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전략, 새 판이 필요하다 - 10년 공든 탑 한 순간에 무너질라
FTA 전략, 새 판이 필요하다 - 10년 공든 탑 한 순간에 무너질라
지난 10년 간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14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7.8%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한국과 FTA를 체결했다. 중국·뉴질랜드와의 FTA가 발효되면 이 규모는 74.6%로 확대된다. FTA 발효국과의 교역 비중도 꾸준히 늘었다. 교역량은 2012년 35.5%에서 2014년엔 38.9%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변수가 나타났다. 주요 경제 대국들이 ‘메가(Mega) FTA’로 불리는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추진되던 메가 FTA 협상은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로 확산 중이다.
중남미를 대표하던 태평양동맹과 남미 국가들의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는 그동안 회원국을 늘리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하지만 지난 연말 두 경제블록은 점진적이고 유연한 통합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 주도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이 결성됐다. EEU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의 3개국이 모여서 시작한 경제블록이다. 지난해 새로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이 가입하며 옛 소련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경제공동체인 동아프리카경제공동체(EAC)와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도 서로 협정을 체결하며 경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3개 경제공동체 간 FTA 추진에 합의하고, 2017년 후반 FTA 발효를 목표로 논의를 시작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소속 21개국의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가 등장했다. 목적은 다른 경제공동체와 동일하다. 메가 FTA 추진을 통해 공동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FTAAP는 2016년까지 구체적인 협의안을 조율한 후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다는 로드맵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메가 FTA 추진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메가 FTA 전략을 세우며 발 빠르게 움직인 지난 2년 간 정부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개별 FTA 전략에 치중해 메가 FTA 대응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메가 FTA는 새로운 국제 통상 질서를 의미한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무역 장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메가 FTA 참여가 늦어질수록 한국이 쌓아온 FTA 선점 효과는 빠르게 사라진다. 자칫하면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FTA 경제 영토가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남미의 메르코수르는 회원국의 개별 FTA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해 칠레·페루 등과 FTA를 체결했다. 만일 태평양동맹과 메르코수르가 손을 잡고, 페루와 칠레가 여기에 가입할 경우 한국과의 FTA 는 뒷전으로 밀린다. 칠레와 페루를 교두보로 중남미 시장을 확보하려던 전략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개별 FTA에 역량을 집중해온 한국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메가 FTA에 힘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국 혼자 힘으로 거대 경제권과 다시 무역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고 털어놨다.
왜 한국은 메가 FTA 흐름을 읽지 못했을까? 먼저 지난해 체결한 한·중 FTA가 원인으로 꼽힌다. 메가 FTA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에 한·중 FTA에 힘을 쏟은 것이다. 중국과의 FTA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국은 우리의 제1교역국이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협상’에 그쳤지만, 한·중 FTA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다. 새로운 교역이 늘며 양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다른 FTA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한·중 FTA는 어느 FTA보다 우리나라에 민감한 사안이 많았다”며 “한·중 FTA가 타결됨에 따라 한·호주 FTA 등 다른 FTA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가 FTA라는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개별 FTA에 집중해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 박근혜정부의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어가며 중국과의 협상을 서둘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얻어내야 할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중 FTA의 여파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연결된다. TPP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FTA로 일본·싱가포르·호주·멕시코·캐나다·뉴질랜드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21세기 세계 무역질서를 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에 무역 패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올해 안에 TPP 타결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TPP에 대한 신속협상권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르면 2015년 상반기 중 핵심 쟁점에 합의하고 잠정 타결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2013년 말 대외적으로 TPP 가입에 관심을 표명했다. 이후 수차례 미국과 협상을 벌이며 가입 방법과 요건을 조율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협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TPP 참여국 가운데 9개국이 이미 한국과 FTA 협정을 체결했다. TPP에 가입하면 기존 국가들과 맺은 FTA 협정에 변화가 생긴다.