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이 겉도는 이유
규제 개혁이 겉도는 이유
대통령 혼자서 규제와 전쟁을 치르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표현하면서 틈만 나면 규제 개혁을 강조해왔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규제 혁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대통령의 의지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8월 20일에 열리기로 했던 제2차 규제개혁 끝장 토론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연기된 것이 하나의 방증이다. 지난 3월 첫 번째 끝장 토론 때 실황중계까지 하며 약속했던 규제들은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30%도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회에서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 일도 행정부처 내 이견 때문에 진척이 부진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통령이 원수, 암 덩어리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쓰면서 규제혁파를 진두지휘 하는데도 왜 이렇게 더디고 지지부진할까. 그래서 필자가 속한 연구원은 우리나라 19세 이상 국민 200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강조했으나 규제 총량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응답자들에게 다음의 다섯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①규제 권한이 있는 행정부처 공무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에 ②국회에서 규제 법률을 너무 쉽게 만들기 때문에 ③규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각종 이익단체의 반대 때문에 ④새로운 규제의 필요성이 갈수록 많기 때문에 ⑤기타’.
조사 결과 이익단체의 반대 때문이라는 의견이 35%로 가장 많았다. 국회 탓(32%), 공무원 탓(24%)이 그 뒤를 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규제 개혁의 길이 첩첩산중으로 점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애써서 공무원을 설득하고 독려해 개혁안을 만들어도 이익단체들이 끼리끼리 시위에 나서고 국회가 정치적 셈법으로 딴청을 하면 개혁은 무위에 그치게 된다. 규제 개혁의 첫 번째 걸림돌인 행정부의 저항을 통과한다고 해도 이익단체와 정치인들이 가로막고 있는 더 어려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규제 개혁에 대해 공무원과 일반국민의 인식에 차이가 있음도 드러났다. 공무원들은 규제 개혁이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이익단체의 저항(46%)을 꼽았고, 자기들 공무원 탓이라는 응답은 15%로 그 비중이 평균보다 크게 낮다. 그러나 일반국민, 그중에서 특히 자영업자들은 공무원 탓이라는 응답이 33%로 국회 탓이라는 응답(25%)보다 훨씬 높았다. 문제의 원인이 나와 내가 속한 조직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원인에 대해 공무원의 인식은 일반국민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안이한 편이다.
규제 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얻으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런데 개혁에 대한 저항이 행정부와 입법부, 규제 때문에 이득을 보는 일부 국민에까지 퍼져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직접 투자는 갈수록 급증하는 반면, 외국인 직접 투자는 정체된 상황에서 이 땅에 투자를 유인하는 규제 개혁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당면과제다. 지금 해도 그만, 나중에 해도 그만인 그런 일이 전혀 아니다. 지금 당장 규제를 혁파해야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을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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