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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의 주범 ‘독성 패션’

환경오염의 주범 ‘독성 패션’

갭, 유니클로 등 입고 있는 티셔츠가 ‘MADE IN INDIA’라면 당신도 인도 남부의 생계형 농장 수만 곳을 황폐하게 만든 수질오염 위기에 일조했을지 모른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는 노이얄 강을 막은 거대한 오라투팔라얌 댐이 있다. 육로로 이 저수지에 가까워지면 뭔가 아주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른 논, 야자수, 바나나 나무의 풍경이 저수지를 약 3㎞ 앞둔 지점부터는 갑자기 바싹 마른 시뻘건 땅으로 변한다. 낮은 관목 숲만 여기저기 눈에 띈다. 한때 맑고 깨끗했던 노이얄 강물은 녹색으로 변해 하얀 거품을 토해 낸다. 서쪽으로 약 32㎞ 떨어진 세계 최대의 의류산업 도시 티루푸르에서 방출된 독성 폐수가 강물을 오염시킨 것이다.

니트웨어로 잘 알려진 티루푸르는 ‘니트 시티(Knit City)’라는 별명을 가졌다. 언뜻 보면 이곳은 개도국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세계화의 바람직한 모델이다. 티루푸르의 의류산업은 약 50만 명을 고용하고 세계 각지에 제품을 수출해 연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MADE IN INDIA’가 박혀 있는 갭이나 토미힐피거, 월마트 티셔츠는 거의 다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티루푸르가 의류산업 중심지로 성장한 데는 미국 납세자들의 기여가 컸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2002년 이곳의 새로운 급수 시스템 도입을 돕기 위해 타밀나두 주정부와 티루푸르 수출업체협회에 2500만 달러를 융자했다. 그 직후 민간 투자가 대거 잇따라 티루푸르 의류업계는 2억2000만 달러를 추가 확보했다. 타밀나두 주도인 첸나이의 미국 영사관은 2006년 보도자료에서 미국이 개입하기 전엔 현지 의류산업에 “염색과 탈색에 필요한 물이 부족했다”며 미국의 선도적인 투자로 그 지역 빈민가에 거주하는 수천 명이 마침내 수돗물을 사용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인근 농업 지역을 관통하는 노이얄 강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들이는 USAID 프로젝트 덕분에 티루푸르 의류 산업은 급성장했다. 미국의 인도산 니트웨어 수입 규모는 2002년 5억7100만 달러에서 2012년 12억5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로 늘었다. 그중 약 56%가 티루푸르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런 성장의 이면에서 티루푸르 주변의 환경과 주민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2013년 4월 초 오라투팔라얌 농업조합의 첼리아판 우다야쿠마르 조합장을 만났다. 그의 가족은 대대로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쌀, 바나나, 코코넛, 강황을 생산했다. 그는 “과거엔 풍족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가 안 돼 소득이 없다. 수세기 동안 주민을 먹여살리던 소규모 영농이 완전히 무너졌다.”

인도의 원단 염색공장들은 폐수를 처리하지 않고 하천으로 흘려보내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와 함께 댐 아래 있는 오라투팔라얌 마을을 둘러봤다. 붉은 타일 지붕과 엷은 청색 벽의 폐가가 수두룩했다. 준공일이 적힌 명판을 보면 대부분 댐 공사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지역에서 오라투팔라얌처럼 ‘유령 마을’로 변한 곳이 60개가 넘는다.

오라투팔라얌 댐은 티루푸르의 농업 관개를 현대화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저수지 물은 화학약품, 염분, 중금속으로 가득 찼다. 그 물이 농지를 못 쓰게 만들고 주민을 병들게 하자 농민들은 타밀나두주의 마드라스 고등법원에 오라투팔라얌 댐의 방류 중단을 청원했다. 2002년과 그 다음해 현지 대학은 오염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주민의 약 30%가 관절통, 위염, 호흡장애와 궤양 등 다양한 수인성 질병과 관련된 증상을 보였다.