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을 살펴보자. TPP에는 기존 FTA에서 다뤄지지 않은 조항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영기업 특혜 폐지다. 필수 소비재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국영기업은 국가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는 국영기업에 각종 보조금과 정부조달 등 각종 지원을 하게 마련이다. TPP는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에 제동을 건다.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의 규제다. 가맹국의 각종 규제를 통합한다는 조항도 있다. TPP 차원의 규제통합위원회(RCC)를 설치해 각 회원국의 규제 정책에 국제적 개입을 한다는 것. 환율조작 금지 조항 역시 미국 의회가 TPP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조항이다.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가 저평가된 탓에 자국 수출품 가격을 낮춰 다른 국가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TPP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참여국들과 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참여 여부와 방식을 결정 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를 놓고 산업계에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TPP가 발효될 경우 자동차·섬유·철강 등 일본과 겹치는 우리 주력 상품이 대부분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TPP 가입을 위해 내려놔야 하는 이익이 있다. 그럼에도 TPP 가입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면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TPP에서도 우리나라가 배제돼 있고, 향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서도 외면을 받는다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먼 산 바라보듯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참여를 망설이는 사이 TPP 가입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TPP 참여 12개국은 새로운 국가의 협상 참여를 막고, 타결 후 가입만 받기로 해 한국이 가입하기도 쉽지 않다. 설사 TPP에 가입하더라도 한국의 이익을 반영하기 어려워졌다. 12개국이 합의한 규범에 동의해야 가입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TPP를 통해 미국에서의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가입을 반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높은 기준 조건을 내세워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포함돼 있는 TPP가 타결되면 그동안 구축해온 FTA 네트워크가 무색해질 수 있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와 수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TP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PP 가입이 어렵다면 다른 메가 FTA 가입을 모색할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FTAAP다. 이들 협정은 미국의 TPP에 대항하는 성격이 짙다. 중국은 아세안과 한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RCEP를 통해 관세장벽을 없앤 뒤 FTAAP를 통해 더 넓은 범위의 무역 자유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이 RCEP에 가입하고 협정이 타결되면 약 20조 달러에 달하는 시장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진출할 수 있다. RCEP라는 거대 경제권의 일원으로 다른 메가 FTA 협정국들과의 협상에도 우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일본 사이에 이견이 크고, 한국이 미국 경제권에서 벗어나도 지금까지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다. FTAAP는 중국이 2006년부터 추진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에서 FTAAP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진 않고 있다. 미국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경제권 사이에서 판단을 미루는 사이 메가 FTA 흐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TPP 가입에 힘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김무한 한국무역협회 전무는 “우리나라가 TPP에 가입할 경우 2조1848억 달러에 달하는 TPP 12개국 중간재 시장에서 일본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기회를 갖게 된다”며 “TPP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대만산 부품소재를 대체할 수 있어 중간 재 수출 확대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TPP에서 한국이 빠진다면 연간 2조 달러에 달하는 중간재 시장을 일본이 독식할 가능성이 커진다. TPP에 참여한 12개국의 기업들이 원산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본산 제품을 선호하게 되며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TPP에 가입하면 특혜 관세 혜택을 받는 기준이 간소화돼 기업활동이 더욱 자유로워진다”며 “원산지 규정을 예로 들면 양자 FTA 방식에선 참가국 12개 나라와 각각 협정을 맺어야 하지만 TPP 가입 시에는 공통된 원산지 규정 하나만 따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국은 메가 FT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익 강화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RCEP 등 타결 때 자국 내 과잉생산 해소를 위해 중남미와 아세안을 활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중국의 2위 투자 대상지는 아세안이며, 중국이 TPP에는 참여하지 않더라도 RCEP·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을 통해 중남미를 전략적 해외투자 대상지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은 TPP를 통해 세계 경제를 미국 중심으로 이끌어 간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한국은 보다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 통상 정책의 청사진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도 메가 FTA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도 지금까지 체결한 양자 간 FTA 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메가 FTA를 통해 경제영토를 늘리고 신흥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올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TPP·RCEP·TTIP 등에 주목하면서 ‘한국도 TPP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메가 FTA의 등장으로 한국이 FTA 허브로 쌓아온 대외적인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TPP 참여를 놓고 망설이던 시간에 선진국들은 경제블록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개별 FTA 체결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자리를 잡겠다는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었다. 