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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103) 리커창 중국 총리] 잇단 악재 속 건재 과시한 ‘경제 대통령’
- [글로벌 파워 피플 (103) 리커창 중국 총리] 잇단 악재 속 건재 과시한 ‘경제 대통령’

주목할 부분은 열병식을 역사와 연결했다는 점이다. 70년 전 항일전쟁 승리는 물론 121년 전 청일전쟁의 패전도 잊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오성홍기를 든 중국 의장대가 인민영웅열사비에서 국기게양대까지 정확하게 121보를 걸어갔기 때문이다. 1894년 조선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처참하게 패배해 ‘동양의 병자’로 불렸던 121년 전의 중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걸음수다. 국제 사회에 21세기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다.
시 주석의 왼쪽은 더욱 상징적이다. 장쩌민 전 주석-후진타오 전 주석-리커창 총리 순서로 배석했다. 전·현직 국가지도부가 출동해 중국 공산당의 지배 전통을 보여주고, 중화부흥을 위한 국가 단합을 결의하는 모습이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리커창(60) 총리다. 그는 전직 최고지도자와 나란히 서서 천안문 아래를 내려다 봤다. 행사의 마지막도 그의 ‘종료’ 명령으로 장식됐다. 최근 중국 증시 악재 등을 겪으면서 입지가 흔들린다는 분석이 나왔던 그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 대목이다.
열병식에서 전직 지도자와 어깨 나란히

박-리의 네 번째 회담이다. 세계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한·중 FTA 활용 등 양국 간 호혜적인 경제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중에 역대 최대 규모인 156명의 경제사절단을 데려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해 대기업 대표단 23명과 중견·중소기업 대표단 105명 등 기업인 128명, 경제 단체 및 협회에서 21명, 공공기관 및 연구소에서 7명이 함께했다. 9월 4일 상하이에선 이들이 참석한 비즈니스포럼이 열렸다.
사실 리 총리는 최근 계속 시련을 겪어왔다. 상하이 증시는 지난 8월 24일 8.49% 폭락하면서 2007년 이후 최대 규모의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기관투자자들이 돈을 쏟아 붇게 했지만 관치가 시장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배경이 된 경제 성장 둔화도 리 총리를 괴롭히는 요소였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 중앙통일전선공작 부장이 부패 혐의로 체포된 뒤 리 총리의 권력 기반이 된 공청단파가 붕괴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위안화 절하를 원치 않는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위안화를 절하했다. 지병인 당뇨가 악화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새나왔다. 이런 상황을 겪고 있던 리 총리였지만 열병식에서 자신이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리 총리는 마카이 부총리와 함께 지난 7월 초 중국 정부가 내놓은 증시 부양책을 설계했다. 주식의 단기 매매를 금지하고 정부기관을 통해 2000억 달러(237조44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하는 특단의 조치였다. 하지만 또 다시 폭락장을 맞으면서 중국 당국은 대규모 주식 매입을 통한 증시 부양 방안을 사실상 포기했다. 대신 지난 8월 11일부터 사흘간 위안화를 3%가량 평가 절하했다. 이는 리 총리가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의 라이오넬 바버 FT 편집인과 취임 후 첫 서방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발언과 상충된다. 이 자리에서 리 총리는 “비록 약한 위안화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위안화 절화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방에서는 그가 증시는 물론 통화정책에서도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을 이길 수는 없는데 관치로 여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증시 폭락을 앞둔 지난 7월 리 총리는 경제에 자신감을 앞세우면서 증시 폭락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주가가 폭락한 ‘블랙먼데이’에도 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증시 부양 대신 3D프린터 산업 발전만 주문했을 뿐이다. 시장경제는 물론 생산을 제외한 금융 등 경제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까지 나왔다. 심지어 2017년 당대회에서 어떤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2017년 당대회에서 연령 제한으로 은퇴하는 장더장 전인대위원장의 뒤를 잇는 방식으로 총리에서 조용히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권력 서열 2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전례도 있다. 1997년 9월에 열린 15차 당대회에서 당시 리펑 총리가 권력 서열 2위는 유지한 채 전인대 위원장으로 자리만 바꿨다. 당시 서열 5위였던 주룽지 부총리가 3위로 올라오면서 5년 단임의 국무원 총리를 맡았다.
아프리카·남미 돌며 중국 위상 높여
리커창 총리는 활발한 해외 순방과 국제적인 경제협력으로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13년 5월에는 인도·파키스탄·스위스·독일을 순방하며 시장 개척과 기술도입의 길을 각각 열였다. 가장 주목할 점은 아프리카 시장 개척이다. 2014년 5월에는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아프리카 대륙을 중국 경제의 텃밭으로 바꿔 놨다. 올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버지의 고향인 케냐를 포함해 아프리카를 순방한 이유도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의 중심지에는 ‘공사중’임을 알리는 중국어 간판이 수두룩하다. 중국산 제품은 아프리카의 소상공인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대륙 깊숙이 침투했다. 심지어 전통 민속 공예품까지 이를 카피한 중국 제품에 밀릴 정도라고 한다. 리 총리가 기획한 체계적인 아프리카 진출의 결과다. 인도적인 원조로 시작해 대대적인 인프라 공사 수주와 수출 신장으로 연결하는 게 리 총리의 새 시장 개척의 공식이다. 지난 5월에는 야심적인 신대륙 개척에 나섰다. 브라질·콜롬비아·페루·칠레의 남미를 순방한 것이다. 제2 파나마 운하부터 파나마 운하를 상당수 대체할 수 있는 있는 중남미 횡단 고속도로 건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제안됐다.
리 총리는 최근 들어 젊은이들의 벤처 창업에 유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경제는 젊은이의 벤처에서 온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지난 5월 7일에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을 깜짝 방문해 젊은 창업가들와 대화를 나눴다. 창업 카페에 들른 그는 바닐라 카푸치노를 시켜놓고 젊은 ‘촹커(創客·혁신창업자)’들과 어울렸다. 리 총리는 “창업은 모든 것의 기초”라며 촹커들을 격려했다. 리 총리는 투자설명회(IR)를 참관하고 중국 스타트업 일자리 정보 사이트인 라거우왕의 최고경영자(CEO) 마더롱과 대화를 나눴다. 라거우왕은 매년 6만여개의 스타트업 기업과 150만명의 구직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일자리 정보 제공 사이트다.
벤처 키우는 ‘촹커 전도사’
1955년 안후이성 딩위안 출신인 리 총리는 1982년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받았다. 기술 관료 중심의 중국 지도부에서 드문 경제학 박사다. 대학 졸업 뒤 1983~98년 공청단에서 중앙학교부 부장, 중앙서기처 서기 등을 지내다 1998년 허난성 당부서기 겸 성장 대리로 지방행정에 뛰어들었다. 2002년 허난성 당 서기 겸 성장에 올랐으며 2004년에는 랴오닝성 당서기로 옮겼다. 그가 중앙 정부로 진출한 것은 2007년 17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되면서다. 한국에는 세 차례 방문했다. 1995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시절, 2005년 랭닝성 당서기 시절, 2011년 국무원 상무 부총리 시절이다. 북한도 두 차례 찾았다. 2005년 랴오닝성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북한 평안북도 노동당위원회 초청으로 북한을 찾은 게 처음이다. 2011년 부총리 시절 한국을 찾으면서 북한도 나란히 찾았다. 남북한의 실상을 모두 잘 아는 지도자로 평가 받는 이유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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