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DDLE EAST CRISIS - 운명의 ‘0시’가 다가오는가

바그다드 주민들은 곧 닥친다고 믿는 순간을 ‘0시(zero hour)’라고 부른다. 이라크의 북부와 서부 대부분을 장악한 수니파 무장단체 ISIS가 수도 바그다드에 진주하는 운명의 시간을 가리킨다. 그곳 전문가들에 따르면 만약 바그다드가 함락된다면 ISIS가 ‘검은 깃발’을 내세우고 진격하는 전면공격으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시에라리온에서 반군이 수도 프리타운을 점령한 방식, 또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가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포격을 퍼부은 방식으로 점령될 것이다. 그들의 정복은 주민의 의지를 꺾는 은근하고 점진적인 침투를 통해 성사될 것이다.
바그다드 주민의 약 80%는 시아파다. 따라서 ISIS가 재래식 전투로 바그다드를 점령하기는 쉽지 않다. 바그다드에서 발행되는 신문 알마다의 편집장 아드난 후세인은 “바그다드를 점령하기는 아주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민들을 겁주는 심리전이 진행되고 있다.”
현지의 안보전략가 히샴 알-하시미는 “그들은 바그다드 중심부를 점령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걸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ISIS가 ‘바그다드 벨트(Baghdad belt)’를 취할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바그다드를 둘러싼 여러 작은 마을을 말한다.
거기서 그들은 잔혹한 전쟁을 치를 것이다. 바그다드 벨트에 있는 주요 마을은 북쪽의 타르미야와 타지, 서쪽의 아부그라이브(악명 높은 감옥이 있는 곳)다. 서남쪽의 유수피야, 루투피야, 마무디야, 그리고 동남쪽의 살만팍도 취약하다.
군사 소식통에 따르면 ISIS는 이미 그 마을들에 ‘족적’을 남겼다. 현지 대원을 침투시켰다는 이야기다. 이웃 안바르주의 무장폭동을 기화로 지난 1월 이래 침투한 대원 수가 상당히 늘었다. 카르발라로 이어지는 도로에 있는 마을 마무디야(과거 알카에다의 거점이었다)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다. 카르발라는 이라크 정부를 구성하는 시아파에게 성스러운 도시 중 하나다.
바그다드 동남부 티크리스 강변의 마을에서도 ISIS의 무기고가 발견됐다. 그들이 그런 주요 마을을 장악하고 나면 ‘다이시(반군을 칭하는 아랍어)’가 수니파 ‘휴면 세포’(숨어 있는 일종의 스파이)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군사 소식통들은 예상했다. 그 세포들이 바그다드 전역에 동맥처럼 이어져 있다.
안보전략가 알-하시미에 따르면 그들의 목표는 위협과 심리적인 공격으로 바그다드 주민들에게 두려움을 불어넣어 스스로 집을 버리고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ISIS가 그들이 떠난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를 세운다는 전략이다.
급진 아일랜드공화국군(IRA)도 1970~80년대에 런던에서 그와 유사한 전술을 사용했다. 가게와 식당 등 사람이 붐비는 공공장소에 끊임없는 폭탄테러의 위협을 가해 런던 주민들을 겁먹게 만들려고 했다. 2003년부터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서방 안보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IRA가 영국 본토에서 폭탄테러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폭탄 한 두 발만 설치했다. 그것만으로도 대중의 두려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테러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IRA는 경찰에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달해 폭탄테러를 사전에 경고했다. 왜 그랬을까? 폭탄 자체보다 대중에 두려움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이라크군 바그다드 사령부의 대변인 사아드 마안 이브라힘 장군은 이라크 보안군이 ISIS 휴면 세포들을 색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보가 많다. 이번 주에만 세포 두 명을 체포했다.” 그는 주민들의 신고가 전화로만 10만 건 이상 접수됐다고 말했다. “직접 찾아와서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그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종자들의 종착지 영안실ISIS가 이라크 북부와 서부를 장악하면서 그곳의 생활은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다. 6월 10일 점령된 모술에선 대다수 가게가 문을 닫았다. 문을 연 가게도 턱없이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한다. 육류 통조림이 평상시 가격의 세 배에 팔린다(1000디나르에서 3000디나르로 치솟았다).
