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KOREA PRESIDENT KIM, HYO -JOON |먼저 출발해 길을 연다
BMW KOREA PRESIDENT KIM, HYO -JOON |먼저 출발해 길을 연다
인천대교를 넘으니 비행기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화물청사 부근 고속도로 오른편으로 대규모 아스팔트 서킷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7월 오픈한 BMW코리아 영종도 드라이빙센터다. BMW의 드라이빙센터는 독일과 미국에 이어 세계 3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드라이브 트랙과 브랜드 체험관, 주니어캠퍼스, 체육공원, 레스토랑과 세일즈 교육센터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BMW 드라이빙센터 오픈은 국내 수입차업계의 존재감을 드러낸 일종의 ‘역사’로 평가된다. 드라이빙센터에서 만난 김효준(57) BMW코리아 대표는 “한국은 자동차 생산량 5위, 수출량 4위의 자동차 강국이다. 자동차 강국에 걸맞는 문화시설이 처음 들어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리가 가진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이번 드라이빙센터를 통해 보여줄 수 있어서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2008년에 인터뷰했으니 6년 만의 만남이다. 그 사이 BMW코리아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매출뿐 아니라 고객서비스, 사회공헌활동 등에서 다른 수입차 브랜드와 격차가 상당하다. 8월 초에 만난 김 대표는 로멘스그레이의 매력이 넘쳐났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 기업가의 책무에 대한 고민도 깊어 보였다. 그는 “자동차 산업은 이동수단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현대차가 먼저 했어야하는 거 아닌가?”“이런 시설은 현대차나 기아차가 먼저 만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국내 완성차 브랜드도 해내지 못한 ‘거사’에 대해 축하 섞인 질문을 던졌더니 그의 답은 의외로 겸손했다. “BMW코리아의 꿈을 다 펼치기에는 면적이 좁다. 우리는 자동차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에 만족한다. 현대차가 이보다 더 넓은 땅에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산업이 기술 산업에서 문화 산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큰 중국이나 일본을 제치고 한국에 드라이빙센터가 들어선 것은 BMW 본사가 국내 시장에서 BMW 성장세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7월 18일 준공식에 참석한 이안 로버슨 BMW그룹 세일즈·마케팅 총괄사장은 “김효준 대표가 8년 전부터 이 같은 비전을 제시했다”며 “지난 5년간 두자리수 성장을 하고 글로벌 판매 톱10 안에 진입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본사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BMW 드라이빙센터의 최고 장점은 서울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이다. BMW코리아 측은 연간 20만 명이 다녀갈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역시 드라이브 트랙. 2.6㎞의 트랙에 핸들링, 오프로드, 다이내믹, 가속 및 제동, 원형 등 다양한 코스를 넣었다. 지난해 문을 연 강원도 인제나 기존 영암 서킷보다 길이가 2㎞ 가량 짧지만 구성이 다양해 고객 체험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다.
김 대표는 “소형부터 대형차, 세단에서 SUV까지 BMW 모든 모델의 성능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며 “일반 시내 주행이나 고속도로 주행에서 맛볼 수 없는 경험”이라고 했다. “높아진 고객 수준에 화답하기엔 시내의 쇼룸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은 트랙에서 시속 170㎞로 달려보고 급격하게 코너링도 해보고 또 빗길, 통나물길, 흙길에서 자동차의 성능을 직접 따져보길 원한다.”
브랜드 체험관도 돋보인다. BMW, 미니, BMW 모토라드(모토 사이클)를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 대표는 “4~5년 전만 해도 고객이 수입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 연비, 수리비 등 주로 돈과 관련됐다. 하지만 이젠 브랜드와 디자인을 따지고 엔진의 퍼포먼스를 체크한다”며 “자신이 꿈꾸는 삶의 가치를 투영할 수 있는 차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니어캠퍼스 또한 야심차게 만든 곳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동차 관련 과학기술을 전달한다. “산업과학기술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미래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이다.”
BMW코리아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수년째 부동의 판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올해로 15년째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효준 대표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증권사 등을 다니다가 1995년 BMW코리아 상무로 입사한 김 대표는 1997년 부사장, 2000년 BMW그룹 최초의 현지인 사장으로 선임됐다.
BMW의 연간 판매는 2000년 1650대 수준에서 지난해 3만9397대로 늘었다. 매출 규모도 2조원에 이른다. 김 대표는 높은 성과를 인정받아 2003년 아시아인 최초로 BMW그룹 본사 임원에 오른데 이어 지난해엔 본사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수석부 사장은 80여 국가에 진출해 있는 BMW의 현지 법인대표 중 가장 높은 지위다.
“한국은 신차에 대한 반응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전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 소비자는 까다롭기 때문에 한국시장을 통해 선도적인 마케팅이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드라이빙센터를 구상하고 독일 본사를 찾아 임원 한 분 한 분을 설득했다. 한국의 수입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미래시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자동차업계에서 김 대표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 왔다.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그룹 회장도 “‘HJ(김효준 대표 영문 이니셜)’는 항상 경쟁자들보다 앞서 달려가는 CEO”라는 말을 자주 한다. BMW그룹 본사나 국내 수입차업계가 김 대표를 신뢰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 이미지와 브랜드를 끌어올리는 그의 경영 전략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를 ‘일관성’이라고 표현했다.
“BMW코리아의 장점은 15년 동안 자리를 지킨 대표가 있고 그 대표가 15년 동안 본사에 일관된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현지법인이 시장과 고객, 그리고 직원들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2년마다 본사에서 파견된 사장들과는 다르다. 나는 15년 동안 같은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고 그에 맞게 전략을 세워왔다. 차별화를 위해 남이 하지 않은 것을 면밀히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드라이빙센터, 연구개발(R&D)센터, 일대일 모터쇼, 모빌라운지 등 모두 전 세계 BMW 현지법인 중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이다.”
