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 J-차이나포럼 국제학술회의 - ‘추격·추월·추락’ 기로의 한국 제조업
Forum | J-차이나포럼 국제학술회의 - ‘추격·추월·추락’ 기로의 한국 제조업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오래 전부터 삭은 문제인데, 수출 그래프가 크게 꺾이자 비로소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국 제조업 위기의 배경에는 동아시아 3국의 분업구조 변화가 깔려 있다. 일본에서 부품·소재, 한국에서 중간·가공재를 수입해 조립·생산만 하던 중국의 기술력이 급성장하면서 우리 기업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10월 22일 서울 삼성 동 트레이드타워 대회의실 열린 J-차이나포럼 국제학술회의(주제 : 동아시아 산업, 충돌인가 협력인가?)는 한국 제조업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J-차이나포럼이 주최하고 한국무역협회·중앙일보가 주관했다. 다음은 포럼 발표문 요약(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발표문 일부 내용과 표현은 각색했음). “과학기술 혁신은 사회 생산력과 종합 국력을 제고시키는 전략적 기반이며 국가 발전의 핵심적 위치에 두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다. 중국은 2006년 처음으로 자주적 혁신 전략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 혁신 열풍을 일으켰다. 과학기술은 중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대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의 연구개발(R&D) 투자 증가 속도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높았다. 지난해 중국의 R&D 투자는 GDP의 2%를 차지했고, 내년에는 2.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정부와 기업·대학이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특히 과학기술 혁신으로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 투자가 증가하면서 현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허와 과학기술 논문 등 과학지식 누적 총량은 이미 세계 선두권이며 미국 다음가는 위치다. 과학기술 혁신은 유인 우주항공, 고속철도, 고성능 컴퓨터, 수력발전 장비 등 분야에서 중국의 산업기술 수준을 세계 선두권으로 끌어올렸다.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활용 및 혁신 능력도 세계 선두 지위를 확보했다. 특히 공업화와 정보화, 도시화, 농업 현대화의 네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도시화는 현재 50%에서 향후 70%로 증가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주혁신과 동반혁신을 강조하면서 국유기업은 물론 민간 부문도 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은 ‘전면적 혁신’ 중이며, 상당 부분 혁신 대국으로 도약했다고 본다.
물론 중국이 직면한 문제도 있다. 중국의 혁신은 아직 모방 수준이다. 혁신 성과를 뒷받침할 혁신 인재가 부족한 것도 사실 이다. 기업의 혁신 능력도 매우 제한적이다. 화웨이·하이얼·알리바바·바이두 등 우수 혁신형 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중국 기업은 아직 혁신 투자자원이 부족하고 혁신 실패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과학기술 인력은 세계 1위지만, 1인당 생산 효율성은 여전히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하지만 중국은 첨단·기초 과학기술 연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에 상응하는 고급 인재를 양성할 것이다. 핵심 기술에 기반한 기업의 자주혁신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또한 중국은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혁신을 중시한다. 향후 한국과 협력할 공간도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감안할 때, 예를 들면 가전과 도시화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여지가 특히 많다. 국가·산업·기업의 ‘추격·추월·추락’은 기술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자주 발생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이 바뀔 때 한국이 빨리 올라타 일본을 제친 것이 좋은 예다. 경기순환 측면에선 불황기 때 자주 일어난다. 호황기에는 후발주자가 선두를 잡기 어렵지만, 불황기에는 후발자에 기회가 생긴다. 고객 변화와 정부 규제 및 산업정책도 추격과 추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술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불황기는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후발자 입장에서 기회의 창은 언제나 열려 있다. 반대로 승자는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승자의 함정이다.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그런 예다.
현재 중국의 한국 추격 속도는 그간 한·일간 패턴과 비슷하다. 중국의 IT 기술은 한국을 거의 따라잡았다. IT는 단명 기술이 많고, 특허 등의 명시적 지식이기 때문에 소위 벼락치기가 가능하다. 석유화학 기술은 근접해 있고, 자동차는 아직 격차가 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은 이미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 추격형 성장을 해왔던 한국은 새로운 전략을 택해야 한다. 한국의 방향은 대·중소기업 동반 국제화여야 한다. 대기업이 해외로 더 나가 성장을 주도하면서도 경제력 집중도를 심화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동반 국제화는 독일이 좋은 모델이다. 대·중소기업 혁신을 이끄는 최적의 시나리오다.
