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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할인보다 무료, 무료보다 무제한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할인보다 무료, 무료보다 무제한

지난해 국내 이통사들은 앞다투어 ‘음성 무제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일정 금액만 내면 제한 없이 서비스를 즐기는 ‘무제한 마케팅’이 다시 불 붙고 있다. 무제한 마케팅의 원조는 외식 업계다. 1인당 일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음식을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이 무제한의 원조격이다. 이후 ‘빕스’나 ‘애슐리’ 등 정액제로 샐러드바를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뷔페식당의 개념을 보다 세련되게 차용했다.

최근에는 외식 업계의 ‘정액제 무한정 프로모션’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호텔에서도 무제한 서비스를 활용 중이다. ‘그랜드 힐튼’ ‘JW메리어트’ 등은 와인이나 칵테일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 요금제를 도입했다. 아예 정액제의 적용 부분을 파격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무제한 서비스가 적용되는 부분은 주류나 샐러드였지만, 최근에는 음료를 결제하면 스테이크나 치킨 등 메인요리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외식 업계도 생겨났다.



‘뷔페식당’이 무제한의 원조격외식업에선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무제한 마케팅이 다른 산업으로 본격적으로 번져간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이동통신사다. 지난해 국내 이통사들은 앞다투어 ‘음성 무제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어 ‘데이터 무제한’ ‘할인 무제한’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IT업계에서도 무제한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회원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캘린더·주소록·e메일을 연동한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할 때 용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스마트 워크’ 서비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건마다 금액을 결제하거나, 혹은 일정 금액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종량제’ 요금을 적용하던 분야에서도 무제한은 인기다. IPTV업계는 이미 무제한 마케팅에 돌입했다. SK브로드밴드와 KT의 올레TV는 월정액만 내면 특정 영역의 TV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무제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KT는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올레마켓에 올라와 있는 유로 콘텐트를 무제한 이용하는 ‘올렙 앱프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멜론 등 음원 회사에 일정 금액만 내면 듣고 싶은 노래를 무한정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와도 유사하다.

소비자들이 혜택으로 인식하는 마일리지 서비스에도 무제한이 적용됐다. SK텔레콤은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멤버십 마일리지를 로열티 고객에게는 무제한 제공하고 있다. 연간 10만원 정도였던 마일리지를 무제한으로 풀었다. 신용카드에서 마일리지 서비스도 무제한으로 바뀌고 있다. 대부분의 카드 서비스가 포인트 할인이나 월간 적립 한도를 두는 것과는 달리 현대카드에서 운영하는 ‘챕터2 시리즈’는 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소 이색적인 산업에서도 무제한 서비스를 볼 수 있다. 골프에서도 무제한 서비스가 도입됐다. 골프연습장은 물론이고 필드에서도 일정 금액만 내면 추가 금액 없이 무제한으로 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기업은 밑지고 장사할 리는 없다. 기업이 앞다퉈 무제한 서비스를 출시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의 수요를 따라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무제한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왜 무제한 서비스에 끌리는 것일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무제한’은 ‘무료’보다 더 자극적이다. 무료라는 개념에는 무엇인가 불필요한 것을 추가로 받는 느낌이 포함된다. 무료로 제공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높은 가치를 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일정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에는 돈을 내고 써도 아깝지 않을 수준의 제품과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제공받는다는 기분이 들어 만족감이 커진다. 애초에 제공받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만큼 만족감도 커진다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무제한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기업은 포트폴리오 상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 어떤 식으로든 무제한 서비스에서 이윤이 발생하도록 설계한다. 무제한 스마트폰 요금제의 경우에는 어차피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음성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애초에 이를 충분히 무마할 정도로 높은 기본 요금을 책정한다. 월정액에 영화나 TV 콘텐트를 무한정 이용하는 경우에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쏙 빼놓는 전략이 숨어있을 수 있다.

특히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기업 운영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대기업에게는 무제한 경쟁이 또 다른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품과 서비스 수준이 평준화되어 있는 현 시장에서는 무제한 전략은 고객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된다. 다만, 자원이 충분한 대기업들만 무제한이라는 출혈성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이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려는 신규 기업에게는 새로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잘만 이용하면 무제한 마케팅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이익을 취하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령 무제한 서비스로 해당 기업이 손해 보는 제품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 다른 제품을 교차 판매하는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저비용항공에서는 낮은 티켓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기내에서의 상품 판매를 더욱 강화한다.



무제한으로 누릴 서비스·상품인지 따져봐야이용자에게는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제3의 기업에게 접근권을 판매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특정 세그먼트 이용자들의 정보를 다른 광고주에게 재판매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정기관리나 보완이 필요한 상품을 무제한 상품과 엮어 결합 판매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소비자는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제한을 위해 지불하는 금액이 다소 높은 건 아닌지, 실제로 그러한 혜택을 다 누릴 만큼 그 서비스가 필요한지 등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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