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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67] -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 경제위기 수렁에서 미국 구한 ‘경제 닥터’

글로벌 파워피플[67] -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 경제위기 수렁에서 미국 구한 ‘경제 닥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벤 버냉키(61)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의장이 미국 경제 회복의 주역으로 주목 받고 있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 경제를 구해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1일 연준의 첫 여성 수장인 재닛 옐런(67) 의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옮긴 그는 지금 미국을 구한 영웅으로, 미국의 경제파워를 되찾아준 의인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현역 때보다 전임이 된 지금 영향력이 더욱 커진 분위기다.


2006년 2월 1일 연준 의장에 오른 버냉키는 임기 내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막강한 자리다. 하지만 시장·행정부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장을 달래야 하고 행정부에 맞서야 하는 외로운 자리다. 더구나 그는 첫 임기 중반에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았다.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사태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2008년 9월 15일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미국 경제는 본격적인 혼란에 빠졌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곪았던 게 버냉키의 임기 때 터진 셈이었다.


당장 다우 지수가 504.48포인트나 폭락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미국이 자랑하던 월가의 금융시장은 엉망이 됐다. 실물 경제까지 크게 휘청거렸다.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미국 기업들은 본토에 있던 공장을 대거 해외 생산기지로 이전했다. 미국의 산업계가 공동화한다는 우려가 뒤를 이었다. 미국 산업계는 활력을 잃었으며 소비자는 중국 등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어 역으로 수입한 상품을 대거 소비했다. 전 세계가 뉴욕 월가를, 미국 산업계를, 미국 달러화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첫 임기 중반에 금융위기 맞아
버냉키는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해 지난 1월 말 물러날 때까 지금융위기에 맞서 싸우는 장수 노릇을 했다. 위기 초기 버냉키는 통화공급과 금융회사에 대한 채무보증과 자본확충으로 대응했다. 신용공포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우량 은행에 신속하게,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는 정책을 폈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롬바르드가가 금융공포를 연구하면서 얻은 교훈을 따른 것이다. 공황의 역사를 연구한 경제학자 출신다운 선책이었다.

미 행정부와 연준은 여기에 맞춰 신속 대응에 나섰다. 9월 19일 미국 행정부는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으며 버냉키의 연준은 금융시장에 20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긴급상황에서의 진화 조치였다. 2009년 2월 27일 씨티은행은 보통주 지분 36%를 미국 행정부에 넘기며 사실상 국유화됐다. 이 해 3월 9일 다우지수는 리먼 파산 이후 최저치인 6547.05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 경제는 갈수록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3월 18일 연준은 1조45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는 1차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응급진화 조치였다. 2010년 1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 규제안을 발표하는 등 월가를 옥좼다.

버냉키는 2010년 연준 의장으로 재지명되면서 필생의 승부수를 띄웠다. 본격적으로 양적 완화에 나선 것이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돈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풀었다. 여전히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던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버냉키의 지혜와 뚝심이 묻어난 정책이었다.

그 해 11월 2일 연준은 6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는 2차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 8월 5일 부동의 최우수 등급이던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신용평가사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것이다. 2012년 9월 13일 연준은 매달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저당채권(MBS)을 매입하는 3차 양적완화 실시에 들어갔다. 그러자 버냉키 식 조치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2013년 3월 5일 다우지수는 리먼 사태 전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7년 10월 11일의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다. 버냉키의 승부수가 먹힌 것이다. 그는 2013 년 5월 22일 3차 양적 완화의 축소를 시사하며 양적 완화의 완화에 들어갔다. 남은 것은 푼돈을 회수해 안착하는 일뿐이다.

