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RMAN MODEL - ‘독일의 세기’가 다가온다
THE GERMAN MODEL - ‘독일의 세기’가 다가온다
뮌헨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자르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강 살리기 운동으로 원상 복구된 강둑은 우기에 홍수를 막아주고 해 좋은 날엔 소풍객들을 유혹한다. 야외에서 맥주를 즐기는 비어가든이 있는 수풀 섬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축구 클럽 FC 바이에른 뮌헨의 연습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승리를 이끈 주역 선수 8명을 배출한 클럽이다.
프로축구 시즌 동안 몇몇 평일에는 경기장 주변 이곳 저곳에 팬들이 둘러앉아 바이에른 뮌헨 스타 팀의 공개 훈련을 구경한다. 몇 달 뒤면 마누엘 노이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제롬 보아텡, 토니 크로스, 마리오 괴체, 필립 람, 토마스 뮐러가 체력단련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그곳에서 몸을 풀곤 했다.
그러나 보통 날엔 그곳에서 유소년 팀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유소년 팀이 이번 독일의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끌어낸 시스템의 기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독일은 2000년 국가대표팀이 유럽 챔피언전에서 굴욕을 당한 뒤 유소년 축구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그 이래 몇 년 동안 독일축구협회는 감독, 시설, 워크숍에 10억 유로를 투자했고, 축구의 접근법을 수정했다. 그 결과 이번 월드컵에서 팬들을 열광시킨 날렵하고 유연하며 창의적인 선수 세대가 배출됐다.
이처럼 독일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약점을 인정하고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유소년 팀을 강화해 뛰어난 선수를 양성했다. 또 뮌헨시는 알프스 유출수로 걸핏하면 범람하던 이자르강의 취약성을 철저히 분석해 강을 원상 복구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요즘 독일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풀 수 있다. 문제점을 찾아내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한 뒤, 그 문제를 해결한다(Spot a problem, analyse it, and solve it). 그 방식은 독일의 가정생활부터 비즈니스까지, 심지어 지정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직장여성들은 남성이 가사를 좀 더 많이 분담하도록 장려하는 시스템을 꿈만 꿀 수 있을 뿐이지만 독일은 출산 휴가를 ‘육아 휴직(parent time)’으로 대체했다. 자녀 출산 후 부부가 함께 휴직을 신청할 경우 14개월까지 급여의 일부가 지급된다.
나서길 꺼리는 장인(匠人)이런 발전 중 일부는 불과 지난 약 10년 동안 이뤄졌다. 세계는 독일의 그런 성공 사례를 뻔히 보고도 무시하거나 무시하고 싶어했다. 아니면 독일의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 그 성공의 빛을 바래게 했다. 그러나 세계화, 지구온난화, 글로벌 침체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이제 우리는 독일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영국 노동당 의원 스튜어트 우드는 최근 가디언지 기고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솔직히 말해 독일을 좋아하고 칭찬해야 할 이유가 많다(The truth is that there is much to like and admire about Germany). 게다가 낯간지럽지만 독일에게서 배울 것도 많다(And – whisper it softly – there is a lot we can learn from them too).”
환경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독일인들은 환경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으로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독일은 물 절약과 수자원 보호 운동을 너무나 열정적으로 추진한 나머지 2009년이 되자 하수 시스템에 흐르는 물이 너무 적어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서 그 전례를 따르기 원치 않는 나라가 과연 있는가?
마찬가지로 독일의 중소기업(Mittelstand)도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영국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한국, 이란, 이집트의 관리들은 독일의 중소기업협회에 어떻게 하면 회원들의 성공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실제로 ‘독일 모델’은 이미 널리 수출되고 있다. 해외에 제조시설을 가진 독일 기업들은 현지의 기술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견습(apprenticeship, 도제) 제도를 그곳에 도입했다. 미래의 직원을 일찌감치 선발해 학업과 현장 실습을 겸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런 준비를 통해 일자리에 적응하고 조직에 충실한 직원을 양성할 수 있다. 그 방식의 효과가 판명되자 미국에서도 회사들도 이제는 그런 견습제도를 모방하려고 한다. 중국에선 정부가 독일식 도제훈련 시험을 도입하고 있다.
