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의 전쟁에서 기선 잡았다
비만과의 전쟁에서 기선 잡았다
요즘 비만은 우리 몸뚱이만이 아니라 뉴스까지 지배한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쏟아진 비만 관련 뉴스를 보자.
- 영국 국가비만포럼은 정기적인 체중 측정의 의무화를 권고했다.
- 유럽사법재판소는 몸무게 160㎏인 덴마크인 보모의 해고와 관련해 비만을 장애로 규정하면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 영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 판결을 “바보 같다”고 비난하며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그 직전 유럽에서 과체중 성인이 영국보다 많은 나라는 헝가리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호주 퀸즐랜드주는 ‘비만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비만퇴치를 위한 마라톤대회를 개최했다.
-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뇌와 위를 연결하는 신경을 차단해 식욕을 억제하는 임플랜트 장치를 승인했다.
- 캐나다에선 특정 세로토닌(기분과 식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과 비만이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나쁜’ 백색 지방세포를 ‘좋은’ 갈색 지방세포로 전환하는 두 가지 분자를 발견했다.
이처럼 요즘 세계는 온통 비만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늘어나는 허리둘레에 관한 통계가 어떤 기준에서든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인구 중 25%가 비만이고 약 50%는 과체중이다. 요즘 우리는 200세를 넘본다고 하지만 비만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 사상 최초로 수명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짧아지기 시작할지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불어나는 체중으로 영향을 받는 게 수명보다 삶의 질이라는 사실이다. 비만은 기동성·관절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비만이 되면 무릎 통증, 2형 당뇨, 심장병, 특정 암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으로 따돌려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비만 성향은 흡연이나 음주와 마찬가지로 여론 재판에서 낙인 찍히고 도덕적 나약함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비만인 사람은 미래를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이나 자제력, 품위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다.
엘리트와 지식인조차 동정보다는 ‘무책임한 비대함’에 분노와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그들은 “좀 적게 먹으면 되는데 그게 왜 안될까”라고 한심한 듯이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무엇을 좀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포화지방이 그 대상이었다. 지금은 설탕을 주범으로 몰린다. 그래서 ‘설탕세’ 이야기가 나온다. 설탕에 과중한 세금을 매기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이다. 특히 설탕이 함유된 음료가 문제다. 열량이 높지만 공복을 완화시켜주진 않기 때문이다. 비만 용어로 풀자면 그런 게 ‘독성’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식품에 세금 매기기를 꺼린다. 식음료 업계 로비단체가 어느 경제에서나 세력이 막강하고 그런 세금이 언제나 서민에게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뉴욕에서 ‘설탕세’가 시도됐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보류됐다.
따라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제시되는 해결책은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에서 개인의 책임과 개인의 자유는 동전의 양면 같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먹을 자유를 누려야 마땅하지만 그 권리를 남용하면 의지가 약하고, 탐욕스러우며, 자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잠시 되돌아가 보자. 어떤 사회에서든 비만은 늘 있었다. 2만50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오동통한 여인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오스트리아 다뉴브강에 있는 빌렌도르프에서 1909년 철도 공사 때 발견됐다)를 보면 그 당시에도 그런 여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원전 4세기엔 히포크라테스가 비만에 관해 썼다. 영국이 번창하고 식량 공급이 안정되기 시작한 1700년엔 의사였던 토머스 쇼트가 ‘비만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담론(A Discourse Concerning the Causes and Effects of Corpulency)’이라는 책을 펴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비만은 희귀한 현상이었다.
비만이 가속화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일자리가 논밭에서 사무실로 이전되면서 음식이 풍부하고 저렴해졌다. 그에 따라 지방과 설탕도 흔해졌다. 그 결과 열량 섭취는 크게 늘고 열량 발산은 크게 줄었다.
환경적 요인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저렴하고 중독성 강한 고열량 패스트푸드가 보편화됐다. 컴퓨터 게임이 유행하고,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공립학교의 체육시간이 줄어들면서 도시 어린이의 운동량이 크게 떨어졌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대중교통과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 식품회사의 마케팅 기법도 갈수록 교묘해졌다.
중앙난방 장치도 운동량 감소에 한몫했다. 늘 따뜻하게 지내다 보니 체온을 높이려고 과거처럼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한편 헬스센터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늘 걸어다니고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는 것과 달리 헬스센터에서 단시간의 집중 운동은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다. 사소한 부상에도 그런 운동은 중단되기 쉽다. 게다가 식욕까지 높여준다.
그 결과 끔찍한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병원의 병상 크기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시신이 너무 커 영안실의 개인 냉장 시설이 맞지 않는다, 체격이 큰 승객을 위해 비행기 좌석을 늘여야 한다, 비만 청소년이 외출하려고 들것에 실려 나간다, 어른 몸집이 너무 커 집 현관문을 빠져나가지 못해 집에 갇혀 산다. ...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과도한 비만이 가장 큰 문제지만 과체중이거나 그리 심하지 않은 비만도 크게 늘고 있다. 그들이 갈수록 뚱뚱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비만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영양과다가 심해지면서 ‘이상적인’ 체중(체질량지수 BMI 18~25)이 지금은 영양실조처럼 보인다. 비만이 만연하니 우리 눈도 거기에 적응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려고 영국의 ‘비만과의 전쟁’ 사령탑을 방문했다. 케임브리지대학 웰컴 트러스트 대사의학 연구소다. 아일랜드 출신 스티븐 오라힐리 교수가 책임자다.
