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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도 동분서주

한국 기업도 동분서주

해성디에스는 세계 최대 크기로 그래핀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합성 시간도 17분으로 단축했다.
현재 한국 기업 가운데 그래핀을 상용화하거나 양산 중인 업체는 없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몇몇 대기업과 중소업체가 각자의 사업 영역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 중이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연구·개발(R&D) 초기 단계이거나, 소량의 시제품 생산에 머문 수준이다. 다만, 최근 들어 R&D가 활기를 띠면서 유의미한 시제품을 내놓는 기업도 등장해 산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 그래핀 개발을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곳은 삼성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 국내에 출원된 그래핀 관련 특허 총 2921건 중 삼성전자가 224건, 삼성테크윈을 비롯한 삼성 계열사가 225건으로 가장 많은 특허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이 그래핀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반도체, 휘는(Flexible)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자사의 주요 제품에 응용할 만한 곳이 많아서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분야의 기술과 특허를 경쟁 업체보다 먼저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의 그래핀 개발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담당한다. 특히 성균관대학 연구진과 함께 개발 중인 그래핀 화학적박막증착법(CVD) 연구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대(大)면적 단결정(single crystal) 그래핀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Science)’가 온라인 속보로 소개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 받았다.

삼성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뿐 아니라 해당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의 투자에도 손을 뻗고 있다. 그룹에서 벤처기업 발굴과 투자를 담당하는 삼성벤처투자는 지난해 2월 미국의 XG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인수했다. XG사이언스는 분말형태의 그래핀 생산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투자 금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300만 달러 수준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벤처투자의 사업 패턴을 고려했을 때 그래핀 기술을 상용화한 시점에서 XG사이언스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XG사이언스라는 업체가 흥미롭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포스코다. 2011년 11월 20%가량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또 이보다 앞선 2011년 1월에는 한화케미칼이 지분 19%를 인수한 바 있다. 삼성·포스코·한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집단이 그래핀 기술을 찾아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셈이다. 포스코는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의 ‘그래핀 소재·부품기술 개발사업’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돼 물리적 박리 그래핀 제작과 이를 강판에 코팅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한화의 경우 XG사이언스 지분 인수 이후 그래핀과 관련해 현재까지 드러난 성과가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난해 발표된 삼성과의 빅딜로 한화가 그래핀 개발에 본격 착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핵심은 삼성테크윈이다. 삼성테크윈은 삼성종합기술원과 별도로 삼성그룹의 그래핀 원천소재 양산 특허와 CVD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를 진행해왔다. 2013년에는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산자부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돼 터치패널 응용 분야를 연구했다. 그런데 지난해 빅딜 발표로 한화로의 매각이 진행되면서, 한화가 태양광 사업을 위한 소재 개발의 일환으로 그래핀 개발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테크윈 측은 “그래핀 개발은 진행 중이지만, 이 부문의 향후 계획은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테크윈 매각 이후 삼성의 그래핀 개발 영역이 어떻게 변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동안 삼성테크윈은 그래핀의 투명 전도체 특성에 초점을 맞춰 개발해왔다. 터치패널 등에 응용되는 분야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주로 그래핀의 전자 소자 애플리케이션 분야를 연구했다. 삼성전자 주요 제품군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려면 삼성테크윈의 관련 기술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종합기술원이 그래핀 연구 영역을 조금씩 넓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그래핀 연구가 삼성종합기술원으로 일원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삼성테크윈이 모체인 중소기업이 그래핀 개발 분야에서 화제를 모았다. 반도체 부품 업체인 해성디에스의 이야기다. 이 회사는 대면적(540X680㎜, 약 34인치 크기)의 고품질 그래핀 양산을 위한 핵심 기술을 개발, 지난 4월에 시제품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나온 기술 중 세계 최대 크기로 그래핀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는 3~7시간이 걸리던 합성 시간도 17분으로 줄였다. 그동안 상용화의 걸림돌로 지적됐던 생산성과 가격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해성디에스는 반도체 생산장비업체인 엔피에스와 함께 그래핀 합성 장비를 별도로 개발했다. CVD 방식으로 한 번에 총 4장의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다. 진공 공정에서 빠른 승온과 냉각을 할 수 있는 급속 열처리 기술이 공정 시간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성디에스는 지난해 5월 삼성테크윈에서 반도체 부품사업(MDS) 부문이 분리돼 해성그룹(지분 60% 보유)에 흡수되면서 설립된 회사다. 당시 그래핀 사업부의 일부 핵심 인력이 함께 이동해 그래핀 상용화를 해성디에스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정하고 추진해왔다.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개발을 지원받은 다른 업체들과 달리 20억원가량을 직접 투자해 성과를 냈다. 4월에는 소재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인 ‘MRS 2015’에서 개발 성과를 공개하면서 호평 속에 일부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양산 체제를 갖춰 그래핀을 본격 생산한다는 목표다. 류재철 해성디에스 플렉스개발팀장은 “단순히 소재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국내 기업 위주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견·중소업체들, 국책과제 사업자로 참여
해성디에스와 제휴한 엔피에스 외에도 주성엔지니어링·그래핀스퀘어 등의 기업들은 반도체 생산설비 기술을 바탕으로 그래핀 생산을 위한 장비를 공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공정 재료 전문 업체인 솔브레인은 분말형태의 산화 그래핀 제조 공정을 개발 중이다. 대규모 생산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제이오·크레진 등의 업체도 분말형태 그래핀 제조에 나섰다.

이들 업체가 양산에 성공해 재료 가격이 하락하면 분말형태 그래핀을 활용한 부품·소재 산업에서의 사업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분말형태의 그래핀은 ㎏당 2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안종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당 1만원 초반까지 가격이 떨어지면 그래핀의 상용화가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효과를 기다리고 있는 게 상보와 창성, 동진쎄미켐 등 중견·중소업체들이다. 디스플레이·광학필름 업체인 상보는 포스코·삼성테크윈과 함께 정부의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돼 그래핀을 활용한 배리어 필름을 개발하고 있다. 김상근 상보 회장은 “그래핀은 수분과 산소에 취약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를 보호하는 필름으로서 활용가치가 커 비중 있게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창성과 동진쎄미켐은 모두 정전기(ESD) 방지 및 전자파(EMI) 차폐용 제품을 개발 중이다. 창성 역시 국책과제 사업자로 개발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개발 시작 단계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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