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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기자의 CAR TALK - 할리데이비슨으로 ROUTE 66(시카고~LA, 4200㎞)을 횡단하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 할리데이비슨으로 ROUTE 66(시카고~LA, 4200㎞)을 횡단하다

50줄에 들어선 기자는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주최로 지난 7월 11일부터 24일까지 12박 일정의 미국 횡단에 동행했다.
50~60대 한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 ‘불행한 세대’라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도 경제성장의 혜택도 받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평생직장이 사라진,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세대다. 인생 대부분을 ‘나’가 아닌 ‘남(가족)’을 위해 살았던 것에 후회한다는 설문 조사도 나온다. 자녀 교육비 부담에다 코 앞에 닥친 노후 대비는 인생의 중압감을 더할 뿐이다. ‘나’를 찾기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재충전해볼 여유가 있었을까.

50줄에 들어선 기자는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주최로 지난 7월 11일부터 24일까지 12박 일정의 미국 횡단에 동행했다. 서부 대륙 횡단도로인 루트 66의 시작인 시카고부터 로스앤젤레스(LA)까지 4200㎞를 완주한다. 40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80% 이상이 50~60대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나’에 대한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일까. 결혼 25주년, 30주년을 기념한 부부 동반 투어부터 사연은 다양했다. 12일간의 횡단 일정을 정리했다.
 [Day 1] 일리노이 시카고~스프링필드 355㎞ 주행
일리노이주 폰티악에 있는 루트 66 박물관 간판 앞에서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과 함께 30여 명의 고객과 10여 명의 스텝들이 포즈를 취했다. (우측)시카고 66 루트 시작 표지판
긴 횡단의 첫 여정은 시카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루트 66의 시작 표지판이다. 루트 66을 알만한 사람이면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후 투어를 함께 할 모터사이클을 렌트하러 1094년 개장한 시카고 할리데이비슨 딜러를 찾았다. 기종은 할리데이비슨의 기함인 ‘울트라 클래식’이다. 웅장한 디자인과 300㎏이 넘는 무게, 강력한 토크를 앞세운 1690cc의 트윈캠 엔진이 특징으로 장거리 라이딩에 제격이다. 뒷부분 중앙과 좌우에 달린 수납공간은 거의 경차 수준이다. 연료 탱크 용량은 22.7L로 250㎞ 이상 주유없이 주행할 수 있다. 국내 가격은 4100만원이다.

일리노이주는 한국(남한만 의미) 면적보다 더 크다. 사실상 루트 66을 횡단하는 일정이 하루에 한국땅 하나 정도를 훌쩍 달리는 식이다. 거대한 미국 대륙을 제대로 느껴본다고 할까.
 [Day 2~3] 스프링필드~미주리 세인트루이스~스프링필드 570㎞ 주행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인 게이트웨이 아치
아침인데도 이글거리는 태양열로 수은주는 29도를 가리킨다. 최고 기온은 34도까지 치솟는다. 다행스런 것은 습기가 많지 않아 불쾌지수가 낮다는 점이다. 시차는 주행 중에 가장 큰 골칫거리다.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은 주로 고속도로를 탄다. 이미 루트 66 구간이 상당부분 고속도로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도로 좌우에는 아무 볼 것이 없다. 오로지 끝도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일리노이와 미주리주 경계에는 미시시피 강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인 ‘게이트웨이 아치’가 우리를 반긴다. 서부 대평원의 에펠탑으로 불리는 이 아치는 1965년 완공됐다. 높이가 192m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보다 2배나 높다. 은색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어져 햇빛을 받으면 광채를 발산한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경제·군사력 세계 1위 같은 누구나 아는 수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미주리주 메라멕 주립공원 동굴에서 느낀 미국의 위대함이다. 동굴 투어 중 일행 한 명이 가이드에게 “왜 동굴 바닥을 시멘트 포장을 해 자연을 훼손했느냐?”고 물었다. 먼저 미국 가이드가 동굴에 달린 종유석을 만지거나 떼어 가면 벌금이 1000달러라고 엄포를 준 다음이다. 가이드는 “미국은 모든 장애인이 어떤 곳이라도 일반인처럼 갈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동굴을 구경할 수 있도록 포장을 했다”고 설명한다. 적어도 미국은 장애인에 관한 위대한 나라다. 메라멕 공원은 1930년대 서부시대를 누빈 전설의 갱단 두목인 제시 제임스가 피신한 곳으로 유명하다. <톰 소여의 모험> 촬영소이기도 하다.

