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연극 같은 요리
한 편의 연극 같은 요리
르네 레드제피가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 ... 도쿄에 5주일 동안 문 여는 팝업 레스토랑의 예약 대기자 6만 명에 달해 한번에 손님 56명을 받을 수 있는 팝업(한시 운영) 레스토랑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곳에서 하루에 두 번 손님을 받는데 예약 대기자 명단에 6만 명이 올라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대기자 명단의 마지막 순서라면? 웬만큼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고서는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릴 생각이나 들겠는가?
하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유명 레스토랑 노마가 도쿄에 5주일(1월 9일~2월 14일) 동안 문을 여는 팝업 레스토랑의 예약 대기자 수는 실제로 6만 명에 달했다. 요리업계 전문 잡지 ‘레스토랑’에서 지난 5년 중 4년이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곳이다. 난 운 좋게도 그 6만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예약이 확정된 극소수에 속했다. 그래서 지난 1월 9일 노마의 도쿄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연 첫 날 그곳의 첫 식사를 맛본 첫 번째 그룹의 고객이 됐다.
노마의 창업자이자 주방장인 르네 레드제피(37)는 덴마크 출신의 요리사로 ‘뉴 노르딕(북유럽)’ 요리의 귀재다. 레드제피를 중심으로 한 몇몇 요리사가 훈연(smoking), 절임(pickling), 염지(curing, 원료육에 소금과 발색제 등을 첨가해 일정 기간 숙성시키는 제조 공정), 발효(fermenting) 등 스칸디나비아의 전통 방식을 이용해 이 지역 고유의 재료를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맛있는 요리로 재탄생시켰다. “제한(재료를 지역 생산물에 국한시키는 것을 말한다)을 통해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레드제피가 말했다.
그의 요리는 먹을 수 있는 연극이다. 접시는 무대의 배경이고 메뉴는 이야기 줄거리다. 순록이끼(reindeer moss) 튀김, 발효시킨 메뚜기, 구운 상추 주스 등 레드제피가 ‘스낵(snacks)’이라고 부르는 요리들은 너무도 획기적이어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월 잡지 ‘뉴욕’의 ‘신물나는 트렌드(Trends We’re Tired Of)’ 목록에서 레드제피의 ‘위대한 스칸디나비아 열풍(Great Scandinavian Craze)’이 1위를 차지했다(겸손한 레드제피는 “나 역시 내 이름을 듣는 데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한 평론가는 레드제피를 “자연숭배의 화신(personification of nature worship)”으로 묘사했다. 그 평론가에 따르면 자연숭배는 “요리와 종교의 구분을 무시하는 듯한 최고 수준의 요리사들이 열광하는 신념체계”다.
추종자들 사이에서 거의 신처럼 추앙 받는 레드제피의 철학은 그의 요리뿐 아니라 레스토랑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노마의 성공을 발판으로 공항에 가맹점을 개업하는 대신 노마의 영업을 3개월 동안 중단하고 부주방장부터 설거지 담당자까지 전 직원 60명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대담하고 위험한 시도였다. “우리는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고 레드제피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도쿄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도쿄는 그에게 낯선 미지의 도시였으며 음식문화가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성공에 안주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는 일종의 개혁이다.”
도쿄의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은 레드제피와 그의 팀에게 호텔 37층에 있는 레스토랑 시그니처(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한 개를 받았다)를 내줬다. 이들은 소파의 보라색 벨벳 커버와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치우고 실내를 덴마크 스타일로 꾸며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00㎞ 거리의 후지산이 바라다보이는 전망은 이 레스토랑의 큰 자랑거리다. 덴마크식과 일본식을 혼합한 퓨전 스타일은 음식과 실내장식뿐 아니라 종업원들에게서도 느껴졌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노마와 호텔 측 직원 수십 명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따뜻하게 맞아줬다.
자리에 앉아 멋진 전망을 바라보고 있자니 향긋한 주스가 와인 잔에 담겨 나왔다. 사과에 솔잎과 일본 감귤을 곁들인 주스였다. 노마에서는 와인을 제공한다. 하지만 주스 페어링(pairing, 음식에 어울리는 주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은 8년 전 레드제피가 개발한 획기적인 스타일이다. 요즘은 주스 페어링이 보편화돼서 스타벅스의 주스 제품 에볼루션까지도 웹사이트에서 ‘페어링’을 제안할 정도다.
