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0시대(8) 패션업계] 브랜드 강화·유통 다각화 나선 패션 리더들
[재계 3.0시대(8) 패션업계] 브랜드 강화·유통 다각화 나선 패션 리더들
최근 몇 년째 패션업계는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국내시장 점유율 상승과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으로 연 4%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이다. 패션업계 2·3세들은 브랜드 선택과 집중, 새로운 유통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올 상반기 패션업계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연초부터 소비 침체와 불규칙한 날씨로 판매가 저조했다. 4월께 소비심리가 반짝 살아나는가 싶더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다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정·형지·신원 등 중견기업은 물론이고 제일모직·코오롱FnC·LF 등 패션 대기업들조차 매출이 정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 침체가 산업계 전반의 사정이라지만 소비 패턴에 민감한 패션업계엔 더욱 가혹했다.
결국 패션업계는 군살 빼기에 나섰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는 빨리 정리하는 대신 성장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온라인 채널, 편집숍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유통 전략 마련에도 주력한다. 중국 대형 온라인쇼핑몰에 입점하는 기업도 속속 늘고 있다. 패션협회 관계자는 “최근 패션업계는 소비심리 위축과 성장세 둔화로 매출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며 “부진한 브랜드와 매장을 접어 경영 효율화를 꾀하고, 백화점에 의존하던 유통 채널을 다각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 최전선에 2·3세 경영자들이 서 있다.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 대기업들의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파워 브랜드 확보를 통해 생존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2728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0.3%나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60.6% 줄었다. 이 때문에 이서현 사장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꾸준히 정리하고 있다. 캐주얼 브랜드 후부, 여성복 브랜드 데레쿠니와 에피타프, 남성복 니나리치 등에 이어 8월엔 캐주얼 브랜드 바이크리페어숍 사업을 접었다. 대신 빈폴, 갤럭시, 로가디스 등 기존 주력 브랜드와 에잇세컨즈, 빈폴아웃도어 등 신규 성장 브랜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를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 아시아 톱3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다. 구본걸 LF 회장도 수입 브랜드 강화 등 사업구조를 개편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벨기에의 프리미엄 가방 브랜드 헤드그렌,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 엔꼬르소, 독일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 프랑스 명품 침구 브랜드 잘라 등 4개 브랜드를 들여왔다. 의류에 국한했던 사업 영역을 액세서리, 생활용품까지 확장하고 있다. 구 회장은 최근 여성·유아동·스포츠아웃도어 등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트라이씨클, 패션전문 케이블채널 동아TV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유통 채널 확장에도 열심이다. 올해 온라인 쇼핑 매출을 전년 대비 5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코오롱FnC를 운영하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도 패션업계 3세 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2001년 론칭한 여성복 쿠아 사업을 10여년 만인 지난해 중단하고, 올해 4월 건대입구에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를 열며 유통채널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견기업에서는 ‘젊은 피’ 수혈이 한창이다. 해외에서 디자인·마케팅·경영학 등 관련 분야를 공부한 오너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은 해외시장 진출, 새로운 영역 발굴 등 성장을 위한 전략을 짜내고 있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덕분에 창업자와 직원 간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메트로시티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는 양지해 엠티콜렉션 대표가 손꼽힌다. 창업주 양두석 회장의 장녀인 그는 20대 중반이던 2004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4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지난해 약 1300억원 규모로 키워놓았다. 동생 양승화 전무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128쪽 기사 참조>
김대환 슈페리어 대표는 최근 패션 브랜드 라이선스 전문업체인 유나이티드브랜딩그룹을 설립해 판권 거래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블랙마틴싯봉, 마틴싯봉 프리베, SGF슈페리어, SGF67 등 자사가 운영 중인 브랜드 4개를 포함해 현재 14개 브랜드를 보유한 상태. 내년부터 새 브랜드를 원하는 사업자에게 판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창업주 김귀열 회장이 국내 최초 골프웨어 브랜드 슈페리어로 ‘한 우물’을 팠다면 김 대표는 ‘다각화’로 선회한 것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막내딸 박이라 씨도 계열사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캐주얼 NII의 재도약과 크리스크리스티 시장 확대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표는 올해 크리스크리스티의 중국 1호점 오픈을 목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남편인 김경규 사업본부장과 함께 웰메이드를 론칭해 2년 만에 4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며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업력 70년이 넘는 BYC그룹은 언더웨어 제조와 도소매업뿐 아니라 건설업, 부동산 임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주 한영대 회장의 차남인 한석범 사장이 1997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계열사들의 실적이 동반 하락하자 중국시장 진출, 스포츠 언더웨어 론칭, SPA형 복합 매장 오픈 등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장녀인 한지형 디자인개발 담당 이사와 3남 한기성 전무도 경영 일선에 있다. 국내 속옷업계 1위인 남영비비안도 남상수 창업주의 아들인 남석우 회장이 대형마트, 홈쇼핑 등의 유통채널과 임산부, 어린이 등 틈새시장을 공략해 매출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성복 베스띠벨리, 씨, 비키와 남성복 지이크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원은 경영체제에 비상이 걸렸다. 창업주인 박성철 회장이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되면서 차남 박정빈 부회장이 사업총괄을, 막내 박정주 사장이 수출파트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박 부회장도 횡령 혐의로 기소되면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최근 중국 SPA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적극적인 해외진출 의지를 보였지만 사실상 굵직한 사업들의 일정에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패션기업 오너들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보다 가업 승계를 선호한다.