현지의 비정부기구는 2007년 조사에서 티루푸르의 염색공장 729곳이 하루 2300만 갤런(8706만4471ℓ)의 폐수를 대부분 처리하지 않고 노이얄 강으로 흘려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대부분은 오라투팔라얌 저수지에 집수된다. 2000년대 중반 댐을 완전히 비웠을 때 바닥에서 죽은 물고기가 400t이나 나왔다.
 대규모 의류제조의 저주
인도의 염색공장과 가죽 무두질 공장이 수질 오염의 주범이다.
티루푸르를 방문한 지 2주 뒤인 2013년 4월 24일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8층짜리 의류공장 라나플라자가 붕괴했다. 근로자 1100명 이상이 매몰돼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다뤄지자 월마트와 베네통 같은 유명 의류 브랜드는 근로조건과 안전 조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사회운동가들이 그 브랜드의 불매운동을 벌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방글라데시의 특정 의류에 대한 미국 무관세 수출권을 취소했다.

라나플라자 사건은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들춰내며 미국 소비자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억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지역의 더 큰 환경위기는 무시됐다.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의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디톡스 마이 패션(Detox my Fashion)’ 운동을 주도하는 이슈우에 따르면 청바지 1벌을 만드는데 물이 약 7000ℓ, 티셔츠 1장에는 2700ℓ가 든다. 제조 과정을 마치면 그 물은 심한 수준으로 오염된다. 요즘은 의류산업이 농업 다음 가는 제2의 수질 오염원이다. 특히 아시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 의류 브랜드는 생산 거점을 미국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했다. 미국 의류신발협회(AAFA)는 의류 회원사들이 제조의 97%를 해외로 아웃소싱했으며, 그중 75% 이상을 아시아가 차지한다고 추정했다.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확실하다. H&M, 유니클로, 갭 등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에 가서 상품의 꼬리표를 보라.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중국,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런 티셔츠 1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5달러 정도에 팔린다. 싼 것을 찾는 서구 소비자에게 그만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현지 공장 지역의 주민은 큰 피해를 입는다. 방글라데시의 부리강가 강, 캄보디아의 메콩강 등 극심하게 오염된 강 유역에선 생계형 농업이 죽어가며, 식수가 독성 물질에 오염되고, 주민은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대규모 의료제조가 불러온 저주다.

이런 환경·건강 재앙의 핵심에는 규제의 부재가 있다. 남·동아시아 대부분이 그렇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는 암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 의류제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두 나라 다 175개국 중 156위로 짐바브웨와 순위가 같다. 라오스와 방글라데시는 145위를 기록했다. 인도는 86위로 훨씬 낫다. 그러나 인도도 의류산업에서 다른 부패한 나라들과 경쟁하다보니 인권과 환경 보존 문제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환경학자 기탄조이 사후는 2013년 의류제조 등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규제기관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규제기관은 대부분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과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정치인이 책임자로 앉아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타밀나두·구자라트주는 인도의 개발 모델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 주의 환경오염 규제기관이 특히 부패했다. 사후가 2008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타밀나두주의 오염통제위원회는 가죽 무두질 공장의 오염 폐수 방출을 못 본 체했다. 지난 2월 그곳의 한 무두질 폐수 저장탱크가 터지는 바람에 직원 10명이 독성 폐수에 익사했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은 규제당국의 감사 2명이 승인한 시설이었다. 그들은 뇌물수수, 중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뉴욕 패션기술대학의 글로벌 패션경영 프로그램을 이끄는 패멀라 엘스워스 교수는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과 책임 있는 경영 둘 다를 기대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류업체가 요구하는 마진 때문에 하청업체가 수익을 올리면서 근로기준에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엘스워스 교수는 “서구의 의류 소비자가 좀 더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품목은 가격이 다 오르지만 옷은 매년 싸진다. 그런 추세를 중단시켜야 한다.”
 농민들의 상처뿐인 승리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다카의 8층짜리 의류공장 라나플라자가 붕괴해 근로자 1100명 이상이 매몰돼 목숨을 잃었다.
라나플라자 사건 후 인도의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와 달리 지속가능하고 더 안전하다고 적극 선전했다. 2013년 9월 19일 티루푸르 수출업체협회와 뉴욕 주재 인도 영사관은 맨해튼의 패션지구에서 미국 의류 브랜드 유치 행사를 주최했다. 메시지는 ‘라나플라자 같은 사고가 인도에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환경운동가 시나탐비 프리트비라지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의류산업의 환경오염 문제를 널리 알리고 피해를 막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했다. 그와 농민단체는 10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2007년 미국 브랜드에 납품하기 위해 오염방지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인도 염색공장들을 폐쇄하라는 인도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인도의 사법체제는 매우 굼뜨다. 티루푸르 염색 업체협회는 그 명령에 대해 항소한 뒤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공장을 계속 가동했다.

