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주였던 남자, 그 이후의 삶
자신이 개발한 가상세계 ‘마인크래프트’에서 수백만 명의 추앙을 받는 ‘신’으로 군림했던 마르쿠스 페르손이 25억 달러에 회사를 넘긴 후 홀연히 떠나갔다. 화제였던 인수 계약의 내막과 스스로 신의 자리에서 내려온 페르손이 엄청난 돈으로 누리게 된 호사, 그리고 방황을 살펴본다.스톡홀름의 어느 월요일 저녁 7시, 마르쿠스 페르손(Markus Persson, 35)이 9층 사무실 테라스에 앉아 보드카와 레드불을 섞은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다. 3시간 전만 해도 그는 오늘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지난 목요일 귓병을 치료하는 와중에 술 12잔을 마시며 진탕 취했다가 아직도 숙취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는 벨버디어 보드카를 잔뜩 부은 칵테일을 마시며 바로 옆 고층건물에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기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걱정거리가 있나 보네요”라고 페르손이 길 건너편 사무실에서 얼굴을 문지르며 멍하니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를 바라보던 페르손은 지겨워졌는지 곧 안으로 들어갔다. 페르손은 지난 5년간 자신이 개발한 게임 마인크래프트(Minecraft)에 신경 쓰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다. 마인크래프트는 역사상 가장 판매량이 많은 컴퓨터 게임으로 손꼽히지만, 단순히 ‘게임’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다운로드 1억 회를 기록한 뒤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는 마인크래프트는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캔버스와도 같다.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아무 것도 없는 가상공간에서 레고와 같은 블록 및 벽돌(플레이어가 직접 채취(mine))을 사용해 꿈꾸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기본적인 집이나 마을을 짓고 그 안에서 파티를 열거나 좀비의 공격을 피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다르다. 이들은 수백 시간을 투자해 데스 스타(Death Star)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나오는 도시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구글에서 ‘마인크래프트’란 단어는 ‘성경’과 ‘해리 포터’, ‘저스틴 비버’보다 더 많이 검색됐다. 게임 하나로 페르손은 7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마진율 또한 아주 높아서 수입 대부분이 수익으로 전환된다. “다른 히트 게임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이라고 비디오게임을 연구하는 이안 보고스트 조지아 공과대학 교수는 말했다. “게임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다른 카테고리 히트작과 비교해야 옳다. 마인크래프트는 요즘 세대의 레고 혹은 PC로 봐야 한다.”
가상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게이머는 제우스에 맞먹는 권위로 규칙을 만들고 정리해주는 페르손을 신처럼 추앙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도라를 쓰고 과장되게 말하는 그의 인터넷 아바타 ‘노치(Notch)’를 추앙한다. 실제 페르손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절대 아니다. 직접 만난 그는 정중하고 담백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히트작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많아졌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해진 그는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3개월 전, 페르손은 모든 걸 놓아버리고 현금 25억 달러에 마인크래프트를 매각했다. 인수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마인크래프트 운영사 모장Mojang)의 지분 71%를 가지고 있던 그는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 그것도 상위권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나이에 페르손은 하나의 온전한 우주를 창조했고, 자신의 아바타로 우주와 동일시되는 추앙을 받다가 그 세계를 버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게이머의 분노를 샀다. 이제 그는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지금까지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무작정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가는 강아지처럼 별 생각 없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는 비벌리힐스 2만3000평방피트 부지에 지은 7000만 달러짜리 호화 맨션을 샀다. 비벌리힐스에서도 가장 비싼 집이다. 라스베이거스 클럽에서는 하룻밤에 18만 달러 이상을 써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게임 아이디어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모장의 공동 창업자 제이콥 포저와 함께 러버브레인(Rubberbrain)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차렸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페르손이 마인크래프트를 매각한 이후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건 이번 포브스 인터뷰가 유일하다. 매각으로 엄청난 돈을 손에 쥔 그는 심각한 자아성찰에 돌입한 게 분명했다. 확실한 사실은 마인크래프트를 넘기고 나오길 잘했다는 것뿐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빌려 자신의 최근 결정을 설명했다. “예술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버려질 뿐이다(Art is never finished, only abandoned).”
