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30년 전과 닮은 유가 폭락, 그 끝은 - 그때의 부시처럼 대타협 이룰까
- 30년 전과 닮은 유가 폭락, 그 끝은 - 그때의 부시처럼 대타협 이룰까

유가 폭등은 원유개발 붐을 촉진했다. 공급이 대폭 증가했다. 30년 전 멕시코와 북해산 원유가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처럼, 지금은 미국의 셰일 오일이 혁명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2억8000만 배럴에 달했다. 금융위기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나 늘어 1986년 초 유가 폭락 당시 수준에 이르렀다. 더구나 30년 전에도 그랬듯이 에너지 효율화가 가속도를 내고 대체 에너지 개발도 활발하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 하루 평균 원유 공급량은 수요량을 200만~300만 배럴 초과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전격적인 정책 전환이 유가 폭락을 촉발했다는 점 역시 30년 전과 똑같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미국은 원유 순수출국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생산 증가 추세라면 꿈은 머지 않아 이뤄질 터였다. 지난해 9월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원유수출 금지 정책을 폐기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고, 유럽을 러시아산보다는 미국산 원유에 더 의존토록 해 안보 지렛대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원유 가격 폭락세가 지속, 심화되면서 그 꿈의 실현에는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지난해 여름에만 해도 100달러를 넘던 WTI 가격은 최근 들어 50달러 선을 뚫고 내려갔다. 급증세를 타던 미국의 원유 시추장비 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미국 원유산업 분석 업체인 ‘베이커 휴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 감소한 시추장비 수는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무디스에 따르면 앞으로 석 달간 200개 이상의 시추장비가 나가 떨어 질 전망이다.
석유회사들은 신규 투자를 경쟁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관련업종의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텍사스를 비롯한 핵심 원유생산 지역의 경제가 곧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월 5일(현지시간) “최근의 유가 하락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유가 하락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이 밝혔듯이 유가 하락은 ‘아직까지는’ 미국의 경제를 띄우는 효과가 더 크다. 원유산업이 위축되겠지만, 소비자와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이 크게 감소하면서 더 큰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유가가 일정 지점 밑으로까지 하락하면 경제 충격은 부양 효과를 능가할 수 있다. 뉴욕증시가 그 위험을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에서 시작된 주가 급락세가 다른 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OPEC 의장이 밝힌 것은 절대적인 경쟁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 석유산업에 미친 결과는 참혹했다. 실업자가 무서운 속도로 급증했다. 유휴 원유시추 장비들이 쌓여 올라갔다. 남서부지역의 금융 인프라는 지진을 일으켰다. 이 지역은 경제공황에 빠져들고 있었다.’(대니얼 예르긴
마치 2015년 미국 원유산업을 예언하는 듯한 1986년 미국 경제의 한 단면이다. 1985년 11월 31달러를 넘던 유가(WTI 선물)는 넉 달 뒤인 1986년 3월 말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해 4월 텍사스주의 한 주유소는 ‘0달러(무료)’에 휘발유를 팔기까지 했다. 당시에만 해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유가 하락이 제공한 경기 부양 효과를 만끽했다. 특유의 방임주의를 원유시장에 적용하는 데 일절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작지 않은 한 축인 원유산업은 붕괴되고 있었다. 그 위험을 간파한 사람은 정부 안에 드물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바로 조지 W.H. 부시 당시 부통령이었다. 그는 메사추세츠주에서 나고 자라 예일대학을 졸업한 전형적인 동부의 양키였지만,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성장한 남부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원유 가격이 폭락하면 미국의 석유소비가 다시 급증할 것이고 미국의 석유생산 기반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에너지 안보는 위기에 처할 것이고 무역적자는 급증할 것이다. 적어도 부시는 그렇게 우려하고 있었다. 석유산업의 붕괴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일로 여겼다.
생산자-소비자 모두 만족할 가격은…

당시의 ‘배럴당 18달러’는 원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공존 할 수 있는 황금분할이었다. 소비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상한선이었고, 생산기반이 무너지지 않을 만한 하한선이었다. 벼랑끝에 몰렸던 원유 생산자들은 참혹한 바닥을 경험하고 난 뒤였기에 새로운 기준가격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새로운 생산쿼터는 대체로 잘 준수되었으며, 유가는 20년 가까이 낮게 안정됐다.
30년 전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의 ‘자유시장 정책’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원유시장의 황금분할 가격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결국 발견하고 결정했다. 지금의 원유시장도 다시 서서히 임계점을 향해가고 있다. 자유경쟁 시장에 돌연히 맡겨졌던 가격 발견 기능은 다시 정부에게로 넘겨질 수 있다. 당시에도 지금도 원유는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30년 전 유가 폭락에 제동을 걸었던 미국의 지렛대는 ‘관세장벽’이란 채찍과 ‘중동 산유국에 대한 군사적 보호’란 당근이었다. 석유 가격이 어떻게 바닥을 찍고 안정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데에는 이런 정치적 요소를 주목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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