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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 지역균형발전에 한국경제 미래 있다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 지역균형발전에 한국경제 미래 있다

조성제 BN그룹 명예회장은 조선(造船)기자재 국산화를 이룬 주역이다. 동생 조의제 회장에게 그룹 경영을 맡기고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2011년 부산의 대표 향토기업인 대선주조를 인수해 흑자전환 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성제 BN그룹 명예회장은 기술력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여긴다. 영업이익의 30%를 R&D에 투자하는 이유다. 조 회장 뒤로 주력계열사 BIP에서 생산하는 선박용 조립식 욕실이 보인다.
“지난해만 부산 인구가 8000명 가량 줄었습니다. 큰 변동은 아니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아주 심각해요. 20~30대 인구가 8만명 줄었고, 대신 70대 이상 인구가 7만2000명 늘었습니다. 젊은 노동력이 떠나가고 그 자리에 노인들만 남은 것이죠. 360만 대도시가 점점 노령화되고 있어요.”

지난 1월 7일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BN그룹 명예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조성제(67)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려워진 부산지역 경제 상황을 얘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은 한국의 제 2도시이지만 수도권에 비해 많은규제에 갇혀있어 기업활동이 더딘데다 금융·행정지원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다. 조 회장은 “정부에서 면세나 과세 등으로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데도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100년 대계, 1000년 비전은 다름아닌 균형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제 BN그룹 명예회장은 2012년 3월, 제21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됐다. 단독으로 추천됐으니 추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조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 자신도 늘 자신을 CEO(최고경영자)가 아닌 엔지니어로 소개한다. 항도 마산에서 태어나 바다와 배가 익숙했던 그는 자연스레 부산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와 현대중공업에서 선실 부서장으로 근무했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조선기자재산업은 유명무실했다. 조선소의 선박 수주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선박 내장재 등 관련 기자재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형편이었다. 그래서 수익의 많은 부분이 해외로 다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조 회장은 “선박 내장재 대부분을 비싼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국산화를 목표로 창업에 나섰다”며 “1978년 조선 기자재 전문 생산기업인 BIP를 설립해 3년의 노력 끝에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선박 내장재 강판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사업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박 내장재 강판을 생산하려면 기계설비를 들여와야 하는데 해외 기업들이 하나같이 기계 설비 판매를 거절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심 끝에 그는 견학을 빌미로 기계를 판매하는 해외 업체들을 찾아가 기계설비 제조 공정을 눈으로 익혔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기억을 더듬어 종이에 일일이 기계설비의 구조를 메모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렸다가 수정하기를 반복해가며 기계설비를 완성시켰다. 정밀한 기계부위를 몰래 사진찍다가 쫓겨나는 수모도 적지 않았다.

귀국 후에도 기계설비를 만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끝에 결국 도면을 작성하는데 성공했다. 조 회장은 “엔지니어로서의 전문성이 회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며 어려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후 끊임없는 R&D(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BN그룹은 현재 ‘세계 1위 제품’ 4개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벽체 패널(Wall & Ceiling Panel) 부문에서는 3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차지해 글로벌 톱으로 성장했다.
 지역경제 살리기에 온 몸 던져
BN그룹은 현재 조선기자재 전문 생산기업 BIP와 컬러강판 생산기업 BN스틸을 비롯해 철강, IT, 물류와 레저, 주류 등 모두 12개의 계열사를 가진 중견기업이다. 2011년에는 향토 주류업체 대선주조를 인수해 부산시민들에게 큰 점수를 땄다. 지난해 조선경기 침체 속에서도 조선기자재업체 바칠라캐빈를 인수했고, 18도 소주인 ‘시원블루’가 부산에서 인기를 얻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출은 2013년 기준 8000억원 수준이다.

BN그룹은 지역친화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다. 지역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2008년부터 매년 대규모 오케스트라 공연인 ‘BN그룹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기업사랑음악회’를 개최해 지역 메세나를 선도하고 있다. ‘BN그룹과 함께하는 행복나눔’을 비롯해 ‘기장 문화원 효공연’ 과 ‘장애인 단체 PC기증’ 등의 사업을 진행하며, 지역 청년 예술인들의 작품 전시활동도 후원하고 있다. 또 부산이 낳은 투수 ‘고(故) 최동원 선수 동상건립기금’을 쾌척해 부산 야구팬들의 추모 열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을 하면서 부산 지역경제에 눈을 떴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부산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향토기업 대선주조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상의는 구한말이던 1889년 7월 설립돼 현재 5000여개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부산상의 회장은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 진출하지 않고 경제 수장의 역할만 하기에 지역에서는 존경받는 자리다. 넥센그룹(강병중 회장)과 세운철강(신정택 회장)처럼 오너가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면서 기업이 한 단계 도약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인지 성공한 부산의 기업인들 중에는 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 의욕을 보이는 인물들이 많다.

