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의 ‘열등재’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의 ‘열등재’

일러스트:중앙포토
하반기 들어 한국 경제가 만만찮아 보인다. 주가는 떨어지고, 경영 전망은 영 밝지 않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자니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고, 그렇다고 마땅히 투자할 데도 없다. 퇴근 길, 오랜 친구라도 불러 술 한잔 해볼까. 불현듯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남편이 홧김에 집을 나가버리자 아내는 절망한 어조로 이렇게 소근거린다. 예나 지금이나 갑갑한 사회는 술을 부르게 마련이다. 이 작품은 현진건이 1921년 개벽지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배경은 당시의 식민지 조선이다. 무력할 수밖에 없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담고 있다. 유위유망(有爲有望, 쓸모도 있고 희망도 있음)한 뇌를 가졌으나 어디 쓸 데가 없는 지식인은 술 말고는 위안을 찾을 곳이 없었다.

소설 속 술 취한 남편 행각은 현진건 자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진건은 1915년 16세의 나이로 두 살 연상과 결혼했다. 그 뒤 일본으로가 도쿄 세이조 중학교를 다니지만 중퇴한다. 그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후장대학에서 독일어 공부를 한다. 상하이는 독립투사로 활동했던 셋째형 정건이 있었다. 조국에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기대를 품으며 귀국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듬해 그는 신문기자가 된다. 그는 소설도 써댔다. 술을 원체 좋아해 갖가지 기행을 남겼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바느질을 한다.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다 됐지만 남편은 들어오지 않는다. 결혼한 지 7~8년이 지났지만 같이 있어본 날은 1년이 될락말락한 남편이다. 아내는 외롭고 힘들었지만 견뎠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면 도깨비의 부자 방망이라도 갖고 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옷 나오라면 옷 나오고, 밥 나오라면 밥 나오는 그 방망이 말이다.

남편은 귀국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집안의 돈만 낭비했다. 배움이 부족한 아내는 언젠가 남편이 무엇이 될 것이라 믿으며 기다렸다. 하지만 남편은 어느날부터 술에 절어 살기 시작했다. 왜 남편이 술에 빠졌는지 아내는 알 길이 없다. 남편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간신히 방안에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는 물었다. 누가 술을 권했느냐고. 남편은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라며 기가 막힌 듯 웃는다. 하지만 아내에게 ‘사회’란 단어는 너무 어렵다. 조선에 있는 요리집 이름인가.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남편이 절망하는 것은 뭉치지 못하는 조선 사회, 지식인 사회다. 회를 조직한지 이틀도 안돼 서로 찢고 뜯고 하는 지식인 사회에 절망하며 주정꾼이 됐다. 아내는 “술을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라며 남편을 원망한다. 남편은 “아아 답답해!”를 외치며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나가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이 답답할 때 찾는 것이 술과 담배다. 경기가 나쁠수록 술과 담배의 판매량은 늘어난다. 통상 경기가 나쁘면 소득이 줄고, 수요가 줄어 상품 판매가 줄어든다. 하지만 경기가 불황일때 오히려 판매가 늘어나는 상품도 있다. ‘열등재’다. 가난해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제품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불황에 잘 나가는 7대 업종을 꼽았다. ①비디오게임 ②화장품 ③쓰레기 처리사업 ④패스트푸드 ⑤상설 할인점 ⑥건강식품매장 ⑦온라인 취업 전문대학 등이다. 당시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위(Wii)’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게임기 ‘X 박스’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집에 머물며 저렴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게임기를 선호한 때문이다.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로더도 전년보다 수익이 30% 이상 늘어났다. 월마트 등 대형할인점, 1달러 샵인 ‘달러트리’의 매출도 늘었다. 매출이 줄어든 다른 소매 업종들과 대비됐다. 또 맥도널드·스트레이어에듀케이션 등 패스트푸드점과 온라인 대학도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열등재는 라면과 소주다. 라면과 소주는 금융위기 때 판매량이 더 늘었다. 자전거도 열등재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한 ‘자출족’이 증가한 때문이다. 자전거 판매량은 2008년 전년 대비 60%가 넘게 증가했다. 불황 때는 콘돔 판매도 늘어난다. 경기가 어려우면 집에 머무는 시간은 늘어나는 반면 아이 낳아 키우기가 부담스러워 피임용 콘돔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경기 불황 시기에 담뱃값과 소주값 인상에 많은 서민이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세금을 많이 올려 가격이 올라 가면 담배를 끊게 될 것”이라며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민층의 금연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서민들의 세부담만 늘어난다”고 반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는 담뱃값 2000원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세에 대해서는 원체 반발이 심하자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물러선 상태다. 한국 담배시장 규모는 10조 원, 주류 출고시장은 7조3000억원 수준이다. 담배는 62%, 술에는 93%(교육세·부가세 포함)의 세금이 붙는다.

담배세와 주세는 대표적인 ‘죄악세(Sin tax)’다. 죄악세란 술·담배·도박·경마 등과 같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죄악세는 사회에서 부정적인 상품을 소비하도록 허용해준다는 의미가 있어 대개 세율이 높다. 죄악세의 새로운 개념으로 ‘비만세(Fat tax)’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햄버거와 같은 정크푸드에 붙이는 세금이다. 한국도 한때 도입을 검토했다 여론의 반발에 부닥쳐 좌절됐다.
 담뱃값 인상 논란 여전
정부가 주세와 담배세 인상, 비만세 신설 등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건 이들 과세대상이 ‘열등제’이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기 세수입이 줄더라도 죄악세와 비만세는 세금이 늘어나 재정 충격에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세금은 서민들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 역진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아내는 남편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들은 동료인 ‘하이칼라’들 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배운 선량들끼리 뭉쳐 주거니 받거니 취해 하세월을 보낸다고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술을 강권하는 것은 조선 사회였다. 힘을 합쳐 일제에 맞서야 할 때 좀처럼 뭉쳐지지 않는 조선 사회를 개탄했다. 한국은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2014년 한국 사회는 100여 년 전 식민지 조선과는 비교할 바 아니지만 서민이 살기 어렵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술로도 서민의 마음을 달랠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쿠팡, 로켓프레시 협력사 품질 간담회...하절기 품질 역량 강화

2넷마블 ‘모두의마블2’, 오는 27일 사전체험 시작

3hy, ‘NK7714 프로바이오틱스 콜레스테롤 선 에센스’ 출시

4bhc치킨, 상조 서비스 도입...동반성장 위한 가맹점 지원 확대

5골든블랑, 여름 시즌 한정판 ‘오픈에어 패키지 2024’ 출시

6파리올림픽 누비는 카스...배하준 오비맥주 사장 “맥주 그 이상의 의미”

7그랜드벤처스, 탄소회계 솔루션 '카본사우루스'에 프리 A 라운드 투자

8볼보코리아, 어린이 안전 등하굣길 지원…교통안전 용품 5000개 기증

9케이엠텍, 전고체ㆍ건식전극 제조설비 전문업체로 우뚝

실시간 뉴스

1쿠팡, 로켓프레시 협력사 품질 간담회...하절기 품질 역량 강화

2넷마블 ‘모두의마블2’, 오는 27일 사전체험 시작

3hy, ‘NK7714 프로바이오틱스 콜레스테롤 선 에센스’ 출시

4bhc치킨, 상조 서비스 도입...동반성장 위한 가맹점 지원 확대

5골든블랑, 여름 시즌 한정판 ‘오픈에어 패키지 2024’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