루트 66 레일 해븐 여관
숙소는 루트 66의 전설을 가득 간직한 ‘루트 66 레일 해븐’여관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인(Inn)으로 단층 건물이다. 현관문을 열면 곧바로 주차장과 맞닿는다. 애연가들이 좋아할 장소다. 방 곳곳마다 루트 66의 전설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옷장에서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배어난다.
 [Day 4] 스프링필드~오클라호마시티 530㎞ 주행
오늘 라이딩 거리는 12일간의 투어 가운데 가장 길다. 문제는 일기예보다. 한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치솟는다. 본격적인 더위와의 싸움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66 Route West’라는 팻말이 눈을 자극한다. 도로 바닥에는 루트 66을 알리는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루트 66은 2003년 재건되면서 상당 구간이 기존 고속도로에 통합됐다. 끝없는 대평원이 전후좌우로 펼쳐진다. 루트 66 횡단은 미국인의 ‘버킷 리스트’로도 유명하다.

정오를 지났다. 주유를 겸해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오클라호마주의 두 번째 도시인 튤사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에 철도 건널목을 만났다. 때마침 기차가 들어온다. 길이만 1㎞가 넘는 화물열차다. 시속 60㎞ 정도로 24시간 대륙을 달린다. 정말 길다. 신호 대기에서 10분 정도 기다렸다. 땡볕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Day 5~6] 오클라호마시티~텍사스 아마릴로~뉴멕시코 싼타페 930㎞ 주행
루트 66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산타로사의 고풍스런 주유소
오클라호마 시티에 들어오기 직전에 재미난 로드 이름을 발견했다. 예일 로드가 나온 뒤 바로 하버드 로드가 이어진다. 미국 아이비리그 최고 명문대학 이름이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텍사스로 향하는 길은 편도 4차선 이상의 광활한 고속도로다. 대평원이 좌우 앞뒤로 펼쳐진다. 크루즈 컨트롤을 켜 놓고 70∼80마일로 달린다. 태양은 오늘도 작열한다.

뉴멕시코에 들어서자 바람이 불어온다. 해발 고도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라 그렇다. 민감한 사람은 귀가 멍멍해진다. 산타 로사에서 루트 66의 명소로 꼽히는 고풍스런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와 나란히 한눈에 봐도 오래된 루트 66의 황토색 도로가 남아 있다. 싼타페는 멕시칸 문화의 상징답게 고풍스런 황토색 건물이 이어진다. 왜 싼타페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지 단박에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다.
 [Day 7~8] 싼타페~갤럽~아리조나 플래그스태프 680㎞ 주행
그랜드 캐년을 지나는 할리데이비슨 투어 행렬
이번 12일간 일정에서 거의 매일 하나의 주를 주파한다. 싼타페를 지나 인디언의 전설인 나바호의 마을 앨버쿼키에 들렀다. 나바호 언어는 해독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바호족은 2차대전 때 미군 암호병으로 투입됐다. 나바호족은 우리와 가깝다. 몽고 반점에 머리도 검다. 체형도 동양인과 비슷하다.

어느덧 일정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그랜드 캐년으로 유명한 아리조나와 마주한다. 그랜드 캐년은 지구의 기가 가장 잘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아울러 인디언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인디언이 이곳에서 학살됐는가. 인디언의 저주를 생각하면서 할리데이비슨의 심장 고동을 듣는다.
 [Day 9~12] 플래그스태프~네바다~캘리포니아 빅토리아빌~로스앤젤레스 1270㎞
루트 66의 명소 바그다드 카페
그랜드 캐년 길 곳곳마다 사슴들이 길가에 나와 행렬을 반긴다. 아침 기온은 17도로 주행을 하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다. 엊그제 느낀 거대한 대평원의 열기는 온데간데없다.

루트 66 종점 산타모니카에서 필자.
3시간 만에 그랜드 캐년을 후딱 보고 네바다로 향한다. 네바다 모하비 사막에 들어서기 전 주유를 해야한다. 다른 곳에 비해 기름값이 2배지만 전방 150㎞ 이상 주유소가 없다. 모하비는 황량한 돌사막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 지대를 뜨거운 태양을 벗삼아 달린다. 모하비 사막을 지나자마자 첫 레스토랑인 ‘바그다드 카페’를 만난다. 루트 66의 명소다. 입구부터 추억거리가 가득하다. 벽면 곳곳마다 루트 66에 열광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의 달아 놓은 휘장과 엠블럼으로 도배돼 있다.

종점인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안에 들어섰다. 더 이상 주행은 불가능하다. 해변 한 가운데 루트 66의 종점을 알리는 현대식 간판이 홀로 서 있다. ‘어머니의 길’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kim.ta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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