2008년 애든브루크 병원 곁에 세워진 그 연구소의 1층은 당뇨환자 진료소다. 그곳의 소아·성인 환자는 임상시험에 자주 참여한다. 2층에는 닉 웨어럼 교수가 운영하는 공중보건부가 있다. 일반인의 비만 퇴치 방안을 연구하는 곳이다. 지난 1월 웨어럼 교수는 33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20분만 운동해도 조기사망 확률을 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었다. 운동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연구소 2개 층에서는 오라힐리 교수가 이끄는 과학자 19명이 비만의 모든 과학적 측면을 연구한다. 비만과 관련된 유전자, 태아 시기에 일어나는 현상, 하루 주기로 일어나는 현상 등. 비만 문제가 갈수록 커지면서 기적의 약(세계를 다시 날씬하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의 탄환) 개발이 학계나 관련 업체의 지상최대 목표가 됐다. 수백만 명의 목숨과 수십억 달러가 걸린 문제로 비만의 해결책을 찾는 은밀한 군비경쟁이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오라힐리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명성을 감안하면 그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인물일지 모른다.
그는 “약으로 비만수술(위절제 또는 위밴드)의 효과를 모방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식사 후 분비되는 포만 호르몬의 효과를 모방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약, 또는 그런 호르몬의 양을 증가시키는 약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는 자신이 실시하는 임상시험의 세부 사항에 관해선 함구했다. 어느 제약사와 협력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다른 팀들은 별로 유망하지 않아도 서둘러 감질나는 정보를 내놓지만 오라힐리 교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비만 수술은 환자가 포만감을 갖도록 한다. 하지만 그런 수술은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들며 획일적이라 개인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 포만 호르몬 수치를 높여 ‘배가 부르다’는 가짜 신호를 뇌에 보내는 약이 개발된다면 그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오라힐리 교수가 말을 아끼는 것을 보니 그런 약의 개발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배가 부르다고 느껴야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 의학적으로 포만감을 유도할 수 있다면 비만이라는 공룡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라힐리 교수는 수술보다 약이 더 나은 또 다른 점은 개인 맞춤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인 사람 모두가 위절제나 위밴드 수술을 할 순 없다. 하지만 과식을 하지 않도록 개인 특성에 맞게 호르몬을 혼합한 약을 복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약이 비만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오라힐리 교수 팀은 비만의 모든 측면을 연구한다. 오라힐리 교수의 동료로 유전학자인 가일스 여 박사는 우리가 비만을 잘못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과식하는 사람을 두고 비난하는 대신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먹는 이유가 정확히 뭘까?”
여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의 식습관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인간은 번식이 가능할 정도로 오래 살아남도록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약 50년 전까지는 늘 식량이 부족했다. 농경사회 이전엔 우리가 야생에서 동물을 잡아먹었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단 먹어야 기아에 대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유전자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라고 우리에게 지시한다. 그 목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크게 들린다.
유전학의 맥락에선 50년이란 눈을 한 번 깜짝할 아주 짧은 시간이다. 따라서 식량이 갑자기 풍부해진 환경에 우리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여 박사의 말대로 “우리 몸은 야위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가 불가능하다. 비만이 되면 심장병과 암에 걸려 일찍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우리 유전자와 환경은 치명적인 부조화를 이룬다. 과거엔 극소수만 과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선진국 인구 대다수가 늘 과식한다. 물론 모두가 뚱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배고픔을 적게 느끼는 사람은 늘씬한 체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원시시대엔 뚱뚱한 사람이 더 진화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 같은 유형은 사자의 밥이 됐을 것”이라고 여 박사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나 비만의 유전학적 접근법은 인기가 없다. 여 박사는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만찬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비만 환자에게 유전자를 탓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사망을 앞둔 비대한 당뇨 환자가 유전자를 탓한다면 고통당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하지만 유전학을 무시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 박사가 보기엔 적게 먹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강인한 게 아니라 단지 많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다. 오라힐리 교수 연구팀은 초고도 비만 또는 저체중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 사례를 연구하면 좀 더 일반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 박사의 동료인 사다프 파루키 교수는 초고도 비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한다. 물론 우리는 소모하는 열량보다 섭취하는 열량이 더 많기 때문에 살이 찐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하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에 ‘영국에선 어린이가 비만이면 부모가 체포될 수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 동부 노퍽주에서 몸무게 95㎏인 소년(11)의 부모가 실제로 체포됐다. 