게다가 갭과 월마트 같은 주요 브랜드의 주문이 늘면서 독성 폐수는 더 많이 방출됐다. 그러나 2011년 프리트비라지와 농민에게 좋은 소식이 나왔다. 인도 대법원이 타밀나두주의 전력회사에 법원의 명령을 어기는 염색공장에는 전력 공급을 중단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대다수 공장이 ‘오염 폐수 방출 제로’라는 법정의 기준에 따를 수 없어서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나 프리트비라지와 농민에겐 상처뿐인 승리였다. 외진 지역에서 무허가 염색공장이 대거 생거나면서 곧 티루푸르의 오염 문제가 주 전체로 번졌다. 인근 나마칼의 오염통제위원회에서 일하는 환경 공학자 M 무루간은 “대다수 공장이 규모가 작고 민첩하며 전기 없이도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색공장 하나를 폐쇄하면 다른 곳에서 다시 생겨난다.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

2013년 4월 프리트비라지를 만났을 때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형식적으론 재판에서 이겼지만 실제로는 졌다. 불법행위를 감시할 인적·물적 자원이 없다. 인도는 무슨 일이든 불법적으로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다.”

타밀나두 주의원을 지낸 비디얄 세카르는 “염색공장의 80%는 폐수를 불법 방출한다”고 말했다. “오염 규제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영업을 묵인한다. 타밀나두 오염통제위원회는 100% 부패했다.” 그 결과 적법하게 운영하는 공장과 불법을 자행하는 공장을 구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P N 샤무하순다르는 티루푸르 외곽에서 작은 염색공장 마스트로 컬러스를 운영한다. 타밀나두 주정부는 마스트로를 포함해 약 20개 염색 공장에 폐수처리 공동시설을 현대화하도록 400만 달러를 무이자로 융자했다. 마스트로는 ‘오염 폐수 방출 제로’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폐수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폐수를 무단 방출하는 다른 공장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프리트비라지는 싼 것만 찾는 미국 소비자가 그런 조건 조성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티셔츠 1장을 10달러에 파는 것은 죄악과 다름없다. 예를 들어 월마트가 티셔츠 1장 당 마진으로 8달러를 챙기고 근로자나 환경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는 게 과연 공정한 일인가?”

미주 대륙의 수출입 거래를 조사하는 업체 데이터마인에 따르면 2007∼2011년 법원의 폐쇄 명령을 어기고 염색 공장을 가동한 티루푸르 업체에 월마트가 주문한 물량이 오히려 늘었다. 예를 들어 발루 엑스포츠를 보자. 이 회사는 웹사이트에서 ‘한 지붕 아래 수직 공정’을 자랑한다. 두 사업부문인 발루 프로세스와 발루 엑스포츠 다잉은 티루푸르 염색업체협회 회원이다. 2007년 이래 이 협회는 인도 대법원의 ‘오염폐수 방출 제로’ 명령을 어겼다.

