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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역풍에 증세 정공법 못 써먹어

선거 역풍에 증세 정공법 못 써먹어

역대 증세 논란 돌아보니

우리나라 역대 어느 정부도 증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느 정부든 국가 경제나 국민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계산 아래 일명 ‘꼼수 증세’로 불리는 우회 증세를 시도했다.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우회 증세가 정쟁의 핵심 쟁점으로 전락했는가 하면,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나 여·야 모두 몸만 사리고 우물쭈물하다 넘어가버리고마는 촌극이 되풀이됐다. 정작 증세가 필요할 때, 증세가 필요한 곳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해 부담을 계속 후대로 전가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시도됐던 담뱃값 인상에 대해 야당 입장에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10년 전인 2004년 12월 국회 본회의 도중 담뱃값 인상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에서 반대표를, 박 대통령은 기권표를 각각 던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찬성 164명에 반대 75명, 기권 5명으로 법안은 통과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도 함께 반대표를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회 증세를 시도한 정부와 여당, 표심을 잃지 않고자 이를 격렬하게 반대한 야당.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놀라우리만큼 한결같은 모습이다. 입지만 서로 바뀌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이때 기권표를 던질 만큼 비교적 신중한 편이었지만 이후 2005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담배와 소주는 서민들이 애용하는 것”이라며 분명한 반대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당시 담뱃값 500원의 인상에도 반대하다가 지금은 국민 건강 증진을 이유로 담뱃값 2000원 인상 카드를 꺼낼 만큼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거꾸로 예전에는 담뱃값 인상에 찬성했다가 지금은 갑자기 반대로 돌아선 정치인도 많다. 2004년 국회 본회의에서 담뱃값 인상에 찬성하는 토론자 역할을 자처했던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한 언론사 조사에서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어느 코미디언의 옛 유행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단지 여야가 바뀌었을 뿐인데 정치권의 서민들 기호품에 대한 ‘배려’나 국민 건강 증진에 대한 ‘염려’는 이렇듯 정반대로 흩날렸다.

그보다 더 전에는 어땠을까. 최근 논란이 된 담뱃값 인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복해서 시도된 우회 증세 방법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1월과 1996년 7월에 각각 담뱃값을 인상했다. 이때는 여당인 민자당·신한국당이 담뱃값 인상에 찬성했고 이외 야당은 반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1월엔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이 담뱃값 인상 찬성으로 돌아섰다. 흥미로운 것은 담뱃값 인상 이후 대부분 여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역풍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민자당·신한국당은 담뱃값 인상 이후인 1994년 8월과 1997년 3월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모두 졌다. 새천년민주당도 2001년 10월 치른 재·보선에서 완패했다. 당·정·청이 우회 증세로 최대한 논란을 피해가려 하거나, 우회 증세에 결사반대 하면서 표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 재정의 기반으로서 탄탄해야 할 조세제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수시로 바뀌고 안정성을 잃는 폐단이 반복됐다. 지나치게 오른 부동산가격을 잡으면서 세수도 늘리고자 노무현 정부가 2005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가 대표적 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한 해에만 종부세로 2조7670억원을 확보할 만큼 증세 효과를 봤지만이후 서울 강남 지역에 많은 지지층을 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종부세 완화를 추진해 종부세 부과기준을 올리는 한편, 종부세 전체 세율은 낮춰 강남 일대에 부동산을 다수 보유한 고소득층과 대기업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그 결과 2012년 기준 종부세를 통한 세수는 1조2430억원으로 급감했다. 이렇듯 정권 교체 때마다 증세효과가 오락가락하면서 실효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모두 정치적 이유에서다.


국가채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일련의 논란들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증세를 제대로 못하는 정치권의 분위기 때문에 국가 재정 부담이 고스란히 후대로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00~2012년 사이 연 평균 12.3%나 증가했다. 최근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한 포르투갈(10.5%)·스페인(7.4%)·그리스(6.7%) 등의 남유럽 국가들보다 같은 기간 동안 수치상으로 더 높았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가 집계한 최근 우리 정부별 연 평균 국가채무 증가분을 보면 노무현 정부 때 연 평균 22조5000억원이었던 규모가 이명박 정부 들어 30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다시 41조6000억원까지 증가했다(3년간 평균치). 갈수록 증가분이 많아지고 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연도별로 보면 2010년 392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482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는 518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997년 60조3000억원의 8.5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2020년 41.1%, 2030년 70.6%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가 이처럼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고 있고 경제 사정도 안좋은데 정부는 ‘증세는 없다’는 솔직하지 못한 말만 되풀이한다. 증세 정공법을 쓸 수 있을 만큼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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