히든 챔피언올해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았다. 그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1914년부터 1945년 사이에 거의 완전히 붕괴했고 그후 60년 동안 세계인들의 용서를 받으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던 나라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화의 잿더미 속에서 만들어진 ‘독일 모델(the German model)’이 이제는 혐오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부러움과 모방의 대상이 되면서 유럽, 서방, 그리고 세계 전체에 최선의 대책으로 각광 받고 있다. ‘나서길 꺼리는 장인: 독일의 과거가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간다(Reluctant Meister: How Germany’s Past is Shaping its European Future)’의 저자 스티븐 그린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갈수록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있다(Germany has become increasingly comfortable in its own skin). 독일은 국제무대에서 지배적이거나 패권적인 존재로 비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The last thing Germany would want is to be thought of as a dominant or hegemonistic figure, but it is becoming more and more influential).”
19세기 영국의 세계 패권은 식민지 개척에서, ‘미국의 세기’(20세기)는 군사력과 문화적 지배에서 생겨났다면 ‘독일의 세기’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독일식 정치·사업 모델의 세계 수출이라는 평화적인 활동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 모델은 과연 어떤 것인가?
2010년엔 독일에 관한 저서, 2013년엔 합스부르크제국에 관한 책을 펴낸 사이먼 윈더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독일식 모델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선치(good government, 좋은 정부라고 번역되기도 한다)’라는 전통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많은 지역, 특히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뤼벡 등 옛 자치 도시국가들에는 상호 협력,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공통의 이해관계 인식, 긴밀히 연결된 세금과 서비스의 전통이 있다.” 윈더는 물론 이 모델에도 예외가 있었지만 대부분 “적어도 주어진 여건과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수많은 개인이 서로 협력하는 기반”이 그런 예외를 충분히 덮어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나치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하향식 지배의 실험이 대실패로 돌아가면서 분권주의와 책임론이 부각됐다. 그런 환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않는 상황을 스스로 바꾸도록 만든다. ‘아메리칸 드림(the American dream)’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려는 개인의 이상이라면(소득 최상위 1%가 되려고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 ‘독일의 꿈(the German dream)’은 세상을 바꾸려는 개인의 이상과 더 관련이 깊은 듯하다(나머지 99%에게도 삶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장하는 방식).
무리 없이 잘 돌아가고, 민주적이며, ‘할 수 있다(can-do)’는 정신이 충만한 나라의 이런 이상이 세계로 수출될 수 있는지 여부는 사실 다른 문제다. 초기 실험은 일부 상충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첫 실험대가 ‘유로존의 위기’였다. 세계적인 신용위기, 침체, 국가부채위기 후 독일은 내키진 않았지만 유럽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경제 규모와 모델의 성공 때문이었다.
그처럼 책임이 막중한 자리를 떠맡은 독일의 역할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들의 평가는 결코 후하지 않았다. 부채가 많은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주변 국가들에게 독일이 강요한 엄격한 재정긴축 정책은 그 나라들의 개인이 겪는 고통과 성장 억제의 가능성 둘 다의 측면에서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물론 유로존 주변 국가들의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독일이 문제 있는 자신의 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 이웃나라들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건 억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 10년 동안 높은 무역 성장률과 낮은 국내 소비율 덕분에 막대한 예산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자기 집안 살림은 잘 살지만 수출을 늘리려는 무역 파트너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유로’라는 공동통화를 사용할 때는 그런 방식이 특히 문제가 된다.
독일의 딜레마미국 재무부는 독일이 내수 지출은 줄이고 수출에만 열을 올린 결과 “유로존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경제에서 저성장과 고실업이라는 디플레이션 편향(a deflationary bias – low growth and high unemployment – for the euro area, as well as for the world economy)”이 나타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윈더는 현재 독일이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같은 식민주의 강대국과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이집트 점령은 영토 장악보다는 부채 관리에 관한 문제였다. 이번 유로존 위기에서 독일이 아일랜드와 그리스를 점령하진 않았지만 과거의 식민주의 강대국과 유사한 점은 확실히 있다고 윈더는 말했다. “어느 나라든 외부 세력에게서 어떻게 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분개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당 국가에 필요한 게 바로 그 외부 세력이 제공하는 자금이다.”
