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꽃보다 요리
FOOD - 꽃보다 요리
딱총나무 꽃, 쐐기풀, 들장미 열매. 차로 우려 마시는 경우는 많아도 통째로 먹기엔 생소한 식물들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코펜하겐의 노마에서는 장미 꽃잎이 들어간 요리를, 런던의 라일스에서는 스위트피(콩과의 원예식물)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인다.
노마는 꽃을 식용화하는 운동에 앞장선다. 이 레스토랑의 최근 메뉴에 오른 모든 요리에 국화와 장미 등 식용 가능한 계절 꽃이 이용됐다. 요즘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내퍼 밸리부터 멜버른, 스톡홀름, 런던까지 세계 어디를 가도 꽃잎을 흩뿌린 요리가 눈에 띈다.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의 유행은 꽃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다. 스웨덴 북부의 외딴 농지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파비켄에서는 스타 요리사 마그누스 닐손이 주방 근처 들판과 숲에서 찾아낸 재료로 요리를 한다. 그는 들판에서 꺾은 아름다운 꽃을 황소 심장과 골수로 만든 맛있는 타르타르(곱게 다진 생고기로 만든 요리) 위에 얹어 내놓는다. 또 캘리포니아주 내퍼 밸리에 있는 레스토랑 메도우드의 크리스토퍼 코스토 역시 식당 정원에서 꺾은 허브와 계절 꽃을 요리에 이용한다. 두 요리사 모두 꽃을 단순한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런던의 요리사 제임스 로우는 꽃으로 기막힌 효과를 낸다. 베이커리와 와인 숍을 겸한 레스토랑 ‘세인트 존 브레드 앤 와인’의 주방장을 지낸 그는 올해 초 쇼어디치 지역에 자신의 레스토랑 라일스를 열었다. 지난번 그곳에 갔을 때 손으로 다져서 만든 맛있는 스테이크 타르타르를 먹었는데 위에 겨자 꽃이 뿌려져 있었다. 요리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후추 맛이 약간 나는 겨자 꽃은 생고기와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독특한 맛을 냈다. 스위트피가 제철인 요즘 그는 달콤한 스위트피 꽃과 순, 콩을 티클모어 염소 치즈에 곁들여 낸다. 기막히게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맛있다.
로우의 말을 들어보자. “식용 꽃을 이용한 요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계절 음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계절에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접시에 올리는 것이 계절 음식 아닌가? 사람들은 내 음식이 봄과 여름엔 더 여성적이 된다고 말한다. … 여름철에 사람들이 원하는 음식이 바로 그런 종류다. 좀 더 가볍고 우아하며 흥미를 자아내는 음식 말이다.”
사람들은 꽃을 식용보다는 장식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꽃은 수세기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음식에 이용돼 왔다. 증류하거나 사탕으로 만들고 설탕에 절이거나 잼을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장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꽃은 본격적인 음식의 한 구성요소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튜더 왕조 시대의 영국에서는 꽃이 당시 한창 유행하던 달콤한 타르트(과일 등을 얹은 작은 파이)를 만드는 데 이용되면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그후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다가 1980년대 누벨 퀴진(식품의 자연스러운 풍 미・질감・색조를 강조하며 가볍고 섬세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요리법)의 발달로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색상이 현란하고 큰 꽃들이 인기를 끌었다. 팬지 꽃은 접시를 환한 빛으로 밝혀주는 반면 한련화는 매콤한 맛을 더해줬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장미와 오렌지꽃이 많이 쓰인다. 증류시켜 향을 머금은 액체로 만든 다음 단 음식이나 짭짤한 음식에 넣는다. 모로코에서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전통음식 태진에 오렌지꽃 증류수를 섞어넣으며 이란과 아라비아만에서는 요리에 장미수를 뿌려 내는 경우가 많다. 시칠리아의 아이스크림 제조업자들은 자스민 꽃잎을 하룻밤 담가놓았던 물에 설탕을 넣은 다음 얼려서 소르베를 만드는데 내가 먹어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꽃을 이용한 요리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멜버른에 있는 레스토랑 아티카의 젊은 주방장 벤 셰리는 괭이밥으로 신 맛이 나는 디저트를 만든다.
“겨울철에는 괭이밥을 하루에 약 2000송이씩 꺾는다. 괭이밥 꽃잎을 모두 따서 달콤한 재료와 섞어 작은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 내놓는다. 괭이밥 꽃잎은 레몬이나 식초 대신 신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씹는 맛도 좋다. 하지만 매우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몇 사람이 달려드어 세 시간 정도 걸려야 이 일을 끝낼 수 있다.” 셰리는 뉴질랜드에서 꽃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시골 길가에서 야생 한련화를 꺾어 샐러드에 넣었다. “난 지금까지도 한련화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꽃을 이용한 요리의 인기가 일시적 유행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요리의 역사가 긴 불가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이 전통이 지속될 것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최근 111회 카잔락 장미 축제가 열렸다. 또한 사프란(크로커스 꽃의 선명한 붉은색 암술머리로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향신료다)의 인기가 떨어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하다. 적어도 아라비아만과 마그레브(북아프리카의 모로코·알제리·튀니지에 걸친 지역), 이란에서는 말이다.
중동 지역에서 아이스크림의 걸쭉한 맛을 더하기 위해 넣는 샐렙(난초과 식물의 구근을 말려 곱게 빻은 가루)도 마찬가지다. 또 이탈리아 사람들이 호박꽃 튀김(제철 호박꽃에 묽은 반죽을 입혀 튀긴 요리)에 싫증이 날 때가 올지도 상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시칠리아 사람들이 거의 모든 요리에 넣어 먹는 케이퍼(지중해산 관목의 작은 꽃봉오리를 식초에 절인 것으로 요리의 풍미를 더하는 데 쓴다)에 싫증이 난다는 것 또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난 괭이밥의 시큼한 맛을 볼 때마다 레바논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할머니가 야생화를 꺾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던 게 기억난다. 할머니는 자신이 시대를 앞서 가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레바논 산악지대 사람들에겐 들판과 숲에서 먹을 것을 채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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