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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은둔의 강자

식품업계 은둔의 강자

(왼쪾) 84위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 (오른쪽) 86위 함영준 오뚜기 회장.
2년 만에 펼친 부자지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자지도에 처음 등장한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부자(父子)다.

함씨 부자는 상장사인 오뚜기와 조흥, 비상장사인 오뚜기라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흥과 오뚜기라면의 지분은 함 회장(3.97%, 24.70%)이 함 명예회장(3.01%, 10.93%)보다 많다. 하지만 그룹 지배력의 근간이 되는 오뚜기의 지분율은 함 명예회장(17.46%)이 함 회장(15.38%)보다 높다. 포브스코리아의 조사 결과 전체 자산은 고가의 오뚜기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한 함 명예회장(3487억원)이 함 회장(3461억원)보다 조금 더 많았다. 순위도 근소하게 함 명예회장(84위)이 함 회장(86위)을 앞섰다.

두 사람의 부자지도 등장이 다소 뜻밖의 일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거 포브스코리아 부자 리스트에 부자가 동시에 등장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함씨 부자의 동시 등장은 두 사람이 비슷한 지분율을 보유한 상장 계열사들의 주가가 지난 2년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 전 부자리스트를 작성할 당시 기준일로 삼았던 2012년 12월 3일 오뚜기의 종가는 22만2500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4년 12월 3일 오뚜기의 주가는 52만8000원으로 뛰어올랐다. 2년 만에 137.3%나 수직상승했다. 같은 기간 조흥의 주가도 7만5500원에서 9만 9900원으로 31.3% 상승했다. 덕분에 함씨 부자의 재산도 지난 2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오뚜기라는 회사가 대단치 않아 보이는 것도 두 사람의 신규진입을 이채롭게 만드는 요소다. 실제로 부자 지도에 오른 기업인의 회사와 비교할 때, 오뚜기의 기업가치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식품업계에서 오뚜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덩치만 보더라도 오뚜기는 CJ제일제당, 대상에 이어 식품업계 3위에 올라 있다. 동원F&B, 롯데삼강보다 규모가 크다. 다른 기업들이 모그룹을 등에 업고 비교적 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식품전문기업 오뚜기의 만만찮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내실은 더욱 좋다. 카레,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레토르트 식품(3분요리), 당면, 후추 등 오뚜기는 대충 살펴봐도 20가지가 넘는 1등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한 제품의 매출이 떨어지면 다른 제품이 그 손실을 메꿔주는 등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말 기준 9702억원에 불과했던 오뚜기의 매출은 매년 5~10%가량 상승, 2013년 기준 1조 7282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오뚜기의 고공행진은 2014년에도 이어졌다. 2014년 3분기 기준 오뚜기의 누적 매출액은 1조3495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1조3023억원) 대비 3.6% 상승했다. 경쟁업체들이 정부의 가격인상억제정책과 국제 곡물가 및 유가의 고공행진, 소비경기침체 등으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성과다.
 시장선점이 성공의 비결
오뚜기가 식품업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던 최대 비결은 발빠른 시장선점이다. 1969년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설립한 함 명예회장은 같은해 국내 최초로 카레를 선보였다. 1971년과 1972년에는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를 처음으로 들여왔다. 누구보다 빨리 들여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오뚜기는 이후에도 꾸준히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실제로 AC닐슨에 따르면 오뚜기는 2013년 말 기준 카레(82.2%), 마요네즈(84.7%), 토마토케첩(87.3%), 레토르트 식품(75.1%), 당면(73.3%), 후추(69.6) 등의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대부분 시장선점 전략을 통해 이끌어낸 결과다.

일단 선점한 시장만큼은 어떤 기업이 도전장을 던져도 지켜냈다. 1980년대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 부문의 글로벌 기업인 CPC인터내셔널, 하인즈가 국내 시장 장악에 진출했지만 결국 오뚜기에 막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식품업계 1위 기업인 CJ제일제당도 레토르트 식품 시장에 진출한 이후 카레, 즉석국, 죽 등 수십 종의 제품을 내놓았지만 오뚜기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뚜기의 대표 수출 상품은 마요네즈다. 1996년 러시아에 첫발을 내디딘 오뚜기 마요네즈는 시장점유율 70%를 넘나들며 러시아의 국민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오뚜기는 마요네즈뿐만 아니라 라면, 카레, 냉동식품등 다양한 제품을 미국, 멕시코, 중국, 일본, 뉴질랜드 등에 수출하고 있다. 2014년 3분기 기준 1295억원에 달하는 수출 실적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10%가 조금 넘는다.

함 명예회장이 201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오뚜기는 함 회장의 색으로 물들고 있다. 함영준호 출범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마케팅 강화다. 라면시장에서의 선전은 마케팅의 ‘대박’ 사례로 꼽힌다. 함 회장은 2013년 11월 10억원을 투입해 메이저리거 류현진 선수를 진라면 광고모델로 기용하고 젊은 층을 타깃으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마케팅에 나섰다.

차별화된 마케팅 덕분일까. 2014년 상반기 기준 진라면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상승했다. 2012년 10월 삼양식품을 제치고 라면시장 2위로 올라선 오뚜기는 진라면의 성공으로 3위와의 차이를 5%포인트 이상 벌렸다. 그 밖에도 함 회장은 2014년 4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공식파트너쉽을 체결하는 등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신사업에 진출, 사업다각화에 힘쓰는 것도 돋보인다. 2010년 삼화한양식품 인수를 발판으로 차(茶)류 사업을 시작한 것이나 2012년 건강기능식품브랜드 ‘네이처바이’를 론칭하고 이어 홍삼시장까지 진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뚜기의 꾸준한 상승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전문가들은 “시장선점효과로 인한 독점적 지배력과 탄탄한 사업 포트폴리오, 적극적인 영업활동 및 가격경쟁력을 감안할때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 입을 모은다. 1인 가족,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자의 외식비 절감 노력 등도 오뚜기의 상승세를 뒷받침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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