순식간에 대대적 성공을 거둔 마인크래프트의 전설은 스톡홀름과 북극권 한계선 사이에 위치한 주민 4000명의 소도시 에드스빈(Edsbyn)의 광활한 숲에서 시작됐다. 다른 아이들이 여름에 축구, 겨울에 밴디(둥근 공으로 하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동안, 내향적인 페르손은 몇 시간이고 레고를 갖고 놀았다. 철도 근로자였던 아버지는 페르손이 7살이었을 때 컴퓨터 ‘코모도어 128’을 사줬고,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 페르손은 8살 때 첫 프로그램 코딩을 해냈다.
학교 생활을 잘 이어가던 페르손은 2학년 때 스톡홀름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그는 더욱 컴퓨터에 집중했다. 컴퓨터는 그에게 8비트 퍼즐게임 보울더 대쉬(Boulder Dash)나 롤플레잉 액션게임 더 바즈 테일(The Bard’s Tale)등의 오락거리를 선사했다. 페르손에 관한 책 에서 어머니 리트바(Ritva)는 배가 아프다며 꾀병을 부린 페르손이 학교를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가족이 해체되면서 어린 페르손은 더욱 PC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그가 12살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면서 암페타민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여동생 또한 마약에 손을 대더니 결국 가출해 버렸다. 페르손은 고등학교 졸업에 실패한 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지역 병원 야간 교대조로 일하면서 그에게 온라인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도록 했다. 현명한 투자였다. 어린 시절의 게임 열정을 쏟아 부은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4년 24살이 된 페르손은 게임회사 미다스플레이어에 취직했다. 미다스플레이어는 이후 캔디 크러쉬로 유명해진 킹닷컴(King.com)으로 이름을 바꿨다.
회사에서 페르손은 자신과 비슷하게 내성적인 제이콥 포저와 친구가 됐다. “일을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다”고 포저는 말했다. “플래시로 작은 게임을 만들었다. 그래픽을 빼고 대부분 혼자 할 수 있었다.” 둘은 함께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게임 일부는 인디 게임 웹사이트에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상사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회사에 와서 자기 게임사 차리는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직원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고 페르손을 고용했던 미다스플레이어 공동 창업주 라르스 마크그렌은 말했다. 2009년 페르손은 미다스플레이어를 떠나 온라인 사진공유 서비스 제이앨범(Jalbum)에서 프로그래밍을 맡았다. 회사는 그가 부업을 한다는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남을 때면 플레이어가 나무나 돌 등의 자원을 모아서 도끼나 삽을 만들어 집과 도시를 짓는 특이한 게임을 개발하는데 집중했다. 페르손은 이 게임의 이름을 ‘마인크래프트’로 지었고, 2009년 5월 인디 게임 포털 TIG소스(TIGSource)에 미완 소프트웨어로 올렸다. 배워야 할 기술적 노하우는 많은데 설명은 너무 간단했다. 게임을 먼저 시작한 게이머들은 커뮤니티를 이루어 게임 방법을 함께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출시 타이밍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기에 아직 어리지만 온라인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싶어 하는 세대가 노트북과 스마트폰, 태블릿을 손에 넣는 시점에 출시됐기 때문이다.
2010년 6월이 되자 PC 사용자 다운로드 횟수는 하루 400회로 늘어났다. 요금은 다운로드 1회당 6달러였다. 페르손과 포저는 본업을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했다. 페르손은 칼 마네(Carl Manneh) 제이앨범 CEO를 오히려 자기 쪽으로 영입해서 사업을 맡겼다. 이들은 이제 막 시작한 회사 이름을 ‘모장’이라 지었다. 스웨덴어로 ‘기기(gadget)’라는 뜻이다.
마인크래프트의 비밀무기는 바로 ‘노치’였다. 노치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노치를 통해 페르손은 내향적인 자신의 실제 성격을 벗어 버렸다. 노치는 블로그와 포럼, 트위터를 통해 게임이나 개발, 생활에 관한 팬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 주었다. 노치가 마인크래프트 서버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엘비스를 본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페도라를 쓰고 인디 게임회사를 위해 싸우며 날카로운 직언을 서슴지 않는 그에게 추종자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냈다. 페르손이 내세운 제 2의 자아는 트위터에서 200여 만 명의 팔로워를 얻었다. 이들은 인디게임 번들을 생색내며 출시하는 일렉트로닉 아츠(EA)를 “냉정한 개자식(cynical bastards)”이라 욕하고,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 VR이 “소름끼치는(creepy)” 페이스북에 매각됐다고 비통해 하는 그의 글에 열광했다.
