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으로 무역압력 나선 미국 - 美 의회 ‘환율조작 제재’ 칼 갈아
환율전쟁으로 무역압력 나선 미국 - 美 의회 ‘환율조작 제재’ 칼 갈아
지난 2월 12일(한국 시간) 오후, 120엔 중반을 넘보며 상승세를 타던 엔·달러 환율이 갑작스럽게 뚝 떨어졌다. 한 외신이 전한 뉴스 때문이었다. 외신은 익명의 일본은행 관계자들을 인용, 현 시점에서 일본은행의 추가적인 완화정책은 일본 경제에 오히려 역효과라는 견해가 일본은행 안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행이 돈을 더 풀지 않는다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행이 엔화의 하락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이 보도가 나간 뒤 몇 시간 만에 엔·달러 환율은 118엔대로까지 밀려 내려가고 말았다. 며칠 간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변한 것이다.
그보다 3주쯤 전인 지난 1월 23일, 제이컵 류 미국 재무장관이 방송 인터뷰에서 ‘강한 달러’를 찬양했다. 달러화 가치가 파죽지세로 오르면서 1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던 때였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초대형 양적완화를 결정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다음날이기도 했다. “강한 달러는 좋은 일이다. 만약 강한 달러가 미국의 강한 경제의 결과물이라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류 장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려는 환율 개입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내 목적을 위한 국내적인 정책수단이 있는 반면, 불공정한 행위도 있다.” 그날 류 장관의 발언은 ‘경고’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인 지난 2월 10일, 류 장관의 발언은 좀 더 직설적으로 바뀌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그는 대놓고 경고했다. 회의에 배석한 미국 공무원에 따르면, 류 장관은 “어떠한 나라도 환율을 이용해 수출을 부양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역설했다. 류 장관은 당시 기자들에게 세계 경제를 자동차에 비유했다. “타이어 하나는 바람이 꽉 차 있는데, 다른 세 개의 타이어는 그렇지 않다. 미국이라는 타이어에만 의존한다면 운행이 편안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유럽을 지목하면서 재정을 풀어 내수부양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엔화 가치 하락세에 급제동을 걸었던 일본은행 관계자의 발언은 류 장관의 경고 바로 이틀 뒤에 등장한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달러화 가치는 류 장관이 강한 달러를 ‘조건부’로 찬양했던 지난 1월 23일 이후로 단 한번도 그날의 수준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달러화 강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과 12월 무역수지를 보면 왜 이런 흐름이 등장한 건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중 미국의 소비는 8년 만에 가장 왕성하게 증가했다. 그런데도 미국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대로 뚝 떨어져버렸다. 미국의 소비 붐은 주로 외국 기업들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4분기 중 미국의 수출이 2.8% 밖에 늘어나지 않은 반면, 수입은 8.9%나 급증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의 의회가 칼을 갈고 있다. 환율조작을 하는 나라에게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은 무역협정 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노동자 단체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입법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환율정책은 재무부에 계속 맡겨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쪽에서는 으름장을 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리는 형국이다. ‘환율조작국에 대한 무역 제재’ 논의는 지난 2월 24일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의 상원 보고에서도 핫 이슈가 됐다. 옐런 의장 역시 “미국 의회가 다른 나라의 환율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율정책은 과거에는 재무부가 전담했다. 필요한 경우 주요국들과 함께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그런 개입이 극히 드물어졌다. 그 결과 미국의 달러화 가치는 주로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됐다. 돈을 풀 때는 달러가 하락하고 돈줄을 조일 때는 강해지는 식이 됐다. 그러니 옐런 의장의 반론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만약 미국 의회가 다른 나라의 환율 움직임을 규제하려 든다면, 미국의 중앙은행 역시도 상호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미국이 2차 양적완화를 결정했을 당시, 브라질의 재무장관은 ‘환율전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다.