자수성가한 탓에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전문 경영인보다는 자녀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 승계 방식은 과거와 달리 탄탄한 기본기와 실무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실무형 경영 수업’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2·3세들은 영업·마케팅·수출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실무경험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패션 시장에서 창업주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지에서도 2세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최병오 회장의 장녀인 최혜원 우성I&C 상무는 본사 경영기획실 이사를 거쳐 여성복 캐리스노트 사업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최 회장은 경영능력 검증 차원에서 최 상무에게 형지의 등기이사직도 맡겼다. 이에 힘입어 최 상무는 전국 백화점 매장을 돌면서 우성I&C를 토털 패션기업으로 변신 시키고 있다. 동생 최준호 씨는 우성I&C 마케팅팀 과장으로 재직하다 최근에 중국 지사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제이듀코도 지난 4월 김삼중 회장의 장남 김선기 부사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섰다. 그는 전 브랜드의 예산 편성과 사업은 물론 수출 파트까지 지휘하고 있다. 차남 김선웅씨는 에스제이듀코의 인테리어를 전담하는 씨앤에프플러스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최근 온라인 비즈니스와 신규 사업에 대한 미션까지 맡았다. 에스제이듀코는 주주사로 참여한 에스엠이즈듀티프리가 인천국제공항 중소 중견기업 면세점 운영자로 선정되면서 하반기부터 면세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한세실업 김동녕 창업주의 차남 김익환씨는 한세실업 이사로 재직 중이다. 브랜드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은 그는 지난해 신규 설립된 여성복업체 플마제에 개인 자격으로 투자해 대주주 지위도 확보했다. 한세실업은 지난 2011년 유아동복 전문기업 한세드림을 인수한데 이어 최근 데님 의류 브랜드 에프알제이 진스를 보유한 에프알제이를 인수하면서 패션유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장남 김석환씨는 예스24 COO로 재직 중이며 지주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장남 윤근창 이사도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휠라USA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는 그는 2007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해 왔다. 휠라의 자회사에서 신발 소싱 업무를 수행하다가 이후 마케팅, 유통 등 실무 중심으로 영역을 넓혔다. 글로벌 브랜드인 만큼 경영 승계에 조심스러운 위치이지만 업계에서는 윤 이사의 오랜 미국 경험이 휠라코리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까또즈 브랜드로 유명한 태진인터내셔날의 전상우 경영기획부문 이사는 전용준 회장의 장남으로 기업의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입사 전 투자회사, M&A 전문기업에서 근무한 덕분에 숫자에 대한 해석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루이까또즈 브랜드의 고향인 프랑스의 현지법인 대표를 겸직하며 M&A 등 신성장 동력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 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잠뱅이에서 사명을 바꾼 제이앤드제이 글로벌은 고 김종석 회장의 자녀인 김명일, 김광일 형제 경영이 돋보인다. 김명일 전무가 남성 편집숍 디스크로우즈 등 새로운 영역 개발을, 김광일 이사는 상품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크레송 또한 고 신용관 회장의 자녀인 신봉기, 신미경 남매가 경영 일선에 섰다. 동생인 신봉기 대표는 다소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나 신미경 씨는 소재 팀장을 맡고 있다. 신 대표는 지난해 영국 최고급 수제 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톤마틴을 병행수입하는 크레송오토모티브를 설립하기도 했다.
