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돈 잘 버는 기업? 근본 있는 기업 돼야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돈 잘 버는 기업? 근본 있는 기업 돼야
2000년 개봉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Cast away는 ‘조난당하다’는 뜻). 세계적인 택배회사 페덱스의 직원인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항상 바쁘다. 택배는 일분 일초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척은 급한 배송 건으로 말레이시아행 화물 비행기를 타게 되는데 갑작스런 난기류에 휘말려 태평양 한복판에 추락하고 만다. 정신을 잃은 척이 눈을 뜬 곳은 망망대해에 둘러싸여 무성한 나무와 높은 암벽뿐인 무인도였다. 무한정으로 주어진 시간, 그리고 찾아 온 절대 고독. 척은 이제 과거의 모든 삶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동화해야만 한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가 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도 잠시, 척은 무인도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간다. 추락한 화물기에서 떠내려온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놓고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말벗이 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코코넛을 깨 즙을 마시고, 나무 작살을 던져 게와 생선을 잡아 먹는다.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피우는 법까지 터득한다. 그렇게 4년여의 시간이 흐른다. 되돌아 가야 한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갈 즈음, 해변에 간이 화장실 문짝 하나가 떠내려 온다. 불현듯 강렬한 생환 의지를 느낀 척은 문짝을 이용해 뗏목을 만들어 무시무시한 파도를 뚫고 마침내 섬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문명사회로 돌아온 척은 자신의 약혼녀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음을 알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임무를 잊지 않는다. 그것은 무인도에서 가지고 나온 마지막 페덱스 택배상자를 배달하는 일. 어찌 보면 척을 살린 것은 약혼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못지 않게 택배상자를 반드시 배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주인 없는 빈 집에 택배상자를 내려 놓고 척은 이런 메모를 남긴다. ‘이 택배가 저를 살렸어요(이런 직원만 있다면 택배회사 하나 차리고 싶다)’.
페덱스는 1973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설립됐다. 허브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발상에서 출발한 페덱스는 정보기술(IT)의 적용과 여러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전날 밤 맡긴 택배를 다음날 오전에 받을 수 있는 익일 특급배송 서비스, 발송 중인 화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추적 시스템, 배달에 착오가 생기면 고객에게 요금을 돌려주는 환급제도 등을 처음 시작한 것도 페덱스였다. 페덱스라는 기업 명칭은 물건을 특송으로 보냈다는 뜻인 ‘페덱스했다(fedexed)’는 말로 통하기 시작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를 관통하는 게임이론 코드는 ‘평판(Reputation)관리’이다. 평판은 사람이나 조직 등 특정 개체에 대해 형성된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평가, 혹은 집합적 기억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다음에 애정·소속감·존경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평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항상 주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소문·구설수·가십 따위에 신경을 쓴다. 최근에는 온라인 소통이 발달하면서 댓글이나 ‘좋아요’의 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톰 행크스의 직업이 페덱스 직원인 만큼 페덱스라는 상표는 스크린 곳곳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전체 상영시간 150분 중 무려 70분가량). 페덱스는 이 영화를 통해 직접적인 광고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평판관리에 성공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페덱스는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택배 업계의 경쟁구도 속에서 고객들의 신뢰만큼 중요한 무기도 없다. 영화로 인해 페덱스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평판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 때로는 돈이 든다. 하지만 당장은 손해인 것 같아도 좋은 평판은 미구(未久)에 닥칠 자잘한 골치거리와 우환을 사전에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소비자들이 타이레놀을 먹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작사인 J&J(존슨 앤 존슨)의 대응이 귀감이 된다. J&J는 약 100만 달러의 회수 비용을 들여 7일 만에 미국 전역에 있는 타이레놀 3100만병을 수거해서 모두 폐기처분했다. 그 액수만 무려 1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결국 J&J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돈보다 소비자의 건강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는 좋은 평판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중에 제품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누군가 고의로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인들은 J&J에 대해 신뢰를 넘어 존경의 마음까지 갖게 됐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산업화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확고한 평판을 쌓은 기업은 드물다. 간혹 수 년 간의 노력으로 좋은 평판을 만들어도 2세, 3세 승계를 거치며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욕이 지나쳐 기존에 만든 평판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 ‘100년 기업’을 향해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평판관리에 특단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평판을 구성하는 큰 뿌리는 우직하게 유지하되, 그 골격 내에서 상황에 따라 미세조정을 해나가는 적응력이 요구된다. ‘돈 잘 버는 기업’보다 ‘근본 있는 기업’이 살아 남는다.
