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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Ⅱ] 소비자와 함께 하는 기업이 오래 간다

[창간특집 Ⅱ] 소비자와 함께 하는 기업이 오래 간다

기업 경영자에게 윤리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경영에 윤리경영이 왜 중요한지 이영면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장이 분석했다.
경영을 진두지휘하던 한진그룹 오너 3세가 국민의 비난속에 구속됐다. 검찰은 항공기 항로변경죄 등을 적용해 3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바로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상할 수 있는 재난이나 사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행동요령 매뉴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 사건은 이렇게 크게 불거지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맨주먹으로 시작했고, 외국 기업들에 비해 짧은 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기업의 최고 목표는 ‘1억불 수출의 탑’을 받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자본을 유치해야 했고,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뛰어야 했다. 그렇다보니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법도 어길 때도, 거짓말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커가는 기업을 보면서 욕심을 부려 외형을 늘리기에도 바쁘다보니 종업원 임금이나 복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동명목재(한때 세계 1위 규모의 목재 합판 가공업체로, 1980년 6월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재벌)였다. 이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매출은 수십조원, 아니 수백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도 수십조원 규모다. 제조업체 순위로 따진다면 글로벌 수준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국민들이아니 세계인들이 우리 기업을 보는 눈도 달라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은 최소한 그에 걸맞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경영을 해야 한다.
 짧은 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한국 기업
해외에서 윤리경영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윤리경영의 핵심을 흔히 ‘Tripple Bottom Line’이라고 한다. 환경(Environment), 사회문제(Social Issue), 그리고 기업지배구조(Governance)와 관련된 세 가지 책임이 윤리경영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지속가능성이 어렵다고 평가받는다. 영국석유(British Petroleum)가 좋은 예다. 매출액으로 엑손모빌 다음인 영국석유는 ‘석유를 넘어서서(Beyond Petroleum)’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국석유가 운영하는 세계 각지의 채유시설에선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했다.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 만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는 영국석유의 민낯을 보여줬다.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시추 시설이 폭발하면서 생긴 사고다. 처리에만 3년 이상이 소요되는 재난이었다. 벌금만 45억 달러(약 4조5000억원), 수질정화법 위반 제재금으로 최대 200억 달러가 부과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배상액이다. 약 490만 배럴(7억8000만 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어 지역 내 어업과 야생동물 서식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고를 예방하고, 줄일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 만에서 폭발 사고가 있기 전부터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이미 다수의 화재와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심지어 플랫폼에서 시추 파이프가 빠져서 비상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영국석유는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영국석유 입장에서 벌금과 제재금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매년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근로자만 2000여 명에 달한다. 발생률로 따지면 여전히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는 것. 사람목숨을 배상액으로 따질 수 없다.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만큼은 꼭 피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불량 부품은 끔직한 일이다. 공장의 폭발사고부터 겨울철 난방 기구에 따른 화재, 운전부주의 사고 등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인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2011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시에 소재한 ‘타즈린 패션’ 의류공장에서 불이나 직원 111명이 숨졌다. 이후 6개월 뒤에는 다카시의 외곽에 의류공장이 모여 있던 ‘라나 플라자’가 붕괴해 직원 1135명이 목숨을 잃었고, 2500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H&M(스웨덴), 베네통(이탈리아), 망고(스페인) 등 글로벌 의류업체들은 방글라데시 내 1500여개 공장에 자체적으로 고용한 점검요원을 투입해 공장의 안전을 점검했다. 월마트와 리바이스 등과 같은 글로벌 유통브랜드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방글라데시 공장과의 계약을 철회 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이 윤리경영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윤리경영이란 제도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기업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사회책임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2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발간하라는 법이나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기업들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잘못을 했으면 시인하고 대안을 제시해라
문제는 이 보고서들을 보면 잘못한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잘한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그런 큰 기업들이 계속 경영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기업도 완벽할 수는 없다. 자동차회사가 리콜을 했다고 해서 해당 자동차가 안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신뢰도가 올라갈 수 있다. 진정한 보고서라면 홍보효과 외에도 진정으로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잘못이나 사고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주주와 투자자 외에 소비자,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환경 등 기업과 이해관계를 가진 다수의 집단과 솔직한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 꼭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을 보일 때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을 이해하고 지속가능성을 지원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사회적 책임의 전부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소비자들이 기업에 봉사활동만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소위 재벌이라고 부를 때는 편법 승계와 상속을 우려하며, 골목상권까지 휘어잡는 반 상생 경영전략을 더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윤리경영 교과서를 보면 1926년에 창립된 ‘유한양행’을 윤리경영의 대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인 유일한의 어록을 보면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90년을 이어왔는지 모르겠다. 삼성, 현대, LG보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매출은 계열사를 포함해 1조원을 넘기는 규모 밖에 되지 않는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이, 소비자와 함께 하는 기업이 더뎌도 오래 갈 것이라고 믿는다.

- 이영면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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