지금 통상 당국은 TPP국가들과의 FTA를 비롯해 10여개가 넘는 개별 FTA 협상에 대응하는 데에도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4년 12월 정부는 우리나라의 제4위 투자국인 베트남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 문제는 한·베트남 FTA 진행을 조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베트남은 TPP와 RCEP 협상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를 통해 섬유·의류 산업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TPP 타결 때 얀포워드 원칙(Yarn forward, 원사 기준 원산지 판정방식) 규정 적용에 대비해 원·부자재 산업 육성과 관련 부문 투자 유치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자국의 취약 부문인 방적과 염색가공 설비 부문에 신규·확대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베트남의 관심은 메가 FTA에 있다. 한국과의 FTA 협상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소홀해진 배경이다. 중국 역시 RCEP와 중·미 BIT(양자 투자협정) 등에 집중하느라 우리나라와 가서명 협의를 위한 일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한국이 하루빨리 메가 FTA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계속 겪게 될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남미를 대표하던 태평양동맹과 남미 국가들의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는 그동안 회원국을 늘리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하지만 지난 연말 두 경제블록은 점진적이고 유연한 통합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 주도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이 결성됐다. EEU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의 3개국이 모여서 시작한 경제블록이다. 지난해 새로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이 가입하며 옛 소련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경제공동체인 동아프리카경제공동체(EAC)와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도 서로 협정을 체결하며 경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3개 경제공동체 간 FTA 추진에 합의하고, 2017년 후반 FTA 발효를 목표로 논의를 시작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소속 21개국의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가 등장했다. 목적은 다른 경제공동체와 동일하다. 메가 FTA 추진을 통해 공동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FTAAP는 2016년까지 구체적인 협의안을 조율한 후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다는 로드맵을 만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경제블록 등장
예컨대 남미의 메르코수르는 회원국의 개별 FTA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해 칠레·페루 등과 FTA를 체결했다. 만일 태평양동맹과 메르코수르가 손을 잡고, 페루와 칠레가 여기에 가입할 경우 한국과의 FTA 는 뒷전으로 밀린다. 칠레와 페루를 교두보로 중남미 시장을 확보하려던 전략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개별 FTA에 역량을 집중해온 한국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메가 FTA에 힘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국 혼자 힘으로 거대 경제권과 다시 무역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고 털어놨다.
왜 한국은 메가 FTA 흐름을 읽지 못했을까? 먼저 지난해 체결한 한·중 FTA가 원인으로 꼽힌다. 메가 FTA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에 한·중 FTA에 힘을 쏟은 것이다. 중국과의 FTA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국은 우리의 제1교역국이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협상’에 그쳤지만, 한·중 FTA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다. 새로운 교역이 늘며 양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다른 FTA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한·중 FTA는 어느 FTA보다 우리나라에 민감한 사안이 많았다”며 “한·중 FTA가 타결됨에 따라 한·호주 FTA 등 다른 FTA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가 FTA라는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개별 FTA에 집중해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 박근혜정부의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어가며 중국과의 협상을 서둘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얻어내야 할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중 FTA의 여파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연결된다. TPP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FTA로 일본·싱가포르·호주·멕시코·캐나다·뉴질랜드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21세기 세계 무역질서를 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에 무역 패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올해 안에 TPP 타결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TPP에 대한 신속협상권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르면 2015년 상반기 중 핵심 쟁점에 합의하고 잠정 타결에 이를 전망이다.
