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클리프 점핑과 하이 다이빙은 다르다

클리프 점핑과 하이 다이빙은 다르다

라소 쉘러는 스위스-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높이 58.8m인 살토 폭포 꼭대기에서 점프에 성공했다.
라소 쉘러(27)는 폭포 꼭대기에 세워진 임시 플랫폼 끝으로 다가갔다. 스위스-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높이 58.8m 살토 폭포였다. 그 높이에서 클리프 점핑(절벽 뛰어내리기) 도전은 사상 최초였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기록하려는 구경꾼 수십 명과 비디오 촬영팀(오스트리아 에너지 음료 브랜드 레드불 소속)이 숨죽였다. 푸른색 전신수영복을 입고 액션 카메라 고프로가 장착된 헬멧을 쓴 쉘러는 호흡을 고른 뒤 오른발을 떼고 공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브라질 태생으로 스위스에서 자란 쉘러가 뛰어내린 절벽은 피사의 사탑, 파리의 개선문, 또는 17층 건물보다 높다. 최고 낙하속도 123㎞/h, 낙하 시간 3.58초. 떨어질 때의 체감 속도와 수면에 닿는 순간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지만 그는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 나왔다(고관절이 약간 탈구됐다).

그 동영상은 지난 8월 19일 스포츠전문 채널 ESPN과 인터넷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유튜브에 ‘크레이지 가이 점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클리프 점핑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물론 옳은 이야기지만 다른 시각도 제기됐다. 클리프 점프는 하이 다이빙과 다르며 훨씬 덜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1980년대 초 하이 다이빙 세계기록을 2번이나 세운 데이브 린지(58)는 “쉘러의 이번 클리프 점핑은 하이 다이빙 스포츠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그 행동은 하이 다이빙의 기본 요소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냥 절벽에서 뛰어내린 멍청이다.”

하이 다이빙은 자살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려면 높이 외에도 2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다이버 몸의 180도 수직 회전이다. “서 있는 자세에서 뛰어내린다면 머리부터 입수해야 한다”고 린지는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창의적인 다이빙이 필요하다. 내가 두 번째 세계 기록을 세웠을 땐(52m)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다이빙했다.”

둘째 조건은 다이버가 입수 후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물에서 나와야 한다. 린지의 경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풀에서 나올 때 도움을 거절했다. 도움을 받았다면 그의 세계 기록은 무효가 됐을 것이다. 당시 오른쪽 쇄골 골절상을 입었던 린지는 “내 힘으로 나온 뒤 병원에 실려갔다”고 말했다.

린지의 위업은 1982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시월드에서 이뤄졌다. 하이 다이빙의 인기가 급상승한 시절이었다. 극한 다이빙은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ABC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 시리즈에서 최고 인기 코너였다. 그 프로그램에선 멕시코 항구도시 아카풀코의 절벽 다이빙이 유명했지만 높이가 25m 정도에 불과했다. 하이 다이버는 그 2배 이상 높이에서 점프했다.

‘하이 다이빙의 왕’으로 불리는 데이너 쿤체(53)는 “사람들은 높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하이 다이빙 세계 챔피언을 8번 차지한 쿤체는 1983년 샌디에이고 시월드에서 52.5m로 현재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당시 22세였던 그의 7번째 세계 기록이었다.

쿤체는 “나를 다이빙의 세계로 이끌어준 존 토블러는 사이코사이버네틱스(psycho-cybernetics, 인공두뇌심리학)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이론이다. 마음으로 그리면 실제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그가 내게 거짓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엔 실제로 그의 정신력이 엄청난 중력을 극복하도록 도왔다. 쿤체는 마지막 세계 기록 도전에서 아찔한 52.5m 타워에 올라갔다. 전신 수영복 2벌과 정강이 보호대만 착용하고 코에 산화아연만 칠한 채 까마득한 아래의 심연으로 뛰어들며 역 3회전 곡예를 선보였다. 지금 동영상을 보면 그가 맨정신으로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쿤체는 “난 분명히 맨정신으로 내 힘으로 풀에서 나와서 인터뷰까지 했다”고 돌이켰다. “그리고 그날 저녁 술집에 가서 맥주 몇 병을 마셨다.”

