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오지 않는 알래스카

지난 2번의 겨울 동안 토기아크 마을에는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극히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4월 초인데도 마을을 에워싼 언덕에는 아주 보일락 말락 눈이 덮여 있을 뿐이다. 베링해 동쪽 끝 브리스톨만 주변의 다른 30개 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지역에는 대다수 원주민이 유피크족이다. 털옷을 입는 시베리아인의 후손이다. 시베리아인은 1만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기 전 베링육교(Bering Land Bridge, 빙하시대 아시아와 미 대륙을 연결했던 육지)를 건넜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다.” 마을 공립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며 로구사크가 말했다. 마을 노인들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받는 곳이다. “5월까지 만에 얼음이 남아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로구사크를 비롯해 그 뒤 내가 만난 마을 주민 20여 명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원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목격했던 광경을 설명한다. 땅과 바다에 의존해 살아가는 북미의 손꼽히는 마지막 문명에서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지구가 더워지기 때문이다. “토기아크는 황진지대(dust bowl, 모래바람이 빈발하는 대초원지대)가 됐다. 만 건너편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4월 중순 트윈 힐스의 원주민 팀 밥 원홀라 주니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트윈 힐스는 토기아크와 마찬가지로 비행기나 배로만 접근이 가능한 이웃 마을이다.

토기아크에 거주하는 유피크족은 알래스카와 캐나다 동부의 에스키모로 불리는 3대 원주민 그룹 중 최대 부족이다(원주민은 이 민족학·언어학적 명칭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는다). 로구사크는 이례적으로 19세 어린 나이에 마을 운영위원회인 토기아크 전통협의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지금은 부위원장이 됐다. 1995년 알래스카주와 연방 당국에 압력을 넣어 인근 월러스 제도에서 자급자족형 수렵(subsistence hunting)을 다시 허용하도록 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알래스카 당국이 그 전통을 금지한 뒤 30여년 만이었다. 미국 어류·야생생물국은 토기아크 마을 전체에 ‘공동 수렵’용으로 2마리의 바다코끼리를 배정한다. 수확한 고기·지방·가죽은 마을 사람들끼리 때로는 이웃 마을 주민들과 분배하고 교환한다.


토기아크의 삶은 알래스카 전역의 오지와 마찬가지로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 먹거리를 수확하는 작업 중심으로 돌아간다. 겨울은 얼음낚시와 수렵의 계절이다. 홍연어 회귀(sockeye salmon run)는 세계 최대 규모다. 보통 6월 말에 시작돼 4~5주 동안 정신 없이 바쁜 시기다. 토기아크 가구의 절반 가량이 상업적인 어로작업에 고용되거나 소형 어선을 타고 워싱턴주에서 올라온 대형 트롤(저인망) 어선들과 경쟁을 벌인다. 여름은 새먼베리(북미산 딸기)를 수확해 쇼트닝과 섞고 설탕을 넣어 아쿠타크(akutaq)를 만드는 철이다. 아쿠타크는 ‘에스키모 아이스크림’으로 알려진 유피크족 필수 식량이다. 가을에는 ‘쥐 식량(mouse foods)’을 수집한다. 바다표범 기름을 쳐서 생으로 먹는 덩이줄기 식물 쇠뜨기(horsetail), 녹색 아쿠타크 재료로 쓰이는 야생초 수영(sour dock), 그리고 바구니를 짜는 데 쓰이는 큰 들풀 등이다.이 같은 주기는 대략 10월부터 4월 중순까지 영하의 온도, 얼어붙은 땅 위에 두텁게 쌓인 눈, 강과 만의 얼어붙은 빙판에 좌우된다. 내가 방문했을 동안에는 그런 풍경을 보기가 힘들었다.

보호구에 있는 두 무리의 카리부(북미 순록) 대략 15만 마리 중 토기아크 사냥꾼들은 지난해 가을 16마리, 올겨울에는 1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무리의 건강한 종족 보전을 위한 솎아내기 목적으로 허용된 268마리에 크게 못 미쳤다. 현지인이 선호하는 또 다른 사냥감은 뇌조(ptarmigan)다. 이 토실토실 살찐 새는 구워 먹거나 스튜를 만든다. 하지만 지난겨울에는 킬벅 산맥의 접근하기 어려운(그리고 더 추운) 비탈에서만 머물렀다. “뇌조가 지난 2년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고 로구사크가 말했다. 그는 “너무 많은 제트기, 비행기, 배, 자동차가 대기를 오염시켜” 눈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월에 6~7℃를 웃도는 온도에서 만과 강의 얇은 얼음을 깨고 하는 낚시는 위험하고 거의 불가능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최소 한 사람 이상의 토기아크 주민이 브리스톨만 한복판의 얇은 얼음이 깨져 익사한 듯하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체 연어의 40%가 브리스톨만에서 공급된다. 토기아크의 연간 영양분 공급 중 절반가량을 담당하는 주요 식품이다. 하지만 올 2월 이후에는 얼음이 대체로 얼지 않았다. 청어와 빙어(smelt)의 정규 얼음낚시 시즌이 4개월가량 줄어들었다.