파루키 교수는 “초고도 비만을 우리 대다수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라힐리 교수도 너무 배가 고파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날 것으로 바로 먹거나 쓰레기통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를 씹는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자녀가 너무 살쪘다고 부모에게서 자녀를 빼앗아 간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고 파루키 교수가 말했다. 자녀가 극단적인 비만일수록 유전자가 아주 강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피폐한 라이베리아와 파키스탄 시골에선 어린이가 영양실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런 곳에서도 극단적으로 비만인 어린이가 있다. 그건 절대 부모 탓이 아니라고 파루키 교수는 말했다. 세 살배기가 36㎏이나 되도록 누가 계속 먹이겠는가? 부모라면 잘 알 듯이 아이는 원하는 것만 먹는다. 파루키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시달리는 극단적인 어린이 비만을 연구한다. 그 연구 결과는 공복감과 포만감에 관한 뇌의 다른 결함을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오라힐리 교수는 ‘극단적 대사 형질형(희귀한 유전자 결함)’ 연구로 선천성 렙틴 결핍증을 가진 어린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식욕 억제 호르몬이다. 음식을 섭취하고 나면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가 체중 때문에 거의 휠체어에 의지하는 어린이에게 렙틴을 처방하자 정상 체중으로 돌아갔다.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렙틴은 만성적으로 심하게 결핍된 어린이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파루키 교수는 사회가 타인을 너무도 잘 비난한다고 말했다.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세 살짜리 극단적인 비만아의 경우 유전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쟁에 휘말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환자를 돕고 싶었을 뿐이다.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낙인 때문이었다. 대중은 사회 전체적인 문제와 특이한 극단 비만을 혼동한다. 아이가 비만이면 무조건 부모가 아이를 하루 10번 맥도널드 가게에 데려간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비만은 생물학적 문제다. 체중 문제만으로 아이를 부모에게서 빼앗아선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가 비만이면 자녀도 비만인 경우가 많다. 파루키 교수는 비만의 유전적 요인이 40~70%라고 추정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식욕과 대사 등 비만 성향의 대부분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는다는 뜻이다. 비만의 유전적 요인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지금 오라힐리 교수는 래브라도 개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팀은 케임브리지대학 수의학과와 합동으로 일부 래브라도 개가 다른 개보다 더 공복을 많이 느끼는 이유를 연구한다. 잘 되면 비만인 래브라도 개의 치료법을 찾을 뿐 아니라 인간의 비만 퇴치에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오라힐리 교수는 비만의 주범을 지목하라고 한다면 식품유통 혁명이라며 “지금처럼 소득의 아주 적은 부분으로 그렇게 많은 식품을 구입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할인매장이 크게 늘었고 제공되는 식품의 양도 많아졌다. 팔뚝만한 크루아상, 버킷으로 파는 팝콘과 콜라 등. 여 박사가 말하듯이 5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비만이 사라지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고혈압 치료처럼 비만 치료도 다면적이다. 오라힐리 교수는 그래프를 그렸다. 비만도 혈압처럼 정상 범위가 있고 ‘정상’이 ‘과도’로 기울어지는 다소 임의적인 한계점이 있다. 요즘 혈압은 관리가 가능해졌다. 나트륨의 위험이 널리 알려져 소금 섭취가 줄었고, 혈압을 조절해주는 스태틴 같은 약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병원은 뇌졸중 같은 고혈압 부작용에 시달리는 환자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비만도 다양한 환경적·약학적 처치로 관리 가능해질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열쇠는 유전자 치료에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위우회술(위절제술) 효과를 모방하는 마법의 약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바츠 앤 런던 의치대 연구팀은 5년 뒤면 그런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오라힐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위밴드와 위풍선(풍선 캡슐을 먹은 후 풍선에 질소를 넣고 3개월 후 제거하는 방식)은 실제적 효과가 없으며 다른 수술과 함께해선 안 된다. 위우회술은 효과가 있다. 섭취한 음식이 바로 장 아래로 더 내려가 배가 찼다고 뇌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수술이다. 비용도 많이 든다.”
제약회사들과 합동으로 연구하는 오라힐리 교수는 자신의 팀을 군 정보부대로, 제약사를 무기로 간주한다. 과거에 다른 약도 나왔지만 안전한 약은 효과가 없었고, 효과적인 약은 안전하지 못했다. 그의 유망한 초기단계 임상시험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비만이 고혈압처럼 쉽고 저렴한 치료가 가능하며 목숨을 위협하지 않게 되는 것”이 그 목표다.
오라힐리 교수는 비만인 사람에게 선입견이 없으며 매우 동정적이다. “날씬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게 아니다. 그들은 운 좋게 비만 성향이 적을 뿐이다. 운 나쁜 사람이 무책임한 게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다를 뿐이다. 우리는 신체 내부에서 무엇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암에 걸리면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떤 조치든 취한다. 그러나 비만은 암과 달리 우리를 아주 서서히 죽여 시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검증된 안전한 방법만 쓴다.” 또 도덕적인 측면 때문에 비만 연구는 재정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그는 근년 들어 비만의 급속한 증가를 보여주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증가세를 멈추는 듯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가 비만으로는 치닫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영국 정부도 그 점에 주목해 설탕세를 성급히 부과하기를 꺼린다. 오라힐리 교수는 ‘설탕세’를 원칙적으론 지지하면서도 식품회사들이 건강한 식품이 수익성도 좋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조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학교 점심시간에 가당 음료를 금지하자 학생의 체중이 줄었다. 오라힐리 교수는 “마술이 아니라 단순히 열량 섭취를 줄인 것뿐”이라고 말했다. 가당 음료는 포만감을 주지 않으며 ‘텅 빈 칼로리(empty calories, 영양가는 없고 열량만 높은 식품)’여서 특히 위험하다.
