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RONATIONALISM - “나는 왕이로소이다”
MICRONATIONALISM - “나는 왕이로소이다”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제러마이어 히튼이라는 한 남자가 아프리카에 가서 주인 없는 땅에 깃발을 꽂고 자신을 왕으로, 딸을 공주로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히튼 자신은 아주 진지하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농업 연구에 그 땅을 사용하겠으며, 서버팜(한 곳에 집단으로 설치된 컴퓨터 서버군)을 설치해 온라인 사생활 보호의 지상 낙원을 만들고, 유엔 옵서버(정식 의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회의장에 출석하거나 유엔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국가) 지위를 신청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고매한 이상이다. 하지만 그런 일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 없다(심지어 그가 진짜 아프리카에 다녀왔다는 증거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동참하려고 기부자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대망은 딸 에밀리가 지난 겨울 집에서 놀고 있을 때 우연히 시작됐다. 히튼(아들 저스틴과 칼레브도 있다)은 에밀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돌이켰다. “아빠, 내가 진짜 공주가 될 수 있을까?” “부모로서 아이에게 ‘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히튼은 뉴스위크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자신이 언젠가 공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딸아이에겐 큰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물론이지. 넌 언젠간 진짜 공주가 될 거야’라고 말해줬다.”
히튼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 늦긴 했지만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주인 없는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로 지목된 곳은 남극 대륙이었다(그 대륙의 약 3분의 1은 주인이 없다). 그러나 그곳의 땅 매입은 국제협약으로 금지돼 있다. 그는 태평양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그곳의 모든 땅은 주인이 있었다.
그러다가 히튼은 라틴어 용어로 ‘terra nullius’라 불리는 곳을 우연히 발견했다(그는 광산보안 전문회사를 소유한다). 국제법상 어떤 국가도 주권을 갖지 않은 무주지(無主地)를 뜻한다. 이집트와 수단의 국경 지대에 있는 2060㎢의 사막지대인 비르 타윌이 바로 그곳이었다. 히튼은 그곳이 아무도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유일한 땅이었다고 말했다. 그 지역에 걸쳐 있는 이집트와 수단 중 어느 나라도 1902년 이래 그곳의 주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뉴스위크는 히튼이 실제로 아프리카 동북부에 다녀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언자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무튼 그가 자신의 새 왕국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찍은 사진에서 입은 청색 셔츠와 카키색 바지는 집에서 국기를 펼쳐놓고 에밀리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그가 입은 옷과 같았다.
사진에서 그가 서 있는 배경의 바위투성이 사막은 미국 애리조나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히튼은 뉴스위크 기자에서 자신의 여행 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독일 뮌헨으로 간 뒤, 거기서 이집트 카이로로 갔다가 후르가다를 거쳐 남쪽의 마르사 알람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히튼은 미국에서 두 차례 의원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어쩌면 그 경험은 그가 완전히 비미국적인 ‘군주’라는 새로운 신분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는 비르 타윌에 가서 청색 바탕에 별 네 개와 노란 왕관을 새겨 넣은 깃발을 꽂고 왕국임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국제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북수단 왕국의 국적을 둘 다 유지할 계획이며, 만약 ‘조국’인 미국이 자신에게 시민권 포기를 요구한다면 바로 그것이 북수단 왕국을 공식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자신은 기꺼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히튼은 새로 얻은 땅을 농업 과학과 재생에너지 기술의 실험장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는 그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세계인들의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미천한 출신의 겸허한 왕으로서 다른 군주들은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과시하지만 그와 달리 나는 군주의 지위를 이용해 우리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꿔 그것을 나의 유산으로 만들고 싶다.”
비르 타윌이 천연자원이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북수단 지역을 농업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다면 이곳의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 물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면서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의 북수단 왕국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을 국가 좌우명으로 정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도 있다. 그는 식량안보가 북수단 왕국의 인권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아직은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고 있으며 한동안 그럴 것이다). 다른 세 기둥은 에너지 효율성, 디지털 자유, 재정의 자유다. 첫 두 가지(식량안보와 에너지 효율성)는 자녀들이 관심사이고 나머지 두 가지(디지털 자유와 재정의 자유)는 그 자신의 프로젝트라고 히튼은 말했다.
“아버지인 동시에 왕으로서 나는 중요한 결정을 홀로 내려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과 유사한 통화를 만들어 곧 온라인에 도입할 계획이다. 그의 왕국이 디지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미국이 국민과 이웃나라를 감시하고 정탐하기 때문이다. 히튼은 자신의 왕국을 온라인 사생활 보호의 지상 낙원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기밀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언급을 게재하고 있다.
“외부의 모든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서버팜을 내 왕국 안에 만드는 게 목표”라고 히튼은 말했다. 또 정보를 비공개로 저장할 수 있고 검열이 전혀 없는 공개 포럼에서 모든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사실 우리 세계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디지털 권리가 사방에서 공격 받고 있기 때문이다.”
히튼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고통과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의 계획이 버지니아주의 신문에 처음 보도됐을 때 시사 해설자들은 그를 ‘식민주의자’로 낙인찍었다. 그는 그 말을 가장 싫어한다.
“식민주의라는 용어를 이해하려면 그 정의부터 알아야 한다. 한 나라가 경제적인 이유나 주민을 착취할 목적으로 다른 나라나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식민주의의 정의다.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 국민이라는 사실 외에는 어떤 기준으로도 미국을 대표하지 않는다. 또 아프리카의 이곳은 기존의 나라가 아니며 인구도 없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기존의 개념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히튼은 자신을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백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종도 성별도 따지지 않는다. 사랑만 따진다.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 굶주림은 인종이나 신조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 마음이 올바르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도 올바르다. 따라서 결과는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는 게 아니다.”
이제 그의 왕국은 주변국 정부들의 승인을 받고 유엔 옵서버 지위를 얻어야 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는 이미 유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뉴스위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당분간 그의 “작전 기지”는 미국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오래 걸리고, 당연히 힘든 과정일 것”이라고 히튼은 말했다. 물론 그런 왕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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