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인도의 점쟁이 킬러

인도의 점쟁이 킬러

뉴델리 거리의 점성술사가 고객을 기다린다. 근년 들어 점성술사가 인도 정치인들의 배후 실력자 겸 중재자로 떠올랐다.
쿠라파티 나가라주는 인도 최고의 부자 점성술사 중 1명이다. 운도 상당히 따라준다. 몇 달 전 오토바이를 탄 총잡이 2명이 그의 집 근처에 멈춰서더니 그의 배에 세 발의 총탄을 쐈다. 나가라주는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살인혐의로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나가라주의 친척 3명(역시 부자 점성술사들)에게는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난해 마을 밖 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도요타 미니밴이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 뒤 가속 페달을 밟아 그들의 쉐보레를 앞지르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게 했다. 살인청부업자 3명이 차에서 뛰쳐나와 차에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운전자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숨졌다.

희생자들은 언젠가는 그런 일이 닥치리라 예감했을 터. 점성술사라서가 아니다. 몇 달 전 나가라주를 비롯한 간담 가문이 두르가 라오의 참혹한 살해를 공모했다고 알려졌다. 라이벌인 부탐 일가의 카리스마 넘치는 후손이었다. 현지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두르가 가문이 복수를 다짐했다. 별도의 보고서에서 경찰은 나가라주의 살해기도와 그의 친척 살인 사건 용의자로 부탐 일가 사람들을 지목한다. 나가라주는 아직 재판을 받지 않았으며 현지 검사에 따르면 그는 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인도에서 성공한 점쟁이로 살아가기가 갑자기 위험해졌다. 근년 들어 점성술사와 구루(guru, 힌두교 지도자)가 종종 인도 부패 정치인들의 배후 실력자 겸 중재자로 떠올랐다. 또한 그 직업에서의 폭력이 갈수록 일상화됐다. 2012년 경찰로 위장한 암살자들이 한 점성술사를 쏴 죽였다. 인도 북부 우타르 브라데시주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조언하던 점성가였다. 그의 피살은 지방선거와 건설계약을 둘러싼 라이벌 막후실력자(kingmakers)와의 다툼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경찰은 밝혔다.

이웃 하랴나주의 한 구루는 강간·살인·사기를 비롯한 갖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고도 여러 해 동안 멀쩡히 활개치고 다녔다고 반대파들은 비난한다. 그의 추종자들이 몰아주는 표에 권력자들의 정치 생명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그 힌두 지도자는 적들이 혐의를 날조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엔 또 다른 구루가 자신의 은거지에서 무려 1만5000명의 추종자로 인의 장벽을 쳤다. 살인 음모 혐의로 그를 체포하러 온 경찰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기 그룹과 또 다른 종파 간의 충돌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도 오랫동안 지역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부탐과 간담 일가도 주 단위 정치인들에게 작은 특혜를 청할 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피나카디미 마을에서 벌어진 두 가문의 유혈사태는 돈과 영향력을 둘러싼 전쟁의 결과인 듯하다고 경찰은 말한다. 언론과 공식 인터뷰가 허용되지 않는다며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경찰 정보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두르가와 라이벌 나가라주가 지역 정치 체제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불가촉천민 점성술사들
피나카디미는 전형적인 인도 남부 마을처럼 보인다. 암살자들이 두르가의 사체를 유기한 수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물소 몇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그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 중심가에 좁은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인접한 들판에선 수확한 옥수수 더미를 햇볕에 널어 말리고 있다. 그러나 피나카디미는 여느 마을과 다르다. ‘점성술사 마을’로 알려졌다. 마을의 500여 가구 중 다수가 점성술과 점술을 생업으로 삼는다. 전국 각지 심지어 외국에서도 점을 보러 찾아온다. 마을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말쑥한 콧수염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한 남자가 말을 걸며 즉석에서 점을 봐주겠다고 제안한다. “큰 돈을 벌겠소. 부인 둘에 자식 다섯을 두겠구먼.” (셋 다 틀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44세니까.)

인도 마을에서 흔히 눈에 띄는 소박한 오두막집 대신 여러 층짜리 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점성술사들이 새로 부를 쌓았다는 증거다. 부탐 일가의 번쩍거리는 핑크색 주택들과 간담 가문의 화려한 청색 주택에는 위성 접시 안테나가 달려 있고 고가의 에나멜 타일로 장식됐다. 두 가문 모두 뭄바이·뉴델리와 기타 인도 대도시에 상당한 규모의 점술 사업을 구축했다. 호주·일본·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의 고객을 만나러 수시로 해외 출장을 나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국제적인 사업가인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회장뿐 아니라 지역 고위 정치인과 영화 스타들이 그들의 고객이다.