게다가 설탕은 식욕을 왜곡한다. 여 박사는 “사람들은 배가 불러 으깬 감자는 더 못 먹어도 디저트는 반드시 먹는다”고 말했다.
오라힐리 교수는 최근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은 열량이 같아 체중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같지만 우리 몸에는 과당이 더 나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체내에서 과당은 포도당과 다르게 처리된다. 그 결과 쥐 실험에서 과당이 많은 먹거리는 혈중 지질 수치와 인슐린 저항, 요산 수치를 높이고 고혈압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포도당은 실질적으로 신체에 에너지를 전달하며 신진대사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하는 ‘좋은 당’이다. 반면 과당은 신체기관 중 간에서만 분해돼 포도당보다 훨씬 더 많은 지방 생성을 유도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라힐리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물론 포도당과 과당 두 가지 모두 과잉 섭취하면 체중이 비슷하게 불어난다. 그러나 과당(설탕과 고과당시럽에 들어 있다)을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포도당의 과다 섭취보다 대사가 더 나빠진다는 증거가 있다. 설탕이 들어 있는 음료의 섭취를 억제하는 정책이 공중보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추가적인 증거다.”
따라서 같은 당이라도 어떤 것은 건강에 더 나쁘다. 그러나 또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토니 비달-푸이그 교수는 “살찌면 무조건 나쁘고 야위면 무조건 좋다는 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지방이라고 전부 같지는 않다. 내부지방(내장지방 등)은 외부 지방(피하지방)보다 더 위험하다. 오라힐리 교수 팀은 체중 200㎏인 사람이 80㎏인 사람보다 더 건강할 수 있는 이유를 조사하고 있다. “지방조직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지방은 근육, 심장, 간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오라힐리 교수가 가진 두 번째 의문이다(첫 번째 의문은 어떤 사람은 비만이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유였다). 다시 말해 과도한 체중이 어떤 때는 질병으로 이어지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뭘까?
비달-푸이그 교수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나올지 모른다. 어쩌면 식습관, 음식, 운동보다 온도 같이 기본적인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우리 몸엔 백색과 갈색 두 가지 지방이 있다. 백색지방은 비활성으로 그대로 옆구리와 엉덩이에 차곡차곡 쌓이지만 갈색지방은 열량을 소모하고 열을 내도록 활성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백색지방은 과잉 에너지를 중성지방으로 저장하고, 갈색지방은 저장된 에너지를 열로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생아는 체온저하를 막기 위한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갈색지방을 비교적 풍부하게 보유하지만,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과잉 에너지는 백색지방으로 저장된다. 따라서 성인의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비만을 치료하는 매력적인 치료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저온에 노출되면 백색지방이 갈색지방처럼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앙난방으로 실내가 따뜻하면 우리가 몸을 덜 움직여 열량 소모가 적지만 실내온도가 낮으면 체온을 올려주려고 열량을 소모해주는 갈색지방의 활동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좀 더 낮은 실내온도에서 생활함으로써 갈색지방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오라힐리 교수는 말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아니면 추위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이 먹어 효과가 없을지 보여주는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버드대학 줄기세포연구소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과학자들은 지난해 말 ‘나쁜’ 백색지방을 ‘좋은’ 갈색지방으로 바꿀 수 있는 두 가지 화합물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마법의 약’ 개발로 이어질 첫걸음이 될지 모른다. 한 가지는 이미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라 새로운 개발이 필요 없지만 면역체계를 손상할 수 있어 비만 치료에 직접 사용되려면 아직 멀었다.
