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2030 POWER LEADER’ 푸드 & 와인 분야에 레스토랑 ‘정식’을 운영하는 임정식 대표가 올해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았다. 임 대표는 뉴욕 한식 레스토랑 ‘정식’을 미슐랭 가이드에 올려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셰프다.

“ ‘정’식당이 아닙니다. ‘정식’당입니다.”

임정식(36) 정식당 대표가 식당 이름에 관해 묻는 이들이 많다며 재차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가이드 2스타를 받은 셰프다. 임 대표가 뉴욕에서 운영하는 한식 레스토랑 ‘정식(JUNGSIK)’이 2014년 거둔 성과다. ‘최초’라는 수식어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한국인 셰프가 받은 첫 사례이자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이 아닌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받은 첫 번째 ‘별’이기도 하다.

전 세계 요식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미슐랭 가이드가 주는 별 2개는 무슨 의미일까? 별 한 개는 ‘표기 가격대에서 매우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별 두 개는 ‘그나라 여행을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식당’ 마지막으로 별 세개는 ‘이 식당을 가기 위해 그 나라를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임 대표의 식당은 최근 ‘2014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철 한식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요리기술을 접목해 ‘뉴코리안’이라는 그만의 스타일로 한정식의 새로운 트렌드를 불러일으키며 주목받은 그가 식당운영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은 다름 아닌 ‘콘셉트’라며 실패 경험을 소개했다.

“한국에 정식당보다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저렴한 안주 요리를 내놓는 주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망했어요. 그 가게만의 정체성이 부족했던 거죠. 그 식당과 어떤 음식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뉴욕 정식이 미슐랭 평점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뉴코리안’이라는 콘셉트 덕분이다. 그가 성공했던 메뉴부터 보자. ‘머루 푸아그라’, ‘성게 비빔밥’, ‘매생이 리조또’ 등 이름만 봐도 한식의 이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 계절마다 바뀌는 음식재료나 최근 유행을 접목해 내놓는 것도 임 대표의 몫이다. 그가 내놓은 대표적인 디저트 ‘이맘때쯤 합천은’을 보자. 장독대 모양의 초콜릿 위로 토란잎이 우산처럼 서 있는 모습을 해 ‘한국적인’ 소재로 어릴 적 우리네 얘기를 풀어내는 듯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정식당이 자신만의 요리 세계로 인정받고 유명해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임 대표는 2006년 미국 뉴욕의 명문 요리학교 CIA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요식업계에 뛰어들었다. 뉴욕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 ‘불리’와 스페인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아케라레’ 에서도 일했다. 그가 2011년 뉴욕에 ‘정식’을 차릴 때 그의 요리 경력은 만 5년이 안 된 상태였다. 뉴욕은 그에게 곁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2012년에만 해도 뉴욕 레스토랑 정식에 하루에 두 테이블 손님이나 있었을까요? 미국의여름휴가 시즌 특성상 장기 휴가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서라고 위안 삼았지만 그래도 장사가 너무 안 됐었죠.”

그러나 2013년 미슐랭 별점을 처음 받은 뒤부터는 손님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달 후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태풍 샌디가 동부를 휩쓸어 가게 문턱까지 물이 찼죠. 갑작스런 정전에다 쥐들까지 들끓었어요. 냉장고에 있던 재료를 모두 버리고 한 달이나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미슐랭 등재 기쁨이 마치 일장춘몽 같았죠.”

다시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모여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그간의 어려움을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요리를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해병대 취사병으로 서해의 한 섬에서 근무하면서 식비를 비교적 풍족하게 받았어요. 그때 재료도 직접 사고 음식을 만들면서 제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제대 후에 어학연수 가서도 제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파티를 즐겼어요. 미국 요리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죠.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많은 제 주변에 몰려들었고 이제껏 만났던 모든 이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좋아했어요. 아마도 그것이 아무리 어려워도 제가 요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힘이 아니었을까요!” 보통 유명 셰프들은 술을 즐겨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임 대표는 크고 작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오면 유명한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설렁탕집, 고깃집, 횟집 등 일반 음식점을 많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 하나 요리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더라고 했다. 지난해 말, 임 대표에게는 축하할만한 기쁜 일이 있었다. 그가 품절남이 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에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바꾼 막걸리 전문점 ‘월향’의 이여영 대표와 결혼했다. 푸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의 결혼은 그들의 업적만큼이나 업계의 화제였다고 했다.

이제 삶의 동반자를 맞은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있다. “한국 정식당을 새로 개점하는 데 온갖 신경을 썼습니다. 한동안 미국에 가보지 못해 내일 급하게 출국합니다. 규모도 커지고 사람도 더 들이니 요리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겠더군요. 그런 부분에 대해 제 아내가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어요(웃음).”

두 사람 모두 요식업계 젊은 유망주들이라 만나서도 하는 얘기는 역시 요리라고 했다. “관심사가 같으니 만났죠. 저희 둘이 요새 고민하는 아이템이 있어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요리가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죠. 아침·점심·저녁때를 가리지 않고 생각나게 만드는 음식을 찾고 있어요. 요새 이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죠. 조만간 결과물을 내놓겠습니다(웃음).”

사진 촬영을 위해 임 대표는 두 가지 소품을 챙겨왔다. 옆으로 맬 가방 하나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가죽가방이었다. 그가 먼저 소개한 큰 가방 정면에는 뉴욕의 유명한 헌책방 서점 스트랜드(Strand) 로고가 박혀있었다. “집에 요리책만 1500권이 넘어요. 주로 희귀한 요리책을 찾다 보니 미국 헌책방을 자주 돌게 되더라고요. 이 가방이 그 증거죠(웃음).” 그가 가져온 가죽 가방 안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지갑이 담겨 있었다. 임 대표는 “아내가 주문 제작 해줬다”며 깨알 같은 아내 자랑도 잊지 않았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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