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사회적기업① 에이컴퍼니]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그림 사세요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기업① 에이컴퍼니]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그림 사세요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취약계층 일자리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수익도 내는 사회적기업이 냉혹한 시장경제에 상생의 온기를 뻗치고 있다. 문화예술·산업안전 등 분야도 다양해졌다. 착할 뿐더러 돈도 버는 사회적기업을 만나 본다. 지난 9월 초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2015 브리즈아트페어. 대부분 무명인 신진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는데 나흘간 약 2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들 가운데 24명이 난생 처음으로 미술작품을 구매했다. 13점의 전시작품은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팔렸다. 이 전시회를 주최한 에이컴퍼니 정지연 대표는 “미술작품을 한번 사본 사람은 전시회를 찾을 때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작품을 구매한 작가를 기억하고, 전시회 재방문율도 높습니다. 사고 싶은 작품을 점찍어 놓고 다음날 가족들과 함께 와 사가는 경우도 꽤 있어요. 이들은 이런 경험 자체를 즐거워하고 이를 계기로 대부분 아티스트의 팬이 되죠.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브리즈아트페어는 올해로 3회째. 이미 미술계에 새롭게 부는 산들바람(breeze)이 됐다. 서울의 강남도 아니고 서울의 북단 은평구 불광역 부근서 열린 신진 작가 전시회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기존 전시회와 달리 전국에서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 전원이 나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한다. 올해의 경우 작가 60명이 진을 치고서 관람객들과 만났고 자기들끼리도 활발하게 소통을 했다. 전시장엔 파티장처럼 음악이 흐르고 맥주와 음료가 제공된다. 또 직장인들이 평일 퇴근 후에도 찾을 수 있도록 전시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연장했다. 아트컴퍼니 측은 ‘당신의 첫 미술 작품을 브리즈아트페어에서 만나보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에이컴퍼니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신진 미술작가를 공개모집 방식으로 발굴하는 일을 한다. 이들 신예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고 그 과정에서 이들과 정식으로 계약서를 쓴다. 신진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파는 것도 그런 시도의 하나. 그 덕에 작품 구매자가 늘어났다. 그림이 부자들이나 즐기고 이들이 재테크용으로 투자하는 것만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에이컴퍼니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영국의 ‘오운아트론(own art loan)’을 벤치마킹해 볼 것을 건의했다. 오운아트론은 영국 정부가 HSBC 등의 금융사와 협약을 맺어 국민들이 예술작품을 사들일 때 10개월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이다.
작품을 판매할 때도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여유계층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신예의 작품을 보고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 예술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일반인이 말하자면 타깃 마켓이다. 브리즈아트페어에서 팔리는 신진 작가의 작품 가격은 500만원 이하이다. 기업이 사들일 때 손비 처리할 수 있는 상한이다. 일반인이 10개월 할부로 구매할 경우 월부담액은 50만원. 에이컴퍼니 측은 이 돈이, 개인이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상한이라고 밝혔다.
에이컴퍼니는 기타형 사회적기업이다. 단적으로 장애인, 고령자 등의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취약계층서비스 형 사회적기업과 달리 기존 카테고리로 분류하기가 마땅치 않은 때문이다. 고용 노동부로부터 세 번 만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인증 실무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육성평가팀이 담당한다. 한편 이 기관의 창업지원팀은 일찍이 에이컴퍼니를 스타 사회적기업으로 뽑았다. 작가와 대중, 작가와 작가가 만나 소통하는 공간인 ‘미나리하우스’가 사회적기업답지(?) 않게 세련됐고 발상 자체가 기발했기 때문이다. 미나리하우스는 에이컴퍼니가 운영하는 카페형 갤러리 겸 신진 작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에이컴퍼니 측은 “정화작용을 하는 미나리처럼 미술로 인해 사람들이 힐링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티스트 팬클럽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다 창업을 했다. “여러 사람에게서 ‘예술가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건 참 의미 있는 일로 도움이 된다면 자신도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려 창업을 했죠.”
- 이필재 더 스쿠프 대기자
“신진 작가의 창작환경 개선이 목적”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는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신진 미술작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정서적·제도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열악한 창작 환경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슈화하는 한편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관계자들에게 건의하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팔아 수익을 내겠다는 건 부차적인 목적이죠.”
미술 작가의 정서적 환경이 뭔가요?
“우리 사회가 모든 것에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젊은 신진 작가의 부모들조차 이들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은 제대로 못 벌지만 엄연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술하는 자식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니, 언제까지 너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 거니’ 하고 눈치를 주는 거죠. 4대보험 등 예술가를 위한 제도는 전무하다시피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가 없어요. 직접 만나 본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래서 주눅이 들어 있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회적 소외감 탓에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선진 외국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요?
“프랑스·영국 같은 나라는 예술가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실업수당 등 예술가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습니다.”
미술 시장에 대해선 어떤 문제의식이 있나요?