하버드대학의 채드 코완 부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화합물을 장기 복용하면 면역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에선 진전이 느리다는 게 좋은 소식도 되고 나쁜 소식도 된다. 개념 입증만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편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팀은 뇌에서 당을 원하게 하는 글루코키나제 효소가 비만 치료제 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페리얼 칼리지의 제임스 가디너 교수는 “뇌에서 에너지 섭취 전반이 아니라 특정 영양소에 반응하는 시스템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섭식할 때 열량만 따지지 말고 다른 영양소도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글루코키나제의 활동을 증가시키자 일반 먹거리보다 포도당을 더 많이 섭취했다. 이런 욕구를 약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면 당 섭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초 캘리포니아주 라홀라 소재 소크연구소 팀은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논문에서 ‘가상 음식’처럼 작용하는 약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실험에서 쥐의 비만을 줄였다). 오라힐리 교수는 그 논문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한 것처럼 그 세포를 속일 수 있다면 식욕을 줄여 안전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 물론 흥미로운 착상이지만 잘해야 실험쥐에서 효과가 있어 보이는 약의 일부만이 환자 치료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대를 부풀리는 발표가 계속 나오지만 아직은 대부분 비만인 사람보다 비대한 쥐에게 더 좋은 소식일 뿐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비만 연구는 오라힐리 교수팀에 국한되지 않는다. 2층에 연구실이 있는 닉 웨어럼 교수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집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비만 유행병의 원인은 개인의 비만 원인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웨어럼 교수는 우리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대상의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그는 테이크아웃 음식 노출의 중요성을 연구한 논문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발표했다. 테이크아웃 가게가 많을수록 주민 전체의 체중이 증가한다는 게 골자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땅이 평평하고 넓은 나라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과 함께 생각해 보면 그 핵심이 드러난다. 사람은 남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이든 하려 한다. 따라서 생활습관을 바꾸라고만 말하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지 모른다. 웨어럼 교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섭식을 꼽을 수밖에 없지만 환경과 사회 기반시설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마법의 약, 유전자 연구, 설탕세, 자전거 도로 건설, 중앙난방의 온도 낮추기, 교육, 동정심 사이의 어디에선가 오라힐리와 웨어럼 같은 과학자들이 친절과 독창성으로 우리의 비만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해 마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비만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 될 것이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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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국가비만포럼은 정기적인 체중 측정의 의무화를 권고했다.
- 유럽사법재판소는 몸무게 160㎏인 덴마크인 보모의 해고와 관련해 비만을 장애로 규정하면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 영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 판결을 “바보 같다”고 비난하며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그 직전 유럽에서 과체중 성인이 영국보다 많은 나라는 헝가리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호주 퀸즐랜드주는 ‘비만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비만퇴치를 위한 마라톤대회를 개최했다.
-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뇌와 위를 연결하는 신경을 차단해 식욕을 억제하는 임플랜트 장치를 승인했다.
- 캐나다에선 특정 세로토닌(기분과 식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과 비만이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나쁜’ 백색 지방세포를 ‘좋은’ 갈색 지방세포로 전환하는 두 가지 분자를 발견했다.
이처럼 요즘 세계는 온통 비만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늘어나는 허리둘레에 관한 통계가 어떤 기준에서든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인구 중 25%가 비만이고 약 50%는 과체중이다. 요즘 우리는 200세를 넘본다고 하지만 비만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 사상 최초로 수명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짧아지기 시작할지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불어나는 체중으로 영향을 받는 게 수명보다 삶의 질이라는 사실이다. 비만은 기동성·관절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비만이 되면 무릎 통증, 2형 당뇨, 심장병, 특정 암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으로 따돌려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비만 성향은 흡연이나 음주와 마찬가지로 여론 재판에서 낙인 찍히고 도덕적 나약함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비만인 사람은 미래를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이나 자제력, 품위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다.
엘리트와 지식인조차 동정보다는 ‘무책임한 비대함’에 분노와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그들은 “좀 적게 먹으면 되는데 그게 왜 안될까”라고 한심한 듯이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무엇을 좀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포화지방이 그 대상이었다. 지금은 설탕을 주범으로 몰린다. 그래서 ‘설탕세’ 이야기가 나온다. 설탕에 과중한 세금을 매기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이다. 특히 설탕이 함유된 음료가 문제다. 열량이 높지만 공복을 완화시켜주진 않기 때문이다. 비만 용어로 풀자면 그런 게 ‘독성’이다.
비만의 시초
따라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제시되는 해결책은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에서 개인의 책임과 개인의 자유는 동전의 양면 같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먹을 자유를 누려야 마땅하지만 그 권리를 남용하면 의지가 약하고, 탐욕스러우며, 자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잠시 되돌아가 보자. 어떤 사회에서든 비만은 늘 있었다. 2만50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오동통한 여인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오스트리아 다뉴브강에 있는 빌렌도르프에서 1909년 철도 공사 때 발견됐다)를 보면 그 당시에도 그런 여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원전 4세기엔 히포크라테스가 비만에 관해 썼다. 영국이 번창하고 식량 공급이 안정되기 시작한 1700년엔 의사였던 토머스 쇼트가 ‘비만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담론(A Discourse Concerning the Causes and Effects of Corpulency)’이라는 책을 펴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비만은 희귀한 현상이었다.
비만이 가속화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일자리가 논밭에서 사무실로 이전되면서 음식이 풍부하고 저렴해졌다. 그에 따라 지방과 설탕도 흔해졌다. 그 결과 열량 섭취는 크게 늘고 열량 발산은 크게 줄었다.
환경적 요인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저렴하고 중독성 강한 고열량 패스트푸드가 보편화됐다. 컴퓨터 게임이 유행하고,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공립학교의 체육시간이 줄어들면서 도시 어린이의 운동량이 크게 떨어졌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대중교통과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 식품회사의 마케팅 기법도 갈수록 교묘해졌다.
중앙난방 장치도 운동량 감소에 한몫했다. 늘 따뜻하게 지내다 보니 체온을 높이려고 과거처럼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한편 헬스센터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늘 걸어다니고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는 것과 달리 헬스센터에서 단시간의 집중 운동은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다. 사소한 부상에도 그런 운동은 중단되기 쉽다. 게다가 식욕까지 높여준다.