한편 독일인들은 자국의 지배적인 위상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 “독일은 이런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는다”고 윈더가 말했다.
유로존 이외 유럽 전체의 관계 측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이 유럽연합(EU) 정치에서 발을 빼지 않고 계속 참여하도록 유도하려고 애쓴다(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만이 이나 당 외에서도 많은 영국인들은 EU 탈퇴를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메르켈은 균형 잡힌 EU를 구축하려는 노력으로 찬사를 받았다. 영국의 자유시장 경향이 나머지 EU 국가들의 좀 더 보호주의적인 충동에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 역할을 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유럽 카네기재단의 객원 연구원 울리치 스펙은 최근 블로그를 통해 독일은 합의를 통해 유럽을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다른 나라를 윽박지르는 전술을 사용하면 곧바로 반독일 연합전선이 구축될 것이다.”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의 요세프 요페 발행인 겸 편집인은 “메르켈은 여론을 살피고 흐름을 따르는 국내정치 모델을 외교정책에도 적용한다”고 말했다.
유럽 내부의 논쟁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메르켈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Merkel is merely “manoeuvring between Kiev and Putin)”는 비판이 있다.
요페가 ‘다가오는 독일의 세기’라는 개념을 일축하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문제 때문이다. 요페는 이렇게 말했다.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누구의 세기’가 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To be able to act strategically is the condition sine qua non of any ‘XY Century’). 독일은 결코 전략적인 행위자가 아니며, 그렇게 되기도 원치 않는다(Germany is not, nor wants to be, a strategic actor).”
“원천적으로 독일은 ‘그레타 가르보 국가’(At heart, it is a ‘Greta Garbo Power’)”라고 요페는 비유적으로 말했다. “왕년의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였던 가르보는 고독을 즐기며 ‘혼자 있고 싶어요(I want to be alone)’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메이드 인 저머니그러나 비즈니스 분야에선 나머지 세계가 계속 독일의 문을 두드린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최대의 시계탑에 세계 최대의 시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현지에서 설계 적임자를 찾는 게 당연했다. 그 시계탑이 메카에 있기 때문이다(메카는 전통적으로 무슬림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시계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최고 전문가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사우디 왕가 대표가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에서 독일의 시계 전문가들을 만났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서쪽 30㎞에 위치한 작은 마을 칼브에 위치한 작은 회사 페로트 투르무렌의 책임자들이었다. 페로트 투르무렌은 1860년 설립됐으며(헤르만 헤세도 그곳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창업가문이 5대째 이끌고 있다. “탑 시계, 전자 초인종, 자동화된 자명종 장치와 모든 시계 기술”의 세계적인 선도 기업을 자부하는 그 작은 회사가 사우디 시계탑 계약을 따냈다.
이 일화가 독일 강소기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틈새시장에서 세계 1위, 고객이 지구 반 바퀴나 떨어져 있어도 ‘반드시 찾아오는’ 회사,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세계화 추세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을 말한다. ‘히든 챔피언’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소규모 우량 기업(강소기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쓴 책의 제목이며 요즘 독일의 선전문구가 됐다.
