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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잃어버린 10년’ 오나

중국판 ‘잃어버린 10년’ 오나

마지젱의 가족은 한때 무척이나 가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중국의 현대 경제기적을 구현하고 있다. 1978년 당시 국가주석 덩샤오핑이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선언하며 시장경제 실험을 통해 세계를 바꿔놓은 이래 중국이 얼마나 급진적으로 변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마지젱은 허난성 중부에서 농부의 외아들로 성장했다. 1990년대 말 공장 직공이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해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로써 아버지의 경제활동은 막을 내렸다. 어머니 휘팡은 밀 농사를 지었다. 허난성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종일 일하면서 피부가 거칠어졌다. 마지젱의 가족은 휘팡이 일하던 밀밭에 가까운 비포장도로 부근의 작은 오두막에 살았다. 조명기구라곤 백열전등 하나 뿐인 그 집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상하이에 새 날이 밝았다. 중국은 30년 간의 고도성장 후 좀 더 불확실한 미래를 맞게 됐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젱은 머리가 비상한 학생이었다. 중국에서 유명한(비판자들은 악명 높다고 말한다) ‘가오카오(高考, 대입 수능)’를 치렀을 때 그는 마을에서 1등을 먹었다. 그런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의 일류대학인 칭화대에 입학했다. ‘중국의 MIT’로 알려진 대학이다. 그는 전기공학 학위를 땄다.

학위 덕분에 마는 홍콩에 인접한 번화한 도시 선전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가 입사할 때는 중국 밖에선 거의 들어보지 못한 ‘화웨이’라는 회사였다(지금은 ‘중국의 시스코’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때가 2001년이었다. 그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 무역 시스템과 글로벌 경제에 공식 진입했다.

지금도 마지젱은 화웨이에서 일한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선임 엔지니어다. 그의 부모도 선전으로 이사해 아들이 화웨이에 입사한 직후 구입해준 아파트에 산다. 작지만 깔끔한 그 아파트는 구입한 이래 가격이 급등했다. 마지젱 자신과 아내가 살려고 구입한 아파트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치솟았다. 그가 대입 수능을 치르던 날부터 화웨이에 입사한 날까지 그 5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가난했던 가족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대 중국에선 그런 이야기는 너무도 흔하다. 경제개조와 고도성장의 산물이다. 피폐하고 낙후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에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국의 가차없는 질주 덕분이다.

그러나 마지젱의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중국인들을 가난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수준으로 밀어올려준 그 시대가 이제는 끝났다.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중국의 고도성장 시기는 지났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제조업과 수출주도형 성장, 부동산과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밀어붙이면서 30년 이상 고속성장을 지속한 끝에 이젠 중국도 힘이 빠졌다. 더구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중국은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풀었다. 지금은 손쉬운 대출로 얻을 수 있는 성장의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2008년 중국의 은행들은 약 9조 달러의 자산을 보유했다. 시장조사업체 오토노머스 리서치 아시아의 찰린 추 대표에 따르면 올해 말 그 액수는 28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성장은 큰 폭으로 둔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서비스업체 UBS의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왕타오가 제시한 최신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은 2015년에 6.8%, 2016년엔 6.5%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
 개혁 과정을 둘러싼 투쟁
성장에 걸린 제동. 2014년 자동차 판매는 약 7%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이전에 비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그런 성장률 전망에 중국 지도부는 불안을 떨치기 힘들다. 오랫동안 지속된 연간 두 자리 수 성장에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1949년 이래 중국을 통치해온 공산당으로선 사회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장률이 7%선 아래로 크게 떨어지면 그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수 없는 젊은이, 가난을 피해 신도시로 이주해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도농공, 파산으로 치달으며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 중국 지도부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뉴욕 소재 컨설팅 기업 로디엄 그룹의 임원인 대니얼 로젠(중국의 경제개혁 전망에 관한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최신 보고서를 작성했다)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기존의 발전 모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하루빨리 그 모델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중국 지도부에겐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1년전 시진핑 국가주석과 그의 정부는 중국 공산당 제18차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기존의 경제 모델을 대체하고 중국의 성장을 재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개혁심화 결정’으로 알려진 그 보고서의 핵심은 “시장의 힘이 자원 할당에서 결정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방에서 공부한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에겐 희소식이었지만 여전히 국가가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보수적인 고위층에겐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갈수록 그런 선의를 인정받지 못한다. 회의론자들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취임한 이래 크게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불가피하게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중국 정부가 얼마나 절박하게 느낄까? 개혁의 고통은 이미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 질문의 정답은 ‘아주 절박하게 느낀다’가 돼야 마땅하다. 뉴욕 소재 투자회사 실버크레스트 애셋 매니지먼트의 수석 전략가 패트릭 초바네크는 이렇게 말했다. “정상 궤도에 올라서려면 먼저 잘못된 궤도에서 내려서야 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려면 잘못된 방향으로 자원을 할당해선 안 된다. 하지만 중국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정상 궤도에서 수 년이나 뒤떨어진 상태다.”

