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인가 뮤지컬인가

앨빈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역사를 목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거슈윈의 명성과 야심으로 미뤄 볼 때 그의 오페라는 불멸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욕 문화·사교계의 내로라하는 인사 모두가 그 현장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 후 지금까지 80년이 흐르는 동안 그날 저녁 앨빈 극장의 무대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포기와 베스’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뮤지컬인가 아니면 오페라인가? 순수 예술인가 아니면 예술성 있는 대중 문화인가? 미국 흑인의 삶을 동정적이고 선구적으로 다룬 작품인가 아니면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출인가?
열광적인 관객과 달리 당시 비평가의 반응은 엇갈렸다. 조지 거슈윈을 야심이 지나치고 벼락출세한 팝음악가로 폄하하는 비평이 많았다. 비평가들이 ‘포기와 베스’를 오페라로 구분하는데 의문을 가진 이유는 이 작품에 재즈, 블루스, 흑인 영가 등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오페라’를 썼다면 왜 앨빈 극장 같은 브로드웨이 대중 뮤직홀에서 공연했을까?”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했다. 소프라노 애비 미첼이 ‘포기와 베스’의 첫 아리아 ‘서머타임’을 부르기 시작하자 조지 거슈윈 음악의 현실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멜로디와 가사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여름이 왔네 느긋한 나날
(Summertime an’ the livin is easy)
물고기는 뛰고 목화는 무르익어
(fish are jumpin’and the cotton is high)
아빠는 부자 엄마는 미녀
(oh yo’ daddy’s rich an’ yo’ ma is good lookin’)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마라
(so hush, little baby, don’ yo’ cry.)...

헤이워드는 흑인 근로자와 하인들이 거주하는 마당 딸린 18세기 건물이 늘어선 ‘캐비지 로’ 부근의 누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소설 소재를 찾으려고 지역 신문 찰스턴 뉴스 앤 쿠리어를 집어 들었다.
신문에서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앉은뱅이 걸인 새뮤얼 스몰스(염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가 매기 반스를 사살하려다가 가중폭행 혐의로 구속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소설 줄거리를 떠올렸다.
헤이워드와 아내 도로시가 공동 집필한 소설 ‘포기’는 1925년 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도로시는 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어도 손색없다고 판단하고 희곡으로 각색했다. 뉴욕의 유명한 극단 시어터 길드가 ‘포기’를 연극으로 제작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 1927∼28년 큰 인기를 끌었다.
‘포기’에는 멜로드라마틱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줄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헤이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찰스턴에 사는 모든 백인이 의존하는 흑인의 삶에 매료됐다.
그의 어머니 제인은 그 지방의 독특한 ‘굴라’ 언어와 문화의 아마추어 전문가가 됐다. 농사를 지으려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로 데려온 서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 사이에서 대대로 물려 내려온 문화를 말한다. ‘앙골라’에서 유래한 듯한 ‘굴라’는 여러 서아프리카 언어의 어휘와 문법이 뒤섞인 영어를 말한다. 헤이워드는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찰스턴의 어린이처럼 굴라어를 사용하는 보모와 하인, 일꾼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재스보 브라운’(1924년), ‘맘바의 딸들’(1929년), 유진 오닐의 희곡 ‘황제 존스’를 각색한 영화대본(1933년) 등 헤이워드의 작품은 미국 백인이 흑인의 삶과 문화를 거의 몰랐던 시절에 나왔다.
헤이워드의 작품들은 지금 보면 시대에 뒤졌고, 오랫동안 흑인을 비하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그 시절 백인이 쓴 작품 중에선 흑인 문화에 가장 해박하고 동정적이었다.
‘포기’가 발간됐을 때쯤 조지 거슈윈은 미국 오페라를 염두에 두고 바탕이 될 만한 소설을 찾았다.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소설 ‘포기’를 읽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헤이워드 부부에게 연락한 뒤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다. 거의 10년이 걸렸다. 내용은 이렇다.
경제공황의 한파가 거세게 불어닥치던 1930년대 미국 남부의 흑인 빈민가. 마약 중독자 크라운이 놀음판을 벌이다 세레나의 남편 로빈을 살해한다. 크라운의 정부인 베스는 그를 피신시켜준 뒤 앉은뱅이 걸인 포기의 집으로 숨어든다. 베스는 포기와 사랑에 빠지고 베스를 향한 세레나의 증오심은 갈수록 커진다. 포기는 베스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마을에 나타난 크라운을 살해한다. 그러나 베스는 마약의 유혹에 빠져 마약쟁이 스포팅라이프와 함께 뉴욕으로 날아간다…
거슈윈은 ‘포기와 베스’를 ‘미국 민속 오페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 이래 미국 비평가들은 큰 혼동을 겪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같은 러시아 음악가에겐 ‘민속 오페라’라는 개념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향토적인 ‘민속’ 음악과 전통을 동원해 독특한 국가적 오페라를 창작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알았던 거슈윈은 ‘포기와 베스’를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에 견주었다(실제로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는 ‘카르멘’의 악곡 형식을 따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포기와 베스’는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지의 순회 공연을 통해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비평가들도 그 작품의 중요성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조지 거슈윈의 기념비적인 미국 민속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마침내 1985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레퍼토리에 진입했다. 거의 동시에 초연 50년 만에 찰스턴에서도 처음 무대에 올랐다.
30년 뒤인 지금은 아무도 이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포기와 베스’는 미국의 클래식이 됐다.
- BLAIR A. RUBLE / 번역 이원기
[ 필자 블레어 A 루블은 도시방재 전문가로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프로그램 담당 부원장이다. 이 기사는 종합평론 계간지 ‘윌슨 쿼털리(Wilson Quarterly)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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