강소기업이 되면 소도시에서 50~500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권력(이번에는 경제적인)이 분권화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독일 기업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는 강소기업의 성공은 독일의 제조업 지원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중소기업이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필요한 연구에 자금을 댄다. 주로 프라운호퍼연구소(연구 예산이 20억 유로) 같은 비정부기구를 통해 지원이 이뤄진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런 모델에 찬사를 보낸다. 영국 정치인들은 크게 위축된 자국의 제조부문을 되살리려고 애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국가 대표 챔피언’인 대기업에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 들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은행을 설립했다. 어쩌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개도국들이 독일 모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메이드 인 저머니’는 19세기 말 독일이 대량생산에서 선진 제조업으로 옮겨가면서 영국에서 만들어진 라벨이었다. 그 라벨이 독일에게 영예의 훈장이 됐다. 만약 중국도 독일 모델을 차용한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그런 선례를 따를 수 있다고 기대할지 모른다.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라고?현대 독일에서 반드시 모방할 가치가 없는 무엇이 있다면 그건 이민 정책일지 모른다. 1960~70년대 독일의 ‘경제 기적’을 국내 노동력으로만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터키인들이 ‘방문취업자(guest worker)’로 대거 독일로 이주했고 그중 다수가 독일에 계속 머물렀다. 그 결과 지금 독일에 사는 터키계는 3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이주정책연구소의 데메트리오스 파파데메트리우 유럽 담당 소장은 그런데도 지난 40여 년 동안 독일 정치인들은 “우린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정부 내무부 사무실에서 자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장관이 거쳐 갔지만 그들은 늘 내게 ‘정신 나갔소(Are you nuts)? 우리가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는 거요(You want us to become like the US)?”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 말 메르켈이 총리로 취임한 직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파파데메트리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닉슨만이 중국의 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말하듯이 메르켈이 정권을 잡자 독일 정부는 터키계 주민을 대하는 공식적인 방식을 체계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보수파의 담론에서 ’우린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다’는 표현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독일이 이민에 문호를 더 넓게 개방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2005~2010년 사이 독일은 이민 문제에서 다른 유럽 선진국들을 따라잡았고 그 이후에는 EU의 귀감이 됐다. 덴마크,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는 주로 특정 기술을 가진 사람(학위 등으로 결정된다)에게만 이민을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하지만 독일은 그런 적이 없다.
기술 위주 이민 정책에 따르면 대다수 이민자의 경우 자국에서 딴 자격증이 새로운 국가에서 제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수준이 낮은 일자리를 얻을 수밖에 없고,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아예 일자리를 얻기조차 힘들다. 독일은 국내 고용주가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가 이민의 문호를 서서히 넓힘으로써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몸짓 언어지금 이민 분야에서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면 독일 정책이 미국보다 낫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민자의 나라(immigration country)’이지만 파파데메트리우의 견해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보다 지금 이민 문제로 더 심한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순혈주의’를 버리고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선수를 가졌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다양한 이민자 그룹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독일의 능력은 미국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진다.
윈더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숨이 막힐 지경(The sameyness can be quite stifling)”이라고 표현했다. 파파데메트리우는 “몸짓 언어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It’s about body language)”고 말했다. “이민자들은 몸짓 언어만으로도 자신이 이 사회의 일원인지 아닌지 잘 안다(Immigrants know whether they are part of the society or not).”
다른 분야에서도 독일의 모습은 처음 보기보다 덜 바람직할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독일 여성이 정치와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북유럽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또 독일의 태양광 발전 지원은 어떻게 보면 친환경 에너지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기보다 태양광 전지판 업자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노동법 개정은 일자리의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새 일자리는 기존의 일자리에 비해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독일 모델의 매력은 이미 완벽한 것(the act of having perfected)이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데(the act of perfecting) 있다. 구미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변화가 가능하다는 느낌(the sense that change is possible)을 말한다. 다른 나라들에선 당쟁으로 정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중앙집권화에 대한 반발로 일부 지역에서 분리독립 운동이 벌어지거나 이민과 실업에 대한 분노로 극우파 정치인들이 정계에서 약진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독일인들처럼 변화가 가능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윈더는 런던에 살며 베를린으로 이주할 계획이 없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의 노골적인 모방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19세기를 돌이켜보면 모든 국가가 영국처럼 되기를 원했다. 그 나라들은 영국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모두가 영국인처럼 옷을 입었다. 영국이 일반인들의 신분 상승을 허용하는 중산층 시스템을 가진 나라라고 인식됐기 때문에 모두 그 모델에 집착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우리가 독일의 성공을 모방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모방은 인류의 오래된 전통이다. 과거에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모방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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