그날 옐런 의장의 상원 보고가 막 시작될 무렵, 달러화는 엔화와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껑충 뛰어 올랐다. 옐런 의장이 미국의 금리인상 계획을 힘주어 밝힐 것이라고 시장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옐런 의장의 발언이 쏟아지면서 달러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옐런 의장은 조기에 금리를 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너무 일찍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 회복세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금리를 올리기 위해서는 물가가 다시 안정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중앙은행에서는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가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미국 중앙은행에서는 그 반대의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다. 달러화 강세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던 연준이 이제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은 “달러화 절상이 미국의 무역을 지속적으로 위축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 너명의 위원들은 달러가 더 강해질 경우에 수반되는 위험을 지적하기도 했다’고 의사록은 기술했다. 연준이 걱정하는 ‘위험’에는 물가가 포함돼 있다. 수입물가 하락으로 해외의 디플레이션이 미국으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환율은 두 나라 통화를 교환하는 데 적용하는 비율이다. 한쪽이 강하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반대로, 한 쪽이 약하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강해진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급격한 달러화 강세는 두 가지 요소를 다 내포하고 있었다. 미국 경제의 ‘상대적’ 강세와 해외 경제의 ‘상대적’ 부진이 합작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 편차는 지속가능한 것일까? 지난 1월 FOMC는 성명서에서 ‘금리 인상 개시 시점을 정하는데 있어서 국제 동향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통화가치의 편차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식화한 천명이었다. 그 천명은 연준의 의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연준은 해외 통화의 약세에 맞서는 환율전쟁에 돌입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세계 경제는 무역과 금융거래, 특히 환율을 통해 한데 묶여 돌아간다. 일본과 유럽, 중국의 경제와 통화가치가 약해지면 미국의 경제와 통화가치도 결국 하향 평준화된다. 미국 의회와 정부, 연준의 움직임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을 더이상 곱게 봐주기 어렵다는 태도다. 특히 우리와 같은 무역흑자국들에 대한 내수부양 요구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환율전쟁’이라기보다는 ‘무역압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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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3주쯤 전인 지난 1월 23일, 제이컵 류 미국 재무장관이 방송 인터뷰에서 ‘강한 달러’를 찬양했다. 달러화 가치가 파죽지세로 오르면서 1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던 때였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초대형 양적완화를 결정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다음날이기도 했다. “강한 달러는 좋은 일이다. 만약 강한 달러가 미국의 강한 경제의 결과물이라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류 장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려는 환율 개입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내 목적을 위한 국내적인 정책수단이 있는 반면, 불공정한 행위도 있다.” 그날 류 장관의 발언은 ‘경고’에 더 가까웠다.
미 재무장관, 불공정한 환율 개입 경고
엔화 가치 하락세에 급제동을 걸었던 일본은행 관계자의 발언은 류 장관의 경고 바로 이틀 뒤에 등장한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달러화 가치는 류 장관이 강한 달러를 ‘조건부’로 찬양했던 지난 1월 23일 이후로 단 한번도 그날의 수준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달러화 강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과 12월 무역수지를 보면 왜 이런 흐름이 등장한 건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중 미국의 소비는 8년 만에 가장 왕성하게 증가했다. 그런데도 미국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대로 뚝 떨어져버렸다. 미국의 소비 붐은 주로 외국 기업들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4분기 중 미국의 수출이 2.8% 밖에 늘어나지 않은 반면, 수입은 8.9%나 급증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의 의회가 칼을 갈고 있다. 환율조작을 하는 나라에게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은 무역협정 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노동자 단체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입법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환율정책은 재무부에 계속 맡겨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쪽에서는 으름장을 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리는 형국이다. ‘환율조작국에 대한 무역 제재’ 논의는 지난 2월 24일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의 상원 보고에서도 핫 이슈가 됐다. 옐런 의장 역시 “미국 의회가 다른 나라의 환율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율정책은 과거에는 재무부가 전담했다. 필요한 경우 주요국들과 함께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그런 개입이 극히 드물어졌다. 그 결과 미국의 달러화 가치는 주로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됐다. 돈을 풀 때는 달러가 하락하고 돈줄을 조일 때는 강해지는 식이 됐다. 그러니 옐런 의장의 반론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만약 미국 의회가 다른 나라의 환율 움직임을 규제하려 든다면, 미국의 중앙은행 역시도 상호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미국이 2차 양적완화를 결정했을 당시, 브라질의 재무장관은 ‘환율전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다.
그날 옐런 의장의 상원 보고가 막 시작될 무렵, 달러화는 엔화와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껑충 뛰어 올랐다. 옐런 의장이 미국의 금리인상 계획을 힘주어 밝힐 것이라고 시장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옐런 의장의 발언이 쏟아지면서 달러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옐런 의장은 조기에 금리를 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너무 일찍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 회복세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금리를 올리기 위해서는 물가가 다시 안정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중앙은행에서는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가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미국 중앙은행에서는 그 반대의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다. 달러화 강세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던 연준이 이제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은 “달러화 절상이 미국의 무역을 지속적으로 위축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 너명의 위원들은 달러가 더 강해질 경우에 수반되는 위험을 지적하기도 했다’고 의사록은 기술했다. 연준이 걱정하는 ‘위험’에는 물가가 포함돼 있다. 수입물가 하락으로 해외의 디플레이션이 미국으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美 연준, 강한 달러 따른 수입물가 하락 걱정
그렇다면 지금 연준은 해외 통화의 약세에 맞서는 환율전쟁에 돌입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세계 경제는 무역과 금융거래, 특히 환율을 통해 한데 묶여 돌아간다. 일본과 유럽, 중국의 경제와 통화가치가 약해지면 미국의 경제와 통화가치도 결국 하향 평준화된다. 미국 의회와 정부, 연준의 움직임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을 더이상 곱게 봐주기 어렵다는 태도다. 특히 우리와 같은 무역흑자국들에 대한 내수부양 요구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환율전쟁’이라기보다는 ‘무역압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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