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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인탑스 대표 - “35년 째 네 시간 자고 여섯시 출근”

김재경 인탑스 대표 - “35년 째 네 시간 자고 여섯시 출근”

치약 뚜껑을 만들던 회사가 35년을 한결같이 기술개발에 매진해 국내 최대의 휴대전화 케이스 생산 회사로 성장했다.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평생의 좌우명을 실천해 정상의 자리에 오른 김재경 인탑스 대표을 만났다.
김재경 대표는 1981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33년만에 인탑스를 매출 1조원 기업으로 일궈냈다.



지난 1월 27일, 특별한 ‘천사’가 서울 성북구 정릉3동에 나타났다. 생필품이 담긴 1004개의 선물상자를 들고 나타난 인탑스(INTOPS) 임직원들이다. 간밤에 임직원들이 손수 골라 포장한 것들이었다. 이날 정릉 3동 일대에 사는 차상위계층 1004개 가구에 상자가 배달됐다. 2013년 12월, 서울시와 함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차상위계층을 돕기 위해 ‘행복나눔 프로젝트(Happiness Sharing)’를 시작한 이후 꼭 13번째 1004개 상자 전달이었다.

행복나눔 프로젝트에는 덕(德)을 중시하는 김재경(69) 인탑스 대표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제가 인탑스의 설립자인 건 분명하지만, 오로지 저만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도움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저는 제가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인탑스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케이스 부문 1차 협력사다. 1981년 신영화학공업사로 시작해 설립 21년 만인 2002년 코스닥시장에 당당히 입성한데 이어 5000만 달러 수출 탑을 수상했다. 플라스틱 소재 사출을 기본으로 한 코팅, 증착 등 다양한 표면처리 응용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주요 사업 분야는 휴대전화 케이스와 태블릿PC 케이스, 프린터 관련 부품 생산이다. 2013년에 매출 1조527억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대표가 무일푼으로 시작해 30여년만에 일궈낸 성과였다.

 위기의 순간에 만난 삼성전자

김 대표는 1946년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리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스스로 학비를 벌기 시작해 대학교 졸업 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대학교 재학시절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동대문에서 땅콩과 오징어를 사다 서울 종로 단성사 앞에서 연탄불에 구워 팔기도 했다. 하루는 경찰 단속에 걸려 손수레를 끌고 도망가다 그만 땅콩이 바닥에 다 쏟아졌다. 쫓아오던 경찰이 땅콩을 같이 주워 자루에 담아주며 얼른 가라고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사한 그의 사정을 알게 된 경찰의 배려였다. 김 대표는 “그때로부터 벌써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눈만 감으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멋쩍게 웃었다.

직장생활의 시작은 1976년 플랜트제조업체 신화기계공업이었다. 중견기업이었기 때문에 세무·경리·회계업무뿐 아니라 현장에서 부품 만드는 일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론과 실무를 함께 접해볼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제가 다양한 분야의 실무를 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던 건 신화기계공업이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그게 중견기업의 장점입니다. 그때의 경험이 저에겐 자양분이 됐습니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을 꺼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다.

김 대표가 창업의 꿈을 키운 것도 이때였다. 한창 현장에서 사출성형(플라스틱 성형법의 하나로, 플라스틱을 가열 융해시킨 후 고압으로 금형 내에 사출해 압력을 유지한 채로 냉각 고화시켜 성형하는 방법) 일을 하며 해당 분야에 자부심과 애착이 커갈 때쯤 창업의 꿈을 이룰 시기가 왔다는 걸 느꼈단다. 그리고 1981년 서울 신도림의 임대 공장에서 자본금 5000만원, 사출기 2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게 바로 인탑스의 전신인 신영화학공업사다. “당시 창업할 돈이 없어 친구들과 신화기계공업에서 일하며 알게 된 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5000만원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사람만 열 명도 넘었습니다.” 1982년, 그는 지금 인탑스 본사가 있는 경기도 안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영화학공업사에서 처음 생산한 제품은 치약 뚜껑이었다. 그는 치약 뚜껑을 부대자루에 실어 직접 버스를 타고 호텔에 납품하곤 했다. 배달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진다. 그날도 그랬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어느 겨울날, 치약 뚜껑을 상자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납품업체로 가다 그만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넘어졌다. 넘어진 아픔보다 망가진 제품에 대한 걱정이 커 언 손으로 바닥에 흩어진 치약 뚜껑을 정신없이 상자에 옮겨 담았다. 그때 다친 허리는 겨울만 되면 추억처럼 아려온다.
 실적 하락을 도약의 발판으로
인탑스는 플라스틱 소재 사출을 기본으로 한 코팅, 증착 등 다양한 표면처리 응용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회사가 자리 잡기 시작한 건 중원전자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케이스를 생산하면서부터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시장이 규모가 큰 오디오 시장에 밀리면서 1984년부터 중원전자의 사정이 어려워졌다. 중원전자에 제품을 납품하던 신영화학공업의 매출 역시 급격하게 감소했다. 자금난으로 최악의 경영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김 대표는 그때를 기업 경영 35년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꼽았다. ‘여기서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 앞을 지나던 삼성전자 관계자가 전화기 사출을 제안해 온 것이다. “정말 삼성전자의 제안은 희망의 끈이었습니다. 당시 사출 협력사가 필요했던 삼성전자로서도 저희가 반가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김 대표는 삼성전자가 주문한 제품을 차질 없이 생산해 신뢰를 쌓아나갔다. 신뢰는 다시 기회로 돌아왔다.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 휴대전화인 ‘SH-100’을 만들면서 부품생산업체로 인탑스를 선정한 것이다. 인탑스가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가 되는 순간이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전환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시장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시장에 뛰어드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인탑스가 휴대전화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경영적 결단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때 맺어져 30년 동안 이어진 삼성전자와의 인연이 인탑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불문가지다.