그 결과 끔찍한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병원의 병상 크기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시신이 너무 커 영안실의 개인 냉장 시설이 맞지 않는다, 체격이 큰 승객을 위해 비행기 좌석을 늘여야 한다, 비만 청소년이 외출하려고 들것에 실려 나간다, 어른 몸집이 너무 커 집 현관문을 빠져나가지 못해 집에 갇혀 산다. ...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과도한 비만이 가장 큰 문제지만 과체중이거나 그리 심하지 않은 비만도 크게 늘고 있다. 그들이 갈수록 뚱뚱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비만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영양과다가 심해지면서 ‘이상적인’ 체중(체질량지수 BMI 18~25)이 지금은 영양실조처럼 보인다. 비만이 만연하니 우리 눈도 거기에 적응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려고 영국의 ‘비만과의 전쟁’ 사령탑을 방문했다. 케임브리지대학 웰컴 트러스트 대사의학 연구소다. 아일랜드 출신 스티븐 오라힐리 교수가 책임자다.
2008년 애든브루크 병원 곁에 세워진 그 연구소의 1층은 당뇨환자 진료소다. 그곳의 소아·성인 환자는 임상시험에 자주 참여한다. 2층에는 닉 웨어럼 교수가 운영하는 공중보건부가 있다. 일반인의 비만 퇴치 방안을 연구하는 곳이다. 지난 1월 웨어럼 교수는 33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20분만 운동해도 조기사망 확률을 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었다. 운동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연구소 2개 층에서는 오라힐리 교수가 이끄는 과학자 19명이 비만의 모든 과학적 측면을 연구한다. 비만과 관련된 유전자, 태아 시기에 일어나는 현상, 하루 주기로 일어나는 현상 등.
비만을 치료하는 약이 관건
그는 “약으로 비만수술(위절제 또는 위밴드)의 효과를 모방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식사 후 분비되는 포만 호르몬의 효과를 모방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약, 또는 그런 호르몬의 양을 증가시키는 약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는 자신이 실시하는 임상시험의 세부 사항에 관해선 함구했다. 어느 제약사와 협력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다른 팀들은 별로 유망하지 않아도 서둘러 감질나는 정보를 내놓지만 오라힐리 교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비만 수술은 환자가 포만감을 갖도록 한다. 하지만 그런 수술은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들며 획일적이라 개인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 포만 호르몬 수치를 높여 ‘배가 부르다’는 가짜 신호를 뇌에 보내는 약이 개발된다면 그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오라힐리 교수가 말을 아끼는 것을 보니 그런 약의 개발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배가 부르다고 느껴야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 의학적으로 포만감을 유도할 수 있다면 비만이라는 공룡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라힐리 교수는 수술보다 약이 더 나은 또 다른 점은 개인 맞춤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인 사람 모두가 위절제나 위밴드 수술을 할 순 없다. 하지만 과식을 하지 않도록 개인 특성에 맞게 호르몬을 혼합한 약을 복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약이 비만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오라힐리 교수 팀은 비만의 모든 측면을 연구한다. 오라힐리 교수의 동료로 유전학자인 가일스 여 박사는 우리가 비만을 잘못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과식하는 사람을 두고 비난하는 대신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먹는 이유가 정확히 뭘까?”
여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의 식습관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인간은 번식이 가능할 정도로 오래 살아남도록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약 50년 전까지는 늘 식량이 부족했다. 농경사회 이전엔 우리가 야생에서 동물을 잡아먹었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단 먹어야 기아에 대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유전자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라고 우리에게 지시한다. 그 목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크게 들린다.
유전학의 맥락에선 50년이란 눈을 한 번 깜짝할 아주 짧은 시간이다. 따라서 식량이 갑자기 풍부해진 환경에 우리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여 박사의 말대로 “우리 몸은 야위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가 불가능하다. 비만이 되면 심장병과 암에 걸려 일찍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우리 유전자와 환경은 치명적인 부조화를 이룬다. 과거엔 극소수만 과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선진국 인구 대다수가 늘 과식한다. 물론 모두가 뚱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배고픔을 적게 느끼는 사람은 늘씬한 체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원시시대엔 뚱뚱한 사람이 더 진화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 같은 유형은 사자의 밥이 됐을 것”이라고 여 박사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나 비만의 유전학적 접근법은 인기가 없다. 여 박사는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만찬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비만 환자에게 유전자를 탓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사망을 앞둔 비대한 당뇨 환자가 유전자를 탓한다면 고통당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하지만 유전학을 무시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 박사가 보기엔 적게 먹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강인한 게 아니라 단지 많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다. 오라힐리 교수 연구팀은 초고도 비만 또는 저체중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 사례를 연구하면 좀 더 일반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 박사의 동료인 사다프 파루키 교수는 초고도 비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한다. 물론 우리는 소모하는 열량보다 섭취하는 열량이 더 많기 때문에 살이 찐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하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에 ‘영국에선 어린이가 비만이면 부모가 체포될 수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 동부 노퍽주에서 몸무게 95㎏인 소년(11)의 부모가 실제로 체포됐다. 파루키 교수는 “초고도 비만을 우리 대다수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라힐리 교수도 너무 배가 고파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날 것으로 바로 먹거나 쓰레기통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를 씹는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자녀가 너무 살쪘다고 부모에게서 자녀를 빼앗아 간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고 파루키 교수가 말했다. 자녀가 극단적인 비만일수록 유전자가 아주 강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피폐한 라이베리아와 파키스탄 시골에선 어린이가 영양실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런 곳에서도 극단적으로 비만인 어린이가 있다. 그건 절대 부모 탓이 아니라고 파루키 교수는 말했다. 세 살배기가 36㎏이나 되도록 누가 계속 먹이겠는가?