수년 동안 월마트에 티루푸르의 불법 염색공장 이용에 관해 문의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최근 다시 월마트가 거래하는 발루 등 티루푸르 염색공장의 불법 운영에 관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자 월마트의 국제홍보담당 이사 후안 안드레스 라레나스 디아즈는 이런 서면 답변을 보냈다. “하청업체가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대이며 계약상 조건이다. 티루푸르의 하청업체와 우리의 관계는 월마트의 기준과 행동강령에 부합한다는 조건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디아즈 이사는 특정 문의 사항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프리트비라지도 월마트 측에 문의했지만 소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벽에 머리를 박는 것과 같다.” 그는 뉴스위크에 월마트보다 갭이나 JC페니, 토미힐피거 같은 ‘대형 브랜드’에 문의하라고 권했다.

갭은 오랫동안 환경운동가들의 감시 대상이었다. 그린피스의 의류 감시운동 ‘디톡스 캣워크(Detox Catwalk)’는 매년 대형 의류업체를 ‘위너(winners, 친환경업체)’ ‘그린워셔(greenwashers,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한 활동을 하면서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광고하는 업체)’ ‘루저(losers, 환경오염업체)’로 분류한다. 갭은 가장 잘 알려진 ‘루저’에 속한다. 사용된 유해 화학물질을 밝히지 않고 그런 물질의 사용을 중단할 의사도 없다는 뜻이다.

갭은 지난 15년 동안 제조 부문의 아웃소싱을 계속 늘렸다. 갭에 따르면 40명의 지속가능성 전문가 팀을 운영하며 하청업체 공장 거의 전부를 사전 통고를 하거나 불시에 방문해 조사한다. 또 간접적인 공급업체(제직공장과 염색공장 등)가 행동강령을 준수하도록 제3의 업체에 조사를 맡긴다.

갭은 2011∼2012년 사회적·환경적 책임성 보고서에서 공급망 전체를 직접 관리하진 않는다며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듯하다고 인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남아시아의 갭 하청업체 중 10∼24.99%는 행동강령이 요구하는 환경관리 기준을 위반했다. 2012년에는 그 비율이 50% 이상으로 늘었다.

공급망 전문가로 하버드대학 에드먼드 J 새프라 윤리센터 연구원인 헤더 화이트는 “하청업체의 50% 이상이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갭의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서 환경 요인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경우 공장은 외부 감사에게 보고서 작성 비용을 지불한다고 덧붙였다. “그럴 경우 보고서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감사는 해당 공장이 검사를 통과해야 그 일을 계속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연구원은 갭의 공급망을 직접 지적하진 않았지만 그 업계에선 뇌물이 흔하다고 덧붙였다.
 단속은 두더지 잡기 게임
미국과 유럽의 대형 의류 브랜드 다수는 제조를 인도의 공장에 외주를 준다.
궁극적인 문제는 티루푸르의 공장에 아웃소싱하는 갭이나 데시구알 등 수십 개 의류 브랜드가 채택한 행동강령 준수의 측정 기준이 복잡한 현대 의류 공급망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원단은 제직공장에서 공급 받아 같은 모회사 산하의 제2 시설에서 염색한 다음 제3의 공장에서 완성된 옷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해당 공장과 최종 제품을 검사하는 감사는 옷이 어디서 염색됐는지 알기 어렵다.

염색공장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특정 염색공장이 소규모 무허가 공장에 일부 하도급을 줄 수 있다. 한밤중에 노이얄 강이나 농지로 폐수를 흘려보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때마다 검사관이 지켜볼 가능성도 희박하다. 결국 감사 보고서와 오염통제위원회의 인증은 발뺌할 수 있는 허식에 불과하다고 프리트비라지는 말했다. “아주 교묘하게 거짓말을 허용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JC페니의 대변인은 뉴스위크에 “우리가 아는 한 JC페니 제품은 그 지역에서 염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JC페니는 수년 동안 티루푸르 지역의 수직통합업체들과 거래했다. 거기엔 이스트만 엑스포츠도 포함된다. 이스트만은 JC페니에 납품하던 2007년 당시 인도 대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공장을 가동했다.