패션업계에서 중국 시장은 가장 효과적인 불황 탈출구로 꼽힌다.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실제로 외국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의 공세로 침체됐던 국내 의류업계가 중국인관광객(유커) 특수로 파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600만명을 돌파한 유커의 국내 생산유발 효과는 18조6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유커가 늘어나면서 명품에 집중됐던 구매 영역은 토종 준명품·중저가 의류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랜드와 제일모직에 이어 신원, 형지, LF 등이 중국 진출에 나섰다. 이들의 주력상품은 SPA 브랜드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은 현재 저성장 기조에서 무한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외 소비자를 막론하고 세분화된 취향을 파악해 교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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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패션업계는 군살 빼기에 나섰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는 빨리 정리하는 대신 성장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온라인 채널, 편집숍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유통 전략 마련에도 주력한다. 중국 대형 온라인쇼핑몰에 입점하는 기업도 속속 늘고 있다. 패션협회 관계자는 “최근 패션업계는 소비심리 위축과 성장세 둔화로 매출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며 “부진한 브랜드와 매장을 접어 경영 효율화를 꾀하고, 백화점에 의존하던 유통 채널을 다각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 최전선에 2·3세 경영자들이 서 있다.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 대기업들의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파워 브랜드 확보를 통해 생존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2728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0.3%나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60.6% 줄었다. 이 때문에 이서현 사장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꾸준히 정리하고 있다. 캐주얼 브랜드 후부, 여성복 브랜드 데레쿠니와 에피타프, 남성복 니나리치 등에 이어 8월엔 캐주얼 브랜드 바이크리페어숍 사업을 접었다. 대신 빈폴, 갤럭시, 로가디스 등 기존 주력 브랜드와 에잇세컨즈, 빈폴아웃도어 등 신규 성장 브랜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를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 아시아 톱3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다.
파워 브랜드에 집중하는 패션 대기업
코오롱FnC를 운영하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도 패션업계 3세 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2001년 론칭한 여성복 쿠아 사업을 10여년 만인 지난해 중단하고, 올해 4월 건대입구에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를 열며 유통채널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견기업에서는 ‘젊은 피’ 수혈이 한창이다. 해외에서 디자인·마케팅·경영학 등 관련 분야를 공부한 오너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은 해외시장 진출, 새로운 영역 발굴 등 성장을 위한 전략을 짜내고 있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덕분에 창업자와 직원 간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메트로시티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는 양지해 엠티콜렉션 대표가 손꼽힌다. 창업주 양두석 회장의 장녀인 그는 20대 중반이던 2004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4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지난해 약 1300억원 규모로 키워놓았다. 동생 양승화 전무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128쪽 기사 참조>
김대환 슈페리어 대표는 최근 패션 브랜드 라이선스 전문업체인 유나이티드브랜딩그룹을 설립해 판권 거래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블랙마틴싯봉, 마틴싯봉 프리베, SGF슈페리어, SGF67 등 자사가 운영 중인 브랜드 4개를 포함해 현재 14개 브랜드를 보유한 상태. 내년부터 새 브랜드를 원하는 사업자에게 판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창업주 김귀열 회장이 국내 최초 골프웨어 브랜드 슈페리어로 ‘한 우물’을 팠다면 김 대표는 ‘다각화’로 선회한 것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막내딸 박이라 씨도 계열사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캐주얼 NII의 재도약과 크리스크리스티 시장 확대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표는 올해 크리스크리스티의 중국 1호점 오픈을 목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남편인 김경규 사업본부장과 함께 웰메이드를 론칭해 2년 만에 4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며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업력 70년이 넘는 BYC그룹은 언더웨어 제조와 도소매업뿐 아니라 건설업, 부동산 임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주 한영대 회장의 차남인 한석범 사장이 1997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계열사들의 실적이 동반 하락하자 중국시장 진출, 스포츠 언더웨어 론칭, SPA형 복합 매장 오픈 등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장녀인 한지형 디자인개발 담당 이사와 3남 한기성 전무도 경영 일선에 있다. 국내 속옷업계 1위인 남영비비안도 남상수 창업주의 아들인 남석우 회장이 대형마트, 홈쇼핑 등의 유통채널과 임산부, 어린이 등 틈새시장을 공략해 매출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성복 베스띠벨리, 씨, 비키와 남성복 지이크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원은 경영체제에 비상이 걸렸다. 창업주인 박성철 회장이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되면서 차남 박정빈 부회장이 사업총괄을, 막내 박정주 사장이 수출파트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박 부회장도 횡령 혐의로 기소되면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최근 중국 SPA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적극적인 해외진출 의지를 보였지만 사실상 굵직한 사업들의 일정에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패션기업 오너들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보다 가업 승계를 선호한다.