드디어 14가지 요리 중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랑구스틴(작은 바닷가재) 한 마리가 얼음 위에 올려져 나왔는데 껍질이 꼬리 쪽부터 벗겨져 생살이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검정색 개미들이 뿌려져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투지 있게 한 입 베어 먹었는데 촉수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음식을 서빙하던 레드제피에게 바닷가재가 살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죽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바닷가재의 뇌에 바늘을 꽂아서 죽이면 죽은 뒤 3~4분 동안 마치 감전된 듯 요동을 친다”고 그가 설명했다.
그 작은 바닷가재는 마치 교류전류에 감전된 듯 보였다. 마음이 편해지는 광경은 아니었다.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이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덤벼드는 듯 보여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개미가 잔뜩 뿌려진 꼬리를 베어 먹었다. 맛은 좋았다! 랍스터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랄까? 난 노마의 지배인 제임스 스프레드베리에게 그 개미들이 자연산인지 사육된 건지 물었다. “자연산”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나가노 숲의 나무 그루터기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다음 코스를 기다리면서 레스토랑 안을 둘러봤더니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에 나온 요리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구운 켈프(해초의 일종)를 볶은 기름 위에 감귤 조각들을 돌려 담고 오키나와 고추 피클을 곁들인 요리였다. 그 감귤 조각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다음엔 그릴에 살짝 구운 토스트 위에 얼린 아귀 간을 얹은 요리가 나왔다. 토스트 밑에는 노마의 유니폼과 어울리는 옅은 회색 내프킨이 깔렸다. 얼린 간이 녹기 전에 먹는 게 좋다고 하기에 얼른 먹었다. 그러고 나서 입안을 깨끗이 해주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네 번째 코스로는 메밀 국수처럼 가늘게 썬 오징어 요리가 나왔는데 여기엔 사과-솔잎 주스가 딱 어울렸다. 서빙하는 직원이 장미 꽃잎을 띄운 솔잎 수프를 가져다 주면서 오징어를 한 가락씩 집어서 거기에 담가 먹으라고 했다.
다섯 번째 코스는 바나나 파이처럼 보였지만 실은 해초로 만든 페이스트리 위에 민물 조개와 자연산 키위로 만든 페이스트를 얹은 타르트였다. 직원들은 특히 그 조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타르트 하나에 조개 45마리가 들어갔는데 껍질을 까는 데 열세 사람이 꼬박 8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매우 복합적인 맛이 오랫동안 입안에 맴돌았다. 윌리 웡카(영화로도 나온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의 ‘영원한 알사탕’처럼 맛이 계속 변했다.
와인 소믈리에 매즈 키에페가 조개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라면 조개를 먹은 뒤엔 5분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고 그가 말했다. 키에페가 내게 또 다른 주스를 따라줬다. 익힌 순무에 유자와 블랙 커런트(까막까치밥나무) 순을 섞어 만든 주스였다. 맛이 달지 않고 꽃 향기가 났다. 키에페와 요리사들은 와인보다 주스 페어링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각각의 주스가 특정 요리를 위해 개발됐다고 한다.
레드제피는 찐 두부 요리를 가장 자신 있게 추천했다. 크림처럼 부드러운 두부 위에 자연산 호두가 뿌려져 나왔다. “두부는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전통 음식”이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먹기는 어렵지 않다.
말린 가리비 살에 너도밤나무 열매와 켈프를 곁들여 덩어리 형태로 만든 요리는 꼭 쌀로 만든 크리스피처럼 보였다.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이 요리를 먹고 나서는 오이와 해초로 만든 주스를 마셨다. 얇게 썬 늙은 호박 위에 벚나무 기름을 뿌리고 소금에 절인 벚꽃 잎을 곁들인 요리는 그날 먹은 요리 중 가장 아름다웠다. 여기엔 늙은 호박과 구스베리(서양까치밥나무) 열매를 섞어 만든 주스가 곁들여졌다. 해리포터가 호그와츠 마법학교에서 마셨을 법한 주스다.
그 다음엔 테이블 중앙의 검정색 도자기 접시 위에 놓인 검정색 ‘마늘 꽃’ 세 송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오리가미(종이 접기) 예술을 기리는 요리다. 서빙하는 직원이 그 꽃[과일포(fruit leather, 과일 퓌레를 판자 모양으로 건조시킨 것)를 접어서 만들었다]을 집어서 꽃잎 끝부터 줄기 쪽으로 먹으라고 일러줬다. 발효시킨 마늘 페이스트가 부드럽고 약간 달콤했다. 쫄깃쫄깃하고 감초 같은 맛이 났다. 도쿄에서 유명한 라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뉴욕 출신의 이반 올킨이 내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는 이 꽃을 “어른용 캔디”라고 묘사했다.
