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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출연 공익재단 탐방(3) | LG연암문화재단 정윤석 전무 - 인재육성과 사회 복리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

기업인 출연 공익재단 탐방(3) | LG연암문화재단 정윤석 전무 - 인재육성과 사회 복리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

정윤석 LG연암문화재단 전무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가진 ‘사업보국’의 철학으로 세운 LG공익재단 업무를 지난 20여 년간 맡고 있다. 정 전무는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재단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여년간 LG연암문화재단에서 일한 정윤석 전무는 현재LG연암문화재단을 비롯해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LG연암학원 등 LG공익재단 업무 전반을 총괄해 맡고 있다.
LG연암문화재단은 1969년 12월, 고 연암(蓮庵) 구인회 LG창업주가 우리나라가 지식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인재육성의 취지에 따라 설립됐다. 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 국내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해외 연구비를 지원하는 ‘교수해외연구지원사업’, 진주시립도서관의 도서구입비 지원, 하버드 한국학연구소 지원 등 LG연암펀드 등을 통한 교육기관 지원사업, LG상 남도서관·LG아트센터 운영사업을 해왔다. 장학사업으로만 지난 45년간 총 2900여 명의 인재에게 131억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현재 LG공익재단 전체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정윤석(58) 전무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을 도와 20여 년간 재단 업무를 도맡아온 재단의 산 증인이다. 정 전무는 1992년까지 럭키금성(현 LG전자)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다 재단의 도서관 사업을 맡게 되면서 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정 전무가 맡아 진행했던 도서관이 1996년에 개관한 LG상남도서관이다. 재단이 설립되던 해인 1969년 구인회 창업주가 병마를 피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면서 구 명예회장이 재단 업무를 이어맡게 됐는데, 당시 구 명예회장은 건축가 고 김수근 씨가 설계한 고급 사저를 재단에 기증해 도서관으로 활용하게 할 정도로 재단 활동에 열정을 기울였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함께 재단 일을 같이 해온 것으로 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뿐, 우리나라가 기술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교수의 경쟁력이 대학의 경쟁력이고, 학생의 경쟁력이 그 나라의 산업과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된다.” 구 명예회장께서 제게 습관처럼 늘 했던 말씀이다. 구 명예회장은 모교인 지수보통학교에서 2년, 부산사범부속국민학교에서 3년동안 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제가 재단 일로 구 명예회장을 종종 찾아가면 당신의 교사 시절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만일 내가 기업가가 안되었다면 교직을 천직으로 삼았을 거야”라며 “내가 학교에서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할 정도로 무서웠다”고 웃으셨다. 학생들에게 왜 엄격하게 대했느냐고 여쭈었더니 “남을 배려하려면 정도(正道)를 가야하고 그렇게 하려면 ‘기본’을 익힐 수 있는 교육이 필수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지나놓고 보니 우리가 학창시절 한 번씩 겪었던 ‘천생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과학과 기술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데.


초등학교 교사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나라의 힘이 강해지려면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기술 관련 대학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 1974년 문을 연 천안연암대학은 낙후된 우리나라 농업의 수준을 선진화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1984년 개교한 연암공업대학은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 발맞춰 공업인력을 기르기 위해 설립했다. 해외연구교수 지원(1989), LG상남도서관 설립(1996), LG아트센터 건립(2000) 사업 등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 전무는 특히 LG상남도서관 사업을 추진할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구 명예회장 사저에 도서관을 짓기로 했는데, 건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다”며 “지금의 LG전자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디지털 도서관 추진 기획을 올렸고 그것이 흔쾌히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당시 계획한 디지털 도서관은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원격으로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90년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격려해 주었는데 그때 문을 연 LG상암도서관은 지금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해외 과학기술 정보와 국제학술회의 자료 등을 디지털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과학기술 정보포털 LG ELIT에서는 국내외 우수대학의 강의자료 35만 건과 170만여 건의 논문도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30일 LG연암문화재단은 ‘연암해외연구교수 증서수여식’을 개최했다. 총 대학교수 30명을 선발해 1년간 해외 연구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1989년부터 매년 이어오고 있다(


재단의 활동을 보면 교육 사업 비중이 남달라 보인다.


인재 육성이 재단의 가장 중요한 설립 배경이다. 지금도 구 명예회장은 “인재가 많이 배출돼야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실제 LG연암문화재단의 장학생 지원사업은 46년간이나 우직하게 시행됐다. 1998년까지 전국 22개 대학 2700여 명의 대학생들을 지원했고, 1999년부터는 지원대상을 대학원생으로 변경해 2014년까지 800여 명의 학생에게 지원했다. 전국의 주요 대학에서 우수한 인문사회계 및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추천받아 학기 등록금 전액과 교재비까지 지급했다.