자수성가한 탓에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전문 경영인보다는 자녀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 승계 방식은 과거와 달리 탄탄한 기본기와 실무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실무형 경영 수업’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2·3세들은 영업·마케팅·수출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실무경험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패션 시장에서 창업주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지에서도 2세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최병오 회장의 장녀인 최혜원 우성I&C 상무는 본사 경영기획실 이사를 거쳐 여성복 캐리스노트 사업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최 회장은 경영능력 검증 차원에서 최 상무에게 형지의 등기이사직도 맡겼다. 이에 힘입어 최 상무는 전국 백화점 매장을 돌면서 우성I&C를 토털 패션기업으로 변신 시키고 있다. 동생 최준호 씨는 우성I&C 마케팅팀 과장으로 재직하다 최근에 중국 지사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제이듀코도 지난 4월 김삼중 회장의 장남 김선기 부사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섰다. 그는 전 브랜드의 예산 편성과 사업은 물론 수출 파트까지 지휘하고 있다. 차남 김선웅씨는 에스제이듀코의 인테리어를 전담하는 씨앤에프플러스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최근 온라인 비즈니스와 신규 사업에 대한 미션까지 맡았다. 에스제이듀코는 주주사로 참여한 에스엠이즈듀티프리가 인천국제공항 중소 중견기업 면세점 운영자로 선정되면서 하반기부터 면세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한세실업 김동녕 창업주의 차남 김익환씨는 한세실업 이사로 재직 중이다. 브랜드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은 그는 지난해 신규 설립된 여성복업체 플마제에 개인 자격으로 투자해 대주주 지위도 확보했다. 한세실업은 지난 2011년 유아동복 전문기업 한세드림을 인수한데 이어 최근 데님 의류 브랜드 에프알제이 진스를 보유한 에프알제이를 인수하면서 패션유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장남 김석환씨는 예스24 COO로 재직 중이며 지주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장남 윤근창 이사도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휠라USA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는 그는 2007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해 왔다. 휠라의 자회사에서 신발 소싱 업무를 수행하다가 이후 마케팅, 유통 등 실무 중심으로 영역을 넓혔다. 글로벌 브랜드인 만큼 경영 승계에 조심스러운 위치이지만 업계에서는 윤 이사의 오랜 미국 경험이 휠라코리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SPA·중국시장이 2·3세 승부수
잠뱅이에서 사명을 바꾼 제이앤드제이 글로벌은 고 김종석 회장의 자녀인 김명일, 김광일 형제 경영이 돋보인다. 김명일 전무가 남성 편집숍 디스크로우즈 등 새로운 영역 개발을, 김광일 이사는 상품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크레송 또한 고 신용관 회장의 자녀인 신봉기, 신미경 남매가 경영 일선에 섰다. 동생인 신봉기 대표는 다소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나 신미경 씨는 소재 팀장을 맡고 있다. 신 대표는 지난해 영국 최고급 수제 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톤마틴을 병행수입하는 크레송오토모티브를 설립하기도 했다.
패션업계에서 중국 시장은 가장 효과적인 불황 탈출구로 꼽힌다.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실제로 외국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의 공세로 침체됐던 국내 의류업계가 중국인관광객(유커) 특수로 파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600만명을 돌파한 유커의 국내 생산유발 효과는 18조6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유커가 늘어나면서 명품에 집중됐던 구매 영역은 토종 준명품·중저가 의류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랜드와 제일모직에 이어 신원, 형지, LF 등이 중국 진출에 나섰다. 이들의 주력상품은 SPA 브랜드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은 현재 저성장 기조에서 무한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외 소비자를 막론하고 세분화된 취향을 파악해 교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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