‘개혁심화 결정’이 발표된 이후 한 해 동안 절박성에 관한 의문이 커지기만 했다. 중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서방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최근 베이징에서 고위 관리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가진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정부의 출범은 기세등등했지만 벌써 그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기득권층과 흥정하고 타협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득권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부가 지배하는 경제 부문에 존재한다. 금융, 에너지, 통신, 철강, 자동차 등 경제의 ‘최고봉(commanding heights)’으로 일컬어지는 기간 산업을 가리킨다. 기존의 경제 모델에선 이런 국영기업들이 아주 잘해냈지만 그들은 의미있는 변화에 격렬히 저항한다.

중국의 개혁 과정을 둘러싼 이런 투쟁에는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다.

대내적으로는 중산층 지위를 아직 얻지 못한 중국인들(경제 전문가들은 약 5억 명으로 추산한다)에겐 그 투쟁의 결과가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미 ‘중국의 꿈’을 성취한 중국인들(괜찮은 직장과 주택,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런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더욱 공고히 다지려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 아직 중산층 생활수준에 이르지 못한 중국인이 약 5억 명으로 추정된다.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중국 정부로선 경제가 침체되면 그런 노력이 전부 허사로 돌아간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고령화다. 2020년이 되면 인구의 약 25%가 65세 이상이 된다. 2005년에는 그 비율이 6% 남짓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국민연금부터 현대적 의료 시스템까지 사회안전망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통성이 거의 전적으로 경제 발전에 묶여 있는 공산당 정권으로선 개혁 실패가 곧바로 “사형선고가 될수 있다”고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수석연구원 민신페이가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그처럼 심히 걱정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파급효과는 크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지구상의 거의 모든 다국적기업의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실시된 다음부터 중국은 자전거의 나라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변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상전벽해다. 거대 시장 중국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또 중국은 원유, 철광석, 샴푸, 스마트폰, 치약, 맥주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남을 것이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소장 출신으로 컨설팅 회사 APCO의 중국 회장인 제임스 맥그리거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저런 상품에서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다. 13억 인구를 가진 나라가 30년 동안 고도성장을 이뤘다면 거의 모든 상품에서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됐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겠다.”