한국은 그동안 추격자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선발자로서 피추격 방어 전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M&A는 선도기업의 방어전략이자 신기술을 확보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애플이나 샤오미처럼 단순히 제품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 판매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도 있다. 삼성에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 삼성과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려는 후발 기업이 아니라, 다른 패러다임을 들고 나오는 후발자다. 한국은 서둘러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이유는 없다. 현대자동차가 하이브리드·전기차· 수소차를 동시에 개발한 것처럼, 퍼스트 팔로워(First follower)와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 : 재빠른 2등)를 동시에 추구하는 병행자 전략(Parallel mover)이 최적의 선택일 수 있다. 일본은 2012년 9월 중국의 ‘반일 시위’에 큰 영향을 받았다. 국제정치 상황과 일·중 영토 분쟁이 정부 당국의 산업정책과 정치적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기업은 과격한 시위의 후유증을 앓았다. 중국 내 반일 이미지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컸다. 중국 초기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파나소닉은 물론 캐논·도요타·닛산 등이 중국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을 보면서 일본 재계는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중국 내 노동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임금이 올랐고, 노동자의 권리 의식도 높아졌다. 심지어 중국 노동자들은 ‘사장을 바꾸라’는 시위까지 한다. 합법적 경영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 저항하고, 전면 파업을 하는 일이 잦다. 중국 지방정부 역시 노동자 편에서 개입하면서 법치가 아닌 인치로 해외 기업을 대했다. 때문에 일본 기업 임직원들이 중국 부임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중국 주재원 가족을 위한 주택·건강·교육비를 지원하는 ‘하드십(hardship) 수당’이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새로운 반전을 모색 중이다. 대만 기업과 손 잡고 중국 내륙 진출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 독자 생존이 어렵지만 고도 기술을 보유한 금형기술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아세안 기업과 합작이나 M&A를 시도한다. 반일 시위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1년’을 보낸 뒤, 지난해부터 일·중 양국간 경제인의 교류도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 한 예로 얼마 전 광둥성 2인자가 일본에 투자 요청을 하면서 “일본이 광둥성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는데, 그때 일본 재계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중·일 분업구조와 변화와 관련해 아시아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갖춘 CEO를 육성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3국이 머리를 맞대 기존에 없었던 시장과 기술을 만드는 혁신을 이뤄낼 기업가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이를 ‘올 아시아(All Asia)의 실현’이라고 부르고 싶다. 흔히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로 비유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가 무엇을 만드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웃풋(산업과 제품) 중심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협력보다는 경쟁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샌드위치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분업구조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중국의 빵, 일본의 소스, 대만의 햄, 한국의 피클 식으로 협력의 샌드위치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누가 무엇을 만드는가’라는 분업구조 인식은 다양한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소니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일본 제품인가, 중국 제품인가.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 투자는 한국의 이익인가, 중국의 이익인가. 한국 기업이 높은 가격에 일본에 팔리고, 그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면 누구의 이익인가.
국가·제품 단위의 분업구조로 생각하면 경쟁과 협력이라는 더 넓은 공간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아웃풋(output)이 아닌, 인풋(input : 투입요소)의 경쟁력에 주목해야 한다. 단선적으로 단순가공→조립가공→중화학→첨단·서비스 산업의 단선적 매트릭스가 아니라, 저임금·조달망·기술력·창의력·연구개발·브랜드 등 ‘누가 무엇을 잘하는가’를 우선 순위에 두고 경쟁이 아닌 협력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한·일 기업은 중점 전략과 생산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생산·판매에 중점을 두고 설비에 의존하는 반면, 일본은 소재와 부품에 중점을 두고 인간, 특히 숙련된 기술(노동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엔 암묵지의 기술이 많다. 모방이 어렵다. 여러모로 중국 기업의 한국 기업 추격이 쉬운 구조다.
