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TRAVEL] ‘사람’이 있어 도시가 좋다
[02 TRAVEL] ‘사람’이 있어 도시가 좋다
결국 기술은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기술은 지금쯤 지리학을 완전히 뒤바꿨어야 한다. 사람들이 어디에 살든 세계 경제에 참여 가능하도록 세상을 하나로 만들었어야 한다. 기술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젠 보다 많은 사람이 도시를 벗어나 아름다운 소도시나 호숫가 별장에서 원거리 근무를 하고 있으리라.
현실은 다르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떨어진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들처럼 도시로 모여든다. 여생을 즐기려고 도시로 돌아오는 은퇴자들 때문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역동적인 도시에 그 어디보다도 가장 많다. 믿어지진 않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터에 출근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기술 덕분에 멀리서도 일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교통 정체와 싸우고, 막대한 집값을 내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기를 택한다. 왜 그럴까?
혁신 기반 경제에선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보다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듯하다.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저서 ‘일자리의 새 지리학(The New Geography of Jobs)’에서 혁신은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보스턴, 시애틀 등 주요 도시의 노동 양상 변화를 자세히 조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는 도시가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 연관된 복잡한 환경임을 보여준다”고 모레티는 썼다. “그런 환경은 새로운 사업 방식과 아이디어를 촉진한다. 혁신가들은 서로 인접하면서 창조 정신을 고무하고 더 크게 성공한다.”
씽크탱크 시티옵저버토리는 도시 일자리가 매년 0.5% 증가한 데반해 교외에선 0.1% 감소했음을 2007년 한 연구를 통해 밝혀 냈다. 30세 이하 인구가 그런 인구 이동을 주도한다. 미국 인구조사 결과는 30세 이하 인구가 지난 세대와 달리 교외로 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추세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신 기술의 요람으로 군림한 거대 교외 지역이다. 여기서 탄생한 슈퍼스타 IT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으로 이동하자 종래의 상업지구는 마치 동네 슈퍼마켓처럼 낡아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기술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도시에 집중된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태동하던 20년 전만 해도 원거리 근무는 거의 불가능했다. 컴퓨터를 갖고 있더라도 한참을 삑삑대는 모뎀을 통해야 겨우 지금보다 훨씬 질 낮은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엔 모든 일거리를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로 받을 수 있다. 나는 최근 시트릭스의 CEO 마크 템플턴을 만났다. 그는 ‘소프트웨어 중심 일터’라는 최신 서비스를 보여줬다. 이젠 기술이 곧 일터다. 사이버 공간에 상주하는 회사에 있어 물리적인 사무실은 그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기술은 우리가 서로 떨어져 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만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영화도, 하버드대학 강의도 온라인으로 보고 듣는다.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칼루사나 캐나다 새스커툰에 회사를 차리고 싶더라도 그 지역 벤처투자자들을 직접 찾아가 굽신거릴 필요가 없다. 어디에 살든 킥스타터로 후원을 받으면 된다.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이유는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모레티가 설명하듯이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사람들은 공장 인근에 모여 살았다. 공장은 대개 필요한 자원 근처에 자리했다. 가구 공장은 숲 근처에, 철강공장은 석탄 광산 근처에 들어섰다. 혁신 기반 경제에서 우린 아이디어 공장에 필요한 자원 인근에 모여 산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 말이다.
모레티의 발견은 스티븐 존슨이 저서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에서 제시한 관찰과 맞아 떨어진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보다 많은 관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결국 해답은 도시다. 존슨은 역사학 연구를 바탕으로 이렇게 썼다. “이웃 도시보다 10배 큰 도시는 10배가 아니라 17배 더 혁신적이다. 50배 더 큰 대도시는 150배 더 혁신적이다.”
이는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가 왜 원거리 근무를 하던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는지 설명해준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해 드림포스 컨퍼런스 무대에서 각국 정상들과 화상통화만 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 발달로 면대면 만남의 가치가 더 커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최근 경영 추세 역시 강도 높고 협력적인 대면 집단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모레티는 아주 혁신적인 도시로의 이주가 강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혁신이 부와 성공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면 똑똑한 사람들은 혁신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따르려 할 것이다. 지금은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바로 그 방식이다.
향후 10년 동안 변화를 일으킬 법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막대한 규모의 30세 이하 인구다. 이 세대는 대체로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며 대부분 독신이다. 그리고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짝을 찾는다. 당연히 도시에 거주하고 싶을 만하다. 앱을 켜봐야 가장 가까운 이성으로 이웃집 젖소를 띄워줄 아이오와 시골 동네에 누가 살고 싶어 하겠는가? 이 세대가 가족을 이루기 시작해야 비로소 교외지역이 매력을 되찾을 것이다.
어쩌면 그땐 도시 밖에서 살면서도 혁신에 필요한 만남은 유지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할지 모른다. 소프트웨어 중심 일터는 갈수록 나아진다. 지금은 돈 많은 괴짜들이나 사용하는 가상현실 안경이 주류가 되고 집 안에 앉아서도 동료 수십 명과 회의실에 모인 경험을 하는 시기가 언젠가는 온다.
이렇게 기술과 가족이 결합되면 세상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때가 30세 이하 인구는 깨진 양동이에서 새어나오는 물처럼 도시 밖으로 흘러나와 자연 속에서 가상 혁신을 실현할 것이다. 나처럼 그들이 빠져나간 도시의 빈자리를 메우려 기다리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좋은 일이다.
- 번역 이기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술은 지금쯤 지리학을 완전히 뒤바꿨어야 한다. 사람들이 어디에 살든 세계 경제에 참여 가능하도록 세상을 하나로 만들었어야 한다. 기술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젠 보다 많은 사람이 도시를 벗어나 아름다운 소도시나 호숫가 별장에서 원거리 근무를 하고 있으리라.