페르손은 마케팅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완전히 입소문을 통해 성장했다. 모장은 안드로이드와 iOS 스마트폰 버전을 출시했다. 앱 애니(App Annie) 자료에 따르면, 마인크래프트 앱은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다운로드 기준 3위 밑으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2012년 5월에 모장은 MS 엑스박스(Xbox) 360용 버전을 출시했고, 출시 첫 주 100만 카피를 판매했다. (지금까지 총 1500만 카피 판매) 그러자 라이센스 계약이 잇따랐다. 샌디에이고의 징크스(J!NX)가 판매하는 마인크래프트 브랜드 의류는 어린 팬들에게 최고로 잘 팔리는 아이템이 됐고, 마인크래프트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라도 하면 그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갔다. 에그몬트 인터내셔널 출판사는 마인크래프트에 관한 책 몇 권만으로 전세계 60여 개국에서 750만 부가 넘는 책을 판매했다. 지난 해 워너브라더스 영화사는 장편영화 제작을 검토하기 위해 모장으로부터 제작권을 사들였다.
직원이 30명밖에 없는 모장은 끝없는 이익을 창출했다. 2012년 매출은 2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총수익은 1억5000만 달러가 넘었다. 이 중 1억 100만 달러는 마인크래프트 지적재산권에 대한 라이센스 수수료 형태로 페르손에 지급됐다(그는 재빨리 스톡홀름에서 가장 값비싼 아파트를 구매했다).
투자자들은 마인크래프트 옆을 열심히 맴돌고 있다. 마네는 지금껏 100여 개의 벤처투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실리콘밸리 블루칩 투자사 세콰이어 캐피탈과 액셀 파트너스도 있다. 억만장자 숀 파커가 방문했던 적도 있다. 그는 페르손과 포저, 마네를 자신의 전용 비행기에 태우고 런던으로 가서 신나게 파티를 벌였다. 그래도 이들은 파커의 돈을 거절했다. 외부 투자자가 전혀 없는 개인회사지만, 워낙 돈이 많다 보니 르네상스 양식의 유화로 직원들 초상화를 의뢰한다. 다운로드 1000만 회를 돌파했을 때에는 모든 직원이 모나코로 날아가 사흘간 샴페인 파티와 요트놀이를 즐겼다. 창업주 3명이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지만, 2012년 페르손은 직원에게 300만 달러의 그룹 보너스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발밑에 둔 페르손은 오히려 어깨에 세상을 짊어진 듯 힘들어 했다. 2011년 말 라스베이거스 제 1회 마인콘(Minecon) 컨벤션에서 마인크래프트를 공식 출시한 페르손은 수석 개발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그 해 여름 결혼한 여자친구와 신혼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축복은 짧게 끝났다. 약물 중독 및 우울증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아버지가 그 해 크리스마스 전에 자살을 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가운데 페르손은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결혼생활도 1년 만에 끝이 났다. 그는 트위터에 “오늘로 다시 싱글이다. 복잡한 감정”이라고 올렸다.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대대적으로 히트한 첫 작품의 마법을 재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오류를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코드 수정 내용을 이메일이나 트윗으로 노치에게 보냈다. 노치가 전혀 관여한 사항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가상 보트의 기계적 구조를 변경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노치는 가시 돋친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페르손이 트위터에 올린 대답이나 그가 출연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노치는 그냥 덩치 큰 도구일 뿐”, “노치는 엄청난 찌질이다”라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페르손은 말했다. “악플은 다른 댓글보다 글씨가 큰 것 같다. 눈에 확 들어온다.” 온라인 아바타를 자신처럼 생각하며 활약했던 그는 온라인에서 날아드는 부정적 발언에 함몰될 것 같았다. 페르손은 탈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탈출을 향한 문은 한 개의 트윗으로 열렸다. 2014년 6월 16일, 감기에 걸린 페르손은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인크래프트 사용자들은 검 파괴력 강화 등의 기능을 게이머끼리 유료 거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최종 사용자 라이선스 계약(End User License Agreement) 시행 결정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시간당 수백 개의 트윗이 날아들었다.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던 페르손은 129개 글자로 자신의 감정을 터뜨렸다.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버릴 트윗이었다.