“신진 작가가 성장할 수 있어야 게임·콘텐트산업의 2차 창작자들도 순수미술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에게 그림이란 그냥 보는 거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뭘 보고 뭘 느껴야 하는지도 몰라요. 어쩌다 미술 갤러리를 찾아도 5분이면 다 감상했다고 하면서 나와요. 그런데 영화 보고 책 사는 돈을 아껴 미술 작품을 살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세 시간씩 작품을 감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소유할 수 있어야 관심이 생깁니다. 작년에 브리즈아트페어를 처음 알게 돼 생애 처음으로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 가운데 올해도 한 작품 사들였고 내년에도 하나 사야지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보통사람들이 첫 월급을 털어 그림 한 점 사고, 돈을 모아 결혼기념일날 한 점 사들이면서 행복해 하고, 작가를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작가로서는 그림이 팔려 좋기도 하지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죠. 브리즈아트페어가 ‘진원’이 돼 우리 사회에 이런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들은 자신이 작품을 구매한 작가를 기억하고, 전시회 재방문율도 높습니다. 사고 싶은 작품을 점찍어 놓고 다음날 가족들과 함께 와 사가는 경우도 꽤 있어요. 이들은 이런 경험 자체를 즐거워하고 이를 계기로 대부분 아티스트의 팬이 되죠.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브리즈아트페어는 올해로 3회째. 이미 미술계에 새롭게 부는 산들바람(breeze)이 됐다. 서울의 강남도 아니고 서울의 북단 은평구 불광역 부근서 열린 신진 작가 전시회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기존 전시회와 달리 전국에서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 전원이 나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한다. 올해의 경우 작가 60명이 진을 치고서 관람객들과 만났고 자기들끼리도 활발하게 소통을 했다. 전시장엔 파티장처럼 음악이 흐르고 맥주와 음료가 제공된다. 또 직장인들이 평일 퇴근 후에도 찾을 수 있도록 전시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연장했다. 아트컴퍼니 측은 ‘당신의 첫 미술 작품을 브리즈아트페어에서 만나보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에이컴퍼니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신진 미술작가를 공개모집 방식으로 발굴하는 일을 한다. 이들 신예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고 그 과정에서 이들과 정식으로 계약서를 쓴다. 신진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파는 것도 그런 시도의 하나. 그 덕에 작품 구매자가 늘어났다. 그림이 부자들이나 즐기고 이들이 재테크용으로 투자하는 것만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에이컴퍼니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영국의 ‘오운아트론(own art loan)’을 벤치마킹해 볼 것을 건의했다. 오운아트론은 영국 정부가 HSBC 등의 금융사와 협약을 맺어 국민들이 예술작품을 사들일 때 10개월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이다.
작품을 판매할 때도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여유계층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신예의 작품을 보고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 예술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일반인이 말하자면 타깃 마켓이다. 브리즈아트페어에서 팔리는 신진 작가의 작품 가격은 500만원 이하이다. 기업이 사들일 때 손비 처리할 수 있는 상한이다. 일반인이 10개월 할부로 구매할 경우 월부담액은 50만원. 에이컴퍼니 측은 이 돈이, 개인이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상한이라고 밝혔다.
에이컴퍼니는 기타형 사회적기업이다. 단적으로 장애인, 고령자 등의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취약계층서비스 형 사회적기업과 달리 기존 카테고리로 분류하기가 마땅치 않은 때문이다. 고용 노동부로부터 세 번 만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인증 실무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육성평가팀이 담당한다. 한편 이 기관의 창업지원팀은 일찍이 에이컴퍼니를 스타 사회적기업으로 뽑았다. 작가와 대중, 작가와 작가가 만나 소통하는 공간인 ‘미나리하우스’가 사회적기업답지(?) 않게 세련됐고 발상 자체가 기발했기 때문이다. 미나리하우스는 에이컴퍼니가 운영하는 카페형 갤러리 겸 신진 작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에이컴퍼니 측은 “정화작용을 하는 미나리처럼 미술로 인해 사람들이 힐링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티스트 팬클럽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다 창업을 했다. “여러 사람에게서 ‘예술가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건 참 의미 있는 일로 도움이 된다면 자신도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려 창업을 했죠.”
- 이필재 더 스쿠프 대기자
[박스기사] 정지연 아트컴퍼니 대표
“신진 작가의 창작환경 개선이 목적”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는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신진 미술작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정서적·제도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열악한 창작 환경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슈화하는 한편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관계자들에게 건의하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팔아 수익을 내겠다는 건 부차적인 목적이죠.”
미술 작가의 정서적 환경이 뭔가요?
“우리 사회가 모든 것에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젊은 신진 작가의 부모들조차 이들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은 제대로 못 벌지만 엄연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술하는 자식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니, 언제까지 너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 거니’ 하고 눈치를 주는 거죠. 4대보험 등 예술가를 위한 제도는 전무하다시피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가 없어요. 직접 만나 본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래서 주눅이 들어 있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회적 소외감 탓에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선진 외국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요?
“프랑스·영국 같은 나라는 예술가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실업수당 등 예술가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습니다.”
미술 시장에 대해선 어떤 문제의식이 있나요?
“신진 작가가 성장할 수 있어야 게임·콘텐트산업의 2차 창작자들도 순수미술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에게 그림이란 그냥 보는 거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뭘 보고 뭘 느껴야 하는지도 몰라요. 어쩌다 미술 갤러리를 찾아도 5분이면 다 감상했다고 하면서 나와요. 그런데 영화 보고 책 사는 돈을 아껴 미술 작품을 살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세 시간씩 작품을 감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소유할 수 있어야 관심이 생깁니다. 작년에 브리즈아트페어를 처음 알게 돼 생애 처음으로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 가운데 올해도 한 작품 사들였고 내년에도 하나 사야지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보통사람들이 첫 월급을 털어 그림 한 점 사고, 돈을 모아 결혼기념일날 한 점 사들이면서 행복해 하고, 작가를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작가로서는 그림이 팔려 좋기도 하지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죠. 브리즈아트페어가 ‘진원’이 돼 우리 사회에 이런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2‘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3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4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5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6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7“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8미래에셋, ‘TIGER 글로벌BBIG액티브 ETF’→’TIGER 글로벌이노베이션액티브 ETF’ 명칭 변경
9한투운용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 ETF’, 주주가치 섹터 중 연초 이후 수익률 1위