양국 전략에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은 너무 빠르게 중국으로 갔다. 이 과정에서 생산과 공정기술이 대거 유출됐다. 일본은 중국에 공장을 짓고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주저했다. 일본은 중국과 거리두기 전략으로 중국과의 협상력을 높였다. 일본 정부는 ‘기술의 블랙 박스화’ 정책을 폈다. 다른 나라가 도저히 기술을 빼갈 수 없도록 국가가 전략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일본 샤프에 투자한 것은 액정기술과 복사기 기술 확보가 중요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기술을 못 주게 막았다. 일본은 중국에도 같은 전략을 폈다. 일본은 중국과 거리를 둬도, 부품·소재 기술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필요하면 중국이 손을 벌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국가 전략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정책을 정치·외교 전략과 연계해 철저히 중국과 거리를 뒀다. 최근에는 미국·동남아시아·인도·호주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중국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남북 문제 등 정치적 계산에 입각해 일본과 거리를 두고 급속히 중국에 빨려 들어갔고, 결국 중국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였다. 일본 아베노믹스가 욕을 먹지만, 경제전략 측면에서는 우리 정부보다 낫다. 우리는 발등의 불만 생각하지만, 아베의 세 화살 중 하나는 미래성장 전략에 맞춰져 있다. 아베가 왜 그토록 아세안 국가를 자주 방문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중국발 위기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국내에서는 잘나가는 한국 기업을 찬양하기 바빴다. 대중 수출이 뚝 떨어지자 이제야 위기라고 한다.
이런 점은 언론을 포함해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은 현재 산업화 초기 단계를 벗어나 산업화 후기 단계와 고소득 국가군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1980년 이후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을 살펴보면, 아주 무서운 점이 발견된다. 중국은 단순히 산업 대국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산업 강국을 동시에 추구한다. 전방위적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중국 이 공급자 역할의 고도화로 나아갈 것인지, 시장 제공자(세계의 시장)를 도모할 것인가에 따라 동아시아 산업 지형이 달라 질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스스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중국은 제조업 발전 경로를 독일과 일본에서, 서비스업 발전 경로를 미국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당분간 외향적 성장과 내수 확대 전략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중국의 선택, 중국에 대한 세계 경제의 기대는 한·중· 일 3국 산업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이 3국의 신성장동력 전략은 육성 분야에서 많이 중첩된다. 이는 상호보완보다는 전면적 경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신성장동력은 해당 국가의 미래를 담보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 고민과 탐색이 필요한 때다. 10월 22일 열린 J차이나포럼 국제학술회의 주제 발표 후 가진 토론 시간에서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대한 날선 비판과 조언이 이어졌다. 이근 교수는 “대·중소기업 모두 해외로 더 나가야 한다”며 “국내에 안주하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웬만한 제조업은 모두 나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선 “중국에 스마트폰 수 억대를 팔고서도 변변한 고객 정보가 없다”며 “중국에서 삼성전자는 사실상 브랜드파워만 남았는데, 앞으로 브랜드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애플과의 경쟁에 대해선 “삼성이 보유한 방대한 가전제품 라인과 스마트폰을 연계해 애플과 싸워야 한다”며 “스마트폰 대 스마트폰으로 싸우려 하면 승산이 없다”고 조언했다.
김현철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기업이 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기 실력이 아니었다”며 “MB정부의 고환율이라는 보조금 덕분”이었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제조업 위기는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 시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이 너무 적다”며 “향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그는 “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랜 기간 폭리를 취하는 것인데, 그 폭리라는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 관점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하는 중소기업이 매년 급격히 감소하는 것과 관련, 이근 교수는 “중소기업이 국내에 안주하도록 우리 정부가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는데, 이는 결국 중소기업에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서강대 김시중 교수는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극단적 전망이 많다”며 “현실적으로 극과 극의 중간쯤 어딘가가 미래 중국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극단적 전망에 대한 극단적 대비보다는 중국과 새로운 호혜의 길, 협력의 길을 이제부터 찾아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은 중국의 혁신에 올라타라 - 천진 칭화대 경제경영대학 창신창업전략과 교수
중국은 정부와 기업·대학이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특히 과학기술 혁신으로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 투자가 증가하면서 현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허와 과학기술 논문 등 과학지식 누적 총량은 이미 세계 선두권이며 미국 다음가는 위치다. 과학기술 혁신은 유인 우주항공, 고속철도, 고성능 컴퓨터, 수력발전 장비 등 분야에서 중국의 산업기술 수준을 세계 선두권으로 끌어올렸다.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활용 및 혁신 능력도 세계 선두 지위를 확보했다. 특히 공업화와 정보화, 도시화, 농업 현대화의 네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도시화는 현재 50%에서 향후 70%로 증가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주혁신과 동반혁신을 강조하면서 국유기업은 물론 민간 부문도 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은 ‘전면적 혁신’ 중이며, 상당 부분 혁신 대국으로 도약했다고 본다.