“내가 가진 모장 지분 인수할 사람 어디 없나? 내 인생 좀 살아 보자”라고 그는 적었다. “옳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칼 마네 모장 CEO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던 중 페르손의 트윗 내용을 알게 됐다. 그가 트윗을 읽고 3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렸다. 모장과 업무를 함께 진행하던 MS의 중역이었다. 그는 페르손의 트윗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얘기해 볼게요”라고 마네는 답했다. 다음 주, 마네의 전화는 인수에 관심을 보인 MS, EA,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의 문의로 끊임없이 울려댔다. MS가 인수에 나선 주된 목적은 납세 회피였다. 당시 MS는 해외사업에서 현금 93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려면 미 정부에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매각 조건을 결정한 사람은 마네였다. 페르손과 포저는 매각 이후 회사와 어떤 연관관계도 없이 깨끗이 이별하길 원했다. 마네는 노키아 인수 후 MS가 대대적인 직원 통합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걸 고려해서 모장 직원을 정리해고하지 말라는 조건도 걸었다. (직원 수가 47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MS 입장에서 그리 난감한 조건은 아니었다.)
9월 15일, MS는 25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모장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 발표가 이루어지고 수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페르손은 자신이 창조한 회사에서 떠나겠다는 마지막 블로그글을 올렸다. “돈 때문이 아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싶어서다”라고 그는 적었다. 글로벌 거대 IT기업에 회사를 절대 팔지 않겠다는 이전의 다짐을 스스로 어긴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페르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25억 달러짜리 모순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 말에는 물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는 걸 그리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모장 직원들은 대표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페르손이 받은 돈의 일부를 보너스로 나눠주긴 했지만(포저는 세후 3억 달러, 마네는 세후 1억 달러 이상을 가져갔다) 인수 소식을 듣고 “실망했다”거나 “허무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이 말했다. 일부는 지금도 페르손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너무 편하게 대해준 것 같다. 직원들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고 페르손은 응수했다. 그래도 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11월 마침내 인수 계약이 마무리됐고, 페르손은 포저, 마네, 마네의 쌍둥이 형제와 함께 마이애미와 프랑스령 생바트(St. Barts)섬으로 날아가 축하 파티를 했다. 페르손은 이를 “매진 여행”이라 불렀다.
요즘 페르손은 트위터에 올라오는 비난글을 읽기보다 왓츠앱에서 친구들과 욕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트위터 차단 기능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악플러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글을 차단하고 소식을 알리지 않는 기능이다. 그래도 가끔 호기심이 생기면 대답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우디 해럴슨이 나온 영화 ‘좀비랜드’에서 돈으로 논물을 훔치는 장면을 찾아 악플러에게 보내기도 했다. “재수 없어 보이는 걸 안다”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인들한테는 전세 비행기로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스냅챗으로 방송하듯 보냈다니,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서툰 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연애는 어떨까? “틴더(Tinder)를 시도해 봤는데 신통치 않다. 스웨덴 틴더는 끔찍하다. 회원이 한 4명 정도 있다.” 나이트 클럽에서 18만 달러를 쓴 이유다.
