FRB 뉴욕 지부의 안드레아 프리스트는 논평을 거부했다). 그러나 영장은 집행되지 않았다.

법무부의 국무부 연락담당 부서 책임자 브루스 스워츠가 그럴 경우 심각한 사태가 잇따르게 된다고 주장한 탓이 적지 않았다. 스위스 정부가 집행정지 명령을 발동해 크레디 스위스가 영장에 응하지 못하도록 막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재판부는 법정모독죄를 적용해 은행에 매일 무거운 벌금을 부과할 것이고 결국 은행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였다. 은행이 벌금납부를 거부할 경우 연방 당국은 어쩔 수 없이 크레디 스위스의 실물 자산을 몰수하게 된다. 예를 들면 뉴욕 메디슨 에버뉴에 있는 회사 건물 등이다. 그에 따라 크레디 스위스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글로벌 금융불안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콜의 9월 4일자 이메일에 대한 케닐리의 답장은 크레디 스위스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검사팀도 조사를 계속하면서 예금주들을 대배심에 출석시키고 다른 협력적인 증인들을 인터뷰해 왔다.” 역시 뉴스위크가 입수한 이메일에서 케닐리가 썼다.

그러나 그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 위협은 엄포에 불과했다. 지난 늦가을 FRB는 기소에 반대했다. 크레디 스위스가 글로벌 경제에 “시스템 상 중요하다”고 공언했다. 다시 말해 “대마불사”라는 뜻이었다. 대배심을 내세운 조치는 “제스처였다.” 그 문제에 정통한 또 다른 사람이 그 영장을 가리켜 말했다. ”법무부가 행여 그 은행을 기소하리라고 실제로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10월 말 케닐리는 법무부가 “기소할 준비를 마쳤다”고 크레디 스위스의 변호사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크레디 스위스는 그 위협을 “신빙성 있다”고 간주했다고 크레디 스위스의 한 소식통이 말했다.

2월 말 크레디 스위스 조사가 지지부진한 데 대해 칼 레빈 상원의원(민주당·미시간주)이 이끄는 상원 상설조사소위원회가 콜을 질타했다. 그는 집행되지 않은 영장을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명단”이라고 레빈이 말했다.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콜은 선서한 뒤의 증언에서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의 장막이 “단단하며 좌절을 안겨줬다”고 푸념했다. 이어진 발언은 레빈 그리고 전 법무부 관계자와 고위 세무 변호사 다수를 아연케 만들었다. 영장의 집행은 “기록을 입수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며 그는 덧붙였다. “스위스인들이 그것을 막는다.”

모두 2008년 금융위기를 유발한 대형 은행과 대출기관들을 미국 법무부가 기소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비웃음을 사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레빈의 공개적인 질타와 대형은행들의 ‘대마불사’ 이미지가 콜을 당황하게 했다고 법무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상원 청문회 직후 콜은 FRB 뉴욕 지부와 더 많은 대화를 가졌다. 그들은 이번에도 기소가 그 은행의 “즉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6억 달러의 벌금은 “일일 드라마로 끝난다” 즉 파멸적이지는 않으리라고 덧붙였다고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전했다. 3월 중순이 되자 협상 과정에서 콜과 케닐리의 고객 명단 요구가 공식적으로 중단됐다고 크레디 스위스의 한 소식통이 말했다.

스위스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발동해 UBS가 명단을 제출하도록 허용한 이후 5년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고 법무부의 한 소식통이 말했다. UBS 고객명단을 공개하도록 허용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발동한 데 대해 스위스 유권자들은 아직도 불만을 갖고 있었다. “스위스 국내 유권자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3월 초 크레디 스위스는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수사 당국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은행업 및 투자자문업 면허를 취소하지 않겠다는 미국 규제당국자들의 약속을 원했다. 여러 차례 전화회의를 한 뒤 법무부, FRB 뉴욕 지부, 증권거래위원회(SEC) 모두 그 은행이 면허를 잃을 “만한 잘못은 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한편 스위스 정부는 크레디 스위스에 더 유리한 협상을 중재하려 애썼다. 5월 2일 에벨린 빌드메르 슐륨프 스위스 재무장관이 미국 법무부를 찾아가 에릭 홀더 법무장관과 이례적인 면담을 했다. 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미국의 최고 사법당국자와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2009년 스위스는 미국과 조세조약 의정서를 채택했다. 스위스 정부는 승인했지만 미국 상원에선 아직 계류 중인 상태였다. 크레디 스위스가 그것을 통해 미국인 고객 명단을 공개하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의정서를 통과시키면 미국이 일부 명단의 공개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 문제에 관한 내막을 아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홀더는 비드메르-슐룸프의 제안을 거절했다. 법무부는 스위스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스위스의 은행 규제당국 핀마(FINMA)는 피해망상이 있었던 듯했다. 합의 3일 전 크레디 스위스에 경고서한을 보냈다. 조세조약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객명단을 발표해 스위스 비밀보호법을 위반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법무부는 크레디 스위스에 대한 처벌이 가볍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레빈이 뉴스위크에 말한 내용은 다르다. “미국 고객들이 해외 비밀계좌를 개설하도록 도운 외국은행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할 때 미국 법무부는 최소한 계좌 보유자들의 이름을 요구해야 한다.” 유죄인정이 서류상으로는 무거운 처벌이지만 “아무도 더 이상 이들 합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일대에서 기업·금융·증권법을 가르치는 조너선 메이시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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