하얀 보울 안에 흰색 뿌리 채소를 돌려 담고 한가운데 붉은색 삭힌 달걀을 놓은 요리는 일본 국기를 연상케 했다. 키에페가 버섯 막테일(mocktail, 무알콜 칵테일)을 따라주면서 “수프와 차의 중간쯤 되는 음료”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흰 토끼가 앨리스에게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음식이 차갑거나 미지근했는데 뜨거운 요리가 처음으로 나왔다. 야생 오리를 통째로(머리와 발 포함) 구워 마수부사 베리(색깔과 톡 쏘는 맛이 블루베리와 비슷하다) 소스를 곁들인 요리다. 가슴살은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쉽게 얇게 저며서 몸통 위에 얹어 놓았다. 가슴살을 먹고 나자 직원들이 오리 접시를 치우면서 “탈바꿈시켜” 곧 다시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맛있는 순무로 만든 뜨거운 수프가 나왔다.
한번 더 구워진 오리 고기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다시 나왔다. 세로로 2등분된 머리가 나를 올려다봤다. 혀가 부리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제 이 식사의 남성적인 대목이 시작된 것 같았다. 분홍색 장미 꽃잎이 그리웠다.
디저트는 누룩과 노간주나무 열매로 만든 음료로 시작됐다. 그 다음엔 쌀로 만들었다는 특별한 디저트가 나왔다. 사케 찌꺼기가 섞인 그 디저트 밑바닥에 덴마크 요리에 자주 쓰이는 괭이밥 소스가 깔려 있는 걸 보니 덴마크와 일본의 공동작업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코스로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요리는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디저트 행렬의 서곡이었다. 푹 무르도록 익힌 고구마에 원당으로 만든 캐러멜을 끼얹고 야생 키위 소스를 곁들인 디저트는 너무 맛있어 접시를 핥아먹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동화의 배경처럼 보이는 이끼 위에 초콜릿을 입힌 발효 버섯과 야생 계피의 잔가지를 얹은 디저트도 인상 깊었다. 노마 요리팀은 이 버섯과 계피를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방의 숲에서 채취했다.
손님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레스토랑을 떠나자 직원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레드제피에게 이번 모험을 안데르센의 동화에 비긴다면 어떤 작품을 꼽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동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떠올랐지만 아직 말하긴 이른 듯하다. 5주일 후에 다시 묻는다면 그때 대답하겠다.”
- 번역 정경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유명 레스토랑 노마가 도쿄에 5주일(1월 9일~2월 14일) 동안 문을 여는 팝업 레스토랑의 예약 대기자 수는 실제로 6만 명에 달했다. 요리업계 전문 잡지 ‘레스토랑’에서 지난 5년 중 4년이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곳이다. 난 운 좋게도 그 6만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예약이 확정된 극소수에 속했다. 그래서 지난 1월 9일 노마의 도쿄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연 첫 날 그곳의 첫 식사를 맛본 첫 번째 그룹의 고객이 됐다.
노마의 창업자이자 주방장인 르네 레드제피(37)는 덴마크 출신의 요리사로 ‘뉴 노르딕(북유럽)’ 요리의 귀재다. 레드제피를 중심으로 한 몇몇 요리사가 훈연(smoking), 절임(pickling), 염지(curing, 원료육에 소금과 발색제 등을 첨가해 일정 기간 숙성시키는 제조 공정), 발효(fermenting) 등 스칸디나비아의 전통 방식을 이용해 이 지역 고유의 재료를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맛있는 요리로 재탄생시켰다. “제한(재료를 지역 생산물에 국한시키는 것을 말한다)을 통해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레드제피가 말했다.
그의 요리는 먹을 수 있는 연극이다. 접시는 무대의 배경이고 메뉴는 이야기 줄거리다. 순록이끼(reindeer moss) 튀김, 발효시킨 메뚜기, 구운 상추 주스 등 레드제피가 ‘스낵(snacks)’이라고 부르는 요리들은 너무도 획기적이어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월 잡지 ‘뉴욕’의 ‘신물나는 트렌드(Trends We’re Tired Of)’ 목록에서 레드제피의 ‘위대한 스칸디나비아 열풍(Great Scandinavian Craze)’이 1위를 차지했다(겸손한 레드제피는 “나 역시 내 이름을 듣는 데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한 평론가는 레드제피를 “자연숭배의 화신(personification of nature worship)”으로 묘사했다. 그 평론가에 따르면 자연숭배는 “요리와 종교의 구분을 무시하는 듯한 최고 수준의 요리사들이 열광하는 신념체계”다.