“프로그래밍으로 20대를 보내다 보니 그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파티로 돈을 낭비하는 건 분별력 없어 보이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돈이 별로 없지 않은가. 돈이 많은데 쓸 줄도 모르는 지루한 부자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그는 새로운 회사 사무실을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온갖 종류의 술을 갖춘 바와 DJ 부스(스핀을 배우는 중이다), 책장 뒤에 숨은 비밀의 방 등, 십대 소년이 가질 법한 환상을 모두 실현시킨 꿈의 사무실이다. 페르손은 사무실에서 트위터나 레딧(Reddit)에 올라온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며 두문불출하고, 포저는 청소년 시절 아이스하키팀 팬 포럼에 올라온 글을 읽거나 클릭으로 벌레 혹은 생물체를 터뜨려 코인을 얻는 별 의미 없는 온라인 게임을 한다. “어른을 위한 탁아소 같다”고 페르손은 말했다. 새로운 컨셉이 떠오르면 “이틀 정도 시도하다가 다시 게임을 한다.” 당연히 이럴 때도 있다. 그러나 밖에는 그보다 어린 수많은 마르쿠스 페르손이 있다. 성공에 굶주린 이들은 다음 세대가 원하는 걸 더 잘 알고 있다. 이를 말해주고 의견을 묻자 마인크래프트의 창조주는 1번의 성공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고 답했다. 말도 안 되게 부자가 된 대신 일찍 지쳐버린 사업가가 되는 편이 가상국가를 책임지며 숭배와 경멸을 번갈아 받는 것보다 나은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노치를 우상화화기 시작했다”고 2개의 자아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말했다. “우상이었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때 ‘아 젠장, 이 사람도 사람이지’라고 깨달았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분명히 느꼈다. 나도 그런 관계를 팬들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러버브레인 사무실을 나오는 페르손에게 조수가 팬이 보낸 편지 한 통을 건네줬다.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열심히 연습해서 필기체로 적은 편지였다. 편지에는 1달러가 동봉되어 있었다. 마인크래프트에 새로운 기능을 넣어달라고 페르손에게 부탁하는 편지였다. “오늘은 뇌물을 받았군.” 농담을 던진 페르손은 편지를 훑어본 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돈 돌려줘야 할까?”
- RYAN MAC, DACID M. EWALT, MAX JEDEUR-PALMGREN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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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거리가 있나 보네요”라고 페르손이 길 건너편 사무실에서 얼굴을 문지르며 멍하니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를 바라보던 페르손은 지겨워졌는지 곧 안으로 들어갔다. 페르손은 지난 5년간 자신이 개발한 게임 마인크래프트(Minecraft)에 신경 쓰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다. 마인크래프트는 역사상 가장 판매량이 많은 컴퓨터 게임으로 손꼽히지만, 단순히 ‘게임’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다운로드 1억 회를 기록한 뒤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는 마인크래프트는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캔버스와도 같다.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아무 것도 없는 가상공간에서 레고와 같은 블록 및 벽돌(플레이어가 직접 채취(mine))을 사용해 꿈꾸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기본적인 집이나 마을을 짓고 그 안에서 파티를 열거나 좀비의 공격을 피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다르다. 이들은 수백 시간을 투자해 데스 스타(Death Star)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나오는 도시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구글에서 ‘마인크래프트’란 단어는 ‘성경’과 ‘해리 포터’, ‘저스틴 비버’보다 더 많이 검색됐다. 게임 하나로 페르손은 7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마진율 또한 아주 높아서 수입 대부분이 수익으로 전환된다.
가상세계에서 신처럼 추앙 받았던 페르손
가상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게이머는 제우스에 맞먹는 권위로 규칙을 만들고 정리해주는 페르손을 신처럼 추앙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도라를 쓰고 과장되게 말하는 그의 인터넷 아바타 ‘노치(Notch)’를 추앙한다. 실제 페르손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절대 아니다. 직접 만난 그는 정중하고 담백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히트작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많아졌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해진 그는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3개월 전, 페르손은 모든 걸 놓아버리고 현금 25억 달러에 마인크래프트를 매각했다. 인수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마인크래프트 운영사 모장Mojang)의 지분 71%를 가지고 있던 그는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 그것도 상위권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나이에 페르손은 하나의 온전한 우주를 창조했고, 자신의 아바타로 우주와 동일시되는 추앙을 받다가 그 세계를 버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게이머의 분노를 샀다. 이제 그는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지금까지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무작정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가는 강아지처럼 별 생각 없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는 비벌리힐스 2만3000평방피트 부지에 지은 7000만 달러짜리 호화 맨션을 샀다. 비벌리힐스에서도 가장 비싼 집이다. 라스베이거스 클럽에서는 하룻밤에 18만 달러 이상을 써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게임 아이디어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모장의 공동 창업자 제이콥 포저와 함께 러버브레인(Rubberbrain)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차렸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페르손이 마인크래프트를 매각한 이후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건 이번 포브스 인터뷰가 유일하다. 매각으로 엄청난 돈을 손에 쥔 그는 심각한 자아성찰에 돌입한 게 분명했다. 확실한 사실은 마인크래프트를 넘기고 나오길 잘했다는 것뿐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빌려 자신의 최근 결정을 설명했다. “예술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버려질 뿐이다(Art is never finished, only abandoned).”