비만의 유전적 요인
파루키 교수는 사회가 타인을 너무도 잘 비난한다고 말했다.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세 살짜리 극단적인 비만아의 경우 유전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쟁에 휘말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환자를 돕고 싶었을 뿐이다.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낙인 때문이었다. 대중은 사회 전체적인 문제와 특이한 극단 비만을 혼동한다. 아이가 비만이면 무조건 부모가 아이를 하루 10번 맥도널드 가게에 데려간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비만은 생물학적 문제다. 체중 문제만으로 아이를 부모에게서 빼앗아선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가 비만이면 자녀도 비만인 경우가 많다. 파루키 교수는 비만의 유전적 요인이 40~70%라고 추정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식욕과 대사 등 비만 성향의 대부분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는다는 뜻이다. 비만의 유전적 요인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지금 오라힐리 교수는 래브라도 개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팀은 케임브리지대학 수의학과와 합동으로 일부 래브라도 개가 다른 개보다 더 공복을 많이 느끼는 이유를 연구한다. 잘 되면 비만인 래브라도 개의 치료법을 찾을 뿐 아니라 인간의 비만 퇴치에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만을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하게
고혈압 치료처럼 비만 치료도 다면적이다. 오라힐리 교수는 그래프를 그렸다. 비만도 혈압처럼 정상 범위가 있고 ‘정상’이 ‘과도’로 기울어지는 다소 임의적인 한계점이 있다. 요즘 혈압은 관리가 가능해졌다. 나트륨의 위험이 널리 알려져 소금 섭취가 줄었고, 혈압을 조절해주는 스태틴 같은 약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병원은 뇌졸중 같은 고혈압 부작용에 시달리는 환자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비만도 다양한 환경적·약학적 처치로 관리 가능해질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열쇠는 유전자 치료에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위우회술(위절제술) 효과를 모방하는 마법의 약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바츠 앤 런던 의치대 연구팀은 5년 뒤면 그런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오라힐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위밴드와 위풍선(풍선 캡슐을 먹은 후 풍선에 질소를 넣고 3개월 후 제거하는 방식)은 실제적 효과가 없으며 다른 수술과 함께해선 안 된다. 위우회술은 효과가 있다. 섭취한 음식이 바로 장 아래로 더 내려가 배가 찼다고 뇌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수술이다. 비용도 많이 든다.”
제약회사들과 합동으로 연구하는 오라힐리 교수는 자신의 팀을 군 정보부대로, 제약사를 무기로 간주한다. 과거에 다른 약도 나왔지만 안전한 약은 효과가 없었고, 효과적인 약은 안전하지 못했다. 그의 유망한 초기단계 임상시험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비만이 고혈압처럼 쉽고 저렴한 치료가 가능하며 목숨을 위협하지 않게 되는 것”이 그 목표다.
오라힐리 교수는 비만인 사람에게 선입견이 없으며 매우 동정적이다. “날씬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게 아니다. 그들은 운 좋게 비만 성향이 적을 뿐이다. 운 나쁜 사람이 무책임한 게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다를 뿐이다. 우리는 신체 내부에서 무엇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암에 걸리면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떤 조치든 취한다. 그러나 비만은 암과 달리 우리를 아주 서서히 죽여 시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검증된 안전한 방법만 쓴다.” 또 도덕적인 측면 때문에 비만 연구는 재정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설탕이라는 악마
영국 정부도 그 점에 주목해 설탕세를 성급히 부과하기를 꺼린다. 오라힐리 교수는 ‘설탕세’를 원칙적으론 지지하면서도 식품회사들이 건강한 식품이 수익성도 좋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조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학교 점심시간에 가당 음료를 금지하자 학생의 체중이 줄었다. 오라힐리 교수는 “마술이 아니라 단순히 열량 섭취를 줄인 것뿐”이라고 말했다. 가당 음료는 포만감을 주지 않으며 ‘텅 빈 칼로리(empty calories, 영양가는 없고 열량만 높은 식품)’여서 특히 위험하다.
게다가 설탕은 식욕을 왜곡한다. 여 박사는 “사람들은 배가 불러 으깬 감자는 더 못 먹어도 디저트는 반드시 먹는다”고 말했다.