물론 중국이 직면한 문제도 있다. 중국의 혁신은 아직 모방 수준이다. 혁신 성과를 뒷받침할 혁신 인재가 부족한 것도 사실 이다. 기업의 혁신 능력도 매우 제한적이다. 화웨이·하이얼·알리바바·바이두 등 우수 혁신형 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중국 기업은 아직 혁신 투자자원이 부족하고 혁신 실패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과학기술 인력은 세계 1위지만, 1인당 생산 효율성은 여전히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하지만 중국은 첨단·기초 과학기술 연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에 상응하는 고급 인재를 양성할 것이다. 핵심 기술에 기반한 기업의 자주혁신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또한 중국은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혁신을 중시한다. 향후 한국과 협력할 공간도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감안할 때, 예를 들면 가전과 도시화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여지가 특히 많다.
선도와 추격 아우르는 병행자 전략 택해야 -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서울대 경제연구소장
현재 중국의 한국 추격 속도는 그간 한·일간 패턴과 비슷하다. 중국의 IT 기술은 한국을 거의 따라잡았다. IT는 단명 기술이 많고, 특허 등의 명시적 지식이기 때문에 소위 벼락치기가 가능하다. 석유화학 기술은 근접해 있고, 자동차는 아직 격차가 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은 이미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 추격형 성장을 해왔던 한국은 새로운 전략을 택해야 한다. 한국의 방향은 대·중소기업 동반 국제화여야 한다. 대기업이 해외로 더 나가 성장을 주도하면서도 경제력 집중도를 심화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동반 국제화는 독일이 좋은 모델이다. 대·중소기업 혁신을 이끄는 최적의 시나리오다.
한국은 그동안 추격자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선발자로서 피추격 방어 전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M&A는 선도기업의 방어전략이자 신기술을 확보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애플이나 샤오미처럼 단순히 제품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 판매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도 있다. 삼성에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 삼성과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려는 후발 기업이 아니라, 다른 패러다임을 들고 나오는 후발자다. 한국은 서둘러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이유는 없다. 현대자동차가 하이브리드·전기차· 수소차를 동시에 개발한 것처럼, 퍼스트 팔로워(First follower)와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 : 재빠른 2등)를 동시에 추구하는 병행자 전략(Parallel mover)이 최적의 선택일 수 있다.
대만 기업과 손 잡고 중국에서 반전 노려 - 야나기마치 이사오 일본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
더욱이 중국 내 노동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임금이 올랐고, 노동자의 권리 의식도 높아졌다. 심지어 중국 노동자들은 ‘사장을 바꾸라’는 시위까지 한다. 합법적 경영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 저항하고, 전면 파업을 하는 일이 잦다. 중국 지방정부 역시 노동자 편에서 개입하면서 법치가 아닌 인치로 해외 기업을 대했다. 때문에 일본 기업 임직원들이 중국 부임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중국 주재원 가족을 위한 주택·건강·교육비를 지원하는 ‘하드십(hardship) 수당’이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새로운 반전을 모색 중이다. 대만 기업과 손 잡고 중국 내륙 진출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 독자 생존이 어렵지만 고도 기술을 보유한 금형기술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아세안 기업과 합작이나 M&A를 시도한다. 반일 시위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1년’을 보낸 뒤, 지난해부터 일·중 양국간 경제인의 교류도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 한 예로 얼마 전 광둥성 2인자가 일본에 투자 요청을 하면서 “일본이 광둥성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는데, 그때 일본 재계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중·일 분업구조와 변화와 관련해 아시아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갖춘 CEO를 육성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3국이 머리를 맞대 기존에 없었던 시장과 기술을 만드는 혁신을 이뤄낼 기업가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이를 ‘올 아시아(All Asia)의 실현’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가 뭘 잘하나’ 따져 협력 방안 모색하라 -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 연구위원
‘누가 무엇을 만드는가’라는 분업구조 인식은 다양한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소니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일본 제품인가, 중국 제품인가.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 투자는 한국의 이익인가, 중국의 이익인가. 한국 기업이 높은 가격에 일본에 팔리고, 그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면 누구의 이익인가.