순식간에 대대적 성공을 거둔 마인크래프트의 전설은 스톡홀름과 북극권 한계선 사이에 위치한 주민 4000명의 소도시 에드스빈(Edsbyn)의 광활한 숲에서 시작됐다. 다른 아이들이 여름에 축구, 겨울에 밴디(둥근 공으로 하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동안, 내향적인 페르손은 몇 시간이고 레고를 갖고 놀았다. 철도 근로자였던 아버지는 페르손이 7살이었을 때 컴퓨터 ‘코모도어 128’을 사줬고,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 페르손은 8살 때 첫 프로그램 코딩을 해냈다.
학교 생활을 잘 이어가던 페르손은 2학년 때 스톡홀름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없었던 그는 더욱 컴퓨터에 집중했다. 컴퓨터는 그에게 8비트 퍼즐게임 보울더 대쉬(Boulder Dash)나 롤플레잉 액션게임 더 바즈 테일(The Bard’s Tale)등의 오락거리를 선사했다. 페르손에 관한 책
가족이 해체되면서 어린 페르손은 더욱 PC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그가 12살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면서 암페타민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여동생 또한 마약에 손을 대더니 결국 가출해 버렸다. 페르손은 고등학교 졸업에 실패한 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지역 병원 야간 교대조로 일하면서 그에게 온라인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도록 했다. 현명한 투자였다. 어린 시절의 게임 열정을 쏟아 부은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4년 24살이 된 페르손은 게임회사 미다스플레이어에 취직했다. 미다스플레이어는 이후 캔디 크러쉬로 유명해진 킹닷컴(King.com)으로 이름을 바꿨다.
회사에서 페르손은 자신과 비슷하게 내성적인 제이콥 포저와 친구가 됐다. “일을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다”고 포저는 말했다. “플래시로 작은 게임을 만들었다. 그래픽을 빼고 대부분 혼자 할 수 있었다.” 둘은 함께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게임 일부는 인디 게임 웹사이트에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상사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회사에 와서 자기 게임사 차리는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직원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고 페르손을 고용했던 미다스플레이어 공동 창업주 라르스 마크그렌은 말했다.
부업인 게임개발을 위해 본업을 그만두다
2010년 6월이 되자 PC 사용자 다운로드 횟수는 하루 400회로 늘어났다. 요금은 다운로드 1회당 6달러였다. 페르손과 포저는 본업을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했다. 페르손은 칼 마네(Carl Manneh) 제이앨범 CEO를 오히려 자기 쪽으로 영입해서 사업을 맡겼다. 이들은 이제 막 시작한 회사 이름을 ‘모장’이라 지었다. 스웨덴어로 ‘기기(gadget)’라는 뜻이다.
마인크래프트의 비밀무기는 바로 ‘노치’였다. 노치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노치를 통해 페르손은 내향적인 자신의 실제 성격을 벗어 버렸다. 노치는 블로그와 포럼, 트위터를 통해 게임이나 개발, 생활에 관한 팬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 주었다. 노치가 마인크래프트 서버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엘비스를 본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페도라를 쓰고 인디 게임회사를 위해 싸우며 날카로운 직언을 서슴지 않는 그에게 추종자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냈다. 페르손이 내세운 제 2의 자아는 트위터에서 200여 만 명의 팔로워를 얻었다. 이들은 인디게임 번들을 생색내며 출시하는 일렉트로닉 아츠(EA)를 “냉정한 개자식(cynical bastards)”이라 욕하고,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 VR이 “소름끼치는(creepy)” 페이스북에 매각됐다고 비통해 하는 그의 글에 열광했다.