중국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어하는 사업가에게 절박한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미래의 성장과 투자를 어떻게 추정해야 할까? 중국의 수요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원자재 가격 급등의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원유부터 철광석, 구리까지 가격이 급락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 다국적 대기업 중 하나의 중국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1990년대 말 국영기업을 구조조정하고 WTO에 가입한 후 고성장 경제가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정이 아주 다르다. 지금 우리는 앞으로 중국에 얼마나 투자하고 얼마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관련해서는 과거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목격한 ‘경제 기적’과 추락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표적인 예는 두말할 나위없이 일본이다. 일본은 수십 년의 고속 성장 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중국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러면서 서방은 일본이 세계 경제를 지배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지금의 중국도 바로 그런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일본은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돌려 막기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면서 중국 지도부의 근심이 커졌다.
당연히 의문이 든다. 중국도 그런 운명을 맞을 것인가? 일본과 중국의 궤적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두 나라 모두 국내 소비를 억제하고 투자에 집중하면서 성장했다. 지난해 중국의 고정자산 투자(공장, 설비, 사회기반시설 에 대한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5%였다. 반면 가계 소비는 36%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의 ‘개혁심화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원칙적으로 그 숫자를 뒤집는 것이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도록 방치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의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파악한다. 실제로 지금의 중국 경기 둔화는 주택건설의 급작스러운 반전에서 비롯됐다. 왕타오 UBS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그에 따라 다양한 수요 채널을 통해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물가상승률 둔화)과 디플레이션(deflation, 지속적인 물가하락)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역시 불길하게도 일본이 겪었던 증상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 거시경제의 둔화가 시작됐을 때 이미 부채의 늪에 깊이 빠져 있는 기업들에 대한 은행의 융자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부동산개발회사든 제조업체든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1989년 개봉된 영화 ‘베니의 주말(Weekend at Bernie’s)’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돼버렸다. 시체를 거실 한쪽 구석에 앉히고 그 입에 시가를 물려주고는 아무 일 없는 체하는 장면을 말한다. 바로 거기서 ‘좀비 기업(zombie companies, 회생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있는 기업)’ 현상이 탄생했다.

그 비교의 일부는 억지나 과장일지 모른다. 중국의 주택시장은 과거 일본이나 그후 미국에서 발생한 상황보다 담보대출이 훨씬 적다. 따라서 중대한 조정(이미 진행 중이다)에 따르는 피해가 전체 시스템을 크게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중국의 주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중국 경제의 약세 전망을 이끄는 것은 경제 전반에 걸쳐 부실채권을 새로운 부채로 구제하는 현상이다. 1년 전 로이터 통신이 신탁대출(trust loans, 국영 상업은행에 가해지는 금리 제한에 얽매이지 않는 비은행 금융사의 대출)에 관한 자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발생한 신탁대출의 41% 이상이 부실 채권을 상환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다. 신탁대출은 중국의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유사은행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진짜 문제가 있다. 상하이 부근의 번창하는 장쑤성에 있는 도시 우시에서 금속제조업을 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 뉴스위크 기자에게 최근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 회사는 2000년 이래 10년 내내 국영 상업은행인 중국은행의 대출을 받았다. “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공장 하나에다 창고 두 채를 지었는데 그들은 경영자본(working capital, 운전자본이라고도 한다)까지 우리에게 제공했다”고 그가 말했다.
 개혁의 딜레마
중국 베이징 APEC 회의장에 도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영접을 받은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말부터 “우리 매출이 줄기 시작하자 은행 측은 정부의 지시라며 대출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린 황당했다. 그래서 신탁회사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은 대부분 중국은행에서 이전에 받은 대출을 상환하는 데 사용됐다.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계속 그러고 있다. 신탁대출 금리는 14%로 아주 높지만 어쩔 수 없다. 은행 측은 자금 회수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독촉했다.”

이 사례는 개혁을 지향하는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개혁의 핵심은 크게 보면 금융자유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금리자유화다. 중국 경제에서 시장의 힘이 자원 할당을 결정한다면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 바로 그 ‘시장의 힘’이 융자금을 할당해야 한다. 현재로선 예금의 금리를 정부가 정한다. 물가상승률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예금자들에겐 손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업이 너무도 쉬워졌다. 아무리 우둔한 은행 간부라도 인위적으로 낮춘 금리에 예금을 받아 기업체에 융자를 제공하면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외에 정부 보조금 지급제도도 중국 경제의 제조 부문 전반에서 설비 과잉으로 이어졌다. 그 역시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수익을 높일 만한 가격결정력을 가진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거의 아무런 생각없이 좋아하는 현지 기업가들에게 융자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대기업이며 그들 역시 지방 당간부들과 유착한 국영기업인 경우가 많다. 지방 당간부들은 대개 구역 내 일자리 성장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모든 인센티브는 ‘더 많이’라는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마련이었다. 더 많은 투자, 더 많은 공장, 더 많은 일자리… 그러나 결국 더 많은 부채로 이어졌다.