그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3조 달러(약 3150조 원) 이상의 돈을 풀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돈을 뿌린다는 뜻으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양적완화는 경기를 살려내는 약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독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양날의 검이다. 1920년대 독일에선 마르크화를 다량 찍어내 수출을 늘리고 경기를 살려 1320억금 마르크에 이르는 전쟁배상금을 갚으려다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역사상 최악의 초인플레만 유발했던 경험이 있다. 일본도 경기 침체기인 1990년대 통화량을 5배나 늘렸음에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일부 비판론자는 양적 완화가 결국 달러화를 약화시켜 세계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미국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산시장 고려해 통화정책 펴는 ‘버냉키 독트린’
재닛 옐런 현 연준 의장(오른쪽)과 나란히 앉은 버냉키.
버냉키는 이런 우려에 소통 강화로 대응했다.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연준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그는 통화정책 배경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수시로 열어 연준의 장기 인플레 목표와 실업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원래 연준은 미리 목표를 제시하면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지난 100년 역사에서 이런 친절한 설명은 사양해왔다. 하지만 버냉키는 달랐다. 앞으로 갈 길을 시장과 대중에 정확히 알려야 연준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버냉키가 임기 내내 추구한 이른바 ‘버냉키 독트린’이다. 통화정책을 세울 때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물경기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가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여건에서 통화정책은 자산시장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의장이 추진한 ‘그린스퍼 독트린’과 반대다. 그린스펀은 의장 시절 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자산시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린스펀 독트린은 한때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자산시장에 거품을 일으켰다. 이는 2008년 하반기 이후 금융 위기를 낳은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버냉키 의장 이후 그린스펀 독트린보다 버냉키 독트린을 따르는 경향이다.

버냉키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 미국은 그의 유산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버냉키 덕분에 미국 경제는 체력을 회복했다. 경제성장률은 올해 2분기 연율 4.6%로 2011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꾸준히 성장했다. 성장률은 계속 상승세다. 실업률은 9월 5.9%로 2008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다우지수는 등락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일단 지난 9월 19일 1만 7279.74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 세계를 ‘약 달러’의 우려로 몰아넣었던 미국 달러화는 강해다 못해 지나치게 강해졌다. 심지어 ‘수퍼’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수퍼 달러’로 불릴 정도다.

미국 경제계도 힘을 회복했다. 대표이사들 이미 의회에 나와 의원들에게 시달리며 공적자금 지원을 부탁하던 GM·포드 등 자동차 회사는 물론이고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탄받으며 중역들의 보너스까지 부도덕하다고 비난 받던 월가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엇보다 애플·구글·페이스북을 비롯한 혁신적인 IT 기업이 맹활약을 하면서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바꾸고 미국 경제의 얼굴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경쟁력 하락에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을 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미국으로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리메이킹 아메리카’라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이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는 1953년 미국 조지아주 어거스타에서 태어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딜런에서 성장했다. 약사인 아버지 필립은 취미로 극장 관리를 했으며 어머니 에드하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 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이들은 중산층 유대인답게 자녀 교육에 힘썼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거쳐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동생 세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으며 여동생 샤론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서 오랫동안 행정직으로 일했다.

중요한 것은 버냉키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는 점이다. 그가 성장한 딜런에는 유대인이 드물었으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대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외할아버지 해럴드 프리드먼으로부터 유대인의 언어인 헤브루어를 배웠다. 외할아버지는 유대교당인 시나고그에서 성가대를 인도하며 예배를 주도하는 하잔이자 헤브루어 교사였다. 가축을 유대식으로 도축해 종교적으로 유대인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인 코셔 음식의 재료를 공급하는 셰히타이기도 했다.

버냉키의 할아버지인 조나스는 1891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보리슬라프(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근처 도시인 프셰미실(지금 폴란드)에서 가게 점원으로 살다 30세 때인 1921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버냉키 가족은 1940년대 뉴욕에서 딜런으로 이주했으며 조나스는 약국을 운영하다 나아가 들자 아들들에게 넘겼다. 버냉키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자 학교를 그만두고 남편의 약국 일을 도우면서 자식을 키웠다. 버냉키 자신도 어려서 약국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지역 시니고그에서 유대 경전인 토라 두루마리 마는 것을 돕는 등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철저한 유대인 교육 받고 자라
고적대에서 색소폰 주자로 활동하는 등 신나는 고교생활을 한 그는 딜런고교에서 졸업생 대표를 맡았으며 대입시험인 학업적성 시험에서 1600점 만점에 1590점을 맞고 하버드에 진학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우등 졸업한 그는 1979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 교수는 유대인인 스탠리 피셔 교수였다. 나중에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고 현재 미국 연방준비 부의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버냉키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했다. 뉴욕대 방문 교수를 지낸 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교수로 일하다 공직을 맡기 위해 떠났다. 공식적인 사임은 2005년에 했다. 대학에서만 일한 그가 맡은 첫 공직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지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였다. 프린스턴대에 공식 사표를 내지 않을 것으로 봐서 그는 이사를 지낸 뒤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직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백악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뒤 2006년 연준 의장이 됐다. 경제학자로서 오랜 경륜과 지혜는 그를 지금껏 가장 성공한 연준 의장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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