“ 1등 좇는 것은 2등끼리의 게임”국내 시장에서 불멸의 베스트셀링 차량으로 자리한 520d 론칭도 그의 작품이다.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세단 시장에서 디젤 엔진 차량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반면 유럽은 디젤 엔진 차량이 대세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 김 대표는 친환경적이며 효율적인 디젤 엔진 세단을 더 많이 보급하기 위해 뉴520d를 출시하면서 판매가격을 1900만원이나 낮췄다. 전략적인 가격 포지셔닝이었다.
520d는 비즈니스 세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적절한 타이밍에 국내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것이 주효했다. 그 결과 타 수입차 업체나 국산차 업체들도 잇따라 디젤 세단을 선보였다. 그는 “단순히 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차에 투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고객 서비스프로그램에서도 BMW코리아는 차별화했다. “수입차에 대한 불만이 여전하다”고 지적하자 김 대표는 “수입차 브랜드를 몽땅 몰아서 이야기하면 억울하고 서운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2000년 대표 취임 후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분야가 바로 고객 서비스다. 그는 지금도 주말마다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직원과 고객을 직접 만난다. “나는 경리·회계출신이라 자동차를 잘 몰랐다. 처음 자동차업계에 들어오니 프리미엄 브랜드,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사회공헌에서도 그는 선구자이자 개척자다. 최근 수입차업계에 대해 사회공헌 요구가 거세다. 수백억 원 영업이익을 내도 기부금 한 푼 내지 않는 인색함 탓이다. 하지만 BMW코리아는 다르다. 지난해 수입차업체 중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고, 최근엔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를 위해 10억 원의 성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쾌척했다. 2011년 출범한 BMW코리아 미래재단은 BMW그룹 해외법인 중 유일한 공익재단이다. 이번에 오픈한 드라이빙센터도 동일선상에 있다. (54쪽 참조)
김 사장이 스스로 말하는 성공비결은 경영철학의 공유다. BMW코리아 직원은 딜러 포함 3500여 명. 이들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이 때문에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영은 수없이 반복되는 의사결정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BMW코리아의 모든 매니저를 리더로 만들고 싶다. 누구나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면 매니저는 된다. 하지만 리더는 다르다. 리더는 남을 좇지 않는다. 1등을 좇는 것은 2등 끼리의 게임이다. 대신 리더는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상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그 훈련을 시키고 있다. 다행히 BMW그룹이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 주고, 우리 직원과 딜러들이 공감하고 함께 움직여 주고 있다.”
김 대표는 여전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고 있다. 최근엔 전기차 i3 같은 미래 성장 엔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각종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지만 i3 출시 행사만은 강행했다. 지난 4월 24일 출시된 i3는 차체를 철보다 가벼운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실내는 천연 양모 원단이나 유럽산 유칼립투스 나무 등 재생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꾸며 BMW의 기술력을 집약했다는 평가다.
“‘서울 같은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에 맞는 적합한 차는 무엇일까’에 대한 연구가 자동차 생산업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계를 보면 메가시티에서 차를 가진 소비자가 하루 종일 운행하는 거리는 평균 48㎞에 불과하다. 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차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바로 순수 전기차 i3다.”
문제는 전기차 상용화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 조성이다. BMW코리아는 전기차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2009년부터 E-모빌리티 콘퍼런스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지난해엔 제주도에 전기차 충전기 30대를 기증했고 최근 이마트, 포스코ICT와 협력해 전국 60개 이마트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했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엔 전기차 수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 그 누구도 시작하지 않는다. 결국 차세대 스마트 카 시장에서 뒤처지게 된다. 하지만 누구든 먼저 전기차를 도입하고 시장을 형성하면 현대차나 기아차,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도 자극받아 같이 움직이게 된다.”
“김 대표, 다음에 준비한 건 뭐요?”그는 최근 “다음에 준비한 건 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난 드라이빙센터 준공식에서 만난 정치인, 기업인들도 그의 다음 행보를 물었다. 공익재단도 만들었고, 드라이빙센터도 만들었으니 그 다음 작품이 궁금한 것이다. 일각에선 지금과 같은 여세를 몰아 국내에 BMW 생산 공장이 들어설 수도 있지 않냐는 전망도 나온다. BMW그룹은 13개국에서 28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그룹 차원에서 보면 한국에서 생산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에 있어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굳이 안 될 것도 없다고 했다. BMW가 한국에서 연간 10만대 이상 팔리고, 주변국의 수요가 늘어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엔 양질의 노동력이 있고, 자동차와 밀접하게 연관된 IT가 발달했으며, 훌륭한 부품업체들이 많아 ‘욕심 못 낼 이유’가 없다. 특히 한국은 많은 FTA를 체결한 국가이기 때문에 생산 공장으로서의 이점도 존재한다. 현재로선 한국에 공장을 세우려면 내가 BMW를 더 많이 팔아야 한다.” (웃음)
자동차 외 관심사는 무엇일까. ‘BMW모토라드’라는 대답은 빼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며 “사람에게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국가 경제와 국내 자동차산업에 도움이 될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남들이 해왔던 일을 관행적으로 답습하고 반복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고 본다. 기업은 지속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사람에게서 그 가치를 보고 있다.”
BMW그룹의 정년은 60세다.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는 63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분위기다. 이미 본사에서 김 대표에게 ‘63세까지 할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온 상태다. 그는 “언제까지 현직에 있을지 몰라도 자동차를 파는 장사꾼이 아닌,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내가 오늘 행한 일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늘 자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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