베이징에서 고위 관리들과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헤지펀드 매니저에 따르면 시진핑 정부는 은행 융자를 줄여 “그동안 풀린 돈을 시장에서 짜내는 데” 성공했다. 누가 봐도 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투자가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된다.

그림자 금융은 갈수록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에 융자를 제공함으로써 그런 기업들의 도산을 막아준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그림자 은행을 용인했다. 관리들에 따르면 국영 은행들이 시장경제의 경쟁에 익숙해지도록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은 일본식의 좀비 경제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정부가 개혁을 밀고 나가려면 기득권층과 정면으로 부닥쳐야 한다. 이전의 대출금을 상환 받으려는 은행들, 또는 이전의 부채를 상환할 목적으로 계속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국영 기업들이 기득권층에 속한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더 자유로운 금융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좀 더 신속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반응은 단순했다. 쉽지 않지만 결국 해낼 수 있다는 다짐이다.

금리가 완전히 자유화되려면 현재 미국이 실시하는 것과 같은 예금보험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수석 연구원 장밍에 따르면 내년 초 중국 예금보험공사가 신설될 예정이다. “그럴 경우 중소은행들이 대규모 공황사태나 나머지 은행들의 예금인출 사태를 촉발시키지 않고 조용히 도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중국사회과학원의 장밍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저우샤오촨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예금 금리가 “2년 안에” 자유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태자당 출신 국가주석
중국의 금융시장 개혁을 둘러싼 투쟁이 잘 보여주듯이 개혁 이전 시기보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기관이 현재 상황에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미 막대한 부가 축적됐고 막강한 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투우장에 자신들이 내세우는 소가 싸워보지도 않고 다른 소의 뿔에 받히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과거에 이미 힘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영기업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주룽지 전 총리가 밀어붙였다. WTO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대규모 정리해고가 실시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중국의 현대 경제개혁 과정에서 최초의 두 가지 중요한 단계(민간기업의 규제를 풀고 공급이 거의 무한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수출 부문을 장려한 것)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인민은행의 자문역을 지냈고 현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 있는 유콘 황은 경제정책에 관한 한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시진핑 정부는 개혁을 아주 세게 밀어붙여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로 초점이 맞춰진다. 혁명원로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이른바 ‘태자당’ 계열인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올랐다. 중국과 해외 양쪽 모두의 분석가들은 그가 취임 후 지금까지 보인 행보에 겁을 먹었다. 시진핑은 예상보다 더 엄격한 부패척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최고 통치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동료 위원들 가족에 대한 수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국력을 투사했고, 국내에선 반체제인사들을 잔인하게 탄압했으며, 자신이 내건 ‘중국의 꿈’을 중심으로 인민들을 단합시키기 위해 국수주의적 주제와 중국 고전을 계속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중국의 꿈’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규정했다.

그의 비판자들은 그런 의제 때문에 지금 중국 공산당에 절실한 개혁 노력이 무색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시진핑을 무자비했던 지도자 마오쩌둥과 그의 개인숭배에 견주기도 한다.

그런 시각도 일리가 있다. 반면 옹호자들은 시진핑 주석이 올바른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아주 가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을 다지는 중이라고 믿는다. APCO의 맥그리거는 시진핑 주석이 “제2의 덩샤오핑이 되기 위해 마오쩌둥의 전술을 차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여전히 개혁 성향인 보좌관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아직 개혁 추진 의제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임기는 2020년까지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시간이 충분하다. 또 중국 정부는 금융개혁 같은 핵심 분야와 현재 국영기업이 지배하는 부문에 민간기업의 진출을 허용하는 등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 필요한 개혁은 덩샤오핑이 35여 년 전 실시한 것과 같은 한두 가지 포괄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컨설팅 기업 로디엄 그룹의 임원인 대니얼 로젠은 지금 중국에 필요한 개혁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면을 아울러야 하며 어떤 면에선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이 1978년 시장을 개방한 이래 보편적인 기준에서 미진한 점이 있어도 국제사회는 선의로 봐줬다. 그러나 시진핑 정부가 지금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기적의 시절이 끝난 지금 중국인들이 장기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성장 둔화와 그에 따르는 고통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을 가질 것인가? 세계는 머지않아 그 대답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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