오라힐리 교수는 최근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은 열량이 같아 체중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같지만 우리 몸에는 과당이 더 나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체내에서 과당은 포도당과 다르게 처리된다. 그 결과 쥐 실험에서 과당이 많은 먹거리는 혈중 지질 수치와 인슐린 저항, 요산 수치를 높이고 고혈압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포도당은 실질적으로 신체에 에너지를 전달하며 신진대사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하는 ‘좋은 당’이다. 반면 과당은 신체기관 중 간에서만 분해돼 포도당보다 훨씬 더 많은 지방 생성을 유도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라힐리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물론 포도당과 과당 두 가지 모두 과잉 섭취하면 체중이 비슷하게 불어난다. 그러나 과당(설탕과 고과당시럽에 들어 있다)을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포도당의 과다 섭취보다 대사가 더 나빠진다는 증거가 있다. 설탕이 들어 있는 음료의 섭취를 억제하는 정책이 공중보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추가적인 증거다.”
따라서 같은 당이라도 어떤 것은 건강에 더 나쁘다. 그러나 또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토니 비달-푸이그 교수는 “살찌면 무조건 나쁘고 야위면 무조건 좋다는 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지방이라고 전부 같지는 않다. 내부지방(내장지방 등)은 외부 지방(피하지방)보다 더 위험하다. 오라힐리 교수 팀은 체중 200㎏인 사람이 80㎏인 사람보다 더 건강할 수 있는 이유를 조사하고 있다. “지방조직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지방은 근육, 심장, 간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오라힐리 교수가 가진 두 번째 의문이다(첫 번째 의문은 어떤 사람은 비만이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유였다). 다시 말해 과도한 체중이 어떤 때는 질병으로 이어지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뭘까?
비달-푸이그 교수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나올지 모른다. 어쩌면 식습관, 음식, 운동보다 온도 같이 기본적인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우리 몸엔 백색과 갈색 두 가지 지방이 있다. 백색지방은 비활성으로 그대로 옆구리와 엉덩이에 차곡차곡 쌓이지만 갈색지방은 열량을 소모하고 열을 내도록 활성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백색지방은 과잉 에너지를 중성지방으로 저장하고, 갈색지방은 저장된 에너지를 열로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생아는 체온저하를 막기 위한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갈색지방을 비교적 풍부하게 보유하지만,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과잉 에너지는 백색지방으로 저장된다. 따라서 성인의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비만을 치료하는 매력적인 치료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저온에 노출되면 백색지방이 갈색지방처럼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앙난방으로 실내가 따뜻하면 우리가 몸을 덜 움직여 열량 소모가 적지만 실내온도가 낮으면 체온을 올려주려고 열량을 소모해주는 갈색지방의 활동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좀 더 낮은 실내온도에서 생활함으로써 갈색지방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오라힐리 교수는 말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아니면 추위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이 먹어 효과가 없을지 보여주는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환경도 바뀌어야
하버드대학의 채드 코완 부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화합물을 장기 복용하면 면역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에선 진전이 느리다는 게 좋은 소식도 되고 나쁜 소식도 된다. 개념 입증만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편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팀은 뇌에서 당을 원하게 하는 글루코키나제 효소가 비만 치료제 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페리얼 칼리지의 제임스 가디너 교수는 “뇌에서 에너지 섭취 전반이 아니라 특정 영양소에 반응하는 시스템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섭식할 때 열량만 따지지 말고 다른 영양소도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글루코키나제의 활동을 증가시키자 일반 먹거리보다 포도당을 더 많이 섭취했다. 이런 욕구를 약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면 당 섭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초 캘리포니아주 라홀라 소재 소크연구소 팀은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논문에서 ‘가상 음식’처럼 작용하는 약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실험에서 쥐의 비만을 줄였다). 오라힐리 교수는 그 논문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한 것처럼 그 세포를 속일 수 있다면 식욕을 줄여 안전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 물론 흥미로운 착상이지만 잘해야 실험쥐에서 효과가 있어 보이는 약의 일부만이 환자 치료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대를 부풀리는 발표가 계속 나오지만 아직은 대부분 비만인 사람보다 비대한 쥐에게 더 좋은 소식일 뿐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비만 연구는 오라힐리 교수팀에 국한되지 않는다. 2층에 연구실이 있는 닉 웨어럼 교수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집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비만 유행병의 원인은 개인의 비만 원인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웨어럼 교수는 우리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대상의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그는 테이크아웃 음식 노출의 중요성을 연구한 논문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발표했다. 테이크아웃 가게가 많을수록 주민 전체의 체중이 증가한다는 게 골자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땅이 평평하고 넓은 나라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과 함께 생각해 보면 그 핵심이 드러난다. 사람은 남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이든 하려 한다. 따라서 생활습관을 바꾸라고만 말하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지 모른다. 웨어럼 교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섭식을 꼽을 수밖에 없지만 환경과 사회 기반시설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마법의 약, 유전자 연구, 설탕세, 자전거 도로 건설, 중앙난방의 온도 낮추기, 교육, 동정심 사이의 어디에선가 오라힐리와 웨어럼 같은 과학자들이 친절과 독창성으로 우리의 비만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해 마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비만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 될 것이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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