국회의원 출신으로 이라크 인권위원회 이사인 살라마 알-하파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구입한다. 더 싸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약을 먹으면 중독될 위험이 있다. 약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입하는 약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나는 알-하파지를 10년 전 바그다드에서 만났다. 차량폭탄 테러로 그녀가 여동생과 열일곱 살 아들을 잃은 직후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녀는 삼엄한 경호를 받는다. 집이나 사무실을 벗어날 때는 기폭 스위치와 폭탄 사이의 전자신호를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차를 타고 다닌다. “아들이 살아 있다면 올해 스물일곱 살”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인 모두가 그 테러를 피하려고 탈출길에 올랐다고 알-하파지는 말했다. 최근 기독교인들에 대한 공격이 특히 잔인했다. 성폭행 이야기도 벌써 등장했다. 한 기독교인은 딸이 ISIS 대원들에게 강간당하자 자살했다고 알-하파지는 내게 말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모술의 주택을 침입해 이슬람 신자가 아닌 여성의 옷가지를 꺼내 거리에 내던졌다. 성모 마리아상도 파괴했다. 주민들은 겁에 질렸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의 함무라비 인권기구에서 일하는 윌리엄 와르다도 그런 사실을 확인했다. “이라크의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위험에 처한 적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바그다드에선 그들이 시아파가 보호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북부에선 쿠르드족 전사들의 보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와르다는 이렇게 덧붙였다. “레바논의 기독교인들과 달리 우리는 1933년 이래 자경단이 없었다. 중동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앞날은 아주 암울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라크를 떠날 수 없다.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이라크에 머물도록 촉구하고 있다. 도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시아파와 기독교인들 만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건 아니다. 바그다드의 수니파 주민들마저 공포에 휩싸였다. 같은 수니파로 구성된 무장단체인 ISIS가 두려운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고 다시 날뛰는 시아파 암살단들 때문이다. 한 서방 외교관은 “사라진 듯했던 그들이 이번 위기를 기화로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의 한 영안실에서 법의학자인 문지드 알-레잘리 박사가 우리를 ‘실종’이라고 불리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딱딱한 의자에 수니파 40대 여성 솜마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동생 압둘라의 시신을 확인하러 왔다고 말했다. “엔지니어인 내 동생은 너무도 착해 누구를 해칠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알-레잘리 박사는 거리에서 발견되는 시신이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부 수니파 남성이다. 얼마 전 이틀 동안 시신 72구가 영안실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고문의 흔적이 있었다. 시아파 암살대원들은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수니파 남성의 시신에 표시를 남겼다. 한 시아파 대원은 나일론을 태워 생긴 뜨거운 액체를 수니파 남성의 벗은 몸에 떨어뜨려 고문을 가했다.
2006~07년에도 바그다드에서 수니파 학살이 자행됐지만 그때 희생된 수니파 남성들은 지역사회에서 지명도 높은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사회에 함께 어울려 사는 평범한 수니파 남성들이 희생되고 있다. 그들은 국제사회가 원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표적이 됐다. 이라크가 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을 말한다.
처절한 상실감과 절망전형적인 민병대의 모습은 검은 옷에 복면 차림이지만 시아파 암살단은 옷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다. 어느 조용한 일요일 바그다드 서남부 구역에 있는 솜마야의 집에 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압둘라를 찾으려고 권총을 휘두르며 집을 수색했다. 솜마야는 그들(스스로 ‘관리’라고 불렀다)이 동생을 내놓지 않으면 강간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압둘라를 찾아내 끌고 갔다.
법의학자들은 압둘라가 집에서 끌려간 지 한 시간 안에 살해됐다고 말했다. 그의 시신은 근처 학교 뒤에 버려져 있었다. 그날 영안실에 들어온 시신들의 동영상이 화면 다섯 개에서 비쳐지는 가운데 솜마야는 동생을 곧바로 알아봤다. 속옷 차림으로 머리는 피범벅이었다. 가슴과 팔, 상체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손과 발, 둔기로 구타당한 흔적이었다. 머리에 난 총상 부근에는 피가 엉겨 있었다. 손은 뒤로 묶여 있었다. 솜마야는 쓰러져 흐느꼈다. 더 할 수 없는 처절한 상실감과 절망에 찬 여성의 절규였다.
우리는 영안실을 떠나면서 지저분한 노란색 죄수복 차림에 눈가리개를 하고 손이 뒤로 묶인 남성 다섯 명을 지나쳤다. 젊은 그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아는 듯 의욕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 그 포로들은 뒤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듯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의사를 표시했다간 보복을 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인 듯했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ISIS 테러리스트 용의자로 심문을 받기 위해 그곳에 끌려왔다. 앞으로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까? 살아남을까 죽을까? 고문당하고 살해돼 집단 매장될까? 길고 잔인하며 피비린내 나는 여름에 접어든 바그다드의 운명처럼 그들의 미래도 불확실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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