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보다 더 외로운 아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초대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3년의 애도기간 동안 아들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막후 투쟁을 통해 권력을 다졌다. ‘고난의 행군’이란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북한이 경제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은 시기를 일컫는다(원래는 1938~39년 김일성이 이끈 항일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한 것을 가리킨다). 1997년 탈상 후 김정일은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자 ‘선군’ 정책의 지도자로서 공식 등극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김정일의 사망 후 3년 동안 그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권력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그는 북한의 명예와 생존 문제에서 부친 김정일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했다.
북한 정권은 그 도전이 마치 집게처럼 양면에서 압박을 가해온다고 인식한다. 한쪽으로 북한은 유엔 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을 반인도주의 범죄로 고발한 것이 북한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이라고 본다. 다른 한쪽으로 북한은 미국 정부가 할리우드를 이용해 김정은 정권을 조롱하는 더 음흉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김정은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소니영화사의 코미디 영화 ‘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암살 기도를 극화하는 치사한 일까지 벌인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미 10년 전 그의 부친 김정일은 할리우드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에서 교활하고 외로운 독재자로 자신을 희화화한 코미디에 데뷔했다. 그 영화에서 김정일 캐릭터는 대부분 조롱의 대상으로 묘사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숙적인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을 수조에 빠뜨려 상어의 먹이로 만드는 영악함도 보여주었다(영화에서 그의 캐릭터는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을 상어 수조에 던진 뒤 “난 외로운 사람”이라며 우울함을 호소한다).
그 영화에서 김정일은 유머의 대상으로 희화화됐을 뿐 크게 치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영화를 통해 북한 독재자의 개인숭배 강요와 일탈행위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북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
그런 ‘팀 아메리카’에 비하면 소니영화사의 ‘더 인터뷰’는 좀 더 노골적이고 더욱 신랄하다. 할리우드가 그렇게 북한 조롱을 진일보시킨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북한 정권이 오히려 풍자와 조롱을 간절히 원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선전을 할리우드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던 것이다. 결국 ‘팀 아메리카’부터 ‘더 인터뷰’까지 북한 지도자가 웃음거리가 되면서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 행동이 희석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더 인터뷰’를 계기로 네 가지 주목할 만한 북한의 사태 발전을 짚어 본다.
1 북한의 과장된 위협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공격 능력이 국제사회의 저지 없이 강화됐다. ‘팀 아메리카’가 나왔을 때는 고립된 북한이 기아를 극복하느라 그 영화에 적절히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북한은 지도부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핵, 미사일, 사이버 역량을 점진적으로 갈고 닦았다.
북한은 2013년 핵과 미사일 실험을 실시했고, 2011년과 2012년 한국의 은행들을 대상으로 사이버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사이버전 능력을 갈고 닦았다. 그러다가 2014년 11월 25일 소니영화사를 해킹했다. 북한과 ‘평화의 수호자(Guardians of Peace)’를 자칭하는 북한의 친구들 또는 그 둘 중 하나는 ‘더 인터뷰’가 개봉되면 김정은의 명예가 실추된다며 직접적으로 대응했다. 파괴적인 해킹 공격이었다. 소니영화사의 당혹스러운 내부 정보를 유출시키고 ‘더 인터뷰’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을 가했다(9·11을 돌이켜보라고 그들은 경고했다).
2 분석가들은 북한 지도부의 민감한 정보와 시장경제를 북한 내부로 은밀히 침투시키면 북한 사회의 불안정을 부추겨 궁극적으로 정권이 전복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소니영화사의 사례는 북한과 그 친구들, 또는 그 둘 중 하나가 선제적인 해킹을 통해 당혹스러운 정보를 유출함으로써 상황을 반전시켰다. 소니로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

다시 말해 소니는 이번 사이버 공격으로 북한 정권을 코미디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 수익을 무색하게 만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게다가 해커들의 과장된 위협으로 ‘더 인터뷰’의 공식 개봉도 취소됐다(그러나 해커들에게 굴복한다는 비난이 일자 소니는 독립 영화관을 통한 상영과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이 영화를 전세계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3 누구의 소행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게 모호하게 만들고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것이 북한의 전형적인 전술이다. 북한은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2010년 재래식 무기로 한국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했고, 핵·미사일을 꾸준히 개발했으며, 지금은 사이버 프로그램으로 국제사회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4 4이웃나라들은 그런 행동과 관련해 북한 측에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를 두고 계속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간업체에 대한 공격으로 공격 주체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런 어려움이 더 크다. 그러나 북한 측에 확실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반드시 만들어내야만 향후 이런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인권 문제에서 만이 아니라 21세기에선 인정받을 수 없는 정권으로서 말이다. 김정은이 받고 있는 이런 도전은 김정일이 1990년대에 직면했던 어려움보다 훨씬 심각할지 모른다.
김정은은 핵무력과 경제발전이라는 병진 노선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핵, 미사일, 사이버 위협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의 통치에 대한 세계의 적대감이 더 커질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보다 더 외로울지 모른다.
북한의 사이버 전사들
북한의 해커는 어떤 사람들인가? 사이버 전사 운용은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에 비해 비용이 아주 적게 들기 때문에 북한은 사이버전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해커들은 북한의 대학에서 직접 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약 17세부터 훈련을 시작하며 대우도 잘 받는다. 해커의 가족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해커 자신만큼 후한 보상을 받는다고 장씨는 말했다.
중국과의 연관성은? 북한은 수년 전부터 해킹 활동의 중심지인 중국을 거점으로 활용했다. 북한과 중국은 중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북한 해커들을 수용하는 호텔을 공동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해커들은 중국인과 러시아인 전문가들에게 훈련 받는다. 북한은 중국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북한의 인터넷을 차단할 잠재적 능력이 있다. 미국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 능력을 무력화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서로 사이버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들어줄지 의문이다.
북한의 해킹 능력은? 국제문제 연구소 애틀랜틱 카운슬(대서양위원회)의 사이버운영기술 담당 국장 제이슨 힐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이버전의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이 경고한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해킹 사례는 없다. 우리는 1991년부터 ‘디지털 진주만 공격’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들어왔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소니영화사 해킹은 특별히 정교한 공격이 아니었으며 실제적인 피해를 입힐 파괴력도 없었다고 힐리는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번 공격을 위해 외부 해커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실행 비용이 100만∼400만 달러 정도였으리라고 추정한다.
― DENNIS LY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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