중국과의 FTA에 매달리다…
12개국 동의해야 TPP 참여 가능
한국이 참여를 망설이는 사이 TPP 가입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TPP 참여 12개국은 새로운 국가의 협상 참여를 막고, 타결 후 가입만 받기로 해 한국이 가입하기도 쉽지 않다. 설사 TPP에 가입하더라도 한국의 이익을 반영하기 어려워졌다. 12개국이 합의한 규범에 동의해야 가입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TPP를 통해 미국에서의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가입을 반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높은 기준 조건을 내세워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포함돼 있는 TPP가 타결되면 그동안 구축해온 FTA 네트워크가 무색해질 수 있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와 수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TP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PP 가입이 어렵다면 다른 메가 FTA 가입을 모색할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FTAAP다. 이들 협정은 미국의 TPP에 대항하는 성격이 짙다. 중국은 아세안과 한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RCEP를 통해 관세장벽을 없앤 뒤 FTAAP를 통해 더 넓은 범위의 무역 자유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이 RCEP에 가입하고 협정이 타결되면 약 20조 달러에 달하는 시장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진출할 수 있다. RCEP라는 거대 경제권의 일원으로 다른 메가 FTA 협정국들과의 협상에도 우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일본 사이에 이견이 크고, 한국이 미국 경제권에서 벗어나도 지금까지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다. FTAAP는 중국이 2006년부터 추진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에서 FTAAP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진 않고 있다. 미국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경제권 사이에서 판단을 미루는 사이 메가 FTA 흐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FTA 허브 입지 이미 퇴색
세계 주요국은 메가 FT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익 강화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RCEP 등 타결 때 자국 내 과잉생산 해소를 위해 중남미와 아세안을 활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중국의 2위 투자 대상지는 아세안이며, 중국이 TPP에는 참여하지 않더라도 RCEP·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을 통해 중남미를 전략적 해외투자 대상지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은 TPP를 통해 세계 경제를 미국 중심으로 이끌어 간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한국은 보다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 통상 정책의 청사진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도 메가 FTA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도 지금까지 체결한 양자 간 FTA 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메가 FTA를 통해 경제영토를 늘리고 신흥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올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TPP·RCEP·TTIP 등에 주목하면서 ‘한국도 TPP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메가 FTA의 등장으로 한국이 FTA 허브로 쌓아온 대외적인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TPP 참여를 놓고 망설이던 시간에 선진국들은 경제블록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개별 FTA 체결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자리를 잡겠다는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었다. 지금 통상 당국은 TPP국가들과의 FTA를 비롯해 10여개가 넘는 개별 FTA 협상에 대응하는 데에도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4년 12월 정부는 우리나라의 제4위 투자국인 베트남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 문제는 한·베트남 FTA 진행을 조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베트남은 TPP와 RCEP 협상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를 통해 섬유·의류 산업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TPP 타결 때 얀포워드 원칙(Yarn forward, 원사 기준 원산지 판정방식) 규정 적용에 대비해 원·부자재 산업 육성과 관련 부문 투자 유치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자국의 취약 부문인 방적과 염색가공 설비 부문에 신규·확대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베트남의 관심은 메가 FTA에 있다. 한국과의 FTA 협상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소홀해진 배경이다. 중국 역시 RCEP와 중·미 BIT(양자 투자협정) 등에 집중하느라 우리나라와 가서명 협의를 위한 일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한국이 하루빨리 메가 FTA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계속 겪게 될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강제로 입맞춤" 신인 걸그룹 멤버에 대표가 성추행
2‘찬 바람 불면 배당주’라던데…배당수익률 가장 높을 기업은
3수험생도 학부모도 고생한 수능…마음 트고 다독이길
4‘동양의 하와이’中 하이난 싼야…휴양·레저 도시서 ‘완전체’ 마이스 도시로 변신
5불황엔 미니스커트? 확 바뀐 2024년 인기 패션 아이템
6최상위권 입시 변수, 대기업 경영 실적도 영향
7보험사 대출 늘고 연체율 올랐다…당국 관리 압박은 커지네
8길어지는 내수 한파 “이러다 다 죽어”
9"좀비버스, 영화야 예능이야?"...K-좀비 예능2, 또 세계 주목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