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마케팅 구루, 자본주의를 꾸짖다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마케팅 구루, 자본주의를 꾸짖다
이 책을 접하면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낀 것은 필자뿐일까? 제목부터 그랬다.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라니? 코틀러가 누군가? 마케팅의 구루, 비즈니스의 대부로 불리며 평생 ‘잘 파는 전략’을 세계 기업에 전파한 인물 아닌가? 그런 그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원제를 찾아봤다. ‘콘프런팅 캐피탈리즘(Confronting Capitalism)’이다. 우리 말로 직역하면 ‘문제에 직면한 자본주의’ 정도 되겠다. 부제는 ‘필립 코틀러의 문제 있는 경제 시스템을 위한 진짜 해결책(Real Solutions for Troubled Economic System By Philip Kotler)’이다. 코틀러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 많은 시민을 위해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분명히 했다.
코틀러가 ‘착한 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창해온 것은 맞지만, 자본주의를 직접 비판한 책을 낸 것은 처음이다. 독자들의 ‘낯섦’을 의식했던 것일까? 코틀러는 책 서문에 ‘나는 서로 상반된 시각을 가진 뛰어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세 사람에게서 정통 경제학을 배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세 사람은 시카고학파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 케인즈 학파를 대표하는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14가지 단점을 들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맹점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좌파 성향의 경제학자들의 주장 못지 않게 격하다. ‘지속적인 빈곤에 대해 해결책을 거의 또는 아예 제시하지 못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진다’ ‘수십 억명의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못한다’ ‘경기 순환과 불안정을 유발한다’ ‘개인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도록 조장한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기업에 대한 인식도 의외다. ‘기업들이 사업을 하면서 사회에 초래한 비용 전체를 부담하지 않는다’ ‘정치인과 기업의 이익단체가 결탁해 시민 대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막는다’ ‘상품의 품질과 안정성 문제, 과대 광고, 불공정 경쟁 행위가 만연하다’.
그가 제시한 ‘리얼 솔루션’ 역시 좌파 경제학자의 책을 읽는 착각을 일으킨다. 코틀러는 소득 격차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누진세 확대, 해외 조세회피처 막기를 제안한다. 또한 최고경영자와 노동자 임금 비율의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수퍼리치들이 그렇지 않아도 불균형한 부의 분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도 썼다. 코틀러의 마케팅 전략을 배워 수퍼리치가 된 이들이 읽는다면 꽤 혼란을 느낄 법하다. 심지어 코틀러는 낮은 임금 문제를 거론하며 ‘노동조합 운동이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과 혜택을 제공하고, 이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좌파 경제학자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환경 문제도 건드린다. 그는 시민 운동가인 나오미 클레인의 [모든 것의 변화:자본주의 대 기후],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의 [성장 없는 번영]을 거론하면서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자본주의(경제 시스템)와 민주주의(정치 시스템)의 관계를 다루면서 로비와 선거자금, 뇌물과 부패 문제를 성토한 부분은 ‘성완종 리스트’로 시끄러운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코틀러는 ‘금권정치가들은 민주주의가 갖는 이상적 목표를 기만하고, 수퍼리치는 선거 당사자와 의회에서 통과되는 법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지적하면서, 수퍼리치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법도 제안한다. 고소득자 세율 인상, 연봉 상한선 설정, 상속·증여액 제한 등이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몇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우리 사회는 광고와 은행권의 유혹을 받으면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했고, 이는 너무 많이 사고, 빚을 지고, 결국 버블이 형성되는 경제로 이어진다(293쪽)’ ‘마케팅은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고 따라서 전 세계 경제와 환경, 사회적인 지속 가능성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329쪽)’.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마케팅의 대부 필립 코틀러다.
책을 열어 덮는 순간까지 비판적 자세로 읽더라도, 코틀러의 문제 의식과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는 자본주의가 하나의 얼굴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명제로 정의될 수 없고,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대안 찾기’가 아닌 ‘자본주의 고치기’에 집중한다.