추종자들 사이에서 거의 신처럼 추앙 받는 레드제피의 철학은 그의 요리뿐 아니라 레스토랑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노마의 성공을 발판으로 공항에 가맹점을 개업하는 대신 노마의 영업을 3개월 동안 중단하고 부주방장부터 설거지 담당자까지 전 직원 60명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대담하고 위험한 시도였다. “우리는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고 레드제피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도쿄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도쿄는 그에게 낯선 미지의 도시였으며 음식문화가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성공에 안주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는 일종의 개혁이다.”
도쿄의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은 레드제피와 그의 팀에게 호텔 37층에 있는 레스토랑 시그니처(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한 개를 받았다)를 내줬다. 이들은 소파의 보라색 벨벳 커버와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치우고 실내를 덴마크 스타일로 꾸며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00㎞ 거리의 후지산이 바라다보이는 전망은 이 레스토랑의 큰 자랑거리다.
“한정된 재료로 창조성 이끌어낸다”
자리에 앉아 멋진 전망을 바라보고 있자니 향긋한 주스가 와인 잔에 담겨 나왔다. 사과에 솔잎과 일본 감귤을 곁들인 주스였다. 노마에서는 와인을 제공한다. 하지만 주스 페어링(pairing, 음식에 어울리는 주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은 8년 전 레드제피가 개발한 획기적인 스타일이다. 요즘은 주스 페어링이 보편화돼서 스타벅스의 주스 제품 에볼루션까지도 웹사이트에서 ‘페어링’을 제안할 정도다.
드디어 14가지 요리 중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랑구스틴(작은 바닷가재) 한 마리가 얼음 위에 올려져 나왔는데 껍질이 꼬리 쪽부터 벗겨져 생살이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검정색 개미들이 뿌려져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투지 있게 한 입 베어 먹었는데 촉수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음식을 서빙하던 레드제피에게 바닷가재가 살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죽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바닷가재의 뇌에 바늘을 꽂아서 죽이면 죽은 뒤 3~4분 동안 마치 감전된 듯 요동을 친다”고 그가 설명했다.
그 작은 바닷가재는 마치 교류전류에 감전된 듯 보였다. 마음이 편해지는 광경은 아니었다.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이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덤벼드는 듯 보여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개미가 잔뜩 뿌려진 꼬리를 베어 먹었다. 맛은 좋았다! 랍스터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랄까? 난 노마의 지배인 제임스 스프레드베리에게 그 개미들이 자연산인지 사육된 건지 물었다. “자연산”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나가노 숲의 나무 그루터기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다음 코스를 기다리면서 레스토랑 안을 둘러봤더니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에 나온 요리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구운 켈프(해초의 일종)를 볶은 기름 위에 감귤 조각들을 돌려 담고 오키나와 고추 피클을 곁들인 요리였다. 그 감귤 조각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다음엔 그릴에 살짝 구운 토스트 위에 얼린 아귀 간을 얹은 요리가 나왔다. 토스트 밑에는 노마의 유니폼과 어울리는 옅은 회색 내프킨이 깔렸다. 얼린 간이 녹기 전에 먹는 게 좋다고 하기에 얼른 먹었다. 그러고 나서 입안을 깨끗이 해주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네 번째 코스로는 메밀 국수처럼 가늘게 썬 오징어 요리가 나왔는데 여기엔 사과-솔잎 주스가 딱 어울렸다. 서빙하는 직원이 장미 꽃잎을 띄운 솔잎 수프를 가져다 주면서 오징어를 한 가락씩 집어서 거기에 담가 먹으라고 했다.
다섯 번째 코스는 바나나 파이처럼 보였지만 실은 해초로 만든 페이스트리 위에 민물 조개와 자연산 키위로 만든 페이스트를 얹은 타르트였다. 직원들은 특히 그 조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타르트 하나에 조개 45마리가 들어갔는데 껍질을 까는 데 열세 사람이 꼬박 8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매우 복합적인 맛이 오랫동안 입안에 맴돌았다. 윌리 웡카(영화로도 나온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의 ‘영원한 알사탕’처럼 맛이 계속 변했다.