그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필립스 중학교에 다니면서 체육 교사 토블러의 권유로 다이빙에 입문했다. 당시 그는 11세였다. 급우였던 랜디 디키슨도 다이빙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고 그처럼 두려움이 없었다. 두 사람은 미니애폴리스 지역의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에서 뛰어내리며 다이빙을 연습했다. 스타일보다는 곡예를 먼저 훈련했다.

데이너 쿤체는 1983년 샌디에이고 시월드에서 52.5m로 하이 다이빙 세계 기록을 세웠다.
쿤체는 “토블러 선생님은 우리를 앉혀 놓고 4∼8년 정도 훈련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돌이켰다. “아니면 곧바로 프로로 전향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들은 같은 해 프로로 전향했다. 당시 쿤체는 13세, 디키슨은 14세였다.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디키슨이었다”고 쿤체는 말했다.

쿤체가 세계 기록을 세운 지 2년 뒤인 1985년 디키슨은 홍콩에서 53.2m 신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다리 3곳에 골절상을 입어 자력으로 풀에서 나올 수 없었다. 1996년 벨기에의 쇼에서 거대한 스폰지로 뛰어내리다가 그는 결국 사망했다.

쿤체의 기록을 깨려고 더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시도한 사람은 디킨슨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올리비에 파브르는 54m 높이에서 역 2회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수면에 부딪치면서 척추 골절상을 입어 고무보트에 실려 나왔다.

하이 다이빙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초보자는 10m 높이에서 회전 없이 풀로 뛰어내리는 실험을 했다. 그는 어중간하게 엉덩이부터 물에 닿았다. 이틀 뒤 그의 허벅지 뒷부분이 시뻘겋게 멍들었다. 쿤체의 세계 기록 높이의 5분의 1도 안 되는 겨우 10m 높이에서 받은 충격이 그랬다.

몇 주 전 쿤체는 쉘러의 대리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쉘러의 클리프 점핑을 지지해 달라는 부탁이었다”고 쿤체는 말했다. “난 처음엔 그냥 쉘러가 누군지 모른다고 답변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본 뒤 그런 쇼에 내 이름을 빌려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쉘러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애 업적인 하이 다이빙의 유산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쉘러가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동영상을 보면 그는 180도 회전을 하지도 않고 뛰어내린 뒤에도 로프를 잡고 물에서 나왔다. 그는 2가지 조건 전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쿤체는 하이 다이빙에서 세계 기록을 계속 유지하고, 쉘러는 클리프 점핑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주 무모한 모험꾼이라는 사실이다.

- JOHN WALTER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출산율 감소 걱정’ 머스크, 회사 임원과 3번째 아이 또 출산

2불닭, ‘매운 강도 심했나’…덴마크 리콜에 검색량 폭주

3테슬라 방전에 40도 폭염 속 20개월 아기 갇혀…“외부서 열리지 않았다”

4서울 아파트 1채, 지방 아파트 3채보다 더 비싸

5“의사 선생님, 삶이 너무 덧없습니다”…나는 이렇게 답했다

6‘대박 행진’ 게임 ‘나혼렙’으로 본 IP 확장성

7하이브의 큰 그림…아티스트 대신 ‘스토리 IP’에 집중

8IP 확장의 힘…‘美 상장’ 마지막 퍼즐 맞춘 네이버웹툰

91125회 로또 1등 ‘6·14·25·33·40·44’

실시간 뉴스

1‘출산율 감소 걱정’ 머스크, 회사 임원과 3번째 아이 또 출산

2불닭, ‘매운 강도 심했나’…덴마크 리콜에 검색량 폭주

3테슬라 방전에 40도 폭염 속 20개월 아기 갇혀…“외부서 열리지 않았다”

4서울 아파트 1채, 지방 아파트 3채보다 더 비싸

5“의사 선생님, 삶이 너무 덧없습니다”…나는 이렇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