페르손은 마케팅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완전히 입소문을 통해 성장했다. 모장은 안드로이드와 iOS 스마트폰 버전을 출시했다. 앱 애니(App Annie) 자료에 따르면, 마인크래프트 앱은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다운로드 기준 3위 밑으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2012년 5월에 모장은 MS 엑스박스(Xbox) 360용 버전을 출시했고, 출시 첫 주 100만 카피를 판매했다. (지금까지 총 1500만 카피 판매) 그러자 라이센스 계약이 잇따랐다. 샌디에이고의 징크스(J!NX)가 판매하는 마인크래프트 브랜드 의류는 어린 팬들에게 최고로 잘 팔리는 아이템이 됐고, 마인크래프트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라도 하면 그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갔다. 에그몬트 인터내셔널 출판사는 마인크래프트에 관한 책 몇 권만으로 전세계 60여 개국에서 750만 부가 넘는 책을 판매했다. 지난 해 워너브라더스 영화사는 장편영화 제작을 검토하기 위해 모장으로부터 제작권을 사들였다.
직원이 30명밖에 없는 모장은 끝없는 이익을 창출했다. 2012년 매출은 2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총수익은 1억5000만 달러가 넘었다. 이 중 1억 100만 달러는 마인크래프트 지적재산권에 대한 라이센스 수수료 형태로 페르손에 지급됐다(그는 재빨리 스톡홀름에서 가장 값비싼 아파트를 구매했다).
투자자들은 마인크래프트 옆을 열심히 맴돌고 있다. 마네는 지금껏 100여 개의 벤처투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실리콘밸리 블루칩 투자사 세콰이어 캐피탈과 액셀 파트너스도 있다. 억만장자 숀 파커가 방문했던 적도 있다. 그는 페르손과 포저, 마네를 자신의 전용 비행기에 태우고 런던으로 가서 신나게 파티를 벌였다. 그래도 이들은 파커의 돈을 거절했다. 외부 투자자가 전혀 없는 개인회사지만, 워낙 돈이 많다 보니 르네상스 양식의 유화로 직원들 초상화를 의뢰한다. 다운로드 1000만 회를 돌파했을 때에는 모든 직원이 모나코로 날아가 사흘간 샴페인 파티와 요트놀이를 즐겼다. 창업주 3명이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지만, 2012년 페르손은 직원에게 300만 달러의 그룹 보너스를 나눠주기도 했다.
직원 30명으로 엄청난 이익 창출
축복은 짧게 끝났다. 약물 중독 및 우울증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아버지가 그 해 크리스마스 전에 자살을 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가운데 페르손은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결혼생활도 1년 만에 끝이 났다. 그는 트위터에 “오늘로 다시 싱글이다. 복잡한 감정”이라고 올렸다.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대대적으로 히트한 첫 작품의 마법을 재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오류를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코드 수정 내용을 이메일이나 트윗으로 노치에게 보냈다. 노치가 전혀 관여한 사항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가상 보트의 기계적 구조를 변경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노치는 가시 돋친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페르손이 트위터에 올린 대답이나 그가 출연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노치는 그냥 덩치 큰 도구일 뿐”, “노치는 엄청난 찌질이다”라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페르손은 말했다. “악플은 다른 댓글보다 글씨가 큰 것 같다. 눈에 확 들어온다.” 온라인 아바타를 자신처럼 생각하며 활약했던 그는 온라인에서 날아드는 부정적 발언에 함몰될 것 같았다. 페르손은 탈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탈출을 향한 문은 한 개의 트윗으로 열렸다. 2014년 6월 16일, 감기에 걸린 페르손은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인크래프트 사용자들은 검 파괴력 강화 등의 기능을 게이머끼리 유료 거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최종 사용자 라이선스 계약(End User License Agreement) 시행 결정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시간당 수백 개의 트윗이 날아들었다.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던 페르손은 129개 글자로 자신의 감정을 터뜨렸다.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버릴 트윗이었다.