와인 소믈리에 매즈 키에페가 조개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라면 조개를 먹은 뒤엔 5분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고 그가 말했다. 키에페가 내게 또 다른 주스를 따라줬다. 익힌 순무에 유자와 블랙 커런트(까막까치밥나무) 순을 섞어 만든 주스였다. 맛이 달지 않고 꽃 향기가 났다. 키에페와 요리사들은 와인보다 주스 페어링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각각의 주스가 특정 요리를 위해 개발됐다고 한다.
레드제피는 찐 두부 요리를 가장 자신 있게 추천했다. 크림처럼 부드러운 두부 위에 자연산 호두가 뿌려져 나왔다. “두부는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전통 음식”이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먹기는 어렵지 않다.
말린 가리비 살에 너도밤나무 열매와 켈프를 곁들여 덩어리 형태로 만든 요리는 꼭 쌀로 만든 크리스피처럼 보였다.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이 요리를 먹고 나서는 오이와 해초로 만든 주스를 마셨다. 얇게 썬 늙은 호박 위에 벚나무 기름을 뿌리고 소금에 절인 벚꽃 잎을 곁들인 요리는 그날 먹은 요리 중 가장 아름다웠다. 여기엔 늙은 호박과 구스베리(서양까치밥나무) 열매를 섞어 만든 주스가 곁들여졌다. 해리포터가 호그와츠 마법학교에서 마셨을 법한 주스다.
그 다음엔 테이블 중앙의 검정색 도자기 접시 위에 놓인 검정색 ‘마늘 꽃’ 세 송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오리가미(종이 접기) 예술을 기리는 요리다. 서빙하는 직원이 그 꽃[과일포(fruit leather, 과일 퓌레를 판자 모양으로 건조시킨 것)를 접어서 만들었다]을 집어서 꽃잎 끝부터 줄기 쪽으로 먹으라고 일러줬다. 발효시킨 마늘 페이스트가 부드럽고 약간 달콤했다. 쫄깃쫄깃하고 감초 같은 맛이 났다. 도쿄에서 유명한 라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뉴욕 출신의 이반 올킨이 내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는 이 꽃을 “어른용 캔디”라고 묘사했다.
하얀 보울 안에 흰색 뿌리 채소를 돌려 담고 한가운데 붉은색 삭힌 달걀을 놓은 요리는 일본 국기를 연상케 했다. 키에페가 버섯 막테일(mocktail, 무알콜 칵테일)을 따라주면서 “수프와 차의 중간쯤 되는 음료”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흰 토끼가 앨리스에게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음식이 차갑거나 미지근했는데 뜨거운 요리가 처음으로 나왔다. 야생 오리를 통째로(머리와 발 포함) 구워 마수부사 베리(색깔과 톡 쏘는 맛이 블루베리와 비슷하다) 소스를 곁들인 요리다. 가슴살은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쉽게 얇게 저며서 몸통 위에 얹어 놓았다. 가슴살을 먹고 나자 직원들이 오리 접시를 치우면서 “탈바꿈시켜” 곧 다시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맛있는 순무로 만든 뜨거운 수프가 나왔다.
한번 더 구워진 오리 고기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다시 나왔다. 세로로 2등분된 머리가 나를 올려다봤다. 혀가 부리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제 이 식사의 남성적인 대목이 시작된 것 같았다. 분홍색 장미 꽃잎이 그리웠다.
디저트는 누룩과 노간주나무 열매로 만든 음료로 시작됐다. 그 다음엔 쌀로 만들었다는 특별한 디저트가 나왔다. 사케 찌꺼기가 섞인 그 디저트 밑바닥에 덴마크 요리에 자주 쓰이는 괭이밥 소스가 깔려 있는 걸 보니 덴마크와 일본의 공동작업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코스로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요리는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디저트 행렬의 서곡이었다. 푹 무르도록 익힌 고구마에 원당으로 만든 캐러멜을 끼얹고 야생 키위 소스를 곁들인 디저트는 너무 맛있어 접시를 핥아먹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동화의 배경처럼 보이는 이끼 위에 초콜릿을 입힌 발효 버섯과 야생 계피의 잔가지를 얹은 디저트도 인상 깊었다. 노마 요리팀은 이 버섯과 계피를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방의 숲에서 채취했다.
손님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레스토랑을 떠나자 직원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레드제피에게 이번 모험을 안데르센의 동화에 비긴다면 어떤 작품을 꼽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동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떠올랐지만 아직 말하긴 이른 듯하다. 5주일 후에 다시 묻는다면 그때 대답하겠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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