이런 말도 남겼다. ‘자본주의 14개 단점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문제들이 끼어든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기업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 실업이 늘고, 기업들은 해외로부터 수입을 늘려 자국 내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든다.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은 한 가지 문제에만 집착해 서로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어렵고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단기 처방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도 귀가 따갑게 지적받았을 얘기다.
올해 85세의 코틀러가 변한 것일까, 필자(또는 우리가)가 그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후자에 한 표를 던지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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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러가 ‘착한 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창해온 것은 맞지만, 자본주의를 직접 비판한 책을 낸 것은 처음이다. 독자들의 ‘낯섦’을 의식했던 것일까? 코틀러는 책 서문에 ‘나는 서로 상반된 시각을 가진 뛰어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세 사람에게서 정통 경제학을 배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세 사람은 시카고학파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 케인즈 학파를 대표하는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14가지 단점을 들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맹점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좌파 성향의 경제학자들의 주장 못지 않게 격하다. ‘지속적인 빈곤에 대해 해결책을 거의 또는 아예 제시하지 못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진다’ ‘수십 억명의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못한다’ ‘경기 순환과 불안정을 유발한다’ ‘개인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도록 조장한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기업에 대한 인식도 의외다. ‘기업들이 사업을 하면서 사회에 초래한 비용 전체를 부담하지 않는다’ ‘정치인과 기업의 이익단체가 결탁해 시민 대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막는다’ ‘상품의 품질과 안정성 문제, 과대 광고, 불공정 경쟁 행위가 만연하다’.
그가 제시한 ‘리얼 솔루션’ 역시 좌파 경제학자의 책을 읽는 착각을 일으킨다. 코틀러는 소득 격차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누진세 확대, 해외 조세회피처 막기를 제안한다. 또한 최고경영자와 노동자 임금 비율의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수퍼리치들이 그렇지 않아도 불균형한 부의 분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도 썼다. 코틀러의 마케팅 전략을 배워 수퍼리치가 된 이들이 읽는다면 꽤 혼란을 느낄 법하다. 심지어 코틀러는 낮은 임금 문제를 거론하며 ‘노동조합 운동이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과 혜택을 제공하고, 이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좌파 경제학자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환경 문제도 건드린다. 그는 시민 운동가인 나오미 클레인의 [모든 것의 변화:자본주의 대 기후],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의 [성장 없는 번영]을 거론하면서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자본주의(경제 시스템)와 민주주의(정치 시스템)의 관계를 다루면서 로비와 선거자금, 뇌물과 부패 문제를 성토한 부분은 ‘성완종 리스트’로 시끄러운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코틀러는 ‘금권정치가들은 민주주의가 갖는 이상적 목표를 기만하고, 수퍼리치는 선거 당사자와 의회에서 통과되는 법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지적하면서, 수퍼리치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법도 제안한다. 고소득자 세율 인상, 연봉 상한선 설정, 상속·증여액 제한 등이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몇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우리 사회는 광고와 은행권의 유혹을 받으면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했고, 이는 너무 많이 사고, 빚을 지고, 결국 버블이 형성되는 경제로 이어진다(293쪽)’ ‘마케팅은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고 따라서 전 세계 경제와 환경, 사회적인 지속 가능성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329쪽)’.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마케팅의 대부 필립 코틀러다.
책을 열어 덮는 순간까지 비판적 자세로 읽더라도, 코틀러의 문제 의식과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는 자본주의가 하나의 얼굴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명제로 정의될 수 없고,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대안 찾기’가 아닌 ‘자본주의 고치기’에 집중한다.
이런 말도 남겼다. ‘자본주의 14개 단점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문제들이 끼어든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기업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 실업이 늘고, 기업들은 해외로부터 수입을 늘려 자국 내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든다.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은 한 가지 문제에만 집착해 서로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어렵고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단기 처방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도 귀가 따갑게 지적받았을 얘기다.
올해 85세의 코틀러가 변한 것일까, 필자(또는 우리가)가 그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후자에 한 표를 던지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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