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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순이삼촌]의 ‘행위자 관찰자 편향’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순이삼촌]의 ‘행위자 관찰자 편향’

제주 4·3사건 희생자 분향소. / 사진:중앙포토
세상에 사물을 보는 시각은 하나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관찰하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나’의 입장이냐 ‘남’의 입장이냐에 따라 괴물이 되기도, 천사가 되기도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정치적 사건이라면 더 난해해 진다. 사태가 될 수도 항쟁이 될 수도 있고, 민주화가 될 수도 폭동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혁명이 되거나 쿠데타가 될 수도 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은 제주도 4·3사건을 소재로 지은 소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49년 1월 16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이 배경이다. 1978년 9월 계간 문학비평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이 소설은 30여년 간 묻혀있던 사건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슬 퍼른 4공화국 당시 발표된 터라 금서 조치를 당하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로서는 고향에서 일어난 참혹한 현대사를 그냥 비켜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주도 4·3사건이 배경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8년 만에 고향 서촌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순이삼촌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순이삼촌은 지난해 한 해 동안 서울의 내 집에 머물며 밥을 해주며 머물렀던 친척 어른이다. 제주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없이 흔히 삼촌이라 부른다. 순이삼촌은 나이 스물여섯에 홀로돼 딸 하나 키우며 30년을 수절해오던 분이다. 그녀는 여드레 전 자신의 밭에서 죽은 채 발견됐단다. 자살이었다. 순이삼촌은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1949년 마을 소각 당시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해 음력 섣달 열여드레 날 군인들이 마을로 와 사람들을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았다. 그런 뒤 마을을 불태우고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공비가 있을지 모른다며 마을을 소각하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죽였다. 학살은 순이삼촌의 밭에서도 이뤄졌다. 그녀는 자신의 밭에서 두 아이를 잃고 홀로 살아남았지만 평생을 환청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이미 30년 전에 그 밭에서 죽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순이삼촌의 자살에 대해 가책을 느끼는 것은 순이삼촌이 서울 나의 집에 머무를 때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순이삼촌과 아내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쌀이 벌써 떨어졌어요”라는 아내의 말을 순이삼촌은 “쌀이 벌써 떨어질리가 있나요?”라는 반어법으로 들었다. 서울말의 억양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순이삼촌은 “내가 밥을 다먹었다는 말이냐”며 서럽게 울어버렸다. 아내 역시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순이삼촌의 제주 억양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충돌을 바라보는 ‘나’는 참 곤란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사물을 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위자 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effect)이라고 부른다. 행위자 관찰자 편향은 행위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원인을 찾을 때와 남의 행동을 관찰자로서 바라보며 원인을 찾을 때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을 때에는 주로 외적인 요인에 주목하고, 타인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을 때에는 주로 그 사람의 내적인 요인에 주목한다. 즉 ‘내가 잘못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네가 잘못하는 것은 네가 나쁜 인간 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다른 직원이 지각하면 원래 게으르거나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내가 지각하면 지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날 잠을 설쳤거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혹은 그날따라 유독 차가 많이 막힐 수도 있었다. 운전 때도 종종 발생한다. 상대편 차가 끼어들면 상대방 성격이나 운전습관이 나쁜 것이고, 내가 끼어드는 것은 바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편향이 생기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순이삼촌은 자신의 말투를 생각하지 않은 채 아내의 심성을 탓했을 것이다. 서울 여자들은 예의가 없다며 말이다. 이와 달리 아내는 서울말이 불러일으키는 오해는 생각하지 못한 채 순이삼촌만 탓했을 가능성이 있다. 성격이 까다로운 시골할머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4·3사건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나를 비롯한 서촌 마을사람들은 당시 사건을 ‘양민학살’이 분명하다고 한다. 노약자와 아이들에게 총질하는 것이 무슨 공비토벌이냐는 것이다. 낮에는 국군에, 밤에는 공비에 쫓겨 한라산에 숨어버린 도피자들도 그들의 눈에는 공비가 아니었다. 제주 사람들은 당시 자신들을 얕잡아본 육지사람들과 월남한 서북 청년들이 원래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일부 선동자에 의해 5·10선거 보이콧 등이 벌어졌지만 아무리 해명해도 이해하려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반면 당시 서북청년으로 토벌단에 소속됐던 고모부의 생각은 달랐다. 제주는 4·3폭동이 일어나고 5·10선거 방해사건이 일어나 남한에서 유일하게 선거를 못 치른 ‘빨갱이 섬’이라고 육지사람들은 생각했다. 더구나 공산당에 쫓겨 이북에서 월남한 서청들은 남로당 토벌에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제주사람들이었다. 이 섬사람들은 대부분이 빨갱이로 이념적으로 문제가 많았다고 봤다. 그들의 눈에는 한라산으로 숨어야 했던 도피자들도 빨갱이임이 분명했다. 뭐라도 꿀리는 게 없었다면 왜 산으로 숨어들었겠느냐는 것이다. ‘한날 한시에 수백명의 마을사람이 죽었다’는 건 명백한 팩트다. 하지만 누가 행위자가 되고 누가 관찰자가 되느냐에 따라 양민학살이라는 범죄가 되기도 하고, 공비소탕이라는 정당한 군사작전이 되기도 한다.
 외부환경 탓만 해서야…
행위자 관찰자 편향은 행동경제학에 접목됐다. 경제 주체들이 경제적 판단을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태도는 투자와 의사결정에 결정적 실수를 불러올 수 있다. 잘나가던 현대자동차의 주식을 고점에서 매입했다 가격이 폭락했다. 현대차가 무리하게 한전부지를 사들이고 경영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치자. ‘행위자 관찰자 편향’에 빠진 주식 투자자라면 자신의 판단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현대차 경영진들이 문제라는 ‘외부환경’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주식 매입 전 관련 기업의 상황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의 잘못은 무시된다.

문제는 계속해서 외부환경 탓으로 돌릴 경우 판단 실수는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해외 투자를 결정한 최고경영자가 해외 시장 개척에 실패하자 “해외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며 외부환경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유능한 최고경영자라면 외국의 정치리스크도 미리 감안하고 의사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때 책임은 자신이 되는 것이지, 외부환경이 아니다. 투자 판단에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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