“내가 가진 모장 지분 인수할 사람 어디 없나? 내 인생 좀 살아 보자”라고 그는 적었다. “옳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칼 마네 모장 CEO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던 중 페르손의 트윗 내용을 알게 됐다. 그가 트윗을 읽고 3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렸다. 모장과 업무를 함께 진행하던 MS의 중역이었다. 그는 페르손의 트윗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얘기해 볼게요”라고 마네는 답했다.
갑작스러운 매각에 직원들은 급실망
9월 15일, MS는 25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모장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 발표가 이루어지고 수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페르손은 자신이 창조한 회사에서 떠나겠다는 마지막 블로그글을 올렸다. “돈 때문이 아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싶어서다”라고 그는 적었다. 글로벌 거대 IT기업에 회사를 절대 팔지 않겠다는 이전의 다짐을 스스로 어긴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페르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25억 달러짜리 모순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 말에는 물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는 걸 그리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모장 직원들은 대표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페르손이 받은 돈의 일부를 보너스로 나눠주긴 했지만(포저는 세후 3억 달러, 마네는 세후 1억 달러 이상을 가져갔다) 인수 소식을 듣고 “실망했다”거나 “허무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이 말했다. 일부는 지금도 페르손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너무 편하게 대해준 것 같다. 직원들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고 페르손은 응수했다. 그래도 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11월 마침내 인수 계약이 마무리됐고, 페르손은 포저, 마네, 마네의 쌍둥이 형제와 함께 마이애미와 프랑스령 생바트(St. Barts)섬으로 날아가 축하 파티를 했다. 페르손은 이를 “매진 여행”이라 불렀다.
요즘 페르손은 트위터에 올라오는 비난글을 읽기보다 왓츠앱에서 친구들과 욕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트위터 차단 기능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악플러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글을 차단하고 소식을 알리지 않는 기능이다. 그래도 가끔 호기심이 생기면 대답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우디 해럴슨이 나온 영화 ‘좀비랜드’에서 돈으로 논물을 훔치는 장면을 찾아 악플러에게 보내기도 했다. “재수 없어 보이는 걸 안다”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인들한테는 전세 비행기로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스냅챗으로 방송하듯 보냈다니,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서툰 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연애는 어떨까? “틴더(Tinder)를 시도해 봤는데 신통치 않다. 스웨덴 틴더는 끔찍하다. 회원이 한 4명 정도 있다.” 나이트 클럽에서 18만 달러를 쓴 이유다.
“프로그래밍으로 20대를 보내다 보니 그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파티로 돈을 낭비하는 건 분별력 없어 보이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돈이 별로 없지 않은가. 돈이 많은데 쓸 줄도 모르는 지루한 부자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그는 새로운 회사 사무실을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온갖 종류의 술을 갖춘 바와 DJ 부스(스핀을 배우는 중이다), 책장 뒤에 숨은 비밀의 방 등, 십대 소년이 가질 법한 환상을 모두 실현시킨 꿈의 사무실이다. 페르손은 사무실에서 트위터나 레딧(Reddit)에 올라온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며 두문불출하고, 포저는 청소년 시절 아이스하키팀 팬 포럼에 올라온 글을 읽거나 클릭으로 벌레 혹은 생물체를 터뜨려 코인을 얻는 별 의미 없는 온라인 게임을 한다. “어른을 위한 탁아소 같다”고 페르손은 말했다. 새로운 컨셉이 떠오르면 “이틀 정도 시도하다가 다시 게임을 한다.”
부자가 된 대신 일찍 지쳐버린 사업가
“사람들이 노치를 우상화화기 시작했다”고 2개의 자아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말했다. “우상이었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때 ‘아 젠장, 이 사람도 사람이지’라고 깨달았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분명히 느꼈다. 나도 그런 관계를 팬들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러버브레인 사무실을 나오는 페르손에게 조수가 팬이 보낸 편지 한 통을 건네줬다.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열심히 연습해서 필기체로 적은 편지였다. 편지에는 1달러가 동봉되어 있었다. 마인크래프트에 새로운 기능을 넣어달라고 페르손에게 부탁하는 편지였다. “오늘은 뇌물을 받았군.” 농담을 던진 페르손은 편지를 훑어본 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돈 돌려줘야 할까?”
- RYAN MAC, DACID M. EWALT, MAX JEDEUR-PALMGREN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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