사회적 책임(CSR)도 그렇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이슈가 되면서 많은 기업이 모내기와 연탄 배달에 나섰다. 정치권의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구호도 여기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업들 중에 앞으로 10년, 20년 후까지 진심으로 사회와 함께 한다는 평판을 얻을 기업은 얼마나 될까? 온라인 평판관리 업체를 고용해 악성 댓글만 지운다고 좋은 평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만큼 했으면 되겠지’라며 노력을 게을리 하는 순간, 수 년 간의 노력은 쇼‘ ’가 되어 버린다. 하루 아침에 사‘ 회책임 기업’에서 사회기만 기업’으로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영화 뒷얘기 하나. 주인공 척 놀랜드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일부러 몸을 불려 영화 전반부를 찍은 뒤 약 1년 동안 무려 50파운드(22.7kg)를 뺀 후에 다시 촬영에 나섰다고 한다(영화배우도 썩 좋은 직업은 아닌 듯하다). 페덱스는 영화에 필요한 각종 자재와 집기를 지원했는데, 영화 후반부 척의 생환 파티에는 페덱스의 설립자이자 CEO인 프레드릭 스미스 회장이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가 성공하자 페덱스는 직접 패러디 광고를 만들어 TV에 방영했는데 이 광고 또한 크게 히트했다. 무인도에서 돌아온 척이 택배상자를 주인에게 배달하고 돌아서면서 갑자기 생각난 듯 묻는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위성 전화기, GPS 수신기, 낚싯대, 정수기, 그리고 씨앗 등이라고. 헐~.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로 포스코경영연구소 산업전략 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포스코에서 10년 넘게 신사업·신기술 투자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캐스트>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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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탈출해 택배상자 배달
문명사회로 돌아온 척은 자신의 약혼녀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음을 알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임무를 잊지 않는다. 그것은 무인도에서 가지고 나온 마지막 페덱스 택배상자를 배달하는 일. 어찌 보면 척을 살린 것은 약혼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못지 않게 택배상자를 반드시 배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주인 없는 빈 집에 택배상자를 내려 놓고 척은 이런 메모를 남긴다. ‘이 택배가 저를 살렸어요(이런 직원만 있다면 택배회사 하나 차리고 싶다)’.
페덱스는 1973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설립됐다. 허브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발상에서 출발한 페덱스는 정보기술(IT)의 적용과 여러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전날 밤 맡긴 택배를 다음날 오전에 받을 수 있는 익일 특급배송 서비스, 발송 중인 화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추적 시스템, 배달에 착오가 생기면 고객에게 요금을 돌려주는 환급제도 등을 처음 시작한 것도 페덱스였다. 페덱스라는 기업 명칭은 물건을 특송으로 보냈다는 뜻인 ‘페덱스했다(fedexed)’는 말로 통하기 시작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를 관통하는 게임이론 코드는 ‘평판(Reputation)관리’이다. 평판은 사람이나 조직 등 특정 개체에 대해 형성된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평가, 혹은 집합적 기억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다음에 애정·소속감·존경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평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항상 주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소문·구설수·가십 따위에 신경을 쓴다. 최근에는 온라인 소통이 발달하면서 댓글이나 ‘좋아요’의 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톰 행크스의 직업이 페덱스 직원인 만큼 페덱스라는 상표는 스크린 곳곳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전체 상영시간 150분 중 무려 70분가량). 페덱스는 이 영화를 통해 직접적인 광고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평판관리에 성공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페덱스는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택배 업계의 경쟁구도 속에서 고객들의 신뢰만큼 중요한 무기도 없다. 영화로 인해 페덱스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평판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 때로는 돈이 든다. 하지만 당장은 손해인 것 같아도 좋은 평판은 미구(未久)에 닥칠 자잘한 골치거리와 우환을 사전에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소비자들이 타이레놀을 먹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작사인 J&J(존슨 앤 존슨)의 대응이 귀감이 된다. J&J는 약 100만 달러의 회수 비용을 들여 7일 만에 미국 전역에 있는 타이레놀 3100만병을 수거해서 모두 폐기처분했다. 그 액수만 무려 1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결국 J&J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돈보다 소비자의 건강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는 좋은 평판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중에 제품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누군가 고의로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인들은 J&J에 대해 신뢰를 넘어 존경의 마음까지 갖게 됐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산업화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확고한 평판을 쌓은 기업은 드물다. 간혹 수 년 간의 노력으로 좋은 평판을 만들어도 2세, 3세 승계를 거치며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욕이 지나쳐 기존에 만든 평판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 ‘100년 기업’을 향해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평판관리에 특단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평판을 구성하는 큰 뿌리는 우직하게 유지하되, 그 골격 내에서 상황에 따라 미세조정을 해나가는 적응력이 요구된다. ‘돈 잘 버는 기업’보다 ‘근본 있는 기업’이 살아 남는다.
사회적 책임(CSR)도 그렇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이슈가 되면서 많은 기업이 모내기와 연탄 배달에 나섰다. 정치권의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구호도 여기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업들 중에 앞으로 10년, 20년 후까지 진심으로 사회와 함께 한다는 평판을 얻을 기업은 얼마나 될까? 온라인 평판관리 업체를 고용해 악성 댓글만 지운다고 좋은 평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만큼 했으면 되겠지’라며 노력을 게을리 하는 순간, 수 년 간의 노력은 쇼‘ ’가 되어 버린다. 하루 아침에 사‘ 회책임 기업’에서 사회기만 기업’으로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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