1989년부터 27년간 이어오고 있는 해외연구교수지원도 핵심 사업이다. 지원받는 교수는 1년간 3만6000달러와 항공료 전액을 지원받는다. 지금까지 700여 명의 교수들이 혜택을 받았다. 국내 학자들이 해외학자들과 교류하고 선진 학문의 트렌드와 연구 방법론을 습득해 국내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지원 사업이 기업의 성과로 이어졌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조건을 내걸고 지원하지 않는다. 재단은 우리 사회, 그리고 국내 산업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공계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정치·문학·철학·법학 분야 등도 지원한다. 물론 첨단 소재 분야나 LG의 사업 분야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에서는 LG 계열사와 산학 협동으로 종종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나노 리본’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이태우 포항공대 교수(신소재공학과), 이황화 몰리브덴으로 얇고 휘어지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이탁희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 ‘등반로봇 개발’ 논문으로 미국기계학회(ASME)의 2014년 최우수논문상을 받은 서태원 영남대 교수(기계공학부) 등 총 30명의 대학교수가 지원을 받았다.

‘LG상남도서관’은 국내 최초로 디지털 서비스 기반을 갖추고 개관한 과학기술 분야 전문 도서관이다


대학생들을 위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있는 것으로 안다.


국내 최초·최장수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 글로벌 챌린저’가 있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1년을 맞는 이 탐방 프로그램은 탐방 결과가 우수한 팀에게 LG 입사자격을 주거나 인턴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취업기회로도 인기가 많다. 매년 대학(원)생들을 선발해 여름방학 동안 2주간에 걸쳐 자연과학, 정보통신·공학, 경제·경영, 인문·사회, 문화·예술·체육 등 5개 부문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부기관·연구소·대학·기업·사회단체 등을 탐방할 기회를 주고 있다.

정 전무의 말처럼 LG연암문화재단과 같은 많은 재단들이 대학생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0%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11일 내놓은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률은 9.2%로 1년 전보다 0.5% 포인트 상승했다.



재단이 대학생을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많이 안타깝다. 저 역시 청년실신(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 등을 포기)등 신조어도 들어봤다. 그래서 재단도 장학금 지원 사업 이외에 청년 실업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방안을 찾고 있다. 제가 1983년 LG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크게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속된 말로 ‘사람값’을 제대로 쳐주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남들이 다 찾는 좋은 일자리만 고르려고 목을 매는 젊은이들도 문제지만,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하는 중소기업도 근로자 처우개선에 먼저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LG연암문화재단은 ‘문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문을 연 ‘LG아트 센터’가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을 열어 대중화에 앞장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공헌활동) 모범 사례로도 꼽힌다. 연면적 2만3150㎡(7000평)의 공간에 객석 1100개를 갖춘 최첨단 공연장인 LG아트센터는 문화예술 창작과 교류를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사업을 벌이다보면 정 전무의 생각도, 인생도 많이 변화하지 않았을까?



재단업무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재단이 행하는 사회지원, 공익적 가치 실현의 뜻이 더없이 좋아 이곳에 어느덧 20여년을 머물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곳에 들어와 돈을 쓰는 곳에 와서 일하다보니 허투루 돈을 쓰는 것이 무섭더라. 제 동료들이 제품 개발에 밤새 매달려 만든 제품으로 번 돈이라고 생각하니 더 그랬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고, 같은 돈을 써도 그 기쁨이 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지난 20여년 간 여기서 사회공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정 전무는 지난 2009년, 시각장애인전용 전자도서서비스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시각 장애인과 고령의 노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도서관’(voice.lg.or.kr)를 이용하면 휴대전화에 텍스트를 내려받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산업훈장을 받아야 하지만 재단에서 일하니 국민훈장을 받았다”며 “LG 그룹 전체에서 국민훈장을 받은 경우는 구본무 LG그룹 회장님과 저밖에 없다”고 웃었다.



재단 업무를 총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2011년이었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장학증서 수여식이 있었다. 어느새 선배 기수 회장이 환영사를 하는 순서가 되었다. 연암장학생으로 선발됐던 한 학생이 감사하다며 갑자기 절을 올리겠다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참석했던 당시 구본무 부회장과 저는 잠시 당황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있을 정도로 가슴이 뭉클했다.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한번은 구자경 명예회장을 모시고 천암연암대학 외식산업계열 졸업작품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졸업작품전에 임하는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가 준비한 요리에 공을 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품전시장을 둘러 보면서 회장님이 갑자기 한 학생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셨다. 요리사로서 손톱 손질 등 위생을 지적하신 거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했지만 회장님은 항상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기본을 지키고 정도(正道)를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을 그렇게 강조하신 것이다.

앞으로 LG연암문화재단이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할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전무는 1969년 LG 그룹 전신인 럭키의 기업공개를 앞두고 했던 연암 구인회 창업주의 말을 빌려 대신했다. “기업이 몸담은 사회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기업만이 영속적으로 대성할 수 있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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