“비정상적인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 토기아크 전통 협의회 위원인 클라라 앤 마틴(54)이 말했다. 친구의 어린 딸 생일파티에서였다. 10년 전에는 “노인들이 ‘아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눈이 내리지 않고 나무가 자라나고 카리부(북미 순록)에게 병이 생긴다. 기후변화가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마틴 위원은 말한다.

지난해는 전 세계적으로 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브리스톨만의 편차가 유독 심해 평소보다 5℃가량 높았다. 매년 3월 열리는 이디타로드 썰매개 경주 대회도 개최지를 더 북쪽으로 옮겨야 했다. 별로 눈이 내리지 않은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로 이동했다. 알래스카의 더 북쪽에선 키발리나, 샤크툴리크, 시시마레프 등 최소 10여 개 마을이 집단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수위가 높아지면서 해안선 침식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빙이 얇아지면서 바다표범과 고래 사냥도 줄었다.
서부알래스카경관보전협동조합은 연방기구가 설립하고 앨라스카대학 과학자들로 이뤄진 연구 단체다. 이들이 내놓은 2010~2019년 기온 예측에서 브리스톨만의 심장인 딜링햄의 4월과 10월 온도는 0℃의 0.5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온도가 몇 도나 상승하면 7개월에 달했던 겨울이 5개월로 줄게 된다. 장기적으로 겨울이 더 짧아질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2090~2099년엔 브리스톨만의 겨울이 2개월 더 줄어들 전망이다. 3월과 11월 온도가 빙점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된다. 향후 4~5세대에 걸쳐 토기아크의 겨울이 불과 3개월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의미다.
근년 들어 연구팀은 브리스톨만 전역 40개 마을의 알래스카 토착민으로 시민 감시단을 구성해 주변 환경변화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했다. 대원들은 이른바 지역 환경 관찰 네트워크를 통해 특이한(또는 전과 달리 일찍 나타나는) 곤충·물고기 또는 식물 사진을 온라인에 올린다(예컨대 토기아크에선 1월에 갯버들의 생장이 목격됐다. 아스피린 대용품으로 사용되는 이 식물은 보통 빨라야 4월에 싹을 틔운다. 또는 알류샨 열도의 한 마을에선 2월에 벌을 볼 수 있었다). 토기아크 학교의 샘 고수크 교장은 1월에 강둑에서 푸른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을 되살렸다. 예년보다 4개월 빨랐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온라인에 올렸다.
학교 구내식당에 앉은 로구사크 주위로 젊은 세대가 둘러 앉아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지식을 전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교사를 자처하는 그가 말했다. “내가 추진해온 문제들을 누군가 넘겨받아 우리의 자급자족형 생활방식을 앞으로 오랫동안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
토기아크 주민의 절반이 18세 이하다. 그들은 부족 원로와 학교에서 자급자족형 생활방식을 배우고 있다. 유피크 전통 전담 교사 패니 파커가 이끄는 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유피크 어휘와 문법뿐 아니라 코바늘로 뜨개질한 총알 집과 헤드밴드 만드는 법을 배운다. 조던 와실리(17)라는 한 학생이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수제 모카신(북미 원주민의 사슴가죽 신발)에는 사슴가죽 밑창, 가장자리에 댄 비버 털, 손으로 장식한 에어 조던 로고가 달려 있었다. 토기아크의 학생 중 대학 진학자는 극소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대다수가 중퇴한다. “거의 모두가 고향에 남아 자급자족형 수렵을 하고 어업으로 돈벌이를 하고 싶어 한다”고 샤일라 슈워크 교사가 말했다. 워싱턴주 오번 출신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다.
토기아크행 비행편의 출발지인 딜링햄으로 다시 돌아가 공항에서 도심으로 나가는 차를 잡아탔다. 지난해 토기아크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딜링햄의 수학·과학 교사 타라 크레가 동행했다. 두 지역의 학생들이 기후변화에 관해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지 묻는 학생도 있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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