국가·제품 단위의 분업구조로 생각하면 경쟁과 협력이라는 더 넓은 공간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아웃풋(output)이 아닌, 인풋(input : 투입요소)의 경쟁력에 주목해야 한다. 단선적으로 단순가공→조립가공→중화학→첨단·서비스 산업의 단선적 매트릭스가 아니라, 저임금·조달망·기술력·창의력·연구개발·브랜드 등 ‘누가 무엇을 잘하는가’를 우선 순위에 두고 경쟁이 아닌 협력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일본의 ‘거리두기 전략’ 재평가 해야 -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전공 교수
양국 전략에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은 너무 빠르게 중국으로 갔다. 이 과정에서 생산과 공정기술이 대거 유출됐다. 일본은 중국에 공장을 짓고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주저했다. 일본은 중국과 거리두기 전략으로 중국과의 협상력을 높였다. 일본 정부는 ‘기술의 블랙 박스화’ 정책을 폈다. 다른 나라가 도저히 기술을 빼갈 수 없도록 국가가 전략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일본 샤프에 투자한 것은 액정기술과 복사기 기술 확보가 중요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기술을 못 주게 막았다. 일본은 중국에도 같은 전략을 폈다. 일본은 중국과 거리를 둬도, 부품·소재 기술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필요하면 중국이 손을 벌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국가 전략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정책을 정치·외교 전략과 연계해 철저히 중국과 거리를 뒀다. 최근에는 미국·동남아시아·인도·호주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중국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남북 문제 등 정치적 계산에 입각해 일본과 거리를 두고 급속히 중국에 빨려 들어갔고, 결국 중국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였다. 일본 아베노믹스가 욕을 먹지만, 경제전략 측면에서는 우리 정부보다 낫다. 우리는 발등의 불만 생각하지만, 아베의 세 화살 중 하나는 미래성장 전략에 맞춰져 있다. 아베가 왜 그토록 아세안 국가를 자주 방문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중·일의 닮은꼴 미래 동력, 최후의 승자는 -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런 점은 언론을 포함해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은 현재 산업화 초기 단계를 벗어나 산업화 후기 단계와 고소득 국가군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1980년 이후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을 살펴보면, 아주 무서운 점이 발견된다. 중국은 단순히 산업 대국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산업 강국을 동시에 추구한다. 전방위적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중국 이 공급자 역할의 고도화로 나아갈 것인지, 시장 제공자(세계의 시장)를 도모할 것인가에 따라 동아시아 산업 지형이 달라 질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스스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중국은 제조업 발전 경로를 독일과 일본에서, 서비스업 발전 경로를 미국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당분간 외향적 성장과 내수 확대 전략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중국의 선택, 중국에 대한 세계 경제의 기대는 한·중· 일 3국 산업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이 3국의 신성장동력 전략은 육성 분야에서 많이 중첩된다. 이는 상호보완보다는 전면적 경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신성장동력은 해당 국가의 미래를 담보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 고민과 탐색이 필요한 때다.
포럼 후기 - 한국 경제·기업에 혹독한 비판
애플과의 경쟁에 대해선 “삼성이 보유한 방대한 가전제품 라인과 스마트폰을 연계해 애플과 싸워야 한다”며 “스마트폰 대 스마트폰으로 싸우려 하면 승산이 없다”고 조언했다.
김현철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기업이 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기 실력이 아니었다”며 “MB정부의 고환율이라는 보조금 덕분”이었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제조업 위기는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 시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이 너무 적다”며 “향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그는 “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랜 기간 폭리를 취하는 것인데, 그 폭리라는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 관점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하는 중소기업이 매년 급격히 감소하는 것과 관련, 이근 교수는 “중소기업이 국내에 안주하도록 우리 정부가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는데, 이는 결국 중소기업에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서강대 김시중 교수는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극단적 전망이 많다”며 “현실적으로 극과 극의 중간쯤 어딘가가 미래 중국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극단적 전망에 대한 극단적 대비보다는 중국과 새로운 호혜의 길, 협력의 길을 이제부터 찾아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겨울철 효자 ‘외투 보관 서비스’...아시아나항공, 올해는 안 한다
2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3‘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
4제뉴인글로벌컴퍼니,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두번째 글로벌 기획전시
5의료현장 스민 첨단기술…새로운 창업 요람은 ‘이곳’
6와인 초보자라면, 병에 붙은 스티커를 살펴보자
7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삼성전자 HBM 승인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
8‘꽁꽁 얼어붙은’ 청년 일자리...10·20대 신규 채용, ‘역대 최저’
9'로또' 한 주에 63명 벼락 맞았다?...'네, 가능합니다', 추첨 생방송으로 불신 정면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