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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이범선作 [오발탄]의 ‘빈부격차’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이범선作 [오발탄]의 ‘빈부격차’

일러스트:중앙포토
“살자니까 돈이 필요하구요. 필요한 돈이니까 구해야죠. 왜 우리라고 좀 더 넓은 테두리, 법률선까지 못나가란 법이 어디 있어요?” 동생 영호의 말에 형 철호는 턱을 가슴에 묻은 채 구멍난 양말만 쳐다본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싶은 게다. 소설 [오발탄]은 1959년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이다. 한국 전쟁 직후 가난 때문에 꿈과 이상을 잊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지독한 현실을 담아냈다. 5·16 직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군사정부는 영화에 담긴 사회상이 너무 암울한데다 철호의 어머니가 미쳐서 외치는 “가자!”가 월북을 상징한다고 해서 상영금지 시켰다. 하지만 영화 [오발탄]은 이후 재평가되면서 유현목 감독을 거장으로 만들었다. 한국 흑백영화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송철호는 삶의 낙이 없다. 일은 하고 있지만 교통비도 채 안 나오는 월급을 받는다.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는 자신을 못 알아본다. 지주로서 풍족하게 살아오다 실향민이 된 어머니는 밤낮으로 “(북으로) 가자”만을 외칠 뿐이다. 만삭의 몸인 아내는 둔한 동물이 돼 있다. 그녀는 E여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군에 다녀온 동생 영호는 2년째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돈을 버는 것은 여동생. 하지만 여동생은 미군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다.

동생 영호가 결국 권총으로 은행을 턴다. 그러나 잡힌다. 갑갑한 마음에 집에 들르니 아내가 병원에 실려갔단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치과를 지나다 충치로 이가 아프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 철호는 의사의 만류에도 두 개의 어금니를 다 뽑아버린다. 택시를 탄 철호는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S병원으로 가자”고 했다가 “X경찰서로 가자”를 외친다. 뒷좌석에서 쓰러져 버린 철호를 보고는 운전사가 말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전후 극도의 혼란과 가난
한국전쟁 직후 한국 사회는 극도의 혼란과 가난에 시달렸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아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그리고 계리사 서기 구실까지 해야 하는 철호처럼 책임져야 할 일은 많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는 그런 시절이었다. 이범선은 이 시절의 한국인을 오발탄과 같은 비극적인 존재로 봤다. 한국인을 괴롭혔던 또 하나의 사회현상은 ‘빈부격차’였다. 어려운 시절이라고 모두가 어렵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도 재빠르게 한몫 잡으면서 부를 늘려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 우리도 한번 살아봅시다. 제길, 남 다 사는데 우리라고 밤낮 이렇게만 살겠수? 근사한 양옥도 한 채 사구, 장기판 만한 문패에다 형님의 이름 석 자를, 제길, 장님도 보게 써서 대못으로 땅땅 때려 박구 한번 살아봅시다.” 동생 영호가 형 철호에게 토하는 말에는 빈부격차로 인해 박탈감을 느끼는 빈곤층의 절망이 담겨있다.
 빈부격차가 범죄 증가로 이어져
경제학은 빈부격차가 낳은 학문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부를 쌓기 시작한 1800년대 초반 영국에는 이전에 보지 못한 계층이 출몰했다. 자본가들이다. 과거 부를 독점했던 귀족과 성직자 대신 일반인 중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1800년대 초반 영국은 이전에 보지 못한 생산력으로 사회가 풍족해졌지만 90%의 국민은 여전히 가난했다.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온 농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추락했고, 아이들까지 공장생산에 동원됐다. 일찍이 보지 못한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이 탄생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지니계수다. 지니계수란 소득분배가 계층간 얼마나 공평하게 이뤄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0이면 빈부격차가 전혀 없는 사회다. 1은 빈부격차가 최악인 사회다. 통상 0.4 보다 높으면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지표로는 소득5분위 배율이 있다. ‘소득 상위 20%/소득 하위 20%’다. 5가 나오면 소득 상위 20%가 버는 돈이 하위 20%보다 5배나 더 많이 번다는 얘기다. 상대적 빈곤율도 자주 쓰인다. 중위소득(인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 비율이 클수록 상대적 빈곤도는 크다. 중산층의 개념도 중위소득을 활용한다.

통계적으로 볼 때 중산층이란 중위소득의 50~150%구간에 있는 사람이다. 연봉 4000만원이 중위 소득이라면 2000~6000만원이 중산층이다.

경제학자들이 빈부격차를 주목하는 이유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 사회 전체 경제의 불균형이 심해져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각종 사회문제를 낳아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된다. 변재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소득불평등과 범죄발생에 관한 실증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니계수가 높은 연도나 지역일수록 범죄의 발생률이 높았다. 또 2009년 기준으로 지니계수가 0.0388 개선되면 범죄가 1만4000건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 등도 ‘소득분포 양극화의 특성과 경제사회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양극화에 따른 저소득자들의 기대생애소득 감소는 범죄의 한계비용과 노동 공급 요인을 줄이게 된다”며 “미국과 한국의 실증분석 연구를 종합해보면 양극화가 진전되면 노동 공급은 줄어들고 재산 관련 범죄율은 증가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일을 해서는 많은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니 저소득층이 일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범죄를 통해 한탕을 노리려 한다는 의미다.

동생 영호가 권총강도로 돌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덕과 양심을 지키고 살아봤자 빈곤을 벗어날 수 없으니 범죄를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영호는 어느 회사의 월급을 싣던 지프차를 턴다. 하지만 그 차에 탔던 운전수와 회사원을 죽이지는 않는다. 이들이 신고를 하면서 영호는 얼마 가지 않아 붙잡힌다. 붙잡힌 영호는 “법률선은 뛰어넘었지만 인정선에서 걸렸다”며 빙그레 웃는다.

한국의 빈부격차 지표는 지난 20년에 비해 악화됐다. 지니계수(도시 2인 이상, 처분가능소득 기준)은 1990년 0.256에서 2013년 0.280으로 나빠졌다. 5분위 배율은 1990년 3.72배에서 2013년 4.56배가 됐다. 상대적 빈곤율도 1990년 7.1%에서 2013년에는 11.8%로 높아졌다. 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지고 난폭해진다는 데 우연의 일치일까.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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