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이 노래를 못한다고?
밥 딜런이 노래를 못한다고?
가창력이 좋다고 반드시 훌륭한 가수가 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수들을 연구한 결과 그런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기술은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몰락의 길로 이끈다.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무턱대고 익힌 기술의 뼈대만 남지 않도록 막강한 내공을 감추기 위해선 때론 겸손해야 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오랫동안 목청과 입술, 폐의 재주넘기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노래의 첫 여덟 마디가 지나면 떨리는 고음과 과시용 기교에 내 귀가 지친다.
그렇다면 밥 딜런의 경우를 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1960년대부터 저항음악과 반전운동의 비공식 대표격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딜런은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1명으로 꼽히지만 그의 가창력은 수십 년 동안 조롱의 대상이었다. 거의 모든 술집 가수는 냉소적인 딜런 모창으로 손님들을 웃긴다. 그들은 딜런의 대표적인 곡 ‘Idiot Wind’나 ‘Hurricane’의 일부를 훌쩍거리는 코맹맹이 소리나 코요테 울음처럼 과장해 흉내 낸다. 그러면 모두 껄껄 웃으며 ‘밥 딜런은 제프 삼촌보다 노래를 더 못 불러”라고 말한다.
지난 5월 20일 은퇴한 CBS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먼의 ‘레이트 쇼’ 고별 프로그램을 보며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겸 영화감독 빌 머레이가 세련된 우스갯소리를 늘어 놓았고, 딜런은 무표정한 얼굴로 클래식곡 ‘The Night We Call It a Day’를 불렀다. 고별에 맞는 노래였지만 지나친 감정이입 없이 조용히 레터먼의 은퇴를 애석해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딜런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을 재해석한 앨범 ‘Shadow in the Night’을 발표했다. 사실 딜런이 시나트라처럼 정확한 음조와 부드러운 발성, 일관된 음색을 요구하는 노래를 부르려면 상당한 용기나 대담함이 필요할지 모른다. 시나트라의 경우는 그런 자질이 과도했지만 딜런은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포크 싱어는 그같은 세련된 기교를 정통성의 이름으로 피한다.
무시했느냐 아니면 능력이 모자라 할 수 없었느냐가 딜런의 보컬에서 흔히 제기되는 의문이다. 내가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시나크라가 그랬듯이 딜런도 전성기 때는 자신이 선택한 장르에서 아주 유능한 가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인기 가수를 기막히게 흉내 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딜런은 미국의 포크음악 운동을 선도한 우디 거스리를 모방했고, 시나트라는 솜사탕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빙 크로스비와 감정적인 스토텔링의 대가 빌리 홀리데이를 혼합한 형태를 모델로 삼았다.
딜런의 첫 앨범에 나오는 ‘Talkin’ New York’를 들으면 그의 놀라운 귀와 정확한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앨라배마주 오지의 방언도 그대로 구사했다. 딜런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흉내를 잘 내는 재주를 가진 세련된 스타일리스트였다. 시인 T S 엘리엇이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고 말했듯이 딜런은 1962년 당시 포크 음악계의 약삭빠른 ‘음악 절도범’이었다. 그는 우디 거스리를 완벽하게 모방하다 못해 그의 음악과 스타일을 훔쳤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딜런은 흉내 내기에 능한 다른 이류 가수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가수들은 특히 루이 암스트롱처럼 연주하고 노래하려고 애썼다.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는 암스트롱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가 연주하지 않은 음악은 무엇이든 연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를 모방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모방하는 가수가 아직도 많다.
딜런이 1965년 발표한 ‘Subterranean Homesick Blues’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접근법을 시도한 노래였다. 드디어 밥 딜런의 성숙한 진면목이 드러났다. 신랄하고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이었다. 그 노래에선 리듬을 따라가기보다 그냥 느껴야 한다. 정통파는 박자에 맞춰 노래하지만 스윙어는 박자를 피하거나 무시한다.