현실은 다르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떨어진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들처럼 도시로 모여든다. 여생을 즐기려고 도시로 돌아오는 은퇴자들 때문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역동적인 도시에 그 어디보다도 가장 많다. 믿어지진 않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터에 출근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기술 덕분에 멀리서도 일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교통 정체와 싸우고, 막대한 집값을 내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기를 택한다. 왜 그럴까?
혁신 기반 경제에선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보다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듯하다.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저서 ‘일자리의 새 지리학(The New Geography of Jobs)’에서 혁신은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보스턴, 시애틀 등 주요 도시의 노동 양상 변화를 자세히 조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는 도시가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 연관된 복잡한 환경임을 보여준다”고 모레티는 썼다. “그런 환경은 새로운 사업 방식과 아이디어를 촉진한다. 혁신가들은 서로 인접하면서 창조 정신을 고무하고 더 크게 성공한다.”
씽크탱크 시티옵저버토리는 도시 일자리가 매년 0.5% 증가한 데반해 교외에선 0.1% 감소했음을 2007년 한 연구를 통해 밝혀 냈다. 30세 이하 인구가 그런 인구 이동을 주도한다. 미국 인구조사 결과는 30세 이하 인구가 지난 세대와 달리 교외로 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추세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신 기술의 요람으로 군림한 거대 교외 지역이다. 여기서 탄생한 슈퍼스타 IT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으로 이동하자 종래의 상업지구는 마치 동네 슈퍼마켓처럼 낡아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기술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도시에 집중된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태동하던 20년 전만 해도 원거리 근무는 거의 불가능했다. 컴퓨터를 갖고 있더라도 한참을 삑삑대는 모뎀을 통해야 겨우 지금보다 훨씬 질 낮은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엔 모든 일거리를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로 받을 수 있다. 나는 최근 시트릭스의 CEO 마크 템플턴을 만났다. 그는 ‘소프트웨어 중심 일터’라는 최신 서비스를 보여줬다. 이젠 기술이 곧 일터다. 사이버 공간에 상주하는 회사에 있어 물리적인 사무실은 그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기술은 우리가 서로 떨어져 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만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영화도, 하버드대학 강의도 온라인으로 보고 듣는다.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칼루사나 캐나다 새스커툰에 회사를 차리고 싶더라도 그 지역 벤처투자자들을 직접 찾아가 굽신거릴 필요가 없다. 어디에 살든 킥스타터로 후원을 받으면 된다.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이유는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모레티가 설명하듯이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사람들은 공장 인근에 모여 살았다. 공장은 대개 필요한 자원 근처에 자리했다. 가구 공장은 숲 근처에, 철강공장은 석탄 광산 근처에 들어섰다. 혁신 기반 경제에서 우린 아이디어 공장에 필요한 자원 인근에 모여 산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 말이다.
모레티의 발견은 스티븐 존슨이 저서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에서 제시한 관찰과 맞아 떨어진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보다 많은 관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결국 해답은 도시다. 존슨은 역사학 연구를 바탕으로 이렇게 썼다. “이웃 도시보다 10배 큰 도시는 10배가 아니라 17배 더 혁신적이다. 50배 더 큰 대도시는 150배 더 혁신적이다.”
이는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가 왜 원거리 근무를 하던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는지 설명해준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해 드림포스 컨퍼런스 무대에서 각국 정상들과 화상통화만 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 발달로 면대면 만남의 가치가 더 커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최근 경영 추세 역시 강도 높고 협력적인 대면 집단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모레티는 아주 혁신적인 도시로의 이주가 강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혁신이 부와 성공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면 똑똑한 사람들은 혁신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따르려 할 것이다. 지금은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바로 그 방식이다.
향후 10년 동안 변화를 일으킬 법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막대한 규모의 30세 이하 인구다. 이 세대는 대체로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며 대부분 독신이다. 그리고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짝을 찾는다. 당연히 도시에 거주하고 싶을 만하다. 앱을 켜봐야 가장 가까운 이성으로 이웃집 젖소를 띄워줄 아이오와 시골 동네에 누가 살고 싶어 하겠는가? 이 세대가 가족을 이루기 시작해야 비로소 교외지역이 매력을 되찾을 것이다.
어쩌면 그땐 도시 밖에서 살면서도 혁신에 필요한 만남은 유지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할지 모른다. 소프트웨어 중심 일터는 갈수록 나아진다. 지금은 돈 많은 괴짜들이나 사용하는 가상현실 안경이 주류가 되고 집 안에 앉아서도 동료 수십 명과 회의실에 모인 경험을 하는 시기가 언젠가는 온다.
이렇게 기술과 가족이 결합되면 세상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때가 30세 이하 인구는 깨진 양동이에서 새어나오는 물처럼 도시 밖으로 흘러나와 자연 속에서 가상 혁신을 실현할 것이다. 나처럼 그들이 빠져나간 도시의 빈자리를 메우려 기다리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좋은 일이다.
- 번역 이기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찬 바람 불면 배당주’라던데…배당수익률 가장 높을 기업은
2수험생도 학부모도 고생한 수능…마음 트고 다독이길
3‘동양의 하와이’中 하이난 싼야…휴양·레저 도시서 ‘완전체’ 마이스 도시로 변신
4불황엔 미니스커트? 확 바뀐 2024년 인기 패션 아이템
5최상위권 입시 변수, 대기업 경영 실적도 영향
6보험사 대출 늘고 연체율 올랐다…당국 관리 압박은 커지네
7길어지는 내수 한파 “이러다 다 죽어”
8"좀비버스, 영화야 예능이야?"...K-좀비 예능2, 또 세계 주목받을까
9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