조 회장은 2012년 부산상의 회장에 선출되자 그룹의 실질적 경영을 동생 조의제 회장에게 맡겨 화제가 됐다. 조의제 회장은 1977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이후 그룹 비서실과 미주 금융총괄 책임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삼성 내 ‘재무통’ 출신이다. 조성제 회장은 “어정쩡하게 다리 걸치지 않고 상공회의소 회장일을 제대로 한번 해 보려고 기업 경영을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우봉 BN그룹 고문은 “부산상의 20대 회장까지 모두 회사 경영과 상의 활동을 겸했지만 조 회장은 기업 경영을 포기하고 상의 활동에만 전념했다”며 “지역 상공계에서 조 회장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 회장과 BN그룹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부산의 대표 주류업체인 대선주조 인수전을 벌이면서부터다. 2010년과 2011년 2년 동안 치러진 양보 없는 인수전에서 롯데, 대상 등 쟁쟁한 재벌그룹과 BN그룹이 대선주조 인수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한 것은 한동안 술자리 주당들의 단골 화제였다. 물론 대선주조라는 회사 자체가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는 기업이기는 하다. 대선주조가 매물로 나오게 된 결정타는 신준호 푸르밀(당시 롯데햄·우유) 회장의 ‘먹튀 행각’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개인 돈 600억원으로 인수한 대선주조를 4년 만인 2008년 4월 사모펀드인 코너스톤 애퀴티파트너스에 3600억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부산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이는 엉뚱하게 피해자인 대선주조로 몰리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그 여파로 적자 경영이 계속되자 코너스톤이 2011년, 경영권을 1700억여 원에 BN그룹에 넘기면서 대선주조도 비로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향토기업 대선주조 인수해 흑자로 전환
BN그룹은 패널, 철강, IT, 물류와 레저, 주류 등 모두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위 사진이 대선주조의 C1 소주 생산 현장이다.
조 회장은 왜 대선주조를 인수했을까? “2010년 무렵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산고 후배인 허남식 당시 부산시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부산의 유일한 소주 제조사를 다른 지역 기업에 넘길 수 없다는 부산 시민들의 염원이 있으니 꼭 인수해달라는 겁니다. 제가 이미 2002년 대선주조와 한차례 인수 협의를 진행한 바가 있어 그 기업의 사정은 잘 알고 있었지요. 먼저 사업성을 따져봤지만 ‘지역대표 향토기업을 외지 자본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가 솟아오르더군요. ‘부산 소주를 다시 부산 시민들 품으로 돌려주어야 겠다. 부산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선주조를 인수했지요.” 조 회장의 말이다.

인수 직후 BN그룹은 ‘예(16.7도)’와 ‘시원(19도)’ 소주를 앞세워 특유의 지역밀착형 마케팅을 펼쳤다. 특히 지난해 초 출시한 ‘시원블루(18도)’가 큰 인기를 끌면서 출시 4개월 만에 월 100만 병 판매를 돌파하는 등 대선주조의 주력상품이 됐다. 조 회장은 “인수 첫 해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이 들어가서 허 전 시장을 내심 원망하기도 했지만 B2B 하듯 정직, 정확, 품질로 B2C 하자고 임직원들과 다짐했고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 대선주조는 2013년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해 4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났다. 올해는 100억원 영업이익이 목표다.

“주류사업의 특성 상 시장의 전세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원블루 덕에 20% 대에 머물던 대선주조의 부산시장 점유율이 30%대까지 올랐어요. 대선주조 임직원들이 직급과 부서를 불문하고 매일 저녁 직접 판촉 활동에 나서 지역민에 진심을 다해 다가간 덕도 있고, 국내 최초로 원적외선숙성공법을 적용하는 등 기술력에서 앞선 덕도 있습니다. 이제 좀 안정이 됐으니 부산 소주시장 점유율 90%에 육박했던 대선주조의 옛 영광을 꼭 되찾고 싶어요.” 부산사랑이 남다른 조 회장의 바람이다.

2월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지역 상공계는 조용하다. 지난해 가을께만 해도 조 회장에 맞서는 후보군으로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 허용도 태웅 회장, 백정호 동성화학 회장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됐지만 출마를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제 회장 연임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조 회장 역시 연임에 대한 속내를 감추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 2012년 취임 당시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강소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는데 지난 2년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연임하게 되면) 기업을 위한 상공회의소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고 지역 경제 구심체로서 지역사회와 소통을 확대하겠다. 무엇보다 정관계와의 협력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부산 상공계의 최대 화두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일자리 확보다. 조 회장은 그동안 김해공항 가덕도 이전 등 지역현안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상의 회장 재선의 소신을 밝혀왔다. 전공을 살려 선박금융 활성화와 부산·울산·경남 등 동남권 상공계 단합 등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핵심 공약과 부산상의의 주요 사업이 일치하는 만큼 상의가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키우고 지역경제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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