그러나 JC페니는 ‘완성된 제품’을 수입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불법 염색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JC페니의 대변인은 “불법 공장에서 JC페니 고유 브랜드 상품이 염색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이스트만 엑스포츠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스트만 엑스포츠는 논평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갭에 따르면 남인도의 상황은 근년 들어 크게 개선됐다. 갭의 대변인 로라 윌킨슨은 뉴스위크에 제3의 감사 전원에게 갭이 직접 보수를 지급했으며,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남아시아의 갭 하청업체 중 약 90%가 친환경 관리 시스템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영구적인 효과를 얻으려면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남·동아시아의 공장에 의존하는 다른 의류 브랜드들도 그와 비슷한 약속을 제시한다. H&M의 대변인 울리카 이작슨은 “우리 업종은 물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가치사슬의 다양한 부문에서 오염을 줄이려고 10년 이상 적극 노력했다”고 말했다. “우리 목표는 패션업계의 선도적인 물관리업체가 되는 것이다.” (H&M은 그린피스의 ‘위너’에 속하며 염색공장을 포함해 하청업체 명단을 공개한다.) 유니클로와 토미힐피거 등 다른 유명 브랜드는 거듭된 논평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갭은 2020년까지 모든 하청업체에서 ‘오염 폐수 방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지금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티루푸르 지역의 많은 농민에겐 시기적으로 너무 늦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티루푸르를 다시 찾았을 때 오라투팔라얌 저수지의 물은 여전히 녹색이고 하얀 거품에 덮여 있었다. 그 지역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주민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카루파이아 수브라마니암은 오라투팔라얌 댐 부근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의 집에선 멀리 약간의 잔디와 몇 그루의 야자나무가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피해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다. 수브라마니암의 유일한 작물인 코코넛은 크기가 아주 작았고 대부분은 썩은 채 나무에서 떨어졌다. 3㏊ 정도 되는 그의 농장은 수 세대 전과 똑같았지만 이제는 거의 쓸모없어졌다.

티르푸르의 의류산업이 더 많은 옷을 생산하고 더 많은 독성 폐수를 방출하면서 수브라마니암은 작물의 절반을 잃었다. 그는 “지금은 빗물로만 농사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95년 전엔 가지·고추·토마토·벼·강황·담배를 재배했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왜소한 코코넛에서 얻는 쥐꼬리만한 소득으로 그 전부를 시장에서 사야 한다.

피해 보상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몇몇 소송이 제기됐지만 유능한 변호사를 댈 수 있는 대지주들만 보상 받았다. 수브라마니암 같은 영세 농민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프리트비라지는 그처럼 소외된 농민 약 4000명을 모아 집단으로 마드라스 고등법원에 청원했다. 결국 법원은 독성 폐수 방출로 못 쓰게 된 땅에 대해 염색업체협회가 변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프리트비라지는 생계수단을 잃은 농민이 거의 3만 명이나 된다며 4000명 외 나머지 농민은 보상 받을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불법 염색공장은 계속 생겨난다. 프리트비라지는 “인근 강 유역과 심지어 해안 지역에서도 새 염색공장이 들어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동쪽으로 약 320㎞ 떨어진 고대 항구 쿠달로어에선 화학물질 오염으로 주민이 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의 2000배나 된다. 모든 오염이 즉시 중단된다고 해도 노이얄 강과 주변의 토양을 정화하고 회생시키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프리트비라지는 말했다. “시간을 20년 뒤로 되돌려야 한다.”

- ADAM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Additional reporting by ALETTA ANDRE and ANIL VARGH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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