두 가문의 부상은 카스트(신분제도)의 장벽을 일거에 뛰어넘은 눈부신 성과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세기 동안 점성술은 카스트 제도 중 가장 높은 브라만(성직자) 계급의 영역이었다. 베다스로 알려진 고대 힌두교의 성전에 뿌리를 둔 점성술은 성직자의 전담 분야였다. 중매 그리고 결혼 길일의 택일에 이용됐다. 이른바 ‘구제 점성술(remedial astrology)’은 더 수익성 높은 파생 사업분야다(점성술사는 장신구와 조언을 동시에 판매한다). 행성의 불길한 정렬을 막기 위한 구제수단으로 보석·장신구·의식을 판매하는 식이다. 그런 서비스는 최하층 계급에는 제공되지 않았다. 브라민 사제들이 그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탐과 간담 가문이 속한 장갈루 계급(순례 승려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점괘·의식·구제를 받으러 그들을 찾는 고객층이 엄청났다.

하지만 고객 기반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 순례 점술가에게 큰 돈벌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하위 계급이 사회·정치적으로 막강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예전의 불가촉천민과 막노동 계급을 합치면 인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세력을 바탕으로 지역 정당들이 부상했다. 6개 주에서 인도의 양대 정당인 국민회의당과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같은 지각변동으로 수세기에 걸친 편견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권을 중심으로 뭉친 후원 시스템을 낳았다. 하위 계층 지도자들이 관급계약과 정부 일자리를 뿌리며 지지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부탐과 간담 가문 간의 싸움은 이권다툼에서 비롯된다고 경찰은 말한다. 두 가문은 점성술 사업과 부동산 투기에서 이미 앙숙이었다. 장기간의 분쟁에도 휘말렸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빗나간 로맨스의 결과였다. 2006년 나가라주의 조카딸이 전통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두르가의 조카와 함께 달아났다. 열띤 협상 끝에 양가는 두 젊은 남녀의 결혼을 마지 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그 스토리는 ‘그 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결혼 후 얼마 안 가 두 사람이 갈라섰다. 파경으로 인해 양가의 적개심이 더 깊어졌다. 정치 권력의 분점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 가문은 지역 주의회의 라이벌 선거 진영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암살이 시작되기 전 지역 마을 의회 의장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을 후원했다. 정부 관급 공사의 주요 공급루트다. “두르가의 인기가 높아 간담 가문이 질투했다”고 미망인 티루파탐마가 말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항상 너그럽게 대했고 모든 공동체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

경찰의 설명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마을 의회 의장 선거에서 후원하던 후보를 버리고 다른 후보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듯하다고 현지 경찰관이 말했다. 그런 변심도 피살의 한 원인이었을지 모른다고 경찰은 판단한다.

현재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티루파탐마를 거대한 방갈로의 베란다에서 만났다. 자주색 꽃 무늬가 수 놓인 연녹색 사리(인도의 전통 여성 의상)를 걸치고 양 손목에는 10여개의 적색과 금색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2명의 무장경찰관 사이에 선 그녀는 스마트폰에 담긴 남편 사진들을 보여줬다. 인도 남부의 영화 스타처럼 곱슬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미남이었다. 어떤 사진에선 검정색 조종사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달라붙는 셔츠 차림으로 카메라를 향해 대담하게 걸어온다. 마이클 잭슨의 이름이 새겨진 또 다른 사진에선 그 가수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편이 피살되던 날 밤을 설명하는 티루파탐마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눈꺼풀이 떨린다(경찰에 따르면 최소 4명 이상이 그를 16회 이상 찔렀다). 두르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과 1개와 차파티 빵(일종의 무효모빵) 2개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산책하러 나갔다. 티루파탐마가 설거지를 하 때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발코니로 나갔다. “두르가가 공격당했다”고 마을 사람이 고함쳤다. 두르가의 동생이 그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고 티루파탐마가 말했다. 동생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다. “형이 살해당했다고 말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나가라주의 1차 공판은 오는 8월로 예정돼 있다. 그때 보석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 사법시스템의 재판진행이 부지하세월이기 때문에 재판이 수십 년을 끌지도 모른다. 티루파탐마로선 당장이라도 결말을 짓고 싶은 심정이다.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남편을 죽인 자들이 제거될 때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JASON OVERDORF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2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

3‘서울의 아침’ 여는 자율주행버스...26일부터 운행

4‘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5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

6KT, 1.6테라 백본망 실증 성공...“국내 통신사 최초”

7'윤여정 자매' 윤여순 前CEO...과거 외계인 취급에도 '리더십' 증명

8‘살 빼는 약’의 반전...5명 중 1명 “효과 없다”

9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

실시간 뉴스

1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2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

3‘서울의 아침’ 여는 자율주행버스...26일부터 운행

4‘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5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