삼성전자는 품질·기술·환경·조직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탑스를 지원해줬다. 특히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자금융통의 어려움을 해결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상생’이라는 말이 김 대표에게 남다르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받은 도움을 인탑스의 협력사들에 되돌려 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인탑스와 협력사 동반성장 협약식’을 열고 협력사의 애로사항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기술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6월에는 IBK기업은행과 ‘동반성장 협력 대출 협약’을 통해 저금리의 운영자금 지원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탑스의 협력사는 시중금리보다 1.5~2.8%가량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실행된 지 4개월 후인 10월 태광엔지니어링이 저금리로 3억원의 운영자금을 대출받았다.

1997년 1월, 신영화학공업사가 지금의 인탑스라는 사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영화학공업보다는 세계화에 맞는 이름이 필요했다. 사명 교체에만 무려 8개월이 걸렸다. 16개 사명 후보 중 사내외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적합한 이름을 선택한게 인탑스였다. 인탑스는 ‘Into the Tops’의 줄임말로, ‘최고를 향해 전진하며 최고의 품질로 최상의 고객 만족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탑스는 중국 웨이하이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텐진(天津) 사업장을 준공해 2002년 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현재 텐진 사업장에서는 월 500만 대의 휴대전화 케이스를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2010년에는 베트남에도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베트남은 고객사의 생산기지 진출 전략에 따라 동반 진출하게 됐습니다. 베트남은 직원들의 숙련도나 인건비 등의 측면에서 중국에 이어 제조 경쟁력이 높은 국가입니다.” 지난해는 인탑스 베트남 생산법인이 ‘베트남 과학응용기술 대표기업 TOP10’에 선정됐다. ‘베트남 과학응용기술 대표기업 TOP10’은 베트남 내에서 사업하는 기업 중 기술력과 경제발전의 기여도, 사회적 책임 등 기업의 기술력과 경영활동을 두루 평가해 선정한다. 인탑스의 베트남 생산법인은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 케이스와 웨어러블 디바이스 제조 기술력을 인정받아 10대 기업에 선정됐다. 선정된 10개 기업 중 인탑스 베트남 생산법인은 유일한 해외투자기업의 현지법인이어서 의미가 더 컸다.

삼성전자의 협력사가 된 이후 큰 어려움 없이 성장 가도를 달리던 인탑스에 최근 급제동이 걸렸다. 2013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첫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2014년 스마트폰 시장의 침체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놓았다. 인탑스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5105억40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8.8%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55억8000만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하락은 인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스마트 폰시장이 전반적으로 성장 정체기를 맞이하면서 스마트폰 관련 기업들의 매출이 일정 수준 감소세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머징마켓의 스마트폰 판매가 증가추세인 만큼 곧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대표는 매출 하락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모든 산업이 부침이 있지만,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빠른 IT 업계는 그 시기가 빠를 수 밖에 없다”며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는 “불가피한 산업의 정체를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하기보다는 향후 다가올 새로운 성장기를 대비하는 게 자신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인탑스는 부진한 실적 발표 이후 다양한 디자인 소재 개발과 공정 기술 개발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고객사인 삼성전자의 디자인 수준은 날로 발전하는 데 저희 공정 기술이나 소재가 뒤떨어진다면 그게 실적하락보다 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고객사의 디자인과 양산된 저희 제품의 싱크로율이 100%가 될 수 있도록 소재와 기술 개발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인탑스는 플라스틱 제조능력을 기반으로 한 금속과 컴포지트(합성물)등 소재의 다양화와 표면처리 기술개발, 양산능력 확대 등을 중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기업은 살아남는다
인탑스는 2013년 12월부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차상위계층을 돕기 위해 ‘행복나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월 생필품이 든 1004개 상자를 선정된 지역의 차상위계층에 전달한다.
김 대표는 “기업활동의 위기가 왔을 때 그동안 진행했던 기술개발과 제품들을 발판으로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앞으로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근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으로 하드웨어관련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고, 저희에게는 제조 능력과 노하우가 있으니 협업을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대표가 실적하락에 따른 주변의 우려에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은 ‘기본’을 중시하는 철칙 덕분이다. “기본에 충실한 기업은 위기가 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죠. 저희가 오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기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밑바탕에 깔렸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당부하듯이 기본을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철칙을 지키기 위해 35년을 하루같이 ‘네 시간 수면, 새벽 여섯시 출근’을 실천하고 있다. 장대비가 내리거나 폭설이 오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 주변을 걷거나 뛴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김 대표만의 비법이다.

2년 전, 인탑스는 창사 32년 만에 사옥을 지었다. 사옥을 짓기 전 인탑스 본사는 경기도 안양동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김 대표는 오래된 본사 건물을 보며 사업을 막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기본’에 대해 생각했다. 그만큼 그 건물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진흙밭이었던 본사 앞에는 도로가 생겼고, 주변에 좋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시대의 변화에 발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사옥을 지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35년 전 그 건물로 보인단다. 김 대표는 오늘도 ‘기본’을 생각하며 새벽 6시 경기도 안양 본사로 출근한다.

- 글 정혜선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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