그 노래에서도 딜런의 음정에 관한 재능이 드러난다. 그의 음정을 오랫동안 비난한 사람이 많았지만 뛰어난 재즈 관악기나 호른 연주자처럼 딜런의 음은 정확했다. 표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어체의 미소음정에 가깝게 발성했다. 그런 면에서 딜런은 랩 혁명을 예시했다. 멜로디보다 구어체의 말씨와 발성을 중시했다는 뜻이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밥 딜런은 어떤 규칙을 따르고 어떤 규칙을 무시할지 약삭빠르고 적절하게 선택한 의식 있는 음악가다. 클래식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나 미술가 피카소, 또는 시나트라 같은 혁명가가 그랬다. 딜런도 가창력이 없어서 실제 음정에서 약간 벗어난 게 아니라 완벽한 음정은 그의 미적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됐던 것이다. 1962년 당시 그의 동시대 가수 패트 분은 겉으로는 딜런보다 노래를 더 잘했다. 그러나 분의 ‘Speedy Gonzales’와 딜런의 ‘Song to Woody’를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나은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딜런은 1965년 시사주간지 타임 기자에게 주제 넘게도 “난 엔리코 카루소(이탈리아의 전설적 테너)에 못지 않는 가수”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 그의 영국 투어 다큐멘터리 ‘뒤돌아 보지 마라(Don’t Look Back)‘를 찍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젊은 혈기에 일부러 까칠하게 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헛소리가 아니었다. “잘 들어 보라”고 딜런은 덧붙였다. “나도 모든 음을 정확히 다 낸다. 마음만 먹으면 숨을 그보다 3배나 오래 참을 수 있다.”
기술적인 정확성을 따지려면 딜런보다 마이클 부블레가 나을 것이다. 캐나다 출신인 부블레는 시나트라 모창의 1인자이지만 그처럼 낭만적인 가수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시나트라처럼 입 거친 취객을 때려 눕히지도 않았고 멕시코 요리 엔칠라다가 당긴다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날아가지도 않았다. 이번에 앨범으로 나온 딜런의 시나트라 노래가 부블레처럼 ‘좋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차이점이 중요하다. 딜런은 시나트라의 유산을 기리는데 필요한 염세적인 감정과 부드러움을 갖췄다. 시나트라와 딜런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방식대로 노래했다. 명성에 걸맞은 음악가만 보여줄 수 있는 자질이다.
DAVID WEIS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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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오랫동안 목청과 입술, 폐의 재주넘기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노래의 첫 여덟 마디가 지나면 떨리는 고음과 과시용 기교에 내 귀가 지친다.
그렇다면 밥 딜런의 경우를 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1960년대부터 저항음악과 반전운동의 비공식 대표격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딜런은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1명으로 꼽히지만 그의 가창력은 수십 년 동안 조롱의 대상이었다. 거의 모든 술집 가수는 냉소적인 딜런 모창으로 손님들을 웃긴다. 그들은 딜런의 대표적인 곡 ‘Idiot Wind’나 ‘Hurricane’의 일부를 훌쩍거리는 코맹맹이 소리나 코요테 울음처럼 과장해 흉내 낸다. 그러면 모두 껄껄 웃으며 ‘밥 딜런은 제프 삼촌보다 노래를 더 못 불러”라고 말한다.
지난 5월 20일 은퇴한 CBS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먼의 ‘레이트 쇼’ 고별 프로그램을 보며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겸 영화감독 빌 머레이가 세련된 우스갯소리를 늘어 놓았고, 딜런은 무표정한 얼굴로 클래식곡 ‘The Night We Call It a Day’를 불렀다. 고별에 맞는 노래였지만 지나친 감정이입 없이 조용히 레터먼의 은퇴를 애석해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딜런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을 재해석한 앨범 ‘Shadow in the Night’을 발표했다. 사실 딜런이 시나트라처럼 정확한 음조와 부드러운 발성, 일관된 음색을 요구하는 노래를 부르려면 상당한 용기나 대담함이 필요할지 모른다. 시나트라의 경우는 그런 자질이 과도했지만 딜런은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포크 싱어는 그같은 세련된 기교를 정통성의 이름으로 피한다.
무시했느냐 아니면 능력이 모자라 할 수 없었느냐가 딜런의 보컬에서 흔히 제기되는 의문이다. 내가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시나크라가 그랬듯이 딜런도 전성기 때는 자신이 선택한 장르에서 아주 유능한 가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인기 가수를 기막히게 흉내 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딜런은 미국의 포크음악 운동을 선도한 우디 거스리를 모방했고, 시나트라는 솜사탕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빙 크로스비와 감정적인 스토텔링의 대가 빌리 홀리데이를 혼합한 형태를 모델로 삼았다.
딜런의 첫 앨범에 나오는 ‘Talkin’ New York’를 들으면 그의 놀라운 귀와 정확한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앨라배마주 오지의 방언도 그대로 구사했다. 딜런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흉내를 잘 내는 재주를 가진 세련된 스타일리스트였다. 시인 T S 엘리엇이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고 말했듯이 딜런은 1962년 당시 포크 음악계의 약삭빠른 ‘음악 절도범’이었다. 그는 우디 거스리를 완벽하게 모방하다 못해 그의 음악과 스타일을 훔쳤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딜런은 흉내 내기에 능한 다른 이류 가수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가수들은 특히 루이 암스트롱처럼 연주하고 노래하려고 애썼다.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는 암스트롱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가 연주하지 않은 음악은 무엇이든 연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를 모방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모방하는 가수가 아직도 많다.
딜런이 1965년 발표한 ‘Subterranean Homesick Blues’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접근법을 시도한 노래였다. 드디어 밥 딜런의 성숙한 진면목이 드러났다. 신랄하고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이었다. 그 노래에선 리듬을 따라가기보다 그냥 느껴야 한다. 정통파는 박자에 맞춰 노래하지만 스윙어는 박자를 피하거나 무시한다.
그 노래에서도 딜런의 음정에 관한 재능이 드러난다. 그의 음정을 오랫동안 비난한 사람이 많았지만 뛰어난 재즈 관악기나 호른 연주자처럼 딜런의 음은 정확했다. 표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어체의 미소음정에 가깝게 발성했다. 그런 면에서 딜런은 랩 혁명을 예시했다. 멜로디보다 구어체의 말씨와 발성을 중시했다는 뜻이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밥 딜런은 어떤 규칙을 따르고 어떤 규칙을 무시할지 약삭빠르고 적절하게 선택한 의식 있는 음악가다. 클래식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나 미술가 피카소, 또는 시나트라 같은 혁명가가 그랬다. 딜런도 가창력이 없어서 실제 음정에서 약간 벗어난 게 아니라 완벽한 음정은 그의 미적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됐던 것이다. 1962년 당시 그의 동시대 가수 패트 분은 겉으로는 딜런보다 노래를 더 잘했다. 그러나 분의 ‘Speedy Gonzales’와 딜런의 ‘Song to Woody’를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나은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딜런은 1965년 시사주간지 타임 기자에게 주제 넘게도 “난 엔리코 카루소(이탈리아의 전설적 테너)에 못지 않는 가수”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 그의 영국 투어 다큐멘터리 ‘뒤돌아 보지 마라(Don’t Look Back)‘를 찍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젊은 혈기에 일부러 까칠하게 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헛소리가 아니었다. “잘 들어 보라”고 딜런은 덧붙였다. “나도 모든 음을 정확히 다 낸다. 마음만 먹으면 숨을 그보다 3배나 오래 참을 수 있다.”
기술적인 정확성을 따지려면 딜런보다 마이클 부블레가 나을 것이다. 캐나다 출신인 부블레는 시나트라 모창의 1인자이지만 그처럼 낭만적인 가수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시나트라처럼 입 거친 취객을 때려 눕히지도 않았고 멕시코 요리 엔칠라다가 당긴다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날아가지도 않았다. 이번에 앨범으로 나온 딜런의 시나트라 노래가 부블레처럼 ‘좋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차이점이 중요하다. 딜런은 시나트라의 유산을 기리는데 필요한 염세적인 감정과 부드러움을 갖췄다. 시나트라와 딜런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방식대로 노래했다. 명성에 걸맞은 음악가만 보여줄 수 있는 자질이다.
DAVID WEIS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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