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 동성애자로부터의 자유

이 장면은 윌리엄스가 지금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연기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2013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그 영화를 촬영할 당시 스크린 밖의 그는 늘 그렇듯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다.
조연을 맡은 로베르토 어과이어는 “그는 늘 웃겼다”고 돌이켰다. “언제나 친절하고 관대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줬다. 욕심이나 이기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과이어는 촬영 막바지에 특히 힘들었던 일주일을 돌이켰다. 배우들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 한창 촬영하는 도중 세트장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트럭이 도착했다. 사기를 북돋우려는 윌리엄스의 배려였다. 그는 촬영에 헌신하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어 했다. 어과이어는 “아이스크림 트럭의 깜짝쇼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윌리엄스의 마지막 유작 ‘블러바드’가 오는 8월 13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블러바드’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 영화의 촬영과 개봉 시점 사이에 그의 삶이 끝났다는 사실이 더 큰 비통함을 자아낸다. 윌리엄스는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상냥한 60세 은행원 맥을 연기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스크린 연기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그의 다른 유작인 SF코미디 ‘앱솔루트 애니씽’에선 개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블러바드’는 윌리엄스가 생을 마감하기 약 1년 전에 촬영이 끝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해도 촬영 중이나 촬영장 밖에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맥은 누가 봐도 깊은 비통에 시달리는 인물이라는 점이 확실해 보인다. 그와 아내(캐시 베이커가 연기했다)는 침실을 따로 사용한다. 아버지는 거의 혼수상태로 요양원에 있다. 맥은 열정 없는 결혼과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맥은 젊은 사기꾼 레오(어과이어가 연기했다)를 만나지만 성적인 관계는 피한다. 거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맥과 레오의 관계는 플라토닉한 애정과 아버지-아들 사이의 사랑 사이를 오간다. 레오 역할을 위해 체중을 16㎏나 줄인 어과이어는 “상당히 고통스런 관계”라고 말했다. 맥은 레오를 처음 만났을 때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떠듬거리며 말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결국 평범하고 조용했던 그의 삶을 망가뜨린다.
디토 몬티엘 감독(‘화이트 밀크’ ‘엠파이어 스테이트’)은 더글라스 소스비의 대본을 읽고 자신이 만든 고요하고 안락한 삶을 깨뜨리는 나이 많은 남자 주인공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경험도 그 역할에 대한 관심을 증폭 시켰다. 몬티엘 감독의 부모는 60대 후반 이혼했다. 그는 “‘이제 어떻게 살 건가요?’라고 어머니에게 물었는데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놀런과 아내의 관계는 아주 애매하다. 부드럽지만 긴장이 흐르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피곤한 관계다. 서로 사랑하지만 열정이 식은 지 오래다. 그들은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부부 동반 유람선 여행을 가려고 한다. 몬티엘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 작품을 서로를 해방시켜주는 이야기로 봤다”고 말했다. “우리 부모의 이혼을 돌이키며 오랜 세월 같이 지낸 후 갈라서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윌리엄스는 이전에도 여러 번 인생의 실패자를 연기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연기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와 ‘쥬만지’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가 초기 작품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여준 광적인 자신감도 없다. ‘블러바드’에서 그는 늘 차분하다. 우리가 몰랐던 윌리엄스의 단면을 보여준다. 열정적인 감정 분출과 다른 사람 흉내내기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찾는 나이 많고 조용한 인물 말이다(영화가 그의 광적인 코미디로 살짝 빠져드는 장면이 있는데 상당히 어색하다).
몬티엘 감독은 윌리엄스가 절제된 모습으로 맥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했다. 평소 그는 온갖 우스갯소리를 하며 뛰어다닌다. 하지만 맥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윌리엄스도 그 점을 잘 알았다. 맥은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블러바드’는 허구적인 이야기지만 ‘중년의 불만족’이라는 주제와 윌리엄스의 자살이 겹쳐져 으스스한 여운을 남긴다. 현실도 희한하게 일치했다. ‘블러바드’가 촬영된 내슈빌의 저택은 실제로 서로 다른 침실을 사용한 부부가 소유한 집이었다. 그 집의 아내는 여주인공을 연기한 캐시 베이커와 상당히 닮았다. 남편도 윌리엄스와 약간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아내가 ‘블러바드’의 줄거리를 알고는 몬티엘 감독을 찾아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우리 남편도 결혼 생활 35년 만인 지난해 동성애자라고 털어놓았어요.”
그 부부는 맥이 아내에게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장면을 찍을 때 촬영장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몬티엘 감독은 “그 장면을 촬영할 때 그들은 헤드폰을 쓰고 내 뒤에 앉아 울었다”고 돌이켰다. “그러자 윌리엄스가 내게 오더니 ‘이건 너무 